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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시편 복음............... 조회 수 2421 추천 수 0 2011.12.24 09: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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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56:1-13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본문: 시56편 1- 13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2.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5.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6.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

7.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헨크 프레델링(Henk Vredeling)은 네덜란드의 전직 장관입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네덜란드 저항군으로 활동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위험천만한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는 양말 속에 독일 잠수함 기지에 대한 정보를 담은 문서를 숨겨 기차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어디선가 기차가 멈췄습니다. 독일군들이 검문을 위해 기차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두려움이 프레델링을 엄습했습니다. 그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차 한 칸 한 칸을 뒤지며 다가오는 독일군의 모습, 기차 칸막이 문을 세차게 닫는 소리, 저벅저벅 들려오는 독일군의 군화 소리, 이 모든 것이 생생하다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그들이 프레델링이 탄 칸에 들이닥쳤습니다. 두려움으로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는 기차 창밖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푸른 하늘이 보였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말씀 한 구절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시 23:4). 이 순간에 대해 프레델링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갑자기 무서움이 사라졌습니다. 두려움의 사슬에서 풀려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올 테면 오라! 그들이 내게 무슨 짓을 하겠는가?’”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에게도 생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두려움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신1:29)

 

본 시는 다윗이 쓴 시입니다. 시편 57편과 주제와 구성에 있어서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이 둘을 쌍둥이 시라고도 표현합니다. 다윗은 큰 고통과 환난의 날에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잊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위협과 두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우리가 이 시편을 읽으면서 다윗은 절박한 위험 속에 있었던 것이 느껴집니다.

다윗은 그때 사울이 두려워서 가드로 도망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블레셋인들은 다윗을 의심하고 죽이려 하였습니다. 위기에 처한 다윗은 두렵고 불안하여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윗에게 블레셋 대장 골리앗을 쳐 물리치던 일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새로운 용기와 담력을 얻고 이 시를 쓰게 된 것입니다.

 

본문 1- 2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영국에서 존경받던 그리스도인 가운데 토머스 모어(Thomas More) 경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 죄도 없이 무고하게 잡혀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사형을 언도한 재판관을 향해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재판관이시여, 당신을 친구라고 부르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친구여, 나는 당신과 나의 관계가 바울과 스데반의 관계가 되기를 원하오. 바울이 스데반을 죽였지만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이 두 사람은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 있을 것이오. 그대가 나에게 죽음을 선고했지만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구원을 함께 누리는 친구가 되기를 바라오.’ 재판관은 토머스 모어 경의 감격스러운 선언을 듣고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사형을 언도했는데 그대가 나를 선대하는 이유는 무엇이오?’ 이에 토머스 모어는 ‘주께서 먼저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가식이나 위선이나 자기 절제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고 신앙 인격에 맺힌 열매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했기에 그 결과로 긍휼을 베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정말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래서 다윗입니다. 두려운 날에는 누구를 의지한다고요? 하나님을! 여러분, 두려운 날엔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하나님 아닌 그 무엇을 의지할 것이 남아 있습니까? 아직도 하나님 아닌 그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으십니까? 아직 인생의 위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분입니다. 아직 진짜 두려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입니다. 덜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덜 두려워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운 날엔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운 날엔 하나님을 의지하겠다고 고백한 다윗, 계속해서 이렇게 다짐하며 노래합니다.

 

여기 "의지하다"는 히브리 단어는 "꼭 매어 달리다"라는 뜻입니다. 마치 젖먹이 어린 아이가 어머니 품에 착 달라붙어 안기는 것과 같습니다. 젖먹이를 엄마 품에서 억지로 떼어내려고 했다간 큰일 납니다. 왜? 그 아이에게 엄마 젖을 놓친다는 것, 곧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할 때, 젖먹이 어린 것이 엄마 품에 파고들듯, 주님 품에 파고들어 안기는 것을 말합니다. 나 전체를 온전히 맡기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만 의지하시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시기 바랍니다. 한 다리는 여기에, 다른 다리는 저기에, 안긴 것도 아니요, 안 안긴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지 마시고, 기왕에 믿는 것, 철저히 믿으시고, 온전히 안기시기 바랍니다. 온전히 맡긴 내 영, 주께서 지켜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이쯤에서 다윗의 저 놀라운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그 믿음의 정체를 한번 밝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8절을 보니,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거기 '계수하다'라는 말, 숫자 하나하나씩 헤아려 간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 수를 하나씩 헤아리듯 나의 사정을 하나하나 다 헤아려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운 날에 오직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다윗의 그 무엇을 계수하셨고, 또 보살펴 주셨는지, 다윗의 고백을 통해 헤아려 보겠습니다. 이 시간, 그 하나님을 만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 11)

 

현대 사회는 불안의 시대라고들 합니다. 각종 범죄가 극성을 부리고 인명 경시 풍조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몇 십년 전만 해도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는 굉장히 충격적인 것이었는데 이제는 일상적인 소식이 되다싶이 되었고, 서로 믿고 의지하던 모습은 사라져서 자신만을 위하고 몸을 사리는 이기주의가 팽배해져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평안과 기쁨이 자취를 감추고 불안과 공포, 근심이 자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금심으로 인해 사람들은 병들어가고 있으며 자살율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빨리 이러한 각종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려운 날에 사람의 위로를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위로를 구해야 합니다. 사람은 두려운 모습을 보이고 위로를 구하면 약한 자에게 강하는 구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용하고 약점으로 잡아서 부릴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를 의지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약할 때 강함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를 의지하면 위기 때에 위로를 받습니다. 두려운 날에 주를 의지하면 위로를 받게 됩니다.

 

두려운 날에 "내가 하나님 앞에, 생명의 빛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애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굳게 확신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했다고 말씀하십니다. 13절을 보면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치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했습니다.

 

다윗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때로는 원수들의 공격 앞에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였으나, 이내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표제에도 보면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상황이 어디 단순한 상황입니까? 그러나 그는 두려운 날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12절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바로 자신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정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원수 앞에서 어떤 때는 미친 척까지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였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사정을 아시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환난 중에서도 오히려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네게 어찌 하리이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억울할 때에, 내가 홀로 외로움으로 눈물지을 때에, 내가 두려운 날에 우리가 결코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눈을 열어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들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억울함과 탄식을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서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곁에 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나의 고통당함을 하감하시며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바라보고 계시고, 내가 하는 말과 나의 모든 것을 듣고 아심을 믿습니다.

현대를 총체적 위기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성의 문제, 도덕의 문제, 안전의 문제 등등이 우리를 위협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를 더욱 의지함으로 위기관리능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본문 4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여기 맨 마지막 구절을 보시지요. 놀라운 고백입니다. 사람이 나를 어찌하겠느냐?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하나님과 함께 가는 나를, 감히 사람이 어찌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사람은 나를 어찌하지 못합니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와 하나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똑바로 서기만 하면, 내가 말씀을 찬송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나를 사람이 어찌하지 못하는 위대한 인생으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아멘!

 

본문 5- 7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본 절은 다윗에 대한 블레셋인들의 적대감을 잘 나타내 줍니다. 블레셋인들은 다윗이 아기스에게 무슨 말을 하든 그 저의를 의심하며 나쁜 쪽으로 해석하고 들었습니다.(삼상29: 1- 11)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의 생명을 해하기 위해 줄기찬 노력을 계속합니다. 그래서 다윗의 발자취(종적) 살핍니다. 일거수일투족을 늘 지켜보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24시간 내내 그의 행위를 감시하며 참소거리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뜻대로 살려는 영적으로 거듭난 새 교회가 나타나면 하나님의 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려고 흠집을 찾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가드에 피신하여 몸을 의탁하는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과 관련 원수들이 하나님을 조롱하며 교만한 상태에 처해 있으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의 교만을 꺾어 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본문 8절을 보겠습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로소서"했습니다. 그리고 사61:3에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로하심을 받게 합니다. 하나님이 그 유리함을 계수하여 주십니다.

 

인간의 위로도 약간은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위로나 완전한 위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위로인줄로 믿습니다. 주를 의지하면 하나님은 위기 중에 우리를 도우시고 승리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위기를 막으시고 회복시키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날에는 더욱 주님을 의지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 있는 고대 묘지에서 특이한 유물로 여러 가지 ‘눈물 병’이 출토되었습니다. 대개 이 병은 얇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었으나, 가난한 사람들은 굽지도 않고 광택도 내지 않은 단순한 토기로 된 병을 사용했습니다. 병의 바닥은 넓고 몸통은 호리호리하며 입구는 깔때기 모양으로 생겼습니다. 한 가정에 누가 심하게 아프거나 죽으면 친척들이 제각기 눈물 병을 하나씩 가지고 모여들었습니다. 슬피 눈물을 흘리면 그것을 병에 모았습니다. 따라서 이 눈물 병은 그들에게 매우 성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가슴을 에이는 모든 고통과 슬픔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그 눈물 병은 가장 성스러운 유물로서 유해와 함께 안치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우리는 환난과 고통의 순간에 혼자라고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살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물 병에 우리가 흘리는 그 고통과 괴로움의 눈물을 담으시고 보존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의 눈물 병도 눈물을 영원히 간직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병에서는 영원토록 보존될 것입니다. 나아가서 그 병에 담겨진 눈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내 기쁨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눈물이란 땅 위에 사는 척추동물의 누선, 곧 눈물샘에서 나오는 투명한 액체로서, 각막과 결막을 항상 적셔 주어 이물질을 씻어냄과 동시에, 각막 자체에 포도당과 산소를 공급해 줍니다. 또한, 이산화탄소 등의 노폐물을 받아내는가 하면, 각종 세균의 감염도 방지해 주는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사람의 경우, 눈물의 1일 분비량은 1∼1.2mℓ 정도인데, 신기하게도 수면 중에는 눈물이 분비되지 않습니다. 생후 3개월 이내의 신생아는 울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으며, 대체로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분들보다, 그리고 여성이 남성보다 분비량이 더 많습니다. 눈물샘은 여러 신경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직도 정확한 원리를 다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슬플 때 왜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되는지에 대해서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물론 우리가 슬플 때만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닙니다. 화가 났을 때, 너무 기쁠 때, 억울할 때, 너무 많이 웃을 때에도 눈물이 나곤 합니다. 양파나 마늘 같은 야채를 다룰 때나 하품을 할 때도 우린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눈물은 언제나 조금씩 나와, 우리 눈을 적시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눈물은 눈물샘이란 기관에서 만들어진다 했습니다. 눈물샘에서 만들어진 눈물은, 항상 우리가 느낄 수 없을 만큼 조금씩 흘러내려, 제 할 일을 다 하고는 눈 옆쪽의 ‘누낭,’곧 눈물주머니에 모이게 됩니다.

 

우리가 하품을 하게 되면 근육이 움직이면서, 바로 이 눈물주머니를 세게 누르게 되어, 그 곳에 모여 있던 눈물이 넘쳐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눈물 하나만 보아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창조 섭리가 얼마나 오묘한지 알게 됩니다.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에는 눈물과 관련하여 아주 재미있는 풍속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을 받아두는 풍속이었는데, 이를 위해 갖가지 모양의 눈물 병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이 눈문 별은 주로 얇은 유리로 만들었으며, 작은 것은 7~8cm에서 큰 것은 20cm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눈물 병의 가격이 상당하여 가난한 사람들은 토기로 만든 것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눈물 병은 가족 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가정에 예기치 않았던 재난이 생겼을 때나 마음이 상하여 눈물을 흘리게 될 때, 얼른 자기 눈 아래에 자기의 눈물 병을 가져다 대고는 흐르는 눈물을 그 병에 담아 두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눈물을 받아 놓은 병은 잘 밀봉하여 눈에 잘 띠는 곳에 보관했다가, 또다시 가족이나 친척 중에 슬픈 일을 당하게 되면, 그 눈물 병을 챙겨 가지고 가서 함께 울면서, 눈물을 받곤 했던 것입니다. 당시엔 이 눈물 병을 매우 신성한 것으로 여겨 소중하게 간직했습니다. 그렇게 주인과 한 평생을 같이 한 눈물 병은 주인이 죽으면 주인과 함께 매장되곤 했는데, 반대로 자기 눈물 병을 깨뜨렸거나, 모아두었던 눈물을 쏟게 되어, 장례식 때 함께 매장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큰 수치로 여겼다고 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에도 이 눈물 병이 등장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텔레비전 공중파 3사의 유명 드라마를 보면, 유난히 눈물 흘리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어려운 세태를 반영하는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드라마에 눈물 연기가 빠지는 날이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의 장금이가 열연하고 있는“대장금”(MBC)에서는 한 많은 여인의 의로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장금이의 눈을 보노라면 가슴이 무너져 내리긴 하지만, 그 눈물과 함께 이겨낼 새 날을 기대하면서, 이겨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호연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꽃보다 아름다워”(KBS)에서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쓰라린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대본이 좋아서인지, 촬영하는 분위기가 좋아서인지, 등장하는 배우들 모두가 정말 자연스럽고 진지한 눈물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참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극작가 선생님이 예수 믿는 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괜찮은 드라마입니다.

 

“발리에서 생긴 일”(SBS)이란 제목의 트렌디드라마에선, 죽도록 사랑하지만 타고난 사회 계급적 차이를 뛰어 넘지 못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피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남자 주인공들의 눈물 연기는 남자는 울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우는 남자도 멋있다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줄 정도인데요, 일부 시청자들은 자살하기로 되어 있는 남자 주인공을 죽이지 말라는 운동까지 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저들 배우가 진짜 우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는 중인데도, 저들의 눈물을 보면서 나도 울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바로 내 앞에서 우는 것 아니요, 저 스크린 속에서 울고 있는데도, 저들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특히 남자 배우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거나, 목을 놓아 대성통곡을 하며 오열하는 장면을 볼라치면, 어느 덧 참고 있던 눈물이 주책없이 주르르 흐르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장로님들의 비밀 한 가지 말씀드릴까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장로님의 비결, 우리 장로님들, 눈물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슬픈 드라마는 손수건 없이 보지 못하는 분들, 그래서 우리 장로님들을 사랑합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눈물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눈물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잘 우는 분은 힘이 있는 분입니다. 정말입니다. 눈물엔 힘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하나님도 우는 자녀에게 무척 약하십니다. 눈물은 하나님께도 통하는 묘한 힘을 가진 아주 신비한 것입니다.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구약 성경에서 대표적인 사람, 둘 만 소개하라면, 하나는 히스기야 왕이요, 다른 하나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입니다. 저들은 인생에 위기가 닥쳐오자, 체면 불구하고, 자존심 다 내팽개치고,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와 대성통곡을 하며 눈물로 기도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고 감사한 사실은 눈물로 간구하는 저들의 기도를 우리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내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습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눈물엔 힘이 있습니다. 눈물엔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눈물엔 하나님의 마음까지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많이 우시기 바랍니다. 아니 울어야 할 땐 좀 우시기 바랍니다. 제발 울고 싶을 때 참지 마시고 펑펑 우시기 바랍니다. 울음을 참는 것,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아주 좋지 않습니다.

 

<크게 울어 큰 응답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시편 56편은 다윗 왕이 눈물로 써 내려간 시편입니다. 제목을 보니,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힌 때를 배경으로 하는 시편이라 하는군요. 그랬습니다. 자기 장인인 사울 왕에게 쫓겨 이웃 나라까지 도망쳐 나온 다윗, 그런데 하필이면 도망간 곳이 원수의 나라였습니다. 결국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생포되고 맙니다. 저들이 누구인가? 일전에 다윗의 돌팔매 단 한방으로 최고 장수 골리앗을 잃은 나라, 다윗을 잡아 죽이겠다고 벼르는 나라였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온통 원수들뿐입니다. 천하의 다윗을 잡았다고 신이 나서 춤을 추며, 노래를 합니다. 그런데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저들이 자꾸 다윗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손으로 쳐보고, 발로 차보고, 뺨도 때려보고, 주먹질도 해 보고, 칼로 찔러 보고, 창으로 때려보고, 정말 견딜 수가 없습니다. 또한 두렵기는 얼마나 두려웠던지, 그 상황을 다윗이 이렇게 토로합니다. 1절과 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지금 다윗이 하는 말, 저 원수들이 나를 삼키려고 하루 종일 치며 압제한다는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그 날 다윗은 하루 종일 심하게 얻어맞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참을 얻어맞던 다윗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대성통곡을 하면서 무언가 이상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닥치는 대로 아무나 붙잡고 눈물로 애원하는데,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가관입니다. “십부장 소매 붙잡고,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백부장 바지 가랑이 붙잡고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천부장 장관을 향하여 하나님,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그런데 그의 얼굴은 코 눈물로 범벅이 되었지요, 수염엔 침이 질질 흘러 꼭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해괴한 모습으로 울부짖는 다윗을 모두가 다 슬슬 피합니다. “이보시오. 내가 어찌 당신 하나님이요, 저리 가시오... 아니, 이제 보니, 이 양반, 완전히 돌았구먼, 장인한테 10년 동안 억울하게 당하더니 완전히 정신이 나간 모양이야... 왕이시여. 이제 다윗은 끝난 줄로 아뢰오.” “그래? 그럼 내다 버려라!”

 

그러나 그 때 다윗의 그 눈물은 하나님을 향한 눈물이었습니다. 사람들 보기엔 미친 것 같은 절규였지만, 그건 하나님을 향한 마지막 기도였던 것입니다. 나를 삼키려고 덤비는 저 원수들 앞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건져 주실 수 있다는 믿음 하나 가지고, 한번만 구해 달라고 외쳤던 처절한 눈물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마지막 순간까지 다윗이 놓치지 않은 것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고백을 직접 들어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눈물의 기도를 헤아려 주셨습니다. 눈물에는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눈물에 힘이 실리는 건, 눈물에 거짓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안약을 넣어 억지로 흘리는 눈물이 아닌 한, 눈물은 진실합니다. 사랑할 땐 사랑의 눈물이, 감사할 땐 감사의 눈물이, 기쁠 땐 기쁨의 눈물이, 슬플 땐 슬픈 눈물이, 억울할 땐 억울한 눈물이 흐르기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눈물은 정직합니다. 눈물엔 거짓이 없습니다. 그래서 눈물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눈물의 기도는 하늘에 상달되는 기도인 것입니다.

 

옛날에 방탕한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을 놓고 그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로 기도합니다. 문제는 아무리 기도를 해도, 아들이 방탕의 길에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낙심천만한 어머니, 이제 나도 기도를 포기하겠노라 작심하고 마지막으로 목사님을 찾아 갑니다. 그런데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어머님,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의 아들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시고, 끝까지 기도하십시오." 그 뒤로 다시 심기일전하여 기도를 계속한 지 한 달도 지나기 전에, 그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눈물의 기도를 들어 주신 거죠. 그가 바로 세계 교회사에 길이 빛나는 위대한 아들, 성 어거스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물의 기도는 분명히 응답을 받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주님은 다윗의 눈물을 주님의 눈물 병에 친히 담아 보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모든 것을 주님의 책에 기록하여 두시고, 기억해 주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눈물로 기도함으로 다시 살아난 다윗, 그의 모범을 따라,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억울하고 폭폭 할 때 눈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도저히 전후좌우 모두가 꽉 막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하늘 향해 눈물로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힘이 들 땐 그저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나와 매달려 울며불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분명 우리 하나님, 눈물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 위에 굳게 서서, 기도에 응답 받는 기적의 주인공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9절입니다.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본 절은 지금까지 시인 자신이 기도했던 바에 대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시리라는 그의 확신의 고백입니다. 사실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무기입니다. 이같은 사실을 증거해 주는 예로 여호사밧 당시 모압과 암몬이 유다에 쳐들어 왔을 때(대하 20장)와 히스기야 당시 앗수르가 예루살렘에 쳐들어 왔을 때(왕하 19장) 두 왕이 각기 하나님께 기도하여 대적들을 물리친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매일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며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그분이 우리의 인생 여정 중에 우리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모든 대적들을 능히 물리쳐 주실 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본문 10, 11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하나님은 다윗의 의지하는 믿음을 헤아려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의지한다!”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오는군요. 그런데 누가 누구를 의지한다고 합니까? 내가 하나님을! 지금 다윗이 분명하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내가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지만, 지금 다윗은 적진 한 복판에 홀로 생포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한 치 앞도 헤아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상황이요,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내 목숨마저도 내 손으로 어쩌지 못하는 상황, 그런데 바로 그 상황에서 다윗이 선포하는 말, 나는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그렇다고 죽자니 죽지도 못하겠고, 살자니 죽고만 싶고, 죽자니 살고 싶은, 그런 딜레마에 빠져 계십니까? 혹시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빠져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때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 내 인생에 둘도 없는 절호의 기회인데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이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 내 모든 것 헤아려 보살펴 주시고, 마침내 사람이 어쩌지 못하는 인생으로 세워 주실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엄마의 품 안에 안긴 젖먹이 아이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 아이는 엄마의 품 안에 안겨 있는 한, 평안합니다. 오직 엄마를 믿고, 엄마를 의지하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내일 무엇을 먹을까? 내일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는 법이 없습니다. 왜? 엄마가 나의 형편을 헤아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어 주실 뿐만 아니라, 필요한 모든 것, 다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 젖먹이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듯 주님 품에 안기는 것이라 했습니다. 전적으로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온전히 안기시기 바랍니다.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몽땅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젖먹이 어린 것이 부모 없이 살 수 없듯이 우린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만 의지하며 주 안에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비록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두려워 떨 수 밖에 없는 한계 상황에서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욥36:24)

 

본문 12,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은 다윗이 서원한 감사제를 헤아려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다윗이 드린 눈물의 기도 속엔 서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서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진 못하는군요. 그저 살려만 주신다면, 제가 하나님께 감사제를 쌓아드리겠다는 것이 서원의 전분입니다. 나의 생명을 사망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겠다는 서원 말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서원했던 대로, 자기 생명을 건져 주신 하나님께 평생 감사의 제단을 쌓아 드렸습니다. 아니, 아침저녁으로 쌓아드리는 감사제만 가지고 부족해서 그는 성전까지 지어 봉헌하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허락받지 못했었지요. 그런데, 여기 13절 말씀을 보니, 다윗이 감사의 제단을 쌓고서 고백하는 말이 참으로 은혜가 됩니다.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신 이유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다니게 하시려고 그러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건지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다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결코 나 혼자가 아닙니다. 나의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 눈물, 주님의 눈물 병에 담아주시고, 나의 모든 어려움, 주님의 책에 기록하여 계수하여 주시며 낱낱이 헤아려 보살펴 주시는 분, 그 분이 지금 나와 같이 걷고 계십니다. 그 분이 늘 내 곁에 계셔 나를 지켜 주십니다. 그 분의 손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실족하지 않습니다.(삼하 22:37, 요16:1)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찬송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마침내 말씀 안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됩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다 찬송할 수 없다고 말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 찬송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희망이 있을 때 희망을 노래하는 건 아무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희망이 없어 보일 때,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노래하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상당히 오래 전, 우리나라 전체에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중심이 된 일단의 무리가 탑골 공원에서, 희망의 노래를 목소리 높여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분들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에, 오늘 이나마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세상 모두가 희망이 없다 해도 우린 희망을 노래할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끝이라 해도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노래할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다 할 수 없다고 말해도, 우린 주 안에서 할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왜? 우린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눈물의 기도로 이 땅을 지키는 한,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고 말입니다. 주님 주시는 새 희망, 가슴에 새기며 항상 기뻐하고, 주님을 찬송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의 힘이요 피난처 되신 하나님, 우리의 죄를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용서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저희들은 때때로 염려와 불안으로 인해서 무서워하고 떨릴 때가 있습니다, 모든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강한 믿음을 주시고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눈물이 변해 기쁨이 되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겸손을 본받게 하시고 다윗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성도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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