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롬8:5-8 |
---|---|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당신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본문: 로마서 8: 5- 8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어느 날 푸시라는 고양이가 런던에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동료고양이들은 런던 소식이 궁금했습니다. “푸시야, 런던에서 무엇을 보았니?” “여왕의 의자 밑에 있는 생쥐를 보았지” “멋진 런던 탑과 버킹검 궁전과 국회의사당과 웨스트민스터사원을 보지 못했니? 여왕은 얼마나 우아하고 매력이 있는 분이었니?” “난 생쥐밖에 보지 못했어”
이 고양이의 관심은 생쥐였습니다. 짐승과 무신론자는 영의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무관심합니다. 오직 본능적인 것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육신에 속한 자의 관심은 세상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뿐입니다. 영적인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항상 우리 마음에 가득히 차 있는 최우선의 관심거리, 그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즉 사람은 어떠한 것에 관심이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집니다.
보통 어린아이의 관심은 장난감이나 인형이고, 10대는 학교나 친구이며, 20대는 이성, 30대는 돈, 재물, 40, 50대는 권세, 명예이고 60대 이상은 건강이라고 합니다. 여자들은 아이들과 보석에 관심이 많고, 남자들은 등산, 골프,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자기가 관심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지만 무관심하게 지나쳤으나 뉴턴은 이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습니다.
세속적인 것, 육신적인 것, 눈에 보이는 외모적인 것만 관심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합니다.
마르틴 루터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의롭게 하나님 앞에 설까? 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고행도 하고, 노력하여 찾은 결과 주님의 의로 구원을 받습니다. 즉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사실을 깨달아 위대한 종교개혁가가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 2절에 모세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 광경을 보고 어찌하여 타지 않는가를 알기 위해 기까이 하므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영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 자라야 하나님께 쓰임을 받습니다.
이삭의 아들이며 쌍둥이 형제 야곱은 장자권(축복권)에 관심이 있었고, 에서는 사냥과 팥죽 한 그릇(먹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 되어 축복을 받았고, 에서는 멸망받는 이방인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 다음으로 이름이 많이 나오는 인물이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그의 관심은 자신의 부귀영화나 쾌락 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는 것이 안타까워 나단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집을 지을 것을 말합니다. 그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삼하7: 1- 29)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할까 등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보고 듣는 것에서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세상 TV나 영화. 책, 불신자와 가까이하면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성경을 보고 말씀을 듣는 것에 힘써야 우리 마음이 깨끗하고 청결하여 집니다. 우리 심령이 가난하여져서 하나님을 사모하고 갈망하여야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누립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진리를 사모하는 자가 신령한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시42:1-2)
감옥에 갇힌 죄수가 석방의 날을 기다리듯이
사병이 제대하기를 고대하듯이
굶주린 사람이 먹기를 기다리듯이
구치한 살림이 풍요하게 되기를 바라듯이
파수꾼이 새벽 날새기를 고대하듯이
어린아이가 그 어머니의 젖을 사모함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진리를 갈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잠시도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음부에 가서 숨을지라도 하나님의 눈이 거기 계십니다. 미치도록 예수님을 사모하는 생활을 합시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저는 마음의 중요성을 깨닫고 마음에 관한 책을 내겠다고 결단하니까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글들이 마음에 관한 글이라면 무조건 찾아보게 되었고 마침내 ‘마음의 문’이라는 책을 편찬하였습니다.
목자의 관심은 양떼에 있어야 합니다.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잠27:23)
그러나 삯꾼은 양이 위험을 당해도 무관심하고 도망갑니다.(요10: 11- 13)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바닷가를 거닐고 있던 어떤 사람이 로프에 걸려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헤엄을 칠 수 없었던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구조 요청을 했습니다. 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가까이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젊은이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젊은이는 생사의 기로에서 간절히 도움을 청하고 있는 사람을 외면한 채 일광욕만을 즐겼고, 바다에 빠진 사람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에 익사자의 가족들은 그처럼 무관심했던 젊은이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현행법상 그 젊은이에게는 법적 책임이 없는 것으로 판결이 났습니다. 비록 그가 법적으로는 죄가 없는 사람일지는 몰라도 사랑이 뭔지 모르는 양심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무관심은 죄입니다! 당신은 혹 가족이나 이웃에게 무관심하지는 않으신지요? 당신의 가장 큰 관심은 무엇입니까? 돈버는 것입니까? 출세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성입니까? 아름다워지는 것입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영혼의 구원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설교집에는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사탄이 부하들에게 인간을 파멸시킨 성공사례를 발표토록 했다. 한 부하는 “나는 야수를 풀어 기독교인 수 백 명을 죽였다”고 했고, 두 번째 부하는 “태풍을 일으켜 신자들을 몰살시켰다”고 했다. 사탄은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 그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는데”라며 화를 냈다. 세 번째 부하만이 칭찬을 받았다. “나는 10년 동안 한 기독교인을 영혼문제에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지금 완전히 우리편이 됐다”(눅12:16-21, 마11:17)
영혼에 대한 무관심은 자신을 파멸시키고 사탄을 기쁘게 합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 전도(복음 전파)에 힘씁시다.
둘째, 생명과 지혜의 말씀 곧 성경말씀에 관심을 가져야합니다.(욥22:22, 시119:11)
임금이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풀고 그 종들을 보내어 초대하였거늘 사람들은 오기를 싫어하고, 돌아보지도 않고, 어떤 이는 자기 밭으로 가거나 상업차로 가고(마22:1-14) 또 어떤 이들은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야 한다”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눅14:18-20)하며 혼인잔치(하나님 나라)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상업적, 가정적 문제 곧 세속사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했습니다. 누구든지 주님나라에 가기 원한다면 성경말씀을 등한히 여기지 맙시다.
셋째, 가정과 자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뱃사공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배를 저어 멀리 나아갔습니다. 열심히 노를 젓던 뱃사공의 얼굴에는 땀이 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그는 속옷만 입은 채 겉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는 선창 안으로 들어가더니 아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얘야, 덥구나 너도 어서 옷을 벗어라!” 뱃사공은 아들의 겉옷을 벗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와 찌걱찌걱 노를 젓던 뱃사공은 한참 후 또 다시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었습니다. 그는 몸에 착 달라붙은 속옷마저 훌렁 벗어 던졌습니다. “어휴, 꽤나 덥구나 더워.”
선창으로 또 쉬러 들어간 뱃사공은 선창 안이 더욱 덥게 느껴졌던지 아들의 남은 옷마져 벗겨 버렸습니다. 배는 더욱 바다 멀리 들어갔으며 뱃사공은 더 힘차게 노를 저어 갔다. 몸에선 더운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러나 불쌍한 아들은 선창 안쪽에서 얼어죽은 줄은 몰랐습니다.
성경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이 부모와 이웃의 무관심으로 비행청소년이 되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아들 교육에 무관심으로 그 가족이 망했습니다.(삼상4:11-22)
넷째, 불우한 이웃 사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잠22:9, 잠28:27)
우리 주위에는 가난한 자, 고난 중에 있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성경에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줄 지식이 없느니라”(잠29:7)하였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외면치 않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됩시다.(눅10:30-37)
호주의 수도 켄버라의 한 시내버스 정류장에서는 한국 아줌마 한 분이 매일 그 시간이 되면 버스를 타는데 하루는 분명 그 시간에 타셔야 할 그 아줌마가 타지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버스 기사는 한 시간을 빙빙 돌며 기다리다가 다음날 꽃을 사들고 그 아줌마의 집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 것을 얼마나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꽃을 사들고 버스 승객의 안부가 궁금해 찾아가는 버스 기사 아저씨의 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메시아 탄생시 여관집 주인은 무관심으로 행운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백부장은 자기의 종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중풍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에수님 앞에 아뢰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처럼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만을 너무 생각한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죄를 범치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겠습니다.(잠28:27, 잠22:9)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고후2:8)
우리가 기도할 때도 자녀의 성공과 출세, 물질적 축복, 내 가정의 문제와 세상의 복만 구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합시다.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영생에 관심을 가집시다. 따라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전7;2)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전7: 4)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과 보이는 것만 쫓지 말고, 영의 생각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과 공의로우신 하나님, 우리가 더욱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시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 받는 일꾼되게 하옵소서. 우리 마음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이 되게 하시고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고 살게 하옵소서. 또한 세계선교와 복음위해 힘쓰게 하시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는 우리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