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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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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의 기쁨
2006-03-08
I. 본문 해설
다윗이 이 시를 언제 지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건대, 다윗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질서와 환경 속에서 살면서, 무엇인가 만족을 못하고 괴로워하는 이를 염두에 두고 이 시를 기록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행악자로 인해서 불평하거나 그에 대해 악한 마음을 품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너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시인의 권면은 신자의 삶의 최고 미덕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임을 보여주고 있다.
II. 최고의 미덕
A. 하나님을 기뻐함
신자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행하면, 그 행하는 일 때문에 칭찬 받고, 그 행하는 일이 하나님께 덕이 되며, 결국 그 신자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그 일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자체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하나님 자신을 기뻐한다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기뻐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당신이 주신 것만 기뻐하길 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사람이 당신이 주신 것도 기뻐하길 원하신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뭔가를 주실 때, 그것을 통해 그 사람이 그분을 기뻐하길 원하신다.
그런데 인간의 모든 종교적 삶은 대부분 자기중심에서 우러난 종교 생활이다. 중심축을 신에게로 옮겨간 종교 생활이 아니라 자기에게 남겨둔 종교생활이기 때문에, 자기만으로는 이 중심축을 신뢰할 수도 지켜갈 수도 없다. 즉 자기사랑(self-love)으로 살아갈 때, 인간은 이것이 옳은 것인지, 이것을 완성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신들에게 귀의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들을 끌어들여 자기에게 필요한 어떤 힘이나 자원을 빌려 쓸 원천으로 이용한다. 이것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다. 이는 신들과의 거래행위이다. 그런 신앙이 팽배한 곳에는 신들이 엄청 많다. 신들에 대한 존경심 따위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도리어 신들과 흥정하려 든다. 이런 개념을 기독교 신앙에 그대로 가져왔기에 큰 문제이다.
예화) 건물을 지을 때, 돼지머리에 고사 지내는 것
예화) 아테네의 유래: 어느날 두 신이(아테네와 포세이돈) 자기를 섬기라고 인간을 설득한다. 먼저 포세이돈이 말한다. ‘너희가 나를 섬기면 모든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리라’ 연이어 아테네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전쟁 없는 평화를 주노라’ 단칼에 포세이돈이 쫓겨나고 아테네가 그 도시의 신이 되어서 도시 이름이 아테네가 되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자기 사랑의 중심축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중심축으로 이동해, 자기의 삶을 이에 합치시키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꺾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을 항해 자신을 꺾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이렇게 하나님과 싸워 이기려는 신앙의 태도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로 중심축을 옮겨가는 것이다. 중심축을 하나님께 옮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만이 삶과 존재의 이유와 원리가 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게 바로 하나님을 향해 돌아선 사람이다. 회심한 사람의 결정적 특징은 하나님 좋아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사랑의 특성은 기뻐함과 좋아함인데, 사랑을 하게 되면, 하찮던 것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기뻐하게 된다. 그런데 기뻐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따로 있고, 그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아첨하고 흥정 하려 드는 것은 참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 이외의 다른 기쁨은 영원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B.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아들임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신앙의 연륜이나 교육의 연수와 관계가 없다. 우리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는 기쁨으로 충만했었는데, 나이도 먹어가고 지식도 늘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그전처럼 기뻐하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다시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을까? 다시 회심하면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하길 자신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못하는 까닭이 근심과 걱정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근심과 걱정이 없는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을 기뻐하는가? 아니다. 근심, 걱정,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기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요인, 즉 다른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뻐하지 못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참된 기쁨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기쁨이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의 특징이다. 하나님 때문에 자신이 맞닥뜨려야 하는 모든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기쁨이든지 고통이든지 상관없이, 일단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 때문에 주어지는 모든 것을 기뻐한다. 교회나 지체나 섬김이 하나님은 아니지만, 이 모두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
예화) 이명희 사모님이 대형 교회 순방 다녀온 후 목사님과 하신 대화
사물을 향한 사랑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신자의 사랑은 참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신자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기뻐하며 받아들인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자신의 과거를 말할 때, 이미 지난 일인데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이것이 사랑의 초시간성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이 좋아하는 질서까지도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안 되면 그것은 설익은 사랑이고, 그렇게 되면 그것은 농익은 사랑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사랑이 설익으면 뭔가를 얻고 싶을 때만 하나님을 기뻐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하나님과의 사랑이 농익으면 하나님의 모든 것 기뻐한다.
예화) 팝송 Skeeter Davis의 The End of the World
III. 소원을 이루시는 하나님
A. 기뻐하는 자를 기뻐하심
‘저가 기뻐하면 네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이는 쉬운 요구인데 비해, 어마어마한 보상이 걸린 말이다. 정말 다 이루어 주실까? 돈도? 명예도? 황제가 되고 싶다고 해도? 그렇다. 문제는 뭐냐 하면, 정말 한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게 되면, 그와 같은 것들을 기뻐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찰스 스펄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가 나더러 제왕의 면류관을 쓰고 왕이 되라고 한다면, 나는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다고 답하겠습니다. 좋으신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에도 바쁩니다.”
예) 개척 교회를 하는 친구 목사님의 교회 살림살이의 고충, 노무현 대통령의 나라 살림살이의 고충
신자가 세상에 눈이 팔리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만 눈에 들어오다가, 주님께 눈을 돌리면 ‘저 사람은 초신자인데, 어떻게 저렇게 기뻐할까? 저 사람은 나보다 어린데 어떻게 저렇게 열심일까?’ 라는 식으로 관심의 초점이 바뀐다. 신자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기 때문에 그분에게 뭔가를 달라고 구하면, 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구하는 것이겠는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실 리 만무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의 관심의 초점이 된다.
B. 기뻐하는 자의 소원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는, 소원은 올바른데 기도를 열심히 안 해서, 혹은 소원은 올바른데 지혜가 없어서라기보다, 많은 경우는 목표 설정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해 소원을 가져 보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동원해서 나를 사랑 하셨으니, 나도 그분께 다 드리리라’고 목표를 설정해 보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우리는 열렬한 기도 생활을 강조하기 전에 먼저, ‘나의 삶과 기도의 방향이 하나님을 기뻐하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지체들을 섬기다가 교회에게 물의를 빚고 지체에게 상처 주는 일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안 기뻐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보내 주사 머리가 되게 하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머리로 모신 동료 지체들을 사랑하게 된다. 그 신자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향한 소원을 마음에 품게 되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이 전정으로 하나님 사랑할 때, 도대체 여러분이 안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어려분이 진정으로 하나님 사랑하지 않을 때, 도대체 여러분이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
예) 목사님이 어릴 때, 할머니가 복주머니 가득 100원짜리 동전을 주신 적이 있다. 할머니가 손주를 사랑해서 교회 나오면서 늘 봉투 두 개를 가지고 와서, 액수가 큰 것을 손주에게, 액수가 좀 적은 것을 헌금으로 드렸다.
IV. 결론과 적용
눈을 들어 주위의 모든 것을 바라보라.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어디를 둘러 봐도, 하나님이 안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은 어디를 둘러 봐도 하나님이 보인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교회를 기뻐한다. ‘오늘도 주님께서 지켜주셨구나’ 하고 감사하며 기뻐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신자가 하나님을 기뻐하면, 그 소원도 하나님을 위한 것을 테니,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기쁘게 한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는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게 되는데, 이 교통과 연합이 바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다.
예화) 언젠가 큰 수술 앞둔 지체에게 목사님이 ‘하나님이 생명도, 가족도, 교회도, 지체도. 주셨잖아요. 염려하지 마세요.’라고 위로함. 2006-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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