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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渴症

요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095 추천 수 0 2012.01.08 23: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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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4:7-14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갈증 渴症
요4:7-14

*팔월의 더위가 만만치 않습니다.
  금년에는 저도 하루 서너번씩 몸을 찬물에 담가야 하루가 가곤 합니다.
  헌데, 어느 권사님과의 대화속에서 '교회 생활'과 '신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권사님은 지금 '신앙생활'의 기쁨을 알았다고 합니다.
  말씀이 온 몸에 차곡차곡 스며 들어오는 느낌이라는 겁니다.
  그 때 알았습니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엄청난 [갈증 渴症 ]상태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른바 '우물가의 여인' 또는 '다섯 남자를 옮겨다니며 살았던 여인'은 지금도 무수히 많습니다.
  누구입니까?
  혹시 그대는 아닌지요!
  이 설교는 아마  2008년 8월 17일 주일에 하게 될겁니다. 

만화가 이현세 씨의 출세작인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만화에 보면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이 만화의 남녀 주인공인 까치와 엄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저들은 서로 만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까치와 엄지가 옛날 어린 시절에 서로 만나기로 약속한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우리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몇 년 몇 월 몇 일 거기서 만나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그날 그 장소에 까치는 일찌감치 와서 그 비를 맞으며 엄지를 기다립니다. 엄지도 그 약속을 잊지 않고 까치를 그리워하며 그곳으로 옵니다. 그러나 엄지는 까치 앞이 나서지 못하고 까치가 보이는 저만치 나무 뒤에 숨어서 먼발치에서 까치를 바라봅니다. 왜냐하면 이미 엄지는 까치의 라이벌격인 선수와 약혼한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까치는 그 언덕에 앉아 엄지를 기다리고 엄지는 숨을 죽인 채 눈물을 흘리면서 나무 뒤에 숨어 까치를 바라보는 장면, 만화의 한 장면이지만 떠올려보면 가슴이 아프지 않습니까? 바로 그 때 까치가 손가락을 들어 땅에다가 무언가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가 그 퍼붓는 빗속에서 땅에다 쓴 글씨는 바로 '갈증'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갈증.' 까치는 지금 그 빗속에서 엄청난 갈증을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까치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더할 수 없는 목마름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까치는 그 갈증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침을 삼키면서 '갈증'이라는 단어를 땅바닥에다 쓰는 겁니다. 억수같이 퍼붓는 빗속에서 그가 쓴 '갈증'이라는 단어는 흐르는 빗물에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립니다.

까치가 왜 그렇게 갈증을 느끼는 걸까요? 과연 무엇이 까치의 그 갈증을 해갈시킬 수 있을까요? 그 억수같이 퍼붓는 엄청난 양의 빗물이 까치의 갈증을 해갈시킬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까치의 갈증을 해갈시킬 수 있는 것은 엄지밖에 없습니다. 물이 아니라 사람이고, 그 사람을 향한 사랑입니다. 즉 엄지만이, 엄지의 사랑만이 까치의 갈증을 해결 할 수 있습니다. 까치와 엄지는 그 빗속에서 사랑의 갈증에 애태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어디 '까치와 엄지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갈증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이 삶의 갈증이 해갈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행복이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게 쉽게 풀리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요즈음 음료수 광고를 보면 수 십 가지, 수 백 가지 마시는 것들이 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갈증을 풀어줄 뿐만 아니라 다이어트 효과도 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제가 아는, 여자 권사님이 아들 때문에 캐나다에 가서 일 년 살다가 돌아오셨습니다. 짧다면 짧다고 할 그 1년 동안 권사님에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자기가 그동안 해왔던 신앙생활에 대한 반성과 전환이었답니다. 얼마 전, 캐나다를 떠나려고 하는데 그동안 같이 신앙 생활했던 교회의 교우들이 환송을 해주면서 이러더랍니다. “한국에 가셔서 신앙생활 잘 하셔요.” 순간 권사님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착실하게 잘 했는데 새삼스레 잘 하라고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는 그동안 죽어라고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니까요. 그런데 잠시 후에 무슨 말씀이 들리는가 하면 ‘네가 그동안 열심히 한 건 교회 생활이지 신앙생활이 아니지 않느냐’하는 것이었답니다. 여러분! 교회 생활은 뭐고 신앙생활은 뭡니까? 저는 이 경우도 오늘 본문의 이 여인이 처한 경우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청량음료를 사 먹는 것과 내 마음속에 오아시스 하나를 파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은 갈증에 시달리는 인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니 청량음료로 사는 인생과 좋은 우물을 두고 살아가는 인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태양이 가장 맹렬하게 내리 쬐는 한낮에 물을 길으러 우물가로 나왔다는 것은 그녀가 얼마나 목이 마른가를 보여줍니다. 제 경험으로는 대부분 물을 긷는 것은, 새벽이나 해가 진 저녁에 합니다. 옛날에는 물을 긷는 일이 힘든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여인은 한 낮에 물을 길러 우물가로 갔다는 것입니다. 윤리적인 문제로 여인을 접근하는 이들은 여자가 행실이 나쁜 연고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그랬다고 합니다만, 지금 예수님은 여자의 윤리적인 잘잘못을 다루고 있진 않습니다.

이 우물은 '야곱의 우물'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사마리아땅에서 제일로 쳐주는 우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다." 이 말을 듣게 될 여인을 상상해 보십시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마음이 들었겠어요? 여인이 해갈을 목적삼고 온 그 물이 그녀를 목마름으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겠냐는 겁니다. 약국에 약 지으러 갔는데 누가 옆에서 말하기를, ‘그거 먹는다고 당신 병이 나을까요?’ 할 때 어떻겠냐는 말입니다.

가부장제 사회인 이스라엘은 여자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남편이나 자식 없는 여인은 그야말로 죽은 목숨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니 홀로인 여자는 남자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도 그런 여인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건 도덕과 윤리 이전에 사느냐 죽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이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생존을 위해 그렇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다섯 남자를 전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다섯 번이나 그런 처지에 놓였었습니다. 그러니 삶이 얼마나 처절했겠어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는 말처럼, 이 여인이야 말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런 근원적인 생존의 갈증이 어디 있을까요? 사람들은 쉽게 말합니다. 이 여자는 남자를 밝혀서 그랬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당시대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다섯 번이나 그렇게 행위 하기 이전에 돌에 맞아 죽었을 테니까요.

여인은 자신의 아픔과 처지를 똑바로 지적하는 주님을 향해 새로운 자세를 갖습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질문을 던집니다. “어디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까요? 유대인들이 말하는 예루살렘인가요 아니면 저희 조상들이 말하는 이 그리심 산에서 인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인이 '예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건 대단한 사건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만남 아닙니까? 그녀의 인생은 지금 지쳐있습니다. 뭔가 새롭고 분명한 방향성이 그녀에게 필요했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수평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더 이상 그곳에서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기 시작합니다. 수직에 눈을 뜨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해서 물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제 그녀에게 '삶의 갈증을 풀 수 있는 비결'을 말씀하십니다. 우물물을 길으러온 그녀에게 "이물을 먹는 자는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녀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지금껏 사람들과만 사귀었습니다. 남자들과만 사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과 사귀라는 것입니다. 무시로 어디서나 하나님을 사귀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녀에게 말하시는 신령한 예배는 그거였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남자를 필요로 했던 것처럼 하나님과 그렇게 사귀는 것’말입니다.

사람을 사귀면 늘 목이 마르지만, 하나님과의 사귐은 목마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물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사귈 때 얻는 생수가 무엇입니까? 먼저 말씀이 생수라고 하십니다.    잠언 25:13절에 보면 잠언 기자가 이 기분을 참 잘 묘사했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더운 날 생수 한잔 들이키면 얼마나 시원합니까? 그보다 더한 만족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그런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시원함을 못 느낀다면 그건 아직 우리가 신앙의 중심자리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였습니다. 동양적 표현으로 한다면 기가 막힌 여인이었고 한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비천한 사마리아 여인으로 태어나 불우한 삶을 살았고 남편 복도 없고 자식 복도 없고 재물 복도 없는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니 그 마음에 답답함과 한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마 삶의 갈증으로 인해 그녀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을 것입니다. 그런 여인을 향해서 주님은 '그 속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을 말씀하십니다. 그 한 서린 안타까움을 잠재워주고 그 타는 목마름을 해갈시켜 주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그 예배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시원한 생수로서 자신의 삶의 갈증을 해소하고, 타는 속을 시원하게 씻어내고 희망차게 새 삶을 살아갈 새 길을 열어주시는 겁니다.

어떤 이온음료 선전을 보니깐 몸 안에 그 음료가 들어와 온몸을 채워가는 모습이 색깔로서 표시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이 우리 속에 가득 차야 하는 겁니다. 생수가 몸에 들어와 우리 몸에 스미듯이 그렇게 말씀이 우리 심령과 영혼에 스며야 합니다. 말씀을 귀로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뵈옵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리는 게 아니라 기억하고, 묵상하고, 곱씹어서 내 안에 내재화 시켜야 하는 겁니다. 캐나다를 다녀왔다는 권사님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비로소 자기 안에 말씀의 오아시스가 터진 것입니다. 우물을 길러 나왔던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이걸 깨달았던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보면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그 물동이를 내던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삶의 해갈을 얻는 비결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토록 상면하기를 꺼렸던 동네사람들에게 뛰어 내려가서는 '그리스도를 만나보라'고 외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여인의 가슴 벅찬 감격과 감동이 느껴지십니까? 이런 삶의 감동을 맛보며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주님과의 만남,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되신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고 그분의 말씀과의 만남 속에서만이 우리는 진정한 삶의 해갈을 얻고 풍성하고 기름지고 여유로운 삶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며 헌신하기를 소원하는 여러분들에게 이런 은총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러 마을로 내달리는 이 여인이 맛보았던 이 기쁜 환희와 가슴 벅찬 감동이 여러분의 심령에도 그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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