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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무등일보] 그게 무슨 소리야? -장한빛

신춘문예 장한빛............... 조회 수 1554 추천 수 0 2012.01.10 12:32:56
.........

물푸레~4.JPG

그게 무슨 소리야?

장한빛

 

"너, 꼭 엄마 같다"

성은이의 표정이 왠지 밝아 보였다.

"우리 엄마가 너처럼 만날 잔소리 했거든"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이름만이라도 말해 볼까?”

선생님이 재차 물었다.

그래도 전학 온 여자애는 말이 없었다. 왜 저래? 말을 못 하나? 교실이 들썩이고 선생님 눈코입도 따라서 들썩들썩 움직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칠판 앞에 선 여자애는 누구와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입까지 망부석이었다.

“낯설어서 그런가 보다. 이 친구 이름은 임성은이에요. 다들 잘 지내도록 하세요.”

잠시 기다리던 선생님이 대신 소개를 했다.

“에이, 선생님! 벌써부터 전학생 편애하세요?”

“야, 우리도 어디로 갔다가 다시 전학 오자!”

아이들이 와하하 웃으며 한마디씩 하자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선생님이 빈자리를 가리키자, 성은이란 전학생은 냉랭한 얼굴로 인사도 않은 채 자리로 들어가 버렸다.

“안녕. 나는 반장 김경태야.”

쉬는 시간만 되면 난장판이 되는 교실이 오늘만은 경태를 쫓아 조용해져서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였다.

“…….”

그런데 고개를 돌린 성은이는 경태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내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말을 걸면 반가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성은이의 눈빛은 마치 ‘그래서?’라고 묻는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경태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내가 학교 안내해줄까?”

“오, 김경태!”

주변에서 놀리는 소리가 터져 나오자 경태 얼굴에 불이 붙었다. 그런데도 성은이는 고개조차 돌리려 들지 않고 손에 든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더니 모기만한 목소리로 ‘됐어.’ 하고 대꾸했다.

“어, 내 핸드폰하고 똑같다. 나랑 번호 교환할래?”

경태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었다. 드드드, 경태의 물음과 동시에 성은이 핸드폰이 울렸다. 성은이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엄마? 엄마야?”

성은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경태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런데 귀에 핸드폰을 대고 있던 성은이의 목소리가 곧바로 착 가라앉았다.

“잘못 거셨어요.”

전화를 뚝 끊은 성은이는 잔뜩 실망한 얼굴이었다. 뚫어질 듯 핸드폰만 내려다보고 있는 성은이 때문에 민망해진 경태는 그만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짝꿍인 효정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쟤 말은 할 줄 아나 보다.”

“그러게.”

성은이를 바라보던 경태가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덩달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주소록을 보면 엄마가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면 된다. 그런데 성은이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성은이의 옆모습을 보니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급식을 마친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와 놀고 있는데 멀리서 같은 반 애들 몇 명이 경태를 향해 우르르 뛰어왔다.

“큰일 났어! 교실에서 전학생이랑 효정이가 싸우고 난리도 아니야.”

교실 뒤에는 다른 반 애들까지 잔뜩 모여들어 있었다. 경태가 틈을 비집고 들어가자, 성은이와 효정이가 당장 달려들기라도 할 것처럼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야, 쟤 미쳤나봐!”

경태를 보자마자 효정이가 대뜸 내뱉었다.

뒷짐을 진 효정이의 손을 보니 성은이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성은이는 두 눈이 빨개진 채 숨을 헉헉댔다. 몸싸움이라도 한 것처럼 둘 다 머리가 헝클어진 채였다.

“애들처럼 왜 물건을 뺏고 그래?”

“뺏은 거 아니야! 잠깐 좀 보자고 가져갔는데 쟤가 내 팔 비틀었단 말이야.”

효정이는 나름 억울한 눈치였다.

“내가 얼른 달라고 말했는데 네가 안 줬잖아!”

성은이가 버럭 하며 끼어들었다. 그냥 핸드폰 주고 말 일이지, 사과 받으려고 고집을 피우다가 몸싸움으로 번진 모양이었다.

“그만 돌려줘. 성은이 넌, 팔 비튼 거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선생님처럼 경태가 둘을 화해시키려고 했다.

“싫어.”

이를 앙다물고 성은이가 고개를 저었다.

“쟤 좀 봐! 내가 돌려주고 싶겠어? 이딴 핸드폰이 뭐라고.”

“네가 뭘 알아!”

효정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은이가 달려들었다. 핸드폰을 안 뺏기려고 팔을 길게 뻗던 효정이가 그만 엉덩방아를 찧었다. 탁, 하는 거친 소리와 함께 성은이 핸드폰이 바닥을 굴렀다. 성은이가 허둥지둥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다행히 고장은 나지 않은 듯했다. 성은이는 한숨을 쉬며 일어나더니 주저앉아 있는 효정이를 매섭게 째려보았다.

자기 자리로 돌아간 성은이가 책상위에 널브러진 책이며 필통을 가방에 쓸어 담았다.

“임성은, 너 지금 뭐해?”

“집에 갈 거야.”

“수업 남았는데?”

그 말엔 대꾸조차 않고 가방을 닫은 성은이가 쌩하니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신발도 신는 둥 마는 둥하고 나가려는 성은이를 경태가 현관 앞에서 겨우 붙잡았다.

“너 왜 이래? 선생님한테 혼나!”

“그게 뭐?”

무슨 상관이냐는 투였다. 설득할 말을 잃어버린 경태는 우두커니 선 채 입술만 실룩거렸다. 성은이의 붉어진 눈가가 몹시 사나워 보였다.

“아무튼 가지 마!”

경태가 목에 힘을 주며 성은이 앞을 턱 가로 막았다. 성은이가 씩씩거리던 숨을 가라앉히며 경태를 바라봤다. 경태가 성은이 손을 잡아끌자, 다행히도 성은이는 순순히 신발을 벗고 따라 들어왔다. 핸드폰은 손에 꽉 쥔 채로.

교실에 들어가니 이미 수업시간이었다. 선생님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반 아이들 핸드폰을 전부 압수하고 있었다.

“선생님, 중요한 전화 올지도 모르는데요.”

아이들이 칭얼대도 선생님은 막무가내였다. 핸드폰 가지고 싸우지 않을 때까지 압수하겠다는 것이다. 그 말은 ‘효정이와 성은이가 화해할 때까지’라는 말과 같았다. 아이들이 한숨을 쉬며 하나 둘 핸드폰을 꺼내놓았다.

“성은아, 너도 핸드폰 있다며.”

선생님이 손을 내밀었지만 성은이는 바닥만 본 채 대답을 안 했다. 다른 애들도 내놓았으니까 너도 핸드폰 줘야지. 선생님이 타일러도 마찬가지였다. 효정이가 기다렸다는 듯 투덜거렸다. 애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결국 성은이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선생님 손에 핸드폰을 올리는 성은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선생님은 당황한 눈치였다.

“왜 그래, 중요한 전화라도 기다리니?”

성은이는 말없이 도리질을 치고는 책상 위에 엎드려 버렸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시끄럽네. 누가 죽기라도 했냐.”

불퉁한 목소리로 효정이가 한마디 했다.

우당탕! 성은이가 벌떡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아이들은 숨을 삼켰다.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나뒹굴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성은이가 악을 썼다. 눈에서 치직거리며 타는 소리가 날 것 같았다. 경태가 얼른 성은이의 두 손을 잡아챘다. 어디서 다쳤는지 손바닥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우리 엄마 안 죽었어. 안 죽었단 말이야!”

손이 잡힌 채 몇 번 몸을 뒤틀던 성은이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주저앉아 엉엉 우는 성은이를 보며 아이들은 할 말을 잊었다. 교실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선생님이 다가와 성은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울음이 점차 잦아들었다.

“가자.”

선생님이 성은이 핸드폰을 찾아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고는 부축해서 보건실로 향했다.

오후 수업은 여느 때보다 조금 가라앉은 채로 진행되었다. 교과서를 팔락거리던 경태가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효정이가 칠판을 바라보며 연필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뚱한 표정이었지만 경태와 마찬가지로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는 듯했다. 시선을 느낀 듯 경태를 돌아본 효정이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곧 맥없이 고개를 돌렸다. 전학 온 첫날부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성은이 생각이 났다.

결국 성은이는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종례 시간에 핸드폰을 돌려받아 전원을 켜본 경태는 깜짝 놀랐다. 겉모양은 같았지만 경태 것이 아니었다.

“어라, 어떻게 된 거지?”

경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메시지 함을 열었다. 지금까지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주고받았던 메시지는 하나도 없고 ‘엄마’라는 이름 앞으로 된 메시지만 잔뜩 있었다.

망설이던 경태가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다들 엄마가 하늘나라 갔대. 왜 나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알아? 거짓말이지? 나한테 잠깐만 이모 집에 있으라고 했잖아. 근데 이모가 나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고 내 짐도 다 옮겨버렸단 말이야. 이제 우리 집에 다른 사람이 산대. 그럼 엄마는 어떻게 해? 엄마, 나 버린 거 아니지? 하늘나라 간 거 아니지? 어디 가면 꼭 나한테 말하고 가고, 무슨 일 있어도 나한테 다 말했잖아. 나 아프면 엄마가 걱정도 해주고, 내가 뭐 잘못하면 엄마가 혼내줘야 하잖아. 내가 울면 엄마가 안아줘야 하잖아. 응? 연락 좀 해. 전화도 매일 꺼져 있고 문자에 답장도 안 하니까 너무 불안하단 말이야. 엄마 미워. 나 보고 싶지도 않아?

하루도 쉬지 않고 보낸 문자들이었다. 경태는 더 보지 않고 얼른 핸드폰을 꺼버렸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안절부절못하던 성은이 얼굴이 떠올랐다.

보건실로 들어가니 선생님은 안 계시고, 성은이 혼자서 이불을 덮어쓴 채 누워 있었다. 탁자에 경태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기척을 느꼈는지 성은이가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경태를 보았다. 성은이의 잔뜩 부은 눈동자가 핸드폰이 들려있는 경태 손을 스치고 지나갔다. 경태는 말없이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을 바꿔 들었다.

그러고 보니 별일이다. 아까 효정이랑 싸울 땐 한시도 핸드폰을 놓으면 안 될 것처럼 굴더니, 자기 핸드폰이 아닌 걸 알았을 텐데도 당장 찾으러 오지 않은 것이다.

머뭇거리던 경태가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좀 괜찮아?”

성은이는 등만 보여줄 뿐 대꾸가 없었다. 경태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파상풍 주사는 맞았지? 저번에 뉴스 봤는데 그거 장미 가시만 박혀도 큰일 난다더라. 그러니까 상처 같은 거 나면 대수롭잖게 생각하지 말고 바로 소독해야 된대. 아, 그리고 우리 할머니가 그랬는데 여자애가 흉터 같은 거 있으면 안 된다고 했어. 그래도 얼굴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치료 잘 하면 흉터 안 남고 금방 나을 거야. 그리고 효정이 있잖아. 걔 나쁜 애는 아닌데 좀 다혈질이거든. 좀 못되게 굴어도 그냥 그러려니 해. 그럼 금방 괜찮아질걸? 너도 조금만 같이 지내보면 친해질 거야.”

그렇게 혼자 말을 계속하는데 갑자기 성은이 어깨가 들썩거렸다. 또 우나 싶어 당황한 경태가 말을 멈추었다. 잔뜩 긴장해서 뒤통수를 바라보는데 성은이가 고개를 돌렸다.

“너, 꼭 엄마 같다.”

남자한테 아빠도 아니고 웬 엄만가 싶었지만 경태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또 소리 내어 울까봐 내심 긴장한 탓이었다. 그러나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는 성은이의 표정은 왠지 밝아 보였다.

“내가 엄마 같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일부러 눈을 흘기며 묻자, 성은이가 피식 웃더니 몸을 일으켰다.

“옛날에 우리 엄마가 너처럼 만날 잔소리 했거든.”

성은이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경태는 코끝이 새빨개지도록 코를 문질렀다. 핸드폰을 쥔 손이 축축하게 젖고 있었다.

 

 

<당선소감>
 내 안의 겁쟁이야, 안녕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만 나는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않고 그냥 제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누가 밀치면 앞이나 뒤로 엉거주춤 한 발짝을 내딛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물처럼 흘러가는 게 좋은 거라고 치장을 해보기도 했지만, 가고 싶은 방향으로 몸을 돌릴 용기조차 없는 자화상을 마주할 때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도 올라보지 못한 절벽 앞에서 포기하고 주저앉은 여행자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해도 후회할 것 같고 하지 않아도 후회할 것 같은 일에 맞닥뜨리면, 선택의 기로 앞에서 턱이 빠져라 고민을 하다가도 결국에는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고는 했습니다. 해서 후회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일은 대부분 큰 도전의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내가 입을 상처로부터 안전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상처가 생기는 것에만 겁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런 자신에게 ‘야, 이 겁쟁이야!’ 라고 외친 것이 6년 전입니다. 가고 싶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도 하고, 숨어 있는 나를 꺼내고 싶어 연극 동아리도 들어갔습니다. 전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 나는 겁쟁이를 멀리 쫓아내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할 즈음 돌이켜보니, 정작 하고 싶었던 것은 시야 밖으로 밀쳐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교에서 매년 주최하는 문학상에조차 공모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서 겁쟁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화가 나서 저 녀석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찢길 것을 각오하고 나 이외에 누구도 만난 적이 없는 글들을 세상에 꺼내놓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내가 겨우 내딛은 첫 걸음이었을 것입니다.

나의 모습은 아직도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어린아이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도전이라는 말이 좋아졌습니다. 어떤 두려운 결과가 기다리고 있더라도, 부딪히는 것이 부딪히지 않는 것보다 훨씬 후련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무릎이 깨질 각오를 하고 서툰 걸음을 내딛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준 분들에게 넘치는 감사를 소중히 전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없는 내 안의 겁쟁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

 

약력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졸업 ▲현재 광주교육대 대학원 아동문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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