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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경남신문] 아빠의 본두 -곽영미

신춘문예 곽영미............... 조회 수 1804 추천 수 0 2012.01.10 13:06:00
.........

물푸레~13.JPG

아빠의 본두

곽영미

 

“어봉머을!” “어벙마얼!” “오봉마을!”

그들은 아무도 ‘오복마을’이라고 정확히 말하지 못했다. 그나마 마지막에 말한 그가 제일 나았다. 보라색 티셔츠를 입은 그는 오복마을에 온 것이 오늘로 세 번째다. 그의 이름은 하킴이다. 하킴은 작년 겨울 마을 도로 공사 때 아빠와 함께 일했다. 구경 나온 아줌마들이 까만 그들의 얼굴을 훔쳐보며 실실 웃어댔다.

“오복이든, 어봉이든 그게 못자리랑 뭔 상관이야!”

마을 회관 모퉁이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훔쳐보던 성수가 투덜거렸다. 마을 이름을 알려주던 이장 아저씨는 이제 모판을 보여주며 말하고 있다.

“…아무튼 못자리를 만들 거니까 잘 보라고. 요것이 모판이여, 모판. 여기다 흙을 요만큼 담고, 요렇게 물을 주어.”

그들은 이장 아저씨와 모판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이장 아저씨네 못자리를 만드는 날이다. 이장 아저씨는 볏모를 사지 않고 모를 직접 키워서 심는다. 그래야 제 날짜에 모를 옮겨 심기도 좋고, 돈도 적게 든다고 했다. 하지만 못자리를 만들 일손이 부족했다. 그래서 용역업체에다 사람을 불렀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온 것이다. 실은 마을 사람들이 바쁘기도 했지만 이장 아저씨네 임금이 적어 다들 선뜻 나서지 않았다.

“이게 볍씨여, 볍씨. 이 볍씨를 여기다가 골고루 뿌리는 거여. 키포인트는 골고루여, 여기다 요렇게 골고루.”

“키포인트 고고루.”

그들은 볍씨 뿌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흐흐흐, 그려. 키포인트는 골고루여. 왕년에 내가 영어 좀 했다니까!”

이장 아저씨가 으스대자 성수는 입을 비죽였다.

“잘난 척하기는! 못자리는 대체 언제 만들려고…….”

“그러니 사람까지 사서 못자리를 만들지, 요 녀석아!”

“아야!”

성수는 머리를 감싸며 뒤돌아섰다. 어느새 아빠가 서 있었다. 석이는 자연스레 아빠의 왼손에 눈이 갔다. 손가락 부분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진 낡은 목장갑이 눈에 들어왔다. 아빠는 3년 전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왼손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그 사고로 일자리도 잃고, 고향인 이곳 오복마을에 내려와 성수와 단둘이 남 일을 도우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오기 싫다면서 왜 여기서 도둑고양이처럼 숨어서 보냐? 왔으면 도와주기라도 할 것이지.”

“내가 왜 도와줘? 이제 집에 갈 거야!”

성수는 씩씩대며 발로 땅바닥을 걷어찼다. 그 바람에 노란 꽃망울을 머금은 꽃다지가 짓이겨졌다.

성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논두렁을 걸었다. 빈 논으로 꽃샘바람이 쌩쌩 불어왔다. 불어오는 꽃샘바람에 성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보리밭이 푸른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성수는 출렁이는 보리밭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아빠가 그들과 같이 일하는 게 싫었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는 아빠가 더 작고 초라해 보였다.

 

성수가 골목에 들어서자 유정이가 앞서 걷고 있었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언제나 즐거워….”

유정이의 펑퍼짐한 엉덩이와 두 팔이 들썩였다. 6학년이나 됐으면서 길에서 과자를 먹으며 만화 주제가나 흥얼거리다니. 성수는 유정이를 보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유정이는 성수네 옆집에 사는 누나다. 나이는 성수보다 두 살 더 많지만, 지능이 낮아 말이나 행동이 꼭 다섯 살 먹은 어린아이였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모두 어린아이 취급했다.

“야, 박유정!”

성수와 또래인 진원이가 건들거리며 반대편에서 막아섰다. 그 옆으로 태수도 보였다.

“그 과자 맛있냐?”

“응! 맛있어.”

진원이가 묻자 유정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맛있어.”

진원이가 태수를 보며 유정이를 따라 고갯짓했다. 태수가 킥킥댔다.

“진짜 맛있어?”

“응!”

“그럼 나 좀 줘 봐. 진짜 맛있나 없나 보게.”

유정이는 순순히 진원이에게 과자 하나를 내밀었다. 진원이는 과자를 한입에 넣었다. 초콜릿이 잔뜩 묻은 쿠키였다. 과자를 다 먹은 진원이는 태수를 보며 씩 웃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소리를 질러댔다.

“윽! 이게 무슨 맛이야! 똥 맛이다, 똥 맛! 아이고, 배 아파! 배 아파 죽겠네! 이게 어디서 거짓말을 해. 너 나한테 거짓말했으니까 그거 다 이리 내. 얼른 이리 줘!”

진원이가 주먹을 들어 보이며 을렀다. 유정이는 놀란 토끼 눈을 하며 과자 봉지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태수가 거들었다.

“박유정, 거짓말하면 안 되지? 네가 거짓말했으니까 얼른 진원이한테 과자 줘! 그래야 하는 거야, 네가 먼저 거짓말했잖아. 그리고 그 과자 먹으면 배 아파. 너 진원이처럼 배 아프고 싶어?”

유정이는 아랫입술을 툭 내밀며 울상을 지었다.

‘어휴, 저 꼴통! 자기가 똥 맛을 어떻게 알아? 똥도 먹어보지도 않은 게….’

성수는 과자 봉지를 들고 사라지는 진원이와 태수를 보며 혀를 찼다. 한심하기는 유정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바보같이 과자를 뺏기다니. 성수는 유정이를 못 본 척하며 지나갔다. 유정이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골목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해넘이가 한참 지났건만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성수는 건성으로 텔레비전을 보며 바깥소리에 귀 기울였다. 조금 뒤 마당으로 들어오는 아빠의 발소리가 들렸다.

“성수야, 밥 먹자. 아빠 배고프다.”

성수는 쏟아지는 수돗물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와 같이 밥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밥때가 되니 배가 고팠다. 한 끼도 못 굶는 제 뱃속이 얄궂었다.

“우와 맛있겠다. 얼른 먹자.”

아빠는 밥상에 앉자마자 허겁지겁 밥을 푸기 시작했다. 성수는 반찬 그릇을 훑어보았다. 아침에 먹은 된장찌개, 옆집 유정이 할머니가 준 시금치 무침, 언제나 올라오는 김치와 김, 간장까지. 맛있는 반찬은 하나도 없었다. 성수는 시금치 무침을 보자 낮에 보았던 유정이가 떠올랐다.

아빠의 밥공기는 거의 비어 갔다. 아빠는 배가 부른지 숟가락을 놓고는 “꺼억!” 하고 트림을 했다. 그러고는 성수를 보며 헤벌쭉 웃었다.

“성수야, 너 방글라데시어로 친구가 뭔지 알아?”

“몰라, 관심 없어!”

성수는 고개를 숙인 채 퉁명스레 대꾸했다.

“하킴이 알려줬는데 본두래! 본두! 하킴이 나한테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

성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본두래. 나보고 자기 친구래! 하하하! 아빠 이제 방글라데시 친구 생겼다!”

성수는 좋아서 웃는 아빠의 모습에 기가 막혔다. 가난한 나라인 방글라데시 친구가 무슨 대수라고!

“아빤 방글라데시 친구 생겨서 좋아?”

성수는 비아냥거리듯 물었다.

“그럼, 좋고말고! 외국 친구 사귀기가 싶냐?”

“체!”

성수는 코웃음을 쳤다. 밥맛이 뚝 떨어졌다. 같이 일하는 것도 모자라 친구가 됐다고 좋아하는 아빠가 바보 같아 보였다. 대통령도 아니고 부자도 아닌 고작 가난한 나라에서 돈 벌러 온 못생긴 사람과 친구가 되어 좋다니. 어떻게 외국인 노동자와 친구를 할 수 있는지 성수는 아빠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

 

다음 날도 아빠는 이장 아저씨네 못자리를 만들러 갔다. 성수는 그런 아빠가 못마땅했지만 가만히 뒤따랐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승합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어제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아빠는 그들과 자연스럽게 악수했다. 아무도 아빠의 왼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아빠의 왼손을 보고도 놀라거나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지도 않았다. 마치 그들의 눈에는 아빠의 왼손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어이, 본두!”

이장 아저씨가 나오며 또 잘난 척했다.

“안녕하새요!”

그들은 한국말로 인사하고는 어제와 똑같이 볍씨를 뿌리는 일을 시작했다. 그중 하킴이 모판을 모아 마을 회관 앞 이장 아저씨네 논까지 날랐다. 아빠와 이장 아저씨는 논에서 모판에 비닐을 덮었다.

성수는 숨어 비닐을 덮는 아빠를 지켜보았다. 한 손으로 일하는 아빠가 걱정되었다. 아빠는 손가락이 잘려 뭉그러진 왼손으로 비닐을 누르며 오른손으로 비닐을 덮어갔다. 다행히 이장 아저씨보다 일이 많이 늦지 않았다.

성수는 마음이 놓이자 모판에 볍씨를 뿌리는 그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러 가지도 않고, 기계처럼 흙과 볍씨를 뿌리고, 모판을 나르는 일을 반복했다. 가끔 자기들 나라 말로 뭐라고 얘기했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그때 이장 아저씨의 말소리가 들렸다.

“어, 조심해. 모판 떨어지면 큰일 나. 그나저나 젊어서 힘이 장사네.”

하킴이 모판을 더 높게 쌓아 옮기고 있었다. 이장 아저씨의 한쪽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우리나라 사람보다 훨씬 나아. 임금도 싸고 말이지.”

이장 아저씨는 아빠를 보고 말했다.

“그렇지요.”

아빠가 웃으며 대꾸했다. 성수는 이장 아저씨가 아빠에게 왜 그 말을 했는지 짐작했다. 아빠 보고 들으라는 거다. 훨씬 임금도 싸고 일 잘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아빠보다 낫다는 얘기다. 성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임금도 적게 주면서 저런 말을 하는 이장 아저씨가 미웠다. 자기들끼리 히히거리는 그들이 마치 아빠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외국인 노동자들보다 더 작아지는 아빠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이게 뭐여? 모판이 왜 엉망이여?”

비닐을 덮던 이장 아저씨가 소리를 질렀다. 아빠와 그들이 모두 이장 아저씨 곁으로 모여들었다. 모판이 엉망이었다. 볍씨와 흙이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모른다고 어깨를 들썩였다.

“모판 쏟은 거 아니여? 그러니까 조심히 하라고 했제.”

아저씨가 하킴에게 인상을 썼다. 하킴은 아저씨의 말을 알아듣고 대꾸했다.

“나 잘못 업서. 내 잘못 아이야!”

하킴은 자신이 그러지 않았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게 어디서 반말이여?”

이장 아저씨는 반말이 귀에 거슬렸는지 짜증을 냈다. 그러고는 하킴이 들고 온 모판을 차례대로 살펴보았다. 엉망인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에이 씨! 이 아까운 볍씨를…. 이걸 확!”

‘안 돼!’

모퉁이에서 지켜보던 성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쿵 소리를 내며 모판이 떨어졌다. 성수의 심장도 쿵 소리를 내었다. 이장 아저씨가 모판을 바닥에 내던졌다. 하지만 성수는 알고 있다. 이장 아저씨가 던진 모판은 바닥이 아닌 하킴을 향해 있었다는 걸. 몸을 움츠린 하킴이 벌벌 떨며 이장 아저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는 허둥지둥 이장 아저씨의 팔을 잡고 말렸다. 그러고는 이장 아저씨를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조금 뒤 이장 아저씨와 얘기를 나눈 아빠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괜찮아요. 얼른 다시 일해요.”

아빠는 하킴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킴은 여전히 두려운 눈빛이었다. 곧 다시 일이 시작되었다. 성수는 흙이 묻어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등에는 볍씨 한 개가 동그마니 붙어 있었다.

성수는 무작정 논두렁을 걸었다. 아빠가 자신이 모판을 엉망으로 만든 걸 알아챈 것만 같았다. 봄인데도 여름이 온 것처럼 날이 무더웠다. 속이 울렁댔다. 체한 것처럼 메슥거렸다.

‘바보같이. 바보같이….’

성수는 벌벌 떠는 하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하킴의 얼굴이 아빠의 얼굴과 자꾸 겹쳤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유정이가 논두렁을 뛰어오고 있었다. 성수가 뒤를 돌아보자 유정이가 멈췄다. 그 바람에 진원이가 유정이를 따라잡았다. 진원이는 긴 나뭇가지 끝으로 유정이의 치맛자락을 들어 올렸다. 하얀 스타킹을 신은 유정이의 통통한 허벅지가 눈에 들어왔다. 성수는 그런 진원이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속이 또다시 메슥거렸다.

“하지 마! 아아앙!”

유정이가 치맛자락을 내리며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진원이는 헤헤거리며 계속했다.

“그만둬!”

성수가 소리치며 나섰다. 진원이가 뜬금없다는 눈으로 성수를 째려보았다.

“장난으로 하는 건데 네가 뭔 상관이야? 어제는 아무 말도 안 했으면서.”

진원이가 이기죽거리자 성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장난이라는 말에 갑자기 뒤섞인 모판이 떠올랐다. 유정이가 재빨리 성수 뒤로 몸을 숨겼다.

“성수야, 쟤가 나 괴롭혀. 자꾸 괴롭혀.”

성수는 짜증이 났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유정이가 뒤에 숨는다고 안 보일 리 없었다.

‘그냥 밀어 버려. 너보다 덩치도 작잖아!’

“네가 뭔데 나서냐? 네가 유정이 동생이냐? 친구냐? …아, 친구 하면 되겠네. 네 아빠도 장애인이니까….”

쿵!

진원이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성수는 진원이를 노려보며 두 주먹을 내밀었다.

“아이 씨! 너 죽었어! 병신!”

진원이가 득달같이 일어나 성수에게 달려들었다.

꺅!

진원이의 비명이 논두렁에 울려 퍼졌다. 진원이의 손등에 깊게 잇자국이 났다.

“욕하면 안 돼! 친구한테 욕하면 나빠!”

유정이가 손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진원이는 손등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파인 잇자국에서 피가 송송 솟아올랐다.

“너희 두고 봐. 나중에 두고 봐!”

진원이가 유정이와 성수를 번갈아 보며 씩씩댔다.

“두고 보기는 뭘 두고 봐!”

성수는 도망치는 진원이의 뒤통수에 대고 바락 소리쳤다.

“두고 보기는 뭘 두고 봐!”

유정이도 성수의 말을 따라 했다.

유정이가 앞서 걷고 있다. 두 팔과 엉덩이를 흔들며 신나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언제나 즐거워. 개구쟁이….”

성수는 노랫소리에도 흥이 나지 않았다. 발걸음을 멈추고 손등을 들여다보았다. 손등 이곳저곳에 볍씨가 잔뜩 묻어 있는 것만 같았다.

“…유정이 누나.”

유정이가 뒤돌아보았다.

“먼저 가. 나 마을 회관 좀 갔다 와야 해.”

“응! 얼른 갔다가 와.”

유정이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노래를 부르며 풀쩍풀쩍 뛰어갔다.

성수는 논두렁을 힘차게 달렸다. 유정이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흥겹게 맴돌았다. 자장면을 실은 오토바이가 마을로 들어와 마을 회관으로 달리고 있다.

 

 

<당선소감>선함과 바름 주는 글 쓰고파

 

우리에게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요?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보다 낫고 힘 있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합니다. 제 글에 나오는 성수 역시 그렇답니다. 성수는 아빠가 자신보다 못한 외국인 노동자와 친구가 되는 게 싫습니다. 아빠보다 더 나은 친구를 사귀어 아빠가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길 원하지요.

다섯 살 어린아이들도 자신보다 힘 있는 친구들을 좋아합니다. 또한 힘을 가지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폭력을 휘두르지요. 아마 저를 포함한 우리 대부분이 그런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폭력이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니까요.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부와 권력의 힘만을 좇으며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선함과 바름의 힘을 키우고 타인이 당하는 폭력에 정의로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의 힘을 키워 소중한 친구를 만들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동화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삶을 살아가며, 그런 글을 쓰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평생 나를 웃고 울게 만드는 ‘글’이라는 씨앗을 주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 씨앗을 잘 심고 보살펴 주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그 씨앗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해 주신 정해왕 선생님, 김서정 선생님,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합니다. 재미없는 내 글을 읽어 조언해 주는 조카 이주, 서영, 지유, 그리고 막 태어난 서윤이에게도 사랑을 전합니다. 또한 이번 작품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경남신문과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1974년 제주 출생 ●세종대학교 교육대학원 졸 ●국립한국경진학교 유치원 교사로 재직 중


<심사평>삶의 정경 풋풋하게 살아 있어

 

응모해 온 많은 작품들 중 우선 여섯 편(‘아라 백련의 꿈’ ‘코코와 눈길’ ‘내 친구는 왕따’ ‘아빠의 똥’ ‘빨간 리본이 달린 모자‘ ‘아빠의 본두’)의 동화를 예심의 자리에 올려놓고 작품이 지닌 저마다의 좋은 점들을 찾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여섯 편의 작품은 저마다 동화의 특질을 알고 동화가 지녀야 할 사람의 체온을 마디마디에 잘 연결해 낸 점을 높이 칭찬했다. 거듭 숙의하고, 숙의한 끝에 ‘코코와 눈길’,‘아빠의 본두’ 두 편을 뽑아 놓고 작품의 진가를 평균율로 잡기 시작했다.

‘코코와 눈길’은 저학년 동화로 너구리와 여우를 대립시켜 반전과 갈등을 이어 눈 오는 날의 산속 풍경을 맛깔나게 그려 한 편의 그림동화로 내세워도 흠은 없으나, 신춘문예 등용이라는 통과례에는 어딘가 연약하다는 느낌을 줘 안타깝게 내려놓고 말았다.

당선작 ‘아빠의 본두’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노동을 서사성과 사람이 지녀야 할 따뜻한 품성으로 거침없이 그려낸 작가적인 그 기량이 돋보였다. 우리는 명실상부 다문화 속에 삶을 영위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어느 시골, 이른 봄 볍씨를 뿌리는 작업과정에서 일손이 모자라 일손을 빌려야 했다. 궁여지책으로 용역업체에 연락해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일을 한다. 작업을 하면서 흘리는 땀의 색깔이나, 소금의 맛과 노동의 거친 숨소리는 같으나, 내뱉는 말은 서로의 모국어다. 주인공 성수의 아버지와 가까워진 하킴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사람이다. 성수 아버지는 3년 전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왼손 손가락을 모두 잃는 아픔을 겪는다. 성수 아버지와 하킴이 이어내는 삶의 정경은 리얼리티이나 작가가 그려내는 서사의 한 마당, 한 마당이 묘한 환상성을 불러내는 특장을 지녔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본두’는 방글라데시 말로 친구다.

“아버지의 본두(친구)”하고 입에 올리면 비온 뒤 산과 산을 이어주는 무지개처럼 야릇한 친근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동화의 본성에는 아니, 문학의 본성에는 순연한 휴머니티가 내재되어야 한다면, 당선작 ‘아빠의 본두’는 땀 흘리며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의 올곧은 정신이 오늘에서 미래에까지 밝음을 유열성으로 시사하고 있다. 작품 전면에 도도하게 흐르는 이야기의 살과 뼈대가 강건하여, 앞으로 좋은 동화를 생산할 수 있는 그 가능성과 그 역량이 얼비친다. 문운이 장구하기를….

■심사위원 : 임신행·배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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