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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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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
성탄절(4) 분노를 없애준 자녀 (누가복음 2장 12-14절)
< 자기를 드리십시오 >
사람들은 보통 ‘얻는 것, 받는 것, 누리는 것’은 좋아하고, ‘잃는 것, 주는 것, 희생하는 것’은 꺼려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기쁨과 평화를 얻지 못합니다. 정말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면 포기를 잘하십시오. 평화는 손해를 보는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가정이나 나라나 세계에 평화가 없는 이유는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인도 북부의 아타르파라테스 지방에 ‘무자파르 나가르’라는 사람이 땅을 파다가 고대 왕국의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금덩이만 500kg을 비롯해서 다이아와 루비 등 수많은 보화들이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평화롭던 마을이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많은 재물이 생기면 평화가 생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드리려는 삶에 주어집니다.
드림(surrender)이란 단순히 ‘준다(give)’는 것보다 한 차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영어에서 ‘give’는 단순히 ‘주는 것’을 통칭할 때 쓰지만 ‘surrender’는 ‘자신의 마음(mind)과 의지(will)를 올려드리는 것’이란 개념을 내포합니다. ‘자신의 소유를 주는 것’도 기쁨을 주지만 ‘자신을 드리는 것’은 기쁨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평화까지 줍니다.
요새 유행하는 명상의 대표 원리는 ‘자기 비우기’입니다. ‘자기 비우기’는 기독교의 ‘자기 포기’와 비슷합니다. 물론 ‘자기 포기’도 어느 정도는 마음에 평화를 줍니다. 그러나 영어의 ‘surrender’는 자기 포기 이상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즉 ‘자기 포기’를 지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자기를 드리는 것’을 포함한 개념입니다. 아무리 모태신앙이고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어도 자기를 드리지 않으면 신앙의 깊은 의미와 축복을 모릅니다.
참된 평화를 원하면 ‘자기를 드리는 지점’까지 나가십시오. 하나님께 자기를 드리지 않으면 사실상 그것은 하나님이 없이 사는 것으로서 언젠가는 반드시 실패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삶에는 결코 손해나 불행이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른 축복도 주시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을 주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자신을 주실 때 경험하는 것이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결국 성령 충만의 제일 비결도 ‘자기를 드림(surrender)’에 있습니다.
< 분노를 없애준 자녀 >
자기를 드리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은 사단의 전략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마음에 속삭입니다. “자기를 드리면 망할 거야. 자기를 드리면 절대 손해야. 그러면 무엇을 얻겠어. 주일성수하면 돈이 나와 밥이 나와? 그러면 더 힘들어져. 어떻게 살려고 해? 세상살이가 쉬운 줄 알아?”
그 사단의 말에 절대 넘어가지 마십시오. 조금 높은 사람에게도 자기를 드리면 그에 따른 보답이 있는데 살아계신 하나님께 자기를 드리면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없겠습니까?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와 사랑과 축복 이전에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넘칩니다. 또한 자신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에도 기쁨과 평화를 줍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이 평화의 왕으로 오신 목적입니다.
어느 날, 고든 맥도날드(Gordon Mcdonald) 목사님이 한 나이지리아 여성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여성은 ‘분노를 없애준 자녀’란 뜻을 가진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호기심이 생겨 “왜 그런 이름을 얻었느냐?”고 묻자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얻게 된 사연을 말해주었습니다. 그 여인의 부모는 서로 매우 사랑했는데 조부모가 그들의 결혼을 극력 반대했습니다. 그래도 서로를 너무 사랑했기에 부모와 가족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결국 결혼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몇 년 동안 가족 사회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 후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낳고 처음으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신을 안으면서 부모와 조부모 사이에 있었던 분노와 적대감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자신에게 ‘분노를 없애준 자녀’란 이름을 주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맥도널드 목사님은 그 이름이 예수님에게도 아주 적합한 이름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분노를 없애준 자녀’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분노는 녹아 없어졌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원망과 분노도 사라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복음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이제 분노를 사라지게 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더욱 마음의 중심에 놓고, 주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고, 어디에 가든지 평화의 기초석을 놓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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