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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2:37-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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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
제12계명-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본문/ 마22:37-40(막12:28-34, 눅10:25-28)
1. 들어가는 이야기
제12계명: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그럼 먼저, 마태-마가-누가 복음을 깊이 비교하며 읽도록 합시다. 마가-마태에는 한 율법사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묻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직접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너는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되묻는 예수님께 율법사가 대답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율법사가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라고 되묻는 물음에 예수께서 저 유명한 “선한 사마리라 사람의 비유”를 일러주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2.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인가?
예수님은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율법사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이웃 사랑이란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곧 이웃 사랑이라고 여실하게 일러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웃 사랑” 이라는 말씀과 함께 더욱 근본적으로 “네 몸과 같이”라는 말씀에 더욱 주목하여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웃 사랑”은 고사하고 내 몸 하나 조차도 바로 건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6:5)
*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딤전5:16)
*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우리 동양의 현자는 이웃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世界一花(세계일화-온 우주와 삼라만상 이 모든 세상은 한 송이 꽃이로다)
萬生一家(만생일가-온 우주와 삼라만상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모두 한 집안이로다)
爲他爲己(위타위기-그러므로 남을 위하는 일이 곧 나를 위하는 일이라)
自他不二(자타불이-나와 너는 둘이 아닌 한 몸이로다)
3. 오늘 우리는 제12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첫째. 내 몸을 잘 건사하여 남의 짐이 되지 않는 것이 이웃 사랑의 시작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衣食住(의식주)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고 자주-자립-독립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몸을 자기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강도만난 사람 마냥 쓰러져 있으면 누군가 그 사람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과 행동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강도 만난 사람 때문에 치룬 그의 희생이 얼마나 컸는가를 생각하면, 강도 만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대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이웃 사랑인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내가 내 몸을 잘 건사하여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될지언정, 강도만난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각각 자기의 짐을 지라(갈6:5)고 하신 것입니다.
둘째. 나의 가족-친척-친구-교회 식구를 잘 돌보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집 밖에서는 자상한 남자가 집안에서는 무뚝뚝한 남자, 집 밖에서는 헌신적인 여자가 집안에서는 짜증내는 여자, 집 밖에서는 명랑한 아이가 집안에서는 투정 부리는 아이가 많습니다. 집 밖에서처럼 안집에서도 자상한 남자, 헌신적인 여자, 명랑한 아이가 됩시다” 하는 텔레비전 광고를 보았습니다.
또한 요즈음 신문에 많은 돈을 기부하는 사람들의 미담이 실리고 있습니다(주로 장학금이다).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일이 가까운 가족-친척-친구-교회 식구는 전혀 외면한 채 사회적 선행으로만 치우친다면 좀 아쉽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왜? 성경은 *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딤전5:16) *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의 이웃 사랑은 평소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강도를 만나 죽게 되었다”는 비상사태에서 일어난 사랑입니다. 물론 평상시에도 곤란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도와주어야지요,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의 이웃 사랑은 비상사태에서 일어난 사랑이란 점을 주목하여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무슨 뜻인가? 사람은 제아무리 有備無患(유비무환) 하고 산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千慮一失(천려일실) 하고, 天災地變(천재지변)을 당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인 것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그 마음 그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요즈음 “중국 지진-터키 지진-태국 홍수 사태” 등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이웃 사랑에 동참 하여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하기 위하여 우리는 治人事天莫若嗇(치인사천막약색-사람을 잘 다스리고, 하늘을 잘 섬기는 데는 모든 것을 아끼는 일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여야 할 것입니다.
본문/ 마22:37-40(막12:28-34, 눅10:25-28)
1. 들어가는 이야기
제12계명: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그럼 먼저, 마태-마가-누가 복음을 깊이 비교하며 읽도록 합시다. 마가-마태에는 한 율법사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묻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직접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너는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되묻는 예수님께 율법사가 대답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율법사가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라고 되묻는 물음에 예수께서 저 유명한 “선한 사마리라 사람의 비유”를 일러주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2.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인가?
예수님은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율법사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이웃 사랑이란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곧 이웃 사랑이라고 여실하게 일러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웃 사랑” 이라는 말씀과 함께 더욱 근본적으로 “네 몸과 같이”라는 말씀에 더욱 주목하여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웃 사랑”은 고사하고 내 몸 하나 조차도 바로 건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6:5)
*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딤전5:16)
*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우리 동양의 현자는 이웃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世界一花(세계일화-온 우주와 삼라만상 이 모든 세상은 한 송이 꽃이로다)
萬生一家(만생일가-온 우주와 삼라만상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모두 한 집안이로다)
爲他爲己(위타위기-그러므로 남을 위하는 일이 곧 나를 위하는 일이라)
自他不二(자타불이-나와 너는 둘이 아닌 한 몸이로다)
3. 오늘 우리는 제12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첫째. 내 몸을 잘 건사하여 남의 짐이 되지 않는 것이 이웃 사랑의 시작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衣食住(의식주)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고 자주-자립-독립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몸을 자기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강도만난 사람 마냥 쓰러져 있으면 누군가 그 사람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마음과 행동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강도 만난 사람 때문에 치룬 그의 희생이 얼마나 컸는가를 생각하면, 강도 만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대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이웃 사랑인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내가 내 몸을 잘 건사하여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될지언정, 강도만난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각각 자기의 짐을 지라(갈6:5)고 하신 것입니다.
둘째. 나의 가족-친척-친구-교회 식구를 잘 돌보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집 밖에서는 자상한 남자가 집안에서는 무뚝뚝한 남자, 집 밖에서는 헌신적인 여자가 집안에서는 짜증내는 여자, 집 밖에서는 명랑한 아이가 집안에서는 투정 부리는 아이가 많습니다. 집 밖에서처럼 안집에서도 자상한 남자, 헌신적인 여자, 명랑한 아이가 됩시다” 하는 텔레비전 광고를 보았습니다.
또한 요즈음 신문에 많은 돈을 기부하는 사람들의 미담이 실리고 있습니다(주로 장학금이다).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일이 가까운 가족-친척-친구-교회 식구는 전혀 외면한 채 사회적 선행으로만 치우친다면 좀 아쉽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왜? 성경은 *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딤전5:16) *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의 이웃 사랑은 평소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강도를 만나 죽게 되었다”는 비상사태에서 일어난 사랑입니다. 물론 평상시에도 곤란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도와주어야지요,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의 이웃 사랑은 비상사태에서 일어난 사랑이란 점을 주목하여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무슨 뜻인가? 사람은 제아무리 有備無患(유비무환) 하고 산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千慮一失(천려일실) 하고, 天災地變(천재지변)을 당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인 것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그 마음 그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요즈음 “중국 지진-터키 지진-태국 홍수 사태” 등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이웃 사랑에 동참 하여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하기 위하여 우리는 治人事天莫若嗇(치인사천막약색-사람을 잘 다스리고, 하늘을 잘 섬기는 데는 모든 것을 아끼는 일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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