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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205 추천 수 0 2012.02.03 23: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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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0:17-22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
막10:17-22

2009.4.19

*이 번 주일은 [이웃초청주일]입니다.
준비하는 이들에 의하면 20여명의 이웃들이 교회로 나오기로 약속했고
교우들은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설교를 해야 하나 기도하다가 문득, '원형대로' 마음을 주셨습니다.
기본에 충실하게 예수를 전해야겠다는 뜻입니다.
예수처럼 사는 게 '영원히 사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수 십 번의 리딩과 깊은 묵상이 이어지겠지만 '예수'라는 결론은 같을 겁니다.


삶이란 죽음 앞에서 가장 큰 위축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것은 죽음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어떻게 보람과 기쁨에 찬 삶을 살 수 있는가를 보여 주시는 일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과정과 십자가에 달려 죽는 상황들은 이와 같은 삶의 진리를 밝혀주는 사건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정에 한 청년이 예수님에게 와서 절을 하면서 "선하신 선생님.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신 분은 하느님 한 분뿐이다."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 된 신이라고 믿은 예루살렘 교회의 신앙고백과는 판이합니다. 그가 죽음 앞에서도 걸으신 기쁨과 보람에 찬 삶의 길이란 우리도 걸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젊은이에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등의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도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믿으라고 해야 할 것인데 예수님은 이웃을 해하지 말라는 말만을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 까닭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매우 막연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주여, 주여" 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그가 사랑하는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늘 이웃을 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이웃을 해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대해서 이 청년은 그 것은 어려서 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그의 진지한 모습을 보아 이 청년은 정말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한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대견하게 그를 바라보시면서 "그러나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이 청년은 울상이 되어 근심하면서 예수 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의 뜻은 무엇인가요?

"네가 가진 부유함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은 "그 부유함을 너 혼자 가지고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입니다. 물질이란 골고루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혼자 지나치게 부를 독점하고 있다면 그것은 남의 것을 도적질했다는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굶고 병들어서 죽었다면 그것은 네가 살인을 했다는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네가 스스로 부자가 된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는 것이요 이웃이 가난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거짓증언을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부를 독점한 자를 축복하실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면서 어떻게 기쁨과 보람에 찬 영생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 무엇이든지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정작 죽음 앞에서 두려움이 큰 법입니다. 물론 가진 게 없다고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죽음'이 상실에 대한 고통과 다르지 않다면,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려주라'는 말씀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청년에게 있어서는 이 말씀이 청천 벼락을 맞은 격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부유해지려는 것이 삶의 목표의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이 소유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는 게 아닙니까?

"예수님을 따라 살아야한다."

삶의 가치를 바꾸라는 말이죠. 가는 길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내용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청년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나를 따르라!" 머리 둘 곳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기득권자들에게 미움을 당하는 그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떨어트리고 근심하면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죽음 앞에서도 두렵지 않고 되레 기쁘고 보람찬 영생을 맛보려면 예수님의 뒤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의 삶이야말로 생과사의 구별 없이 기쁨과 보람에 찬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다시 한 번 음미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의 이야기 몇 가지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요한복음서 4 장에 있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수가성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몹시 시장하고 피곤하셔서 언덕 위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 주저 않으셨습니다. 그리자 제자들은 수가 성에 먹을 것을 구하려 들어갔습니다.

그 때 한 여인이 물동이를 이고 피곤한 발을 끌고 우물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을 본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삶의 깊은 문제가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반발을 하는 그 여인과 대화를 계속해서 결국 그 여인으로 하여금 삶에 새로운 소망을 가지게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여인은 너무나 감격해서 이 이야기를 전하려 물동이와 두레박도 잊어버리고 동리로 달려갔습니다. 이 모습을 본 예수님의 얼굴에는 보람찬 웃음이 환히 꽃피었습니다.

그 후 먹을 것을 구하려 동리로 갔던 제자들이 돌아와 봤더니 그렇게도 시장하셨던 예수님은 미소 먹은 얼굴로 앉아 계시는데 그 얼굴엔 피곤한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놀라서 "누가 선생님께 잡수실 것을 드렸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에 예수님은 "나에게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이 나의 양식이다"라고 말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그의 양식이었다는 말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라도 삶의 방식을 바꾸고 그로 인해 생기 있어 지는 게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삭개오라는 세무 공무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키가 아주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 보면 신체불구자들이란 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죄인들입니다. 그러기에 삭개오는 어려서 부터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세상을 향한 삭개오의 원한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죠. 결국 삭개오는 세무 공무원이 되어 유대인들에게서 세금을 짜냄으로 복수를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세무서장이 되어 적지 않은 힘까지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부와 힘을 아울러 갖게는 되었지만 그러나 마음은 외롭기가 그지없었습니다. 돈과 권력이 있어도 인간으로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삶을 살 게 될 때 그것은 더욱 큰 내면의 고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삭개오는 그 동리로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삭개오는 소문을 통헤 미리 그가 있는 동네에 오시는 예수가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삭개오는 그런 예수님을 한 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먼발치에서라도 뵙기나 하려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데다가 키가 작은 그로서는 예수님을 보는 것조차 용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세상 사람들의 눈에 떠밀려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 앞으로 나설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길가에 있는 뽕나무 위에 기어올랐습니다. 먼발치에서 예수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가슴은 뛰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가 올라가 있는 나무 밑으로 오시더니 삭개오를 쳐다보면서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희 집에 머물겠다."고 부드럽게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당시대엔 그런 죄인의 집에 예수님이 머무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리들의 비방소리도 들은 척 만 척 삭개오의 집에 가서 같이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감격에 차서 예수님을 대접하던 삭개오는 식사가 끝나자 일어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에게 있는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토색한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아 주겠습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의 꽃이 피었습니다. 이런 장면은 필시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흐뭇해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만이 아닙니다. "오늘 너희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까지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감정적인 기쁨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예수님의 마음에 넘쳤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예수님의 삶은 굽이굽이마다 이런 보람찬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짧은 몇 년의 공생에는 주로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그리다가 그는 그가 걸으신 길이 진정으로 참 삶의 길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사셔서 하루에 삼천 명 씩 새 삶의 길로 돌아오게 하는 놀라운 기적을 이룩하셨습니다. 이 부자 청년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다면 이것을 삶으로 경험하고 참된 영생의 길에 들어섰을 것입니다.

청년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돌아가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쓸쓸한 음성으로 "부자가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라고 한탄하셨습니다. 이것을 들은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놀랬을 것은 자명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즘도 복권에 당첨되어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산삼을 캐면 뭐라고 그럽니까? 기도를 해서라든지, 돌아가신 아버지가 점지를 했다든지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그때도 부자는 하나님이 복을 내려서 그렇게 되었다고 여기던 시절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나도 그런 부자가 되었으면' 하고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저들이 부유를 독점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굶고 병들어 죽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면서도 자기들이 선하신 하나님의 자녀이라고 주장하면서 남을 정죄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 사실을 지적하는 자들을 불온한 사람이라고 정죄하고 처벌을 한 것입니다. 돈과 권력에 마음이 굳어진 저들에게는 약한 자의 몸부림도 아우성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들은 허위의 탈을 쓰고 허세를 부리다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망한 것이 그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아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뒤를 따라 살면  그가 하신 것처럼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삶을 통해 그것과는 다른 어떤 삶보다 기쁨과 보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심지어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그렇습니다. 요한복음서 14장 12절에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인류 역사를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서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줌으로 위대한 일들을 했습니까? 이런 생명을 살리는 보람찬 삶, 영원한 가치가 있는 삶이란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를 던져서 그리스도와 같이 남을 섬기는 일에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힘으로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생명은 주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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