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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약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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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정형선 형제 |
참고 : | 20112년 1월 22일 주일예배 |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어른 사회의 왕따
(야고보서 2: 8-9, 누가복음 6: 42)
20112년 1월 22일 주일예배
정형선 형제
평상시 교회봉사도 잘 못하고 있어 항시 교회에 빚을 진 심정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제게 말씀증거 요청이 왔는데 거절하기 어렵더군요. 알겠다고 했고, 그렇게 해서 외람되게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저에 대해서 아셔야 단 1, 2십분의 이야기라도 좀 더 잘 소통되리라 생각되어서 간단히 저를 소개하겠습니다. 지금은 연세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행정학과 교수로 있습니다. 보건행정학과는 신촌이 아니고 원주캠퍼스에 있습니다. 건강보험제도, 의료제도를 주 전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의사는 아닙니다만, 의사들의 업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새길교회는 사실 1989년 문정동 시절에 처음 나오게 되었습니다. 23년 전입니다. 총각 때였지요. 당시에는 청년 모임에도 꽤 빈번히 참여했었습니다. 그 후에 결혼도 하고, 일본에서 살기도 하고, 다시 OECD에 근무하느라 프랑스 파리에서 살았습니다. 국내에 있을 때도 새길교회에 비교적 소극적으로 다녔기 때문에 잘 모르시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전에는 아이 엄마도 같이 새길교회에 다녔는데 원주로 옮기면서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1구역에 살고 있습니다만, 가족 말고 혼자서 구역예배에 참여할 수도 없는 것이고 하다 보니 새길 형제자매들과의 교류가 적어지는 것 같습니다. 때가 되면 열심히 봉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요즈음 지면을 도배하는 이슈가 있습니다. 중학생의 자살로 표면화 된 왕따 문제입니다. 집단따돌림이라고도 하지요. 저는 21년 전인 1991년부터 일본 생활을 했습니다. 박사 과정에 있었는데 아무래도 학교 중심의 생활이어서 일본 사회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저런 사회 이슈들은 경험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일본사회의 특성을 보여주는 독특한 용어들이 있었습니다. 혼네와 다떼마에, 이지메 등이 그것이지요. 혼네는 속마음인데 이것은 그대로 외부에 표시해서는 안되고, 다테마에 즉, 겉모습은 절제된 것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본 사회를 알고 일본 사람의 태도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개념입니다. 다테마에를 보고 이중인격이라고 오해와 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좋게 보면 그리고 실제로는 남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일본인의 배려심의 발로인 것입니다. 일본사람들은 회의장 같은 곳에서 앞쪽을 지나가야 할 때는 몸을 숙이다 못해 거의 기어갈 정도로 낮춥니다.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굳이 방해가 되지 않는 옆길을 지나갈 때도 괜히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낮추면서 지나갑니다. 남을 위한 배려가 워낙 몸에 배다보니 과잉 행동이 나올 정도인 것입니다.
이지메라는 용어를 들어보셨지요. 1990년대 초만 해도 이지메란 말은 적당한 한국말 번역어가 없을 정도의, 일본 사회의 독특한 특성이었습니다. 1995년에는 이지메 당해서 자살한 일본 중학생의 사건이 보도되면서 일본의 몹쓸 문화로 소개되었습니다. 이러던 것이 90년대 중후반 경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이를 지칭한 ‘왕따’라는 용어가 생겨났습니다. 한국은 좋든 싫든 일본으로부터 다양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제가 주 전공으로 하는 건강보험제도나 사회보장제도는 일본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분야입니다. 제가 일본에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좋은 것을 배워오는 것이야 문제가 없지만 안 좋은 것도 따라 들어오지요. 대표적인 것이 ‘이지메’인 것 같습니다.
일본 역사를 보면 이지메가 사회적으로 정당화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립된 섬나라, 지진과 태풍의 피해가 상시적인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협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따라서 개인보다는 전체가 중시됩니다. 이런 사회에서 모난 개별행동을 하거나 공동의 선을 위한 일에 협조하지 않는 사람은 제재를 받아 마땅하다고 본 것이지요. 대지진과 쯔나미에 이은 원전사고의 과정에서 일본인 하나하나가 보여준 놀라울 정도의 절제된 행동을 기억할 것입니다. 사실은, 이렇게 절제하지 않으면 사회의 이지메가 뒤따르는 오래된 관행을 어렸을 때부터 경험적으로 체득한 결과입니다. 이지메는 일본 사회의 존속을 위한 문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지메의 기원과 역사에서 특히 문제되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 에도시대에 에타와 히닌이라는 천민계층이 만들어졌습니다. 평상시 무사계층은 농민들을 수탈했는데, 반대로 농민들은 이들 천민계층을 이지메할 수 있었습니다. 농민들이 천민들을 집단 구타를 해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쾌감을 맛보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희생양을 통해서 무사들은 자기들의 수탈에 대한 농민의 저항을 약화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일본 얘기를 길게 한 것은 지금의 우리 학생들의 왕따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일본에 살 당시 이지메 문화를 보면서 느꼈던 여러 생각을 함께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학생”들 사이의 왕따를 말씀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과연 왕따 내지 집단따돌림이 학생 세계에서만 있는 일일까요? 아마도 이 순간 여러분들의 뇌리에는 어른들 사회의 다양한 왕따의 모습들이 스쳐지나갈 것입니다. 그 중 한 가지를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저는 왕십리에서 자랐습니다. 왕십리에 있는 무학국민학교를 다녔고, 퇴계로에 있었던 동북중학교를 나왔습니다. 제가 다닐 때는 서울지역에서 고교 평준화가 시행되어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없어진 상태라 사실 부담 없이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런데다, 요즘과는 달리 즐길 것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조금은 따분하다싶은 것에 시간을 보내며 지냈습니다. 동네에 있는 교회에 열심히 다닌 것도 그 중 하나겠지요. 지금 생각하면 건전한 것도 있었습니다. 방학 때면 신설동에 있는 동대문시립도서관에 아침 일찍 가서 줄섰다가 입실해서 퇴관시간까지 하루 종일 이 책 저 책 빌려 읽으면서 지내곤 했습니다. 무협지부터 각종 문학작품 등을 무척 많이 읽었던 기억입니다. 하루는 어느 책에서 흥미로운 구절들을 발견해서 메모했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머릿속에 넣었습니다.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경기도는 경중미인이다. 거울 속의 미인과 같다. 강원도는 암하노불이다. 바위 밑의 부처와 같다. 경상도는 태산고악이다. 큰 산의 높은 바위와 같다. 이런 것이었죠. 삼봉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의 명을 받고 풍수지리에 입각해서 남긴 조선팔도 인물평이지요. 그때는 말이 재밌고 사자성어 외는 재미에 그냥 외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이 지역편견, 지역왕따의 시작이더군요. 조금 전에 인용한 것은 비교적 호평을 받은 지역들이지만 그렇지 못한 곳도 있었습니다. 함경도는 이전투구다. 진흙 밭에서 싸우는 ..와 같다. 전라도는 풍전세류다.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과 같다. 지금은 전라도가 지역 왕따의 주된 대상이지만, 통일이 되면 함경도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대학교 마칠 즈음 집중해서 공부해야 할 일이 있어서 충남에 있는 조그만 절에 들어가 한두 달 보낸 적이 있습니다. 저처럼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 있었습니다. 여러 지역 사람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서로 무료하니까 가끔 야참 회식 마련하기 수준의 고 스톱도 하면서 지내곤 했습니다. 어느 날 이와 같은 고 스톱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한 사람이 앞 사람을 지나가는 말로 ‘전라도 고 스톱’치고 있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얻어온 패를 가려서 남의 눈을 속인다는 얘기더군요. 저는 속으로 의아해했습니다. 바로 그 얘기를 하는 사람의 말투를 저는 그때까지 전라도 말투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충남 논산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저로서는 지리적으로 전북지역과 붙어있는 논산 말투와 전라도 말투를 잘 구분 못해서 생긴 혼선이었습니다. 이 짧은 해프닝이 저에게는 강한 충격으로 남았고 지금껏 지역문제를 논할 때마다 이 일을 떠올립니다. 아마도 그 논산사람의 의식엔 자기를 조금이라도 전라도와 차별화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약자집단을 ‘저들(they)' 집단으로 규정하고 차별화함으로써 자기만족을 하는 심리이지요. 학생들의 왕따 문화 속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심리입니다.
색안경을 끼고 보면 사물의 색을 바르게 인식하기 힘들지요. 물론 만인의 만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판단, 교류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학벌을 따지고 직업을 따지고 심지어는 관상을 따지고 할 것입니다. 바쁜 세상에 이것저것 따져볼 시간 없으니 가능한 짧은 시간 내에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이 대상자의 선택이나 능력이나 노력과는 관계없는 기준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것은 큰 문제일 것입니다. 역으로, 남이 자기를 부당하게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불편하고 답답하겠습니까. 아마 누구나 온전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지역을 기준으로 한 편견이 그것입니다.
대학교수직을 십년 정도 하다보니까. 대학생들이 풋풋한 신입생으로 들어와서 화장하고 무쓰로 머리 올리고 졸업하는 전 과정을 반복해서 보게 됩니다. 처음 신입생 환영회 때 자기소개 하는 것을 보면, 경상도 지역에서 온 학생들은 대부분 자기가 부산에서 왔다, 대구에서 왔다고 소개를 합니다. 하지만 전라도 지역에서 온 학생들은 그렇게 소개하는 학생들이 소수입니다. 졸업할 즈음이 되면, 경상도 출신들은 대부분 그대로 경상도 말을 쓰는데, 전라도 출신들은 대부분 표준말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경상도말은 억세서 바꾸기 어렵고, 전라도 말은 유해서 바꾸기 쉬워서 그럴까요?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된 이유는 아닙니다. 전라도 출신임을 밝혔던 일부 신입생들은 아직 전라도에 대한 편견을 경험하지 못해서 그랬고, 졸업할 때 전부 말투가 바뀌어 있는 것은 그동안 그러한 편견의 시선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러한 말투의 변화를 보고 ‘풍전세류’ 즉, 잘 변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석하는 일부의 편견과 덧씌우기입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형성된 지역편견의 환경에 젖어서 반사적으로 그런 차별성이 나오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역별 말투로 사람의 성격을 규정하는 대중매체의 세뇌작용의 결과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의식적으로 이를 고쳐야 할 것이고, 그러한 태도를 배척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의 제도 형성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차별과 격차의 시정을 제도화하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지금 선거를 앞두고 경제와 복지의 우선순위에 대한 논쟁이 불붙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슈보다 더 중요하고, 앞서서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의 과제가 지역 편견의 해소가 아닐까요? 정치, 경제, 관, 군 어느 곳이고 지역 간의 편차가 뚜렷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지역을 근거로 한 인성에 대한 편견이 만연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격적 편견이 다시 모든 부문에서 지역 간의 물질적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읽어주신 야고보서는 같은 2장의 1절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과 무차별의 주님. 오늘 자격 없는 사람이 앞에 서서 너무 민감한, 거론하기 거북한 문제를 꺼내보았습니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도 교실 구석에서 따돌림에 괴로워하고 있을 우리의 자식, 손주들을 살펴주십시오. 사회의 한 모퉁이에서 무시와 편견에 상심하고 있을 이 사회의 모든 약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십시오. 이러한 따돌림과 편견에 무심히 동참하고 있는 우리의 무지를 깨워주십시오. 저희들에게 이를 나서서 해결하는 지혜와 용기를 더해주시옵소서. 주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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