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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을 부르신 하나님

사무엘상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933 추천 수 0 2012.02.09 23: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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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삼상3:1-9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568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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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을 부르신 하나님

삼상 3:1-9, 주현절후 둘째 주일, 2012년 1월15일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셨다고 생각하시나요?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걸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답이 각각 다를 겁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즉 소명의식을 확신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소명 자체를 부정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을 별로 확실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고 말입니다. 생각이 가지각색입니다. 실제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했는데도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고, 소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현상을 소명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소명의식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명을 받은 사람은 뭔가 특별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주변에서는 그런 이들을 부러워합니다. 신학교에 가지 말아야 할 사람도 소명이라는 것을 명분으로 신학교에 가고, 선교사로 가기도 합니다. 도대체 소명, 즉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사무엘

 

오늘 설교 본문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입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성인이 되었을 때 소명을 받는 반면에 사무엘은 어릴 때 소명을 받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이사야, 또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모두 어른들이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출생부터 특이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브닌나라는 또 다른 아내를 둔 엘가나의 아내였습니다.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지만 한나는 늙을 때까지 아이가 없었습니다. 서원 기도를 드린 한나는 아들을 낳습니다. 서원기도대로 한나는 사무엘을 엘리 제사장에게 보내서 성소에서 지내게 합니다. 사무엘은 동자승처럼 성소에서 늙은 엘리 제사장과 함께 살았습니다. 사무엘은 거기서 반듯하게 자랐습니다. 이에 반해 엘리의 아들들은 한결같이 못되게 자랐습니다. 사무엘상 기자는 엘리 제사장의 후계는 엘리의 아들들이 아니라 사무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암시한 것입니다.

 

어느 날 밤 성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워’ 있었습니다. 잠자리에 든 것입니다. 아마 기도하고 누웠겠지요. 어머니 한나의 서원기도로 태어난 그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도 걸려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젊었을 때 타고 다니던 버스의 운전기사 맞은편에 기도하는 소녀상 사진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녀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무엘이라는 소년입니다. ‘사무엘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만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늙은 엘리는 일상생활에서 사무엘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겁니다. 몸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달라거나, 마실 물 좀 달라거나, 성소에서 정리하지 못한 일을 단속하게 했을 겁니다. 사무엘은 평소 하던 대로 엘리에게 달려갔습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가서 자라. 둘 다 잠결에 착각을 했나보다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이런 똑같은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그제야 엘리는 사태를 파악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귀중한 말씀을 주시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순간에 엘리는 마음이 착잡했을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제사장인 자기에게 말씀을 주셔야만 했습니다. 자기가 너무 늙은 게 문제라면 그의 아들들을 통해서라도 말씀하셨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을 주시려고 하는 겁니다. 성서기자는 이미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와 그의 아들 대에 이르러 이스라엘의 신앙상태가 땅에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침묵, 말씀의 침묵 현상입니다. 엘리는 이 상황을 더 이상 뚫고 나갈 영적 힘이 없었습니다. 그의 아들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엘리는 자식 농사는 망쳤지만 제사장 역할은 꾸준히 잘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막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9절) 그 뒤 이야기는 삼상 3:10절 이하에 나옵니다. 엘리가 사무엘에게 가르쳐준 대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사무엘에게 일어난 일은 무엇일까?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시는 소리를 엘리의 목소리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이 들은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처럼 말하는 것처럼 묘사된 장면은 성경에 자주 나옵니다. 동생을 살해한 가인에게 하나님은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묻자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고 대답했습니다. 신약에도 비슷한 사건은 많습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설명에 따르면 바울은 다메섹을 가는 중간에 하늘로부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경험 후에 바울은 기독교를 박해하는 입장에서 완전히 돌아서서 오히려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또는 명령을 직접 듣거나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 내용은 교회당을 건축하라거나, 선교를 위한 승합차를 구입하라는 것들이 많습니다. 사이비 이단들은 대다수가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이런 주장이 청중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런 주장은 객관적으로 증명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청중들도 그런 경험을 하고 싶다는 사실입니다. 자기는 직접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어떤 이를 통해서,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면 가장 좋은데,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마치 삼류 통속 드라마에 빠져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많은 사이비 이단 교주들은 청중들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서 자신을 신격화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아예 무의미한 것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아, 또는 사무엘아 하는 소리는 환청이라는 겁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환청이 가능합니다. 자기가 평소에 듣고 싶었던 소리가 실제로는 없는데 들리는 것처럼 착각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죽은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 죽은 남편이 ‘여보’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거짓 예언자들이 들은 것도 따지고 보면 환청입니다. 대표적으로 예레미야를 공격한 하나냐 선지자입니다.(렘 28장) 유대가 바벨론 제국의 위협 아래 처한 똑같은 상황을 놓고 예레미야의 예언과 하나냐의 예언이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냐의 예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예레미야는 하나냐를 이렇게 비판합니다.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렘 28:15)

 

무슨 말씀인가요? 소명 경험은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된 소명이며, 다른 하나는 거짓 소명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사실을 아무리 확신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거짓 소명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부르심이 아니라 환청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라 거짓 영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이건 소명의 차원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 전반에 관계됩니다. 평생 믿음생활을 했다고 해도 그것이 헛수고일 수 있습니다. 믿음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집단이 주로 사이비 이단들이기 때문에 또 그런 예를 듭니다. 시간과 물질 모든 걸 바쳐서 신 천지를 따라다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전도관의 박태선, 통일교의 문선명을 따라다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나름으로 확신이 있었겠지만 헛수고를 한 겁니다.


소명의 진정성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경험이 없어도 좋다거나,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는 미지근한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대충해도 좋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신앙생활이 무의미하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그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소명을 경험한 사람은 헌신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명을 통해서 헌신적으로 살기 위해서라도 소명 경험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소명의 진정성 문제입니다. 우리의 소명 경험이, 즉 하나님 경험이, 또는 신앙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이자, 질문입니다.

 

소명의 진정성을 제삼자가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루터의 주장을 로마가톨릭교회가 부정한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성령의 몫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모든 진리 여부는 성령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신뢰한다면 이 세상이 진리에 의해서 작동된다는 사실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또는 일시적으로는 불의와 거짓이 득세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정의와 참이 승리합니다. 진리의 영인 성령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성령론적 관점으로 삽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무조건 성령에게 일임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성령에 의존하는 사람은 바로 그 성령의 일에 참여합니다. 소명의 진정성은 소명을 경험한 사람이 성령의 속성인 진리를 따라가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소명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진리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경험은, 즉 신앙경험은 진리에 의해서 판단되어야 합니다.

 

궁극적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우리의 소명을 판단하는 토대이십니다. 마지막 심판의 심판주가 재림의 예수라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주장이 바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재림의 예수는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의로운 자와 악한 자를, 생명으로 구원받아야할 자와 멸망당해야할 자를 구분합니다. 사도행전 기자는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고 진술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사무엘처럼 어떤 소리를 듣는 것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겁니다. 어떤 소리를, 어떤 불을, 어떤 굉장한 현상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경험은 어디에나 있는 겁니다. 요즘도 이상으로 만납니다. 티브이 광고를 들어보십시오. 광고에 나오는 것들을 구입하면 구원받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것들은 현대판 소명 경험, 즉 사이비 하나님 경험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에 매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참된 소명의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소명 경험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보증된다는 말을 상투적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결국 예수 잘 믿으라는 소리군, 하고 말입니다. 옳습니다. 그것은 교리문답의 차원에서 정답입니다. 교리문답에 머문다면 실제로 아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생명으로, 진리로, 길로 알고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난 사건이 여러분의 삶을 깊이와 넓이에서 풍요롭게 합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그런 소명을 받으셨습니까? 그래서 그런 길을 지금 즐겁게, 때로는 투쟁하면서 가고 있으신가요?

 

어린 사무엘을 부르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은 단순히 교회에 잘 나와야 한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생명 구원의 자리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더 집중하십시오. 너무 많은 것에 마음이 분산되면 부르심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성소에서 제사장 엘리를 도우면서 기도하던 사무엘처럼 영혼의 귀를 여십시오. 그때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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