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경험의 위기

신명기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094 추천 수 0 2012.02.09 23:50:01
.........
성경본문 : 신18:15-20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570774 

jys.jpg하나님 경험의 위기

신명기 18:15-20, 주현절후 넷째 주일, 2012년 1월29일

 

오늘 설교 본문인 신명기 18:15-20절은 선지자 전통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최초의 선지자는 모세입니다. 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해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지도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율법입니다. 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삶을 규정한 법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끌었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제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그는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서 마지막으로 긴 설교를 합니다. 그게 신명기입니다. 신명기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의 말씀처럼 전형적인 선지자의 말씀이고 예언입니다. 모세가 선지자의 전통에서 시발점이라는 뜻입니다.


선지자의 역할

 

모세가 수행한 선지자로서의 역할은 이제 곧 끝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선지자 역할을 했습니다. 나이가 120살이나 되었습니다. 후임자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선지자 역할의 인수인계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 한국교회도 담임 목사의 전임자와 후임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전임자의 영향력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카리스마가 강한 전임자가 의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때 문제가 더 심각해집니다. 모세는 이런 성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압에서의 연설을 끝내고 곧 이스라엘 민족을 떠납니다. 수행해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느보산에 올라가 죽습니다. 그의 시체도 흔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떠나기 전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후임자의 말을 잘 듣도록 가르쳐야만 했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만 합니다. 이런 말씀은 모세가 후임자를 배려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선지자를 세우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총회에서 요구한 것이라고 말합니다.(16절) 그 총회가 열린 장소는 호렙산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내산입니다. 호렙산은 모세가 혼자서 소명을 받은 산입니다. 호렙산과 시내산은 실제로는 같은 산입니다. 호렙산에서는 모세 개인이, 시내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총회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요구했다고 합니다.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16절)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해달라는 이들의 요구는 조금 이상하게 들립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할 거라는 우리의 예상과 정반대의 요구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요구한 이유는 죽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 것이 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했을까요? 본문에 보면 그들은 여호와의 음성을 큰불로 여겼습니다. 불은 대상을 태워버립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곧 자기들이 불에 태워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이상한 게 아닙니다. 그들이 시내산에서 경험한 것에 대한 출애굽기 기자의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갑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들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19:17-19) 누구나 압도당할 만큼 대단한 장면입니다. 여기에 묘사된 장면은 화산폭발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화산폭발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내산에서의 하나님 경험은 화산폭발을 오해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이 실제로 나타나서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사람의 말로 명령을 내린 것이라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성경에 대한 오해입니다. 성경 시대의 눈으로 본문을 읽어야 합니다. 고대인들의 눈에 화산폭발은 신의 현현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질학에 대한 초보적인 상식도 없었습니다. 땅속에 용암이 녹아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그들은 땅이 물위에 떠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신의 현현이라고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의 지질학적 한계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연현상 자체를 믿음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자연현상 너머의 하나님이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구약은 자연과학이 아닙니다. 단순한 역사책도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구약을 읽는 이유는 구약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경험했는가를 아는 데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경험은 죽음에 대한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기를, 큰불을 보지 않기를 요구했습니다. 대신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 선지자가 바로 모세였고, 그 후임자인 여호수아였습니다. 그 뒤로 많은 선지자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의 역할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부정 경험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 것이 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하나님을 본 자는 왜 죽는다는 것일까요? 화산폭발을 보고 겁에 질린 것, 또는 어린아이들이 밤중에 다니는 걸 무서워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원초적 경험을 가리킵니다. 우선 이 말은 모순처럼 들립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생명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통해서 생명을, 즉 구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성경에도 그런 표현은 많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본 자는 죽는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성경은 왜 이렇게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하나님 경험은 자기를 부정하게 만든다는 게 그 대답입니다. 하나님의 영원성을 인식하게 되면 자기가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직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절대 의를 경험하면 자기가 얼마나 불의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자기가 얼마나 비열한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 능력과 구원 능력을 경험하게 되면 자기가 얼마나 무능력한지를 절감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상대적인 것에 만족해하면서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면서 즐거워합니다. 재산도 그렇고, 사회적 직분도 그렇고, 인격도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은 좀더 예쁜 외모에 치중합니다. 교회도 서로 그렇게 비교합니다. 상대적인 것을 확인하면서 자기 삶을 확인합니다. 하나님 경험은 정반대입니다.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합니다. 부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도승들의 삶을 보십시오. 자기에 관한 것을 끊임없이 축소합니다. 옷도 단조롭습니다. 모양도 그렇고 색깔도 그렇습니다. 살아가는 것도 기도, 말씀, 노동으로 단조롭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들이 자기의 예술행위에 천착하느라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옷도 무조건 구질구질하게 입고 다니고, 사회활동도 하지 않고, 현대문명과 담을 쌓은 원시림의 원주민들처럼, 수도승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문명 자체가 악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세속에서 살아가는 한 무소유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경험의 원초적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자기축소입니다. 자기부정입니다. 자기축소와 자기부정의 끝은 죽음입니다. 하나님 경험은 궁극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운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경험은 사람에게 존재의 위기입니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다거나, 하나님 음성을 듣고 싶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할 겁니다. 하나님을 만났다고 즐거워하면서 떠벌리는 사람은 하나님 경험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존재의 위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는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해 달라고 요구한 것처럼 하나님 경험을 거부합니다. 대신 사이비 하나님을 경험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이비 하나님 앞에서는 존재의 위기가 실종됩니다. 오히려 더 강화됩니다. 오늘 매스컴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들을 보십시오. 모두 자기 존재감의 강화입니다. 모두 왕자와 공주처럼 살 수 있듯이 유혹합니다. 교회의 메시지도 자기를 긍정하라고 말합니다. 긍정의 힘 류의 영성이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정신적인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경험을 통해서 직면하게 되는 자기 부정과는 정반대입니다. 그 결과는 끝 모를 허무, 아니면 자기 망상에 빠집니다.

 

이스라엘은 다행히 사이비 하나님인 우상으로 떨어지지 않고 선지자 전통을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 경험은 이제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 말씀으로 주어집니다. 신명기 기자는 이것을 18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선지자의 이 말을 들어야 합니다.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전하지 않은 것을 자기 마음대로 전하면 죽임을 당한다고도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즉 율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처럼 절대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구약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기독교인들은 구약의 이 메시지를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받아들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를 가리켜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다른 복음서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경험했던 것과 똑같은 두려움을 경험했습니다. 마가복음은 제자들의 경험을 이렇게 전합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막 4:41) 제자들은 예수님 앞에서 기존의 생각이 다 허물어지는 걸, 즉 존재의 근거들이 해체되는 걸 경험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메시아로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자기 존재의 근거가 허물어지는 위기는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기회입니다. 이 두려움을, 즉 이 위기를 피하지 말고 직면하십시오. 아직 그런 위기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신앙의 세계로 들어오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예수님에게 일어난 사건이 무언지를 알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를 알기 위해서 여러분은 예수님에게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구경꾼으로 남아 있으면 위기도 없고 기회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 여러분의 영혼에 공명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6456 레위기 주님과 함께 걷는 길 레13:1-23  최장환 목사  2012-02-15 6635
6455 이사야 천 배의 축복을 꿈꾸십시오 사60:10-22  이한규 목사  2012-02-14 2763
6454 이사야 성령 충만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61:1-11  이한규 목사  2012-02-14 2956
6453 이사야 바른 믿음을 가지십시오 사60:1-3  이한규 목사  2012-02-14 2255
6452 이사야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길 사60:4-9  이한규 목사  2012-02-14 2465
6451 여호수아 편견만 버릴 수 있다면 수20:1-9  이한규 목사  2012-02-14 2348
6450 이사야 사랑은 책임입니다 사59:9-21  이한규 목사  2012-02-14 2590
6449 이사야 응답 받는 4대 기도 사59:1-8  이한규 목사  2012-02-14 2907
6448 누가복음 소외감을 극복하는 길 눅18:9-14  이한규 목사  2012-02-14 3084
6447 이사야 성공자의 6가지 공통분모 사58:9-14  이한규 목사  2012-02-14 2085
6446 이사야 가장 아름다운 사람 사58:1-9a  이한규 목사  2012-02-14 2433
6445 이사야 거칠 것이 없는 축복 사57:14-21  이한규 목사  2012-02-14 2754
6444 이사야 감정에 도취되지 마십시오 사57:1-13  이한규 목사  2012-02-14 2292
6443 시편 은혜가 넘치는 삶의 축복 시145:1-9  이한규 목사  2012-02-14 3084
6442 이사야 현상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사56:9-12  이한규 목사  2012-02-14 2337
6441 이사야 용서를 체험하십시오 사56:1-8  이한규 목사  2012-02-14 2209
6440 이사야 축복은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사56:10-13  이한규 목사  2012-02-14 2787
6439 민수기 원망과 불평의 시작 민11:1-9  이정원 목사  2012-02-13 2847
6438 민수기 성도의 책임 민10:29-36  이정원 목사  2012-02-13 2223
6437 민수기 하나님의 군대 file 민10:11-28  이정원 목사  2012-02-13 4552
6436 민수기 은 나팔 민10:1-10  이정원 목사  2012-02-13 2138
6435 민수기 우리의 인도자 민9:15-23  이정원 목사  2012-02-13 1961
6434 고린도전 다시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자가 되자 고전15:51-52  강종수 목사  2012-02-12 1974
6433 요한복음 농부의 마음 요15:1-2  한태완 목사  2012-02-12 3330
6432 시편 믿음과 하나님 알기 시34:1-22  한태완 목사  2012-02-10 2607
» 신명기 하나님 경험의 위기 신18:15-20  정용섭 목사  2012-02-09 2094
6430 마가복음 제자의 길 막1:14-20  정용섭 목사  2012-02-09 2410
6429 사무엘상 사무엘을 부르신 하나님 삼상3:1-9  정용섭 목사  2012-02-09 2933
6428 마가복음 물세례, 성령세례 막1:4-11  정용섭 목사  2012-02-09 2945
6427 갈라디아 종의 영, 아들의 영 갈4:4-7  정용섭 목사  2012-02-09 2074
6426 요한일서 생명세상 file 요일1:1-4  이선근 형제  2012-02-09 2056
6425 야고보서 어른 사회의 왕따 약2:8-9  정형선 형제  2012-02-09 2355
6424 창세기 새 하늘과 새 땅 : 창조와 부활의 새 아침 창1:1-5  서광선 목사  2012-02-09 2162
6423 누가복음 바보의 힘 : 예수의 멋진 힘 눅6:20-22  한완상 형제  2012-02-09 2681
6422 마태복음 함부로 서약하고 맹세하지 말라 마5:33-37  한태완 목사  2012-02-09 3434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