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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민1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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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sarang.onmam.com/ |
원망과 불평의 시작
민11:1-9
2012.1.29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범하기 쉬운 죄 가운데 하나가 원망과 불평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며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행하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원망과 불평에 대하여 징벌하십니다. 그런데 왜 성도가 원망하고 불평하게 될까요? 그것은 마땅히 기억하고 감사해야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망각하고, 잊어버려야 하는 죄악된 과거에 대한 향수에 미련을 두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놀라우신 은혜들 - 출애굽, 홍해를 건넌 일,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 만나 … 등을 망각하고 과거의 삶을 그리워하면서 원망과 불평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의 시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뵙고 율법을 받았으며 성막을 건립하여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체계적이고 질서정연한 군대로 조직되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그들을 보호하고 인도했으며, 하나님의 법궤가 맨 앞에서 그들을 이끌었습니다. 시내산을 떠나 처음으로 행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참으로 위풍당당하고 질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처럼 처음 출발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은혜롭고 바람직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된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훈련을 받으면서 맨 먼저 한 것은 바로 불평이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1상) 아마도 그들은 모세를 따라 애굽을 떠나면 훨씬 편하고 풍족한 삶을 살게 될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막상 광야로 나와서 일 년 이상 지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도 가도 막막하고 황량한 광야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입에서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뭐라고 원망하고 불평했는지는 언급되어 있지는 않으나 ‘악한 말로 원망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악한 말로 원망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우리도 대개 다 경험해본 일들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남편이 일을 마치고 배가 고파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그날따라 집안 일이 밀려서 미처 식사 준비를 해놓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 남편이 화를 내며 “하루 종일 집구석에 있으면서 밥도 안 해놓고 뭐했어. 정말 당신이란 여자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여자야.”라고 면박을 줍니다. 그러면 미안하게 생각하던 아내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한테 제대로 해준 게 뭐가 있어. 돈도 쥐꼬리만큼 벌어오는 주제에 …” 이렇게 받아 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바로 악한 말로 불평하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죄를 짓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살인에 해당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1-22)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던 말로 미루어 짐작해볼 때, 그들은 이런 식으로 말했을 것입니다. “모세 당신, 우리를 죽이려고 이 광야로 데리고 나왔어? 차라리 애굽에서 살았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이런 광야로 데리고 나와서 우리를 죽이려고 해?” 이런 말은 하나님의 구원과, 그들에게 엄청난 축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불신앙이고 죄악이었습니다.
그들의 악한 불평을 들으신 하나님
모세는 이들의 원망과 불평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1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말을 듣고 계십니다. 당신은 늘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며 사십니까? 사람이 알고 사람이 듣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아신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의 원망과 불평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즉시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1하) 이 불은 나답과 아비후를 살랐던 바로 그 여호와의 불이었습니다. 이 불은 하나님의 임재와 심판을 상징합니다. 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셔서 진의 끝만을 사르셨고,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내 그 불을 거두셨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2절)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면서 백성들에게 경고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는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제 이 두려운 일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는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더 크게 계속되는 불평
그런데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하여 불 심판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불평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번에는 불평과 원망이 더욱 심각하고 악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은혜와 이적으로 그들에게 내려주신 만나에 대하여 악하게 불평했으며, 그들이 애굽에서 살던 시절과 그 때 먹은 음식이 좋았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4-6절)
섞여 사는 무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부터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불편함과 고생을 참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자극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문은 누구에게서 불평이 시작되었는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먼저 탐욕을 품고 원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4상)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란 출애굽할 때 따라 나왔던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하나님만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고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 외적인 기적과 축복의 땅 가나안을 얻게 될 것만을 바라보고 따라 나온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수할 때도 그 수에 들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과 신앙을 갖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가장 먼저 불평과 불만을 터뜨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하나님 백성으로 택함을 받고 여러 가지 특권과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신앙과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이 사람들과 한 패가 되어 함께 원망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어리석은 일입니까?
원망과 불평의 특징
원망과 불평은 주로 섞여 사는 무리에게서 먼저 시작됩니다. 믿음이 없고 헌신되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언제나 불평과 원망이 먼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원망은 재빨리 전염됩니다.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 불평과 원망은 마침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까지도 넘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원망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망각하고 과거의 죄악된 삶을 그리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원망은 믿음 없는 사람들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억압받고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구원해내시고 놀라운 기적으로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며 친히 함께 하셨습니다. 만나를 내려 먹여주셨고 생수를 주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옷이 해어지지 않았으며,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으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공급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비록 황량하고 삭막한 광야를 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따뜻하고 평안한 사랑을 피부에 닿도록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만나에 대하여 불평하면서 애굽의 음식들을 그리워하며 울었습니다.
만나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려주신 만나는 어떤 음식이었습니까? 모세는 그들의 원망과 불평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만나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7-8절)
그것의 모양은 진주와 같았고 맛은 기름 섞은 과자와 같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만나를 가지고 자기들이 원하는 여러 가지 요리들을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만나는 보기에 좋았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요리해도 맛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먹었던 그 음식들은 고된 노역과 억압의 대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매일 먹고 있는 만나는 날마다 값없이 거두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리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9절) 그들은 이 만나를 위해 돈을 내거나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단지 매일 아침 먹을 만큼 거두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그것을 새롭게 내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이적이었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만나가 하늘로서 오신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우리 주님은 하늘로부터 오신 생명의 떡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나는 육신적으로 완전한 음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예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만나를 멸시했습니다.
과거가 그립다.
그들은 만나가 지겹다고 불평을 해댔습니다. “왜 하나님은 만나만 주시는가? 애굽에서는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값없이 먹지 않았는가?” 참으로 어이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애굽에서 먹던 것이 마치 진수성찬이나 되는 듯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노예들에게 주어진 음식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것이 큰 잘못이나 된 것처럼 큰 소리로 원망을 해댔습니다(함백에서 버섯농장을 시작하던 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과 애굽의 소산물과 고기 솥을 회상했습니다. 그들은 벽돌을 굽던 일과 감독들의 채찍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좋은 것들만 기억나고 그 외에 비참하고 소망 없던 일들은 일체 기억하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악하게 원망하며 불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우리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일단 하늘에 속한 것들의 맛과 향기를 잃게 되고 첫사랑이 식어지면, 은혜가 식어지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매력을 잃고 부담스럽고 재미없게 여겨집니다. 그렇게 되면 눈은 다시 세상향락을 추구하게 됩니다. 죄와 불순종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가를 망각하게 되어 믿음으로 살며 훈련과 연단 받는 것을 고통스럽게 여기고 벗어나려고 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하늘의 만나만으로 충족합니까? 아니면 세상의 것들이 좋고 그립습니까? 우리의 만나이신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세상적인 것들에 연연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 것들을 그리워합니다.
다음의 질문에 대하여 답을 해 보십시오. “우리는 7-80년을 이 세상에서 삽니다. 그런데 당신은 영원히 살게 될 하늘나라에서는 어떻게 보낼 작정십이니까? 당신은 영원한 나라에서도 이 세상의 천박한 것들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비록 우리에게 아직 육신의 본성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따라가는 대신 육신을 죽이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롬8장에서 “우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말했습니다(롬8:13). 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는데, 오늘 본문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바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심각한 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거역하며 모독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놀라우신 구원과 은총들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거룩하고 존귀한 하나님 백성인 우리를 심히 비참하고 부끄럽게 만들어버립니다. 오직 우리의 만나이신 그리스도만으로 만족하며,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이 광야 인생을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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