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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서 배우기2 -이스라엘의 2대왕 나답

열왕기상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993 추천 수 0 2012.02.20 23: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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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왕상15:25-32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실패에서 배우기2(이스라엘의 2대왕 나답)
열왕기상15:25-32

오늘은 12월 첫 주일 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2대 왕 나답의 인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왕으로 2년 동안 통치했는데 그 2년의 인생을 몇 구절로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그는 왕이 되었지만 신하가 역성혁명을 일으켜 자신도 죽고 가문이 멸족되었습니다. 실패한 인생입니다. 차라리 왕이 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생입니다. 그의 실패한 인생을 통해 실패에서 배우기 두 번째 시간으로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짧은 구절이지만 제가 세 가지 관점으로 본문을 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모델입니다. 둘째는 동기입니다. 셋째는 자리입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를 모델로 삼느냐에 따라 처음 시작은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지만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행동의 동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세상에 쓰임받기도 하고 내침을 받기도 합니다.

1. 우리는 모델을 분명하게 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2대 왕 나납의 실패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26절을 보십시오. 우리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모델로 삼은 것입니까? 이미 실패한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악습을 닮아간 것입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아무라도 제사장을 세우고, 절기의 날짜를 바꾸는 그 악습을 그대로 닮아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 제사 드리지 말고 편리하게 벧엘과 단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꼭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보고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꼭 목사가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아무라도 설교하면 되고 만인제사장인데 교회 민주화를 이루어 누구라도 예배를 집례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같은 날인데 꼭 주일날 예배드릴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편리합니다. 유익합니다. 인기가 있습니다. 호응도가 좋습니다. 백성들이 좋아합니다. 잘못된 아버지의 예배습관입니다. 그런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만들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아버지 여로보암을 모델로 삼은 것입니다. 선지자의 책만을 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형이 병들고 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으로 아버지가 버림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아버지를 모델로 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누구를 모델로 삼느냐를 아주 중요하게 말씀합니다. 유다왕 르호보암도 보십시오. 14장 22절을 보십시오. 잘못된 조상을 따른 것입니다. 아비얌을 보십시오. 15장 3절을 보십시오. 그 아버지의 잘못된 길을 따릅니다. 그런데 아사왕을 보십시오. 15장 11절을 보십시오. 아버지 할아버지를 모델로 삼지 않고 다윗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면 쉽게 아버지의 잘못된 길을 따라가 버리는 것입니다. 사탄이 좋아하는 것, 악한 것, 불결한 것 등은 배우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결단하고 변화시켜야 합니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 학원가서 배워서 합니까?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순종의 사람 이삭을 보십시오. 믿음의 사람 아버지의 잘 못을 자연스럽게 배워버립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이삭도 똑같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롯의 딸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보고도 똑같이 아버지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잘못된 점, 선조들의 잘못된 점이 있으면 그것을 철저하게 내 대에서는 단절시켜 버려야 합니다. 도 박을 하다가 망했으면 도 박을 의도적으로 철저히 단절해야 합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망했으면 알코올을 의도적으로 철저히 단절해 버려야 합니다. 바람피우다 망했으면 그 바람을 철저히 차단해 버려야 합니다.
나답은 부모의 정신적 유산 때문에 멸망한 자의 전형적 모델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편한 대로, 본 대로, 들은 대로 가려 합니다. 사람은 늘 바라보는 사람을 닮아갑니다. 모방 본능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세르주 시코티 "심리실험 100"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1989년 워싱턴 대학의 심리학자들인 멜초프와 무어는 같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지 이틀 미만인 신생아 4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답니다. 연구팀은 이 아기들을 신생아실 바로 옆의 작은 방에 있게 했습니다. 실험자는 아기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20초를 주기로 아기에게 혀를 내밀기와 고개를 흔들며 도리질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이 실험은 8분 동안 진행되었답니다. 이 행동들에 대한 아기들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 비디오 촬영도 했답니다. 그 결과 멜초프와 무어는 어른이 혀를 내밀 때보다는 도리질을 할 때 아기들 역시 도리질을 더 많이 하고, 어른이 도리질을 할 때보다는 혀를 내밀 때 아기들도 더 많이 혀를 내민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동작을 취하는 동안에도 이런 결과들이 확인되었지만, 그다음 20초 동안 동작을 취하지 않을 때에도 계속 동일한 결과들이 나타났답니다. 신생아가 앞에서 행동하는 대상의 행동을 모방하더라는 것입니다. 신생아는 어떤 행동을 인지할 때 행동의 실행을 통해 즉 자기가 직접적으로 따라하면서 그 행동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아기는 어른의 행동을 자신의 행동을 위한 모델로 이용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모델로 삼고 모방하느냐에 따라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도 있고 실패한 인생을 살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가대를 섬기는데 누구를 모델로 삼느냐? 교사로 봉사하는데 누구를 모델로 삼느냐? 목회를 하는데 누구를 모델로 삼느냐? 사업을 하는데 누구를 모델로 삼느냐? 부모 역할을 하는데 누구를 모델로 삼느냐? 마을 교회 목자로 봉사하는데 누구를 모델로 삼느냐? 가 중요합니다. 마을 교회 목자가 되려고 해도 실패한 목자를 모델로 삼는 것보다 모범적인 목자를 모델로 삼아야 합니다. 지난주에 어는 목사님의 건강강좌를 듣는데 영안교회에 다니는 한 안수 집사님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교회에 그런 집사님 한 분만 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심장 내과 원장이라고 합니다. 최근 2년간 우리나라 심장 수술 1위라고 합니다. 이분은 의사가 된 것을 전도할 목적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 입구에 가면 명예의 전당이 있는데 전도를 하여 세례를 받게한 사람 105명의 이름과 그분의 발을 찍어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목장 목자로 활동하는데 56가정을 당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 년이면 100가정을 만들로 목장을 두 개로 나눈다고 합니다. 집이 68평이었는데 예배드릴 공간이 적어 92평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분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자기 교회에 이런 분 한 분만 있으면 좋겠다고 소개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모델을 잘 삼아야 합니다. 누구를 모델로 삼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미국 대통령 중에서 12년 동안이나 대통령을 한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는 소아마비 장애인입니다. 아버지가 50살에 나은 쉰둥이였습니다. 그의 어릴 때 꿈은 대통령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친척 아저씨 중에 미국 26대 대통령이 된 시어더 루스벨트가 있었습니다. 그 루스벨트를 역할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가 갔던 길로 그대로 따라가면 그가 이룬 대통령의 자리에 자신도 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어더 루즈벨트가 하버드대학에 들어갔으니 자신도 하버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변호사가 되었으니 자신도 변호사, 뉴욕 주 상원 의원이 되었으니 자신도 뉴욕 주 상원의원, 해군 차관보가 되었으니 자신도 해군 차관보, 부통령 후보에 출마하여 부통령이 되었으니 자신도 부통령에 출마했습니다. 그런데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도전을 하였지만 패배하고 이듬해에 과로로 소아마비가 되었습니다. 당시 나이 39세입니다. 모두가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 때 그는 헬렌켈러를 모델로 삼은 것입니다. 헬렌켈러가 어떻게 3중고의 어려움을 딛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는가를 생각하며 그분을 모델로, 그분의 길로 방법을 바꾸었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어 서 혼자 연설할 수 만 있어도 재기하리라고 다짐하였습니다. 당시는 재활의학이 없을 때였습니다. 그는 사재로 온천이 나는 조지아에 웜스프링 재활 센타를 지어 온천물에 수영을 하며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치료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무려 7년을 치료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대공황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유엔을 만들었습니다. 미국 사상 유래 없이 대통령으로 12년간 집권하였습니다. 그가 재활을 꿈을 꾸었던 웜스프링 재활센타를 지금은 리틀 화이트 하우스라고 합니다. 그 곳 정문 양문에 두 개의 문구가 쓰여 있는데 한 쪽 문에는 헬렌 켈러의 말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불가능해라고 속삭이는 동안 그 불가능은 이미 가능으로 되었노라" 한 쪽 문에는 루스벨트 말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마음속의 공포뿐이다. 내일의 성취는 오늘의 꿈으로 결정된다. 우리가 꿈과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전진하자." 경제 공황 때 한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 사람입니다. 모델을 잘 선정하여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우리가 평생 따라가야 할 진정한 모델은 누구이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를 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일어나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마 10:38)”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살았던 바울은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1)"라고 말씀합니다.

2. 우리는 행동의 동기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나답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25절을 보면 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고 나와 있습니다. 젊을 때 왕자 수업을 열심히 받았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통치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특히 선지자를 통하여 아버지에게 경고한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왜 그의 아버지 여로보암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였습니까? 14장 8절 이하를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계속 악을 행하면 여로보암의 집을 깨끗이 쓸러 버린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했던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버림을 받았습니까? 성경은 아주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삼상 15:23)”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것입니다. 나답도 똑같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입니다. 동기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가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행동의 동기가 중요합니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동기입니다. 프로이트는 ‘리비도’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은 무엇을 요구하며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것은 ‘성관계’이며 인간은 ‘생식기적 에로티시즘을 생활의 중심으로 삼기로’ 작정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성적 만족의 충동은 너무 강렬하여 모든 외부의 현실은 성적 해소를 성취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억제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인간의 성적 클라이맥스를 탐하려는 욕구를 막을 수 없고,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리비도이며 리비도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격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억제할 수 없는 성적 욕구를 채울 궁리만 하고 모든 인간 활동의 원동력은 실리와 쾌락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분투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어제 신문에 실린 내용을 보았을 것입니다. 군에서 장군이 된 사람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보험설계사와 알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보험설계를 하는 여인과 차속에서 불륜하다 남편에게 들켰답니다. 잘 나가는 보험설계사인 아내는 한강에 투신하여 자살하였습니다. 전역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준장은 얼마나 개망신이겠습니까? 어제 한겨레 21을 보니까 '2010 성매수 실태 조사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한국 남성 10명 중 4명은 지난해 성매매 했다는 것입니다. 1명이 1년 평균 2.6번에 31만 3천원 지출했답니다. 신문에 “믿을 놈 없다.”고 써 놓았습니다. 시사저널에서 대학생의 '성문화의 현주소'를 조사해 보았더니 혼전 성관계에 대해 89%가 "긍정적"이었답니다. 쿨하게 즐기자는 것입니다. 미국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는 오하이오주립대 연구 결과를 인용, "젊은 남성들은 하루 19번 성에 대해 생각을 하고 여성은 10번 성에 대해 생각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보통 인간이 일생 동안 40,00여 번의 성교를 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절정을 느끼는 순간은 남자의 경우 단 몇 초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한평생 절정을 맛보는 시간은 200분, 그러니까 4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생 동안 4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쾌락, 한 줌도 되지 않는 쾌락을 위해 재산을 탕진하고 생명을 걸기까지 하고 사창가를 기웃거리며 청춘을 낭비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부부 안에서 이루어져야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왜곡된 성이 우리 인생을 끌고 가게 하면 안 됩니다. 삶의 동기가 되게 하면 안 됩니다. 성군이라고 하는 다윗 왕도 성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하까지 죽였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성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결국 나라를 반쪽 냈습니다. 롯의 두 딸은 잘못된 성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았는데 술 취한 아버지를 범합니다. 정보 혁명이 일어난 이 시대는 성적 전쟁터입니다. 토마스 홉스는 ‘물질적 이기심’이 수티는 ‘놀이와 유대감’이, 니체는 ‘권력의 의지’가 인간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행동을 인도하는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행동의 기준이고 나침판이고 지도인 것입니다. 나답은 이 말씀을 기준으로 나침판으로 지도로 삼지 않아 실패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들이 모두 실패하는데 말씀을 지도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공허한 종교적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운동력이 있고 인간의 생각을 통찰하게 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실적 진리이고 진실적 진리인 것입니다. 그대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미 선지자 아히야가 예언한(14:14)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8, 29절을 보십시오. 바아사가 반역을 일으켜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될 때에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여로보암에게 선포하신 말씀(14:10-11)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진실입니까?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해도 괜찮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언젠가 주님은 재림하시게 될 것이고 그 날에 완전한 심판과 구원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은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 동기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말씀이 가라하면 가고 멈추라하면 멈추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약 2:8)” 우리의 행위는 사랑이 동기기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양육하는데도 사랑이, 교회에서 봉사하는데도 사랑이, 직장생활을 하는데도 사랑이, 설거지 하는데도, 청소하는데도, 선교하는데도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실리를 추구하고 지배욕을 성취하고 리비도를 실현하고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고, 사랑해도 그 보상을 기대할 수 없음에도 먼저 사랑하여 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폐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 본성이 사랑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9-10)" 사랑이 동기가 되어 우리를 구원하였습니다.
참 신앙인들은 사랑이 동기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손양원 목사는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살인마를 자신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다미엔 신부는 하와이 군도 몰리카 섬에서 문둥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자신도 문둥이가 되었습니다. 1943년 1월 22일 폭스, 구스, 폴링. 웨싱턴 군목이 '도체스터 호'에 승선하였다고 합니다. 그해 2월 3일 55분 독일 잠수함 u-233이 도체스터 호에 접근하였답니다. 얼마가지 않아 도체스터 호는 어뢰를 맞고 점점 물에 잠기기 시작했답니다. 네 명의 군목은 잠기어 가는 함정 속에서 병사들을 진정시키고 구명정을 꺼내어 주기 시작하였답니다. 마지막 남은 구명정까지 모두 꺼내어 주고 그들은 갑판에 어깨를 맞잡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답니다. 그날 배에 타고 있던 병사 904명 중 605명이 전사하였습니다. 물론 전사자 명단에는 사랑으로 장렬하게 죽어간 4명의 군목 명단도 끼어 있었답니다. 모든 것 은혜로 받았으니 이 사랑이 동기가 되어 우리가 살면 가정이 천국처럼 변합니다. 교회가, 세상이 천국처럼 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좋은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나답 왕이 실패한 직접적인 사건은 무엇입니까? 27절을 보십시오. 신하 바아사의 반역입니다. 멀리 있는 적이 아닙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입니다. 고대 왕들은 대부분 자식들이 계승하는데 어떻게 이런 역성혁명이 일어났겠습니까? 여로보암 왕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후로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계속 혁명이 일어납니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처럼 힘 있는 자가 혁명으로 나라의 권력을 접수해 버립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혁명이 가능했겠습니까? 왕이 된지 2년 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 전쟁터에 나간 것입니다. 내치보다는 외치에 치중한 것입니다. 이미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땅 깁브돈을 찾겠다고 전쟁터에 나간 것입니다. 이 땅은 본래 단지파에게 분배된 땅이고 레위 자손 중에 그핫 자손들을 위해 바쳐진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모르겠지만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름이 “고지”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보아 군사 요충지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땅을 탈환하려고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깁브돈을 포위 공격한 것입니다. 그곳에 갔다가 신하에게 반역당하여 자신도 죽고 온 가족이 죽은 것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죽였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총 19명의 왕 중 살해당하는 자들이 7명이나 됩니다(왕상 15:27-28; 16:15-16; 왕하 10:1-17; 15:10-13, 14-16, 25-26, 30-31). 나답이 바로 그 첫 케이스가 되었고 역성혁명을 해도 된다는 모델을 제시한 것입니다. 단순히 왕위만 빼앗긴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 멸족을 당한 것입니다. 여로보암 가문이 뿌리 채 뽑히는 멸문지화 쿠데타의 희생물이 된 것입니다. 왜 이것이 잘못되었습니까? 왕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과 백성의 중간에 있어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실현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의 실현과는 상관없이 자기 통치권을 확보하기 위해 잃어버린 땅을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대통령이 되어 6.25 전에 우리 땅이었다가 북한에게 잃어버린 강원도 지역을 다시 찾겠다고 전쟁을 일으켜 보십시오. 2년 밖에 되지 않은 왕은 지금 전쟁터에 가 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외치보다는 내치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에 돌리려고 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지금 적과의 전쟁을 일으킬 때가 아니라 자신과의 전쟁을 해야 할 때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내려온 우상숭배를 철폐해야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망한 것은 땅이 좁아서 망한 것도 아니고, 지혜가 없어서 망한 것도 아니고, 외화가 없어서 망한 것도 아니고, 국력이 모자라서 망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방 신상을 섬겼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잘 섬기는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를 만들라고 여로보암에게 나라를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왜 나답이 실패했다고 말합니까? 아버지 여로보암도 범죄하고 자기만 범죄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도 범죄하게 하여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왕은 이일을 하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왕의 자리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야 할 자리입니다. 절대 권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자신의 권력을 실현할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백성을 그 말씀으로 잘 인도해야 할 자리입니다. 나답도 우선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개혁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있지 않고 통치권 확보를 위해 전쟁을 버리는 자리에 간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교훈 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인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지리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하나니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거룩하게 만들었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면 우리는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똑같은 밥도 밥그릇에 있어야 합니다. 밥상에 떨어져 있으면 오물이 됩니다. 차는 주차할 수 있는 곳에 서 있어야하지 거리 중앙에 주차해 있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사고 난 차입니다. 침대는 침실에 있어야 합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의 자리, 아내는 아내의 자리,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 국민은 국민의 자리, 목사는 목사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장기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건강합니다. 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으면 병이 듭니다. 마음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건강합니다. 주일날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다윗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집안에서 잠자다가 넘어졌습니다. 유다도 있어야 할 자리 겟세마네 동산 기도의 자리에 있지 않다가 넘어졌습니다. 천사가 왜 사탄이 되었습니까? 제 자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제자리를 떠나면 천사같은 사람도 사탄처럼 변합니다. 제 자리를 떠나는 것을 성경은 교만이라고 합니다. 그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씀합니다. 히스기야가 교만으로 넘어졌습니다. 헤롯이 교만으로 넘어졌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는 것을 우리는 탈선이라고 합니다. 기타가 레일 위에 있지 않고 땅으로 내려가면 탈선입니다. 학생이 학교에 있지 않고 학교에 있을 시간에 오락실에 앉아 있으면 탈선이라고 합니다. 비행기는 하늘에 있어야 하고 배는 바다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보십시오.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6)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7)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8)”
우리에게 이런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합니다. 교회에서 연말이 되면 어려워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스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섬기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내 뜻대로 다른 사람을 조정하고 지배하려는 자리에 오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섬김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조그마한 권력만 주어지면 섬김의 자리보다 다스림의 자리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가 아닙니다. 세상의 통치 원리입니다. 그렇게 하면 교회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들게 되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합니다. 자신의 명분이 뚜렷하고 의를 나타낸다고 하지만 바리새인처럼 그것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바른 길로 가는 것은 중요하지만 좋은 나쁨을 절대화하여 다른 사람을 정죄하며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족한 부분을 내가 섬겨 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의 제 자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 강조하기를 예수 님 안에서 행하고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으라고 합니다. 돈에 뿌리를 박고, 명예에 뿌리를 박고, 세상 권력에 뿌리를 박고, 자아 성취에 뿌리를 박고, 쾌락에 뿌리를 박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골로새서를 보면(골 1:2; 골 1:4; 골 1:14; 골 1:17; 골 1:19: 골 1:28: 골 2:3; 골 2:9; 골 2:10; 골 2:11; 골 2:12; 골 3:18; 골 3:20; 골 4:7; 골 4:17) 15번이 나옵니다.
철학자 루소는 십대는 과자에 움직이고, 이십대는 연인에 움직이고, 삼십대는 쾌락에 움직이고, 사십대는 야심에 움직이고, 오십대는 탐욕에 움직이고 오십대가 넘으면 명예에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자리는 주님 안입니다. 성도의 자리도 주님 안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있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성령의 충만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죄로 죽은 우리가 생명으로 일어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행동의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자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승리의 비결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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