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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6:1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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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
대우를 받으면 나눔으로 꽃을 피워야 합니다.
누가복음16:19-31
우리가 매년 최빈국 아이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만만만 생명운동을 통해 한 달에 일인당 만원씩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가정은 한 아이를 후원하는 가정도 있고, 어떤 가정은 아이들에게도 1명씩 후원하게 하여 가족 식구만큼 후원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새해가 되어 여러 나라 여러 곳에서 감사 편지가 왔습니다. 그 중에 몇 개를 소개하겠습니다. 탄자니아에서 온 편지입니다.
“새해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어찌나 사랑스러운지요. 만만만 생명운동에서 후원해주신 덕분에 아이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면서 밝게 잘 자라고 있어 기쁨을 느낍니다...5학년 남자 아이 중, 마틴 하미시라는 아이가 한동안 학교를 나오지 않아 알아보았더니 부모가 이혼을 하였더군요. 한창 방황하며 힘들어 했는데 만만만 생명운동에서 계속하여 후원해주신 덕분에 맘 잡고 지금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교에도 잘 나오고 있습니다.
만원이라는 돈이 아이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만원을 가정에서 다 소비하여 중학교 들어갈 입학금이 없어 걱정하는 한 아이를 보고 저희가 학교 담당 선생님과 부모님들을 학교로 불러 저축하여 필요할 때 아이들 교육비로 썼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는데 선생님과 부모님들이 흔쾌히 수긍을 해주어서 자기들 스스로 아이 이름으로 구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필요할 때 그 돈으로 학교 교복도 사고 스웨터, 신발, 가방, 학용품 등을 삽니다...
탄자니아에서 온 한 아이의 편지입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안녕하신지요. 저와 저의 가족은 지금까지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은혜를 더해 주기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도움으로 학비와 학교 옷, 학용품까지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도와주시는 분에게 복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미시 올림-”
네팔에서 온 편지입니다.
“신년에도 만만만 생명운동을 위해 수고하시는 목사님의 사역과 가정위에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믿고 후원하는 학생들이 시간이 가면서 대학생이 되고 몇명은 졸업해 직장인이 되고 값진 사역을 통해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목사님과 후원자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 네팔 상황이 점점 나빠지는 것은 고려해 주시기를 바랄뿐입니다. 하루 전기가 10시간 이상 단전되고 기름과 가스파동으로 배급제로 며칠을 기다려야 하고 물가와 급등하는 인플레이션으로 점점 들어가는 비용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올 해 첫 주일에는 제가 기준이 높아지면 수준이 높아진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수준 높은 인생을 살려면 먼저 삶의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주일에는 수준이 높아지면 대우가 좋아진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신분의 수준, 도덕의 수준, 사역의 수준이 높아지면 세상에서 좋은 대우를 받게 됩니다. 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좋은 대우를 받으면 홀로 그 대우를 누리지 말고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과 나눔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목을 “대우를 받으면 나눔으로 꽃을 피워야 합니다.”라고 잡았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당시 사람들에게 좋은 대우를 받고 사는 한 부자와 지극히 천대받는 한 노숙자가 소개 되어 있습니다. 19절에 나와 있는 부자의 삶을 보십시오. 본문의 부자는 특권층으로 자신의 엘리트 신분에 걸맞은 고급 옷인 자색 옷과 지중해를 통해 이스라엘로 수입되었다는 이집트 산 아마포인 고운 베옷을 입었습니다. 부자는 호화로운 연회를 특별한 잔칫날에만 즐긴 것이 아니라 “날마다” 즐겼습니다. 최고 상류층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을 때입니다. 예레미아스는 그의 책 『예수시대의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의 경제적 계층을 부자, 중간계층, 빈자의 3부류로 나누고 있는데, 당시 사회에서 부유한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친 로마적 대제사장 일가, 통치 지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헤롯 집안과 로마가 세운 신 귀족계층의 사람들, 세리장들과 부유한 상인들, 그리고 유대 귀족의 후손들이었다고 합니다. 1세기말의 그리스-로마세계는 거의 모든 도사나 지방에서 약 1%의 소수가 그 지역의 재산 전부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당시 부자들은 오늘날 재벌과는 달리 사업 관리자들을 두어 모든 것을 경영하게 하였고 본인들은 취미생활과 향락을 즐기며 살았답니다. 풍요로운 삶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며 자신의 사치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생전 좋은 대우를 받던 사람이 어느 날 죽었습니다. 그런데 내세에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음부에서 고통 중에 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불꽃 가운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세 번이나 아브라함에게 요청하지만 다 거절당하였습니다. 살았을 때는 상상할 수 없는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이 땅에서 수준 높은 삶을 통해 대우을 받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교훈받기를 원합니다.
1. 우리는 내가 받는 대우로 인하여 이 땅에 살면서 영원한 천국 가는 구원 얻을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19-23)
세상에서 권력을 얻고, 부자가 되고, 명예를 얻으면 사람들이 대우를 해 줍니다. 그러면 이 땅이 전부라고 착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성한 자아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 대우가 진정한 자아에까지 나누어지지 못합니다. 현실이 전부고, 지금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지금만 즐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대우가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차라리 권력이 없었으면, 차라리 부가 없었으면, 차라리 미모가 없었으면, 차라리 지식이 없었으면, 차라리 명예가 없었으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데, 나의 진면목을 보는데, 인생의 참 의미를 발견하는데 진지했을 텐데 자신에게 주어진 대우들이 인생의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 믿고 구원받는 구원의 기회를 상실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 성경에 나오는 부자가 그런 사람입니다. 이 부자는 이 땅에서는 얻을 것을 다 얻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건강합니다. 호화로운 집이 있습니다. 좋은 옷이 있습니다. 날마다 같이 잔치하며 즐길 수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마지막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내세에서 구원은 받지 못했습니다. 죽음 이후에 지옥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후회합니다. 그러나 이미 끝이 난 것입니다. 오늘 이 부자는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천국과 지옥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자격만으로도 죽은 후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천국 가는 것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아니냐가 기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무엇이라고 울부짖고 있습니까? 24절 아브라함을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5절을 보십시오.'얘'라고 합니다. 얘는 "테크논"으로 "아들아"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지옥에 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진정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겠습니까? 세례 요한의 말씀의 들어보십시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7-9)"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줍니까? 요1:9절 이하를 보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나사로는 어떻습니까? 나사로의 어떤 공로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나라로의 이름이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라는 그 뜻으로 나사로가 어떻게 천국 간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순전히 은혜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천국가고 부자기 때문에 지옥 간 것 아닙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인데 예수 믿고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오늘날 말하면 국회의원인데 예수님을 믿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부자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우받는 기회가 천국 가는 기회를 빼앗기는 도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바로 예수님께서 오셨는데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고 기회를 잃은 것입니다. 은혜의 단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은혜의 단비를 맞지 않습니다. 지금 자신이 대우받고 있는 권력의 우산을 씁니다. 물질의 우산을 씁니다. 쾌락의 우산을 씁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건강이, 명예가, 부가, 인기가 주님 만나는 거침돌이 된다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가난, 질병, 고통이 주님 만날 기회가 된다면 오히려 그것이 복입니다. 신앙생활 잘 하다가도 조금 세상적인 대우가 좋아지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단 직원일 때는 교회에 잘 나오다가도 이사가 되면 교회를 멀리합니다. 가난할 때는 교회에 잘 나오다가도 조금 부해져 사장이 되면 대우받는 자리에 머물기 위해 교회를 등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튼 링크 레터는 미국의 천재입니다. 박사 학위 하나를 받는 것도 어려운데 그는 박사 학위가 열 개나 되었습니다. 박사 학위 열 개를 취득한 그는 미국 정부의 고문으로 세계 관광 명소인 디즈니랜드의 모든 설계를 계획한 분입니다. 성공자, 실력자가 된 그는 어릴 때부터 믿던 예수님을 버리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우쭐해 했습니다. 대통령도 그를 귀히 여기고, 세상 사람들이 그를 성공한 사람으로 대해 주니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무너지고 맙니다. 자기가 생명처럼 사랑하는 14세 된 딸이 가출하더니,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살게요.' 그런데 며칠 후에 딸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딸의 시체를 안고 그는 후회했습니다. '내가 교회만 나갔어도, 내 딸을 데리고 교회만 나갔어도 내 딸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내가 하나님을 버리고 교회를 떠났더니, 내 생명 같은 내 딸이 이렇게 자살했구나. 내 인생이 무너지고 말았구나.' 그는 충격을 받고 교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회개하고 겸손해지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딸이 없어도 전보다 더 기쁘고 만족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대가 받는 대우가 천국 가는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2. 우리는 내가 받는 대우를 나눔으로 현세를 상급 받을 기회로 살아야 합니다.(24-26)
부자를 보십시오. 자신은 호화로운 집에서 날마다 잔치를 하면서 자신의 집 앞에 버려진 노숙자는 외면합니다. 20절 보십시오. 대문 앞에 있게 합니다. 쫓아내지 않는 것은 그래도 양심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스러기라도 먹게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새 옷을 입혀 줄 수 있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를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거지 나사로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이 무관심은 상대를 소극적으로 멸시하는 일입니다. 약4:17의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으면 죄니라"는 말씀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거지 나사로를 자기 과시용으로 이용했습니다. 쫓아 내지 않고 대문에 놓아두고 부스러기를 주는 위선적 구제로 자신의 선행을 선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을 향하여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14절 보십시오. 돈만 좋아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진리를 비웃는 사람입니다. 냉소주의 자입니다. 진지한 삶을 비웃은 사람입니다. 내세를 비웃는 사람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옳다는 것입니다. 높임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칭찬듣기를 좋아합니다. 명예를 좋아합니다. 지옥에 가서도 착각하고 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 권력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사로를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 줄 아는 것입니다. 물 한 방울 찍어 자신의 타는 목마름을 축여 달라고 합니다. 살았을 때 자비를 베풀지 않은 사람이 죽어 나사로를 통한 자비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끝났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불꽃 가운데 괴로워 할 뿐입니다. 지옥과 천국의 실제성을 믿지 안하는 것입니다. 진실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자의 마음속에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 잔치에 참여할 만한 자격 있는 친구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저 쌓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모두 자기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병들고 굶주린 나사로는 그에게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부자에게 돈이 많은 게 죄가 아닙니다. 그것을 나눔을 실현하여 상급받을 기회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나사로는 누구일까요? 예수님 말씀합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42)"
예수님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그러나 영영한 불에 들어간 사람들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처럼 주변의 나사로를 보살펴야 합니다. 내 주변에 있는 나사로가 누구입니까? 내 주변에 있는 소자가 누구입니까?
내가 받고 있는 대우 주변에 있는 나사로와 나누어야 합니다. 내가 받는 대우 주변의 소자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 대부분 이 땅에서도 대우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20억이 넘습니다. 식수 시설이 없어 제대로 물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10억이 넘습니다. 하루 천 원 미만으로 살고 있는 12억 명이나 됩니다.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어 영양실조로 고통 받는 사람이 8억 명이나 됩니다. 이번 주를 넘기지 못할 백만 명의 환자들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 냉장고가 없는 사람이 75%나 됩니다. 배우지 못하여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자가 아직도 20억이 있습니다. 1억명의 노숙자들이 있습니다. 최부국 평균소득이 최빈국 5개국의 74배나 됩니다. 선진국 부유층 20%가 전 세계 소득의 8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우받는 부유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나라만 해도 매일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가 4톤 트럭 6천 대분이라고 합니다. 술값으로만 14조가 들어가고, 성매매 비용이 24조나 된다고 합니다. 애완견을 기르는데 2조원을 아낌없이 쓴다고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나누면 세상은 달라집니다. 세계 600만개 교회가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20억이 넘습니다. 목회자들이 5백 15만 1천 명이나 됩니다. 데이빗 배럿에 의하면 그리스도인 52%는 풍족하게 살고 있고 33%는 비교적 부유하며, 13%만 절대적으로 빈곤하다고 말합니다. 내게 주신 조건 나만 대우받고 살라고 주신 것 아닙니다. 나눔으로 꽃을 피워야 합니다. 나의 학식, 나에게 주어진 건강, 나에게 주어진 부, 나에게 주어진 명예, 나에게 주어진 입술 들고 갈려고 하지 말고 나사로를 위해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상급이 하늘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죽어서 가지고 갈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나사로를 위해 사용하면 천국 온라인으로 입금되는 것입니다. 나눔으로 가난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 11:24-25)”
신문에서 시각장애인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장애위원(차관보급)을 지낸 69세된 강영우 박사의 아름다운 기부를 보았습니다. 병원에서 췌장암 진단을 받고 한 달여밖에 살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답니다.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 받은 삶을 살아 온 제가 이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허락 받아 감사하다."며 편지를 지인들에게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기부를 통해 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했습니다. 국제 로터리 재단을 통해 후원을 받고 공부를 했는데 국제로터리재단 평화센터의 평화장학금(Peace fellowship)으로 25만 달러를 기부하였습니다. 이 날 손버그 전 주지사는 축사에서 "강 박사는 신체적 장애는 장애가 아니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준 분"이라며 "기부 소식을 듣고 정말 가슴이 따뜻해지고 뭉클했다"고 말했답니다. 이 분은 1975년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우산을 쓰고 지팡이를 짚은 채 학교로 향하던 낯선 한국인 시각장애인 유학생인 강영우 학생을 길모퉁이에 차를 세워 그를 태워준 연방검사장이었답니다. 그 후 36년간 우정을 이어 왔답니다. 그 날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통령의 선임법률고문으로 근무하는 강 박사의 둘째 아들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40년 전 아버지를 위한 그 장학금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 가족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작지만 이를 갚을 기회를 갖게 돼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나눔을 실천하는 것 참으로 가치 있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지만 나누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한 구좌 한 달 천원 장학기금을 오랫동안 해 오고 있습니다. 열린장학 재단을 만들어 인재를 양육하기 위해 하고 있습니다. 작은 정성이지만 시간 지나면 모세의 지팡이처럼 쓰임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분유나눔을 하는 한 전도사님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1000원의 기적'이라는 기사였습니다. 민병우 전도사의 가정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내와 22개월 아들과 함께 아이에게 선물을 사 주기 위해 매일 1000원을 저금했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선물을 사주려다 문득 생각하기를 '이 어린아이에게 과연 선물이 필요할까, 아이가 선물이 무엇인지 알기나 알까'라는 생각이 스쳤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마침 비어있는 분유통이 눈에 띄어 '아이에게 선물을 사주는 대신 하루에 1000원씩을 모으자'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답니다.가난하여 분유마저도 먹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돈을 기부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하여 1년도 채 되지 않아 후원자가 40명에 달했답니다. 작은 기부일지라도 기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적을 일으킵니다. 신문에서 예비부부들이 가장 닮고 싶은 부부 1위로 가수 션과 배우 정혜영 부부를 뽑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결혼식 축의금을 해외에 교회를 짓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통큰 기부로 잘 알려진 이들은 1년간 매일 만원씩 모은 365만원을 들고 결혼기념일 마다 '밥퍼' 차량을 이용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무료급식 봉사를 한다고 합니다. 하기로 유명합니다. 결혼 7주년을 맞아 일곱 번의 '밥퍼' 봉사활동을 실천했다고 합니다. 세상은 나눔을 통해서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나눔은 작은 것이지만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예수님은 나누기를 망설이는 자들에게 말씀합니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18:29-30)” 너무나 내 가족, 내것, 내 인생만 생각하다 내 곁에 있는 나사로를 외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우리는 내가 받는 대우를 현세에서 생명을 구원하는 생명 나눔에 쓰임 받아야 합니다(27-31)
나눔은 물질을 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시간을 나누는 것도 중요합니다. 재능을 나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내게 있는 복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생명 나눔입니다.
이 땅에서 대우만 받고 살던 부자가 죽으니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옥의 형벌이라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자신에게 다가 온 것입니다. 아직 죽지 않은 다섯 형제들을 생각하니 딱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부탁합니다. 나사로를 자신의 형제들에게 보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29, 31절을 보십시오. 죽은 사람이 살아 나 가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되지만 너의 임무는 아무리 안타까워도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구원하는데 쓰임받을 부유함과 권력, 명예 각종 좋은 것들을 주었는데 그것 가지고 자신의 쾌락을 누리는데 사용하다 인생 종을 친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대우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것만큼 고귀한 것이 없습니다.
대우받는 나의 지위가, 대우받는 나의 직책이, 대우받는 나의 직업이, 대우받는 나의 미모가, 대우받는 나의 권력이, 대우받는 나의 부가, 대우받는 나의 재능이, 대우받는 나의 지식이, 대우받는 나의 건강이, 대우받는 나의 가족이, 대우받는 나의 명예가, 대우받는 나의 지식이 얼마나 복음을 나누는 좋은 도구입니까?
한국 최초의 복음선교사 언더우드 한 사람이 대우받는 자신의 모든 것으로 한국 땅에 와 복음을 전하자 얼마나 한국 땅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했습니까? 고아원에서 어린 김규식을 가르쳤습니다. 아버지는 역적으로 몰려 귀양을 가고 어머니는 죽었습니다. 아이가 몹시 아픈데도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았습니다. 언더우드는 분유와 약을 들고서 아이를 찾아가 보니 너무 굶주려서 먹을 것을 달라고 울부짖으며 벽지를 뜯어내 삼키려고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언더우드는 이 아이를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다른 선교사와 의사들은 반대했답니다. 이 아이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모든 책임을 언더우드가 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언더우드는 아이를 데려왔고 극진히 간호해 기적적으로 살아났답니다. 김규식은 빠른 속도로 영어를 배웠고 언더우드는 김규식에게 유학의 길을 열어주어 프린스턴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받고 언더우드와 함께 민족과 복음을 위하여 일하였습니다. 복음 나눔은 한 생명을 살릴 뿐 아니라 민족을 변화시키며 세상을 진정 아름답게 만듭니다. 언더우드도 당시 평범한 사람들처럼 뉴욕대학교를 나와 대우받으며 살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받고 있는 대우는 복음을 나누는데 생명을 살리는데 사용하였습니다. 다시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을 하고 한국에 들어와 벽지전도부터 시작하여 서울 새문안교회를 설립했으며, 기독교서회를 창설하였습니다. 한영사전, 영한사전를 만들고 YMCA를 조직하였습니다.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발전시키며 한국 개화기에 종교·정치·교육·문화 등 여러 분야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초석을 세웠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은 사람들입니다. 올 한 해 말씀으로 기준을 높여 경제적 수준도, 사회적 수준도 신앙적 수준도 높이는 한 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고지를 점령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분의 수준, 도덕의 수준, 사역의 수준이 높아져 좀더 예수 믿는 사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내지 말고, 그 좋은 대우가 천국 가는 거침돌이 되지 말게 하고 물질과 시간, 재능을 나눔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복음을 나눔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쓰임 받아야 하겠습니다.
무덤은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단지 정거장이며, 또 다른 세상을 향한 출발역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 땅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뱃속의 아기는 그것밖에 모릅니다. 세상을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보면 새로운 세계가 있은 것을 깨닫습니다. 뱃속에서는 전혀 할 수 없는 자전거도 타고 배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사과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는 새로운 세계가 있습니다. 똑같은 달걀이지만 무정란은 닭이 품으면 썩지만 유정란은 병아리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려면 지금 내가 받는 대우 그것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받는 대우 나눔으로 천국에서 상급받는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받는 대우를 통해 생명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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