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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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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내용일지라도 의사 전달이 어떤 틀(frame) 안에서 전달되느냐에 따라 전달받은 사람의 태도나 행동은 달라집니다. 똑같은 내용일지라도 제시되는 정보의 배열에 따라 효과는 차이가 납니다. 45%의 생존율을 보이는 새로운 암 치료제가 개발되어 그것을 소개할 때 “새로운 암 치료제는 45%의 생존율을 보인다”고 선전을 하면 듣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하겠지만 “새로운 암 치료제는 55%의 사망률을 보인다”라고 홍보하면 듣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평가를 할 것입니다. 살코기 80%, 기름 20%인 햄을 소개할 때 소비자는 ‘살코기 80% 햄’으로 소개하는 제품을 ‘기름 20% 햄’으로 소개하는 제품보다 선호할 것입니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어떻게 표현하고 포장하느냐에 따라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달라집니다.
이렇게 정보의 배열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것을 구조화 효과(Framing effect) 혹은 액자 효과라고 합니다. 2002년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카네만(Kahneman)과 트버스키(Tversky)가 주장한 이론입니다. 어떤 사실에 대하여 의사 전달을 어떤 틀 안에서 하느냐에 따라 전달받은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이 부정적일 수도 있고 긍정적일 수도 있다는 이론입니다.
신앙인에 대한 평가와 교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즈음 기독교인의 감소에 대하여 여러 가지 원인 진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통계청이 2005년 인구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10년 전과 비교할 때 불교 신자는 1072만 6천명으로 13.9%, 천주교는 295만에서 516만 6천으로 74.4%가 각각 증가한 반면 개신교는 876만에서 861만명으로 1.6%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의 대외 이미지 실추’ ‘교회의 폐쇄성’ ‘교회의 도덕성 결여’ ‘교회의 시대 정신에 부적응’ 등의 원인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주교가 성장한데는 ‘민주화와 인권증진 과정에서 카톨릭의 긍정적 역할, 사회봉사와 사회복지 분야에서의 헌신, 조상 제사와 장례 예식에 대한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자세’ 등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평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언론에 의해 비쳐진 기독교와 천주교의 이미지는 그렇게 비쳐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학자들이 모여 감소와 증가 원인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 평가된 것이 다시 언론에 공개됨으로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와 천주교의 이미지를 더 고착화시켜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에 대한 평가도 액자 효과에 의한 것일 수 있습니다. 포장지를 보고 물건을 평가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카톨릭이 민주화에 기여하여 사람들이 성당에 더 모여들었다고 평가하지만 실상은 민주화에 이바지한 것은 양으로나 질로 개신교의 역할이 그 어느 종교보다 지대합니다. 현대사의 민주화에 있어 기독교를 제외해 놓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천주교가 사회 봉사로 이미지가 높아 천주교인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사회 봉사도 개신교가 단연 우세합니다. 비근한 예로 기독교계의 대북 지원금은 2,700억원으로 전체 대비 54%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 적십자사를 제외한 민간 33개 단체 총액의 77%에 해당됩니다. 사회 봉사를 위한 종교 법인으로 등록된 단체도 2002년 종교법인 407개 중 기독교가 194개로 전체 47.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불교는 92개 카톨릭은 74개입니다. 천주교가 기독교보다 민주화에 공헌하고 사회 봉사를 많이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언론 보도에 의한 액자 효과 때문입니다. 비신앙인은 기독교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언론에 보도되는 일부 목사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곧 기독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명동성당에서 데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언론에 비춰질 때마다 사람들의 의식엔 ‘천주교=민주화’라는 등식으로 각인받게 됩니다.
같은 사실이라도 어떻게 전달되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고 어느 부분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보고 듣는 사람의 의식은 바꾸어집니다. 개신교는 표현하는 종교이고 천주교는 묵상하는 종교이어서 사람들이 천주교를 선호하고 교회는 세속스럽고 성당은 성스러워 사람들이 천주교를 선호한다고 하지만 결국 어떤 액자에 넣느냐는 문제입니다. 묵상과 표현, 성스러움과 세속스러움은 개신교나 천주교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전달자가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1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의 사장이 회사 구조조정을 위해 100명의 직원을 감축할 때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900명이나 남겨 놓았다”고 설명하는 것과 “한 식구에 4명씩의 식구를 거느린 가장 100명을 감축했다”고 설명하는 것은 사실을 같지만 표현 방법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느낌과 평가를 하게 만듭니다. 지도자의 탈권위적 통치방식을 ‘민주적 리더십’이라고 전달할 수도 있고 ‘지도자답지 않게 가볍고 불안하다’라고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정보 전달 매체의 태도에 따라 정보 소비자는 자신도 모르게 정보 전달 방식이 만들어 놓은 액자에 갇히게 됩니다. 똑같은 사진을 어떤 액자에 넣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처럼 사실은 같아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평가는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삶에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합니다.
액자 효과를 만들어 내는 대중 매체는 가치 중립적일 수가 없습니다. 신앙인은 보다 긍정적인 액자 효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개인 한 사람의 부정적인 모습이 액자에 담기면 기독교 전체에 대한 부정적 효과를 주기 때문입니다●
액자 효과와 기독교/섬기는 언어/김필곤 목사/열린교회/2006.12.17
이렇게 정보의 배열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것을 구조화 효과(Framing effect) 혹은 액자 효과라고 합니다. 2002년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카네만(Kahneman)과 트버스키(Tversky)가 주장한 이론입니다. 어떤 사실에 대하여 의사 전달을 어떤 틀 안에서 하느냐에 따라 전달받은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이 부정적일 수도 있고 긍정적일 수도 있다는 이론입니다.
신앙인에 대한 평가와 교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즈음 기독교인의 감소에 대하여 여러 가지 원인 진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통계청이 2005년 인구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10년 전과 비교할 때 불교 신자는 1072만 6천명으로 13.9%, 천주교는 295만에서 516만 6천으로 74.4%가 각각 증가한 반면 개신교는 876만에서 861만명으로 1.6%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의 대외 이미지 실추’ ‘교회의 폐쇄성’ ‘교회의 도덕성 결여’ ‘교회의 시대 정신에 부적응’ 등의 원인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주교가 성장한데는 ‘민주화와 인권증진 과정에서 카톨릭의 긍정적 역할, 사회봉사와 사회복지 분야에서의 헌신, 조상 제사와 장례 예식에 대한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자세’ 등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평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언론에 의해 비쳐진 기독교와 천주교의 이미지는 그렇게 비쳐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학자들이 모여 감소와 증가 원인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 평가된 것이 다시 언론에 공개됨으로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와 천주교의 이미지를 더 고착화시켜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에 대한 평가도 액자 효과에 의한 것일 수 있습니다. 포장지를 보고 물건을 평가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카톨릭이 민주화에 기여하여 사람들이 성당에 더 모여들었다고 평가하지만 실상은 민주화에 이바지한 것은 양으로나 질로 개신교의 역할이 그 어느 종교보다 지대합니다. 현대사의 민주화에 있어 기독교를 제외해 놓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천주교가 사회 봉사로 이미지가 높아 천주교인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사회 봉사도 개신교가 단연 우세합니다. 비근한 예로 기독교계의 대북 지원금은 2,700억원으로 전체 대비 54%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 적십자사를 제외한 민간 33개 단체 총액의 77%에 해당됩니다. 사회 봉사를 위한 종교 법인으로 등록된 단체도 2002년 종교법인 407개 중 기독교가 194개로 전체 47.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불교는 92개 카톨릭은 74개입니다. 천주교가 기독교보다 민주화에 공헌하고 사회 봉사를 많이 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언론 보도에 의한 액자 효과 때문입니다. 비신앙인은 기독교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언론에 보도되는 일부 목사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곧 기독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명동성당에서 데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언론에 비춰질 때마다 사람들의 의식엔 ‘천주교=민주화’라는 등식으로 각인받게 됩니다.
같은 사실이라도 어떻게 전달되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고 어느 부분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보고 듣는 사람의 의식은 바꾸어집니다. 개신교는 표현하는 종교이고 천주교는 묵상하는 종교이어서 사람들이 천주교를 선호하고 교회는 세속스럽고 성당은 성스러워 사람들이 천주교를 선호한다고 하지만 결국 어떤 액자에 넣느냐는 문제입니다. 묵상과 표현, 성스러움과 세속스러움은 개신교나 천주교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전달자가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1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의 사장이 회사 구조조정을 위해 100명의 직원을 감축할 때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900명이나 남겨 놓았다”고 설명하는 것과 “한 식구에 4명씩의 식구를 거느린 가장 100명을 감축했다”고 설명하는 것은 사실을 같지만 표현 방법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느낌과 평가를 하게 만듭니다. 지도자의 탈권위적 통치방식을 ‘민주적 리더십’이라고 전달할 수도 있고 ‘지도자답지 않게 가볍고 불안하다’라고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정보 전달 매체의 태도에 따라 정보 소비자는 자신도 모르게 정보 전달 방식이 만들어 놓은 액자에 갇히게 됩니다. 똑같은 사진을 어떤 액자에 넣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처럼 사실은 같아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평가는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삶에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합니다.
액자 효과를 만들어 내는 대중 매체는 가치 중립적일 수가 없습니다. 신앙인은 보다 긍정적인 액자 효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개인 한 사람의 부정적인 모습이 액자에 담기면 기독교 전체에 대한 부정적 효과를 주기 때문입니다●
액자 효과와 기독교/섬기는 언어/김필곤 목사/열린교회/200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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