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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농부

누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213 추천 수 0 2012.03.08 21: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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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8:5-8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어리석은 농부
눅8:5-8

2009.8.2

어느새 가을입니다. 감자를 캐고 옥수수를 찌고 하늘 높이 잠자리가 나는 것을 보면 틀림없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벼도 이삭을 패기 시작할 겁니다. 금년은 일기가 그래서 그런지 결실이 지난해보다 조금 늦다고는 말씀들 하시지만, 그러하더라도 열매가 익어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농사꾼은 풍년을 소망하면서 농사를 짓습니다. 무릇 풍년이란 그 어원이 콩 농사에서 왔습니다. 풍년이라고 쓰는 한자의 ‘풍년 豐’자는 바로 콩이 매 깍지마다 터질 듯이 잘 여물어 산처럼 수확한다는 뜻입니다. 그 콩을 신에게 바치는 일에서 ‘오를 登’자도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농사란 이렇듯 많은 결실을 기대하고 하는 농부의 곡진한 수고입니다. 그러면 먼저 농부는 씨를 뿌릴 때 어떻게 합니까? 그 밭이 좋은 밭인지 나쁜 밭인지 살펴보지도 않고, 굳은 땅인지 갈아엎어 부드러운 땅인지도 따지지 않고, 요즘 광고 카피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아무렇게나 마구 뿌립니까? 내 밭인지 남의 밭인지 상관없이 씨를 뿌립니까? 그런 농부가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 본문을 깊은 곳에서 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멍청한 농부 한 사람을 보는 셈입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도대체 농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이렇게는 씨를 뿌릴 수 없습니다. 농사꾼에게 씨는 또 얼마나 귀중한 것입니까? 옛날, 옥수수를 심을 때 씨를 넣는 일은 애들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괭이로 밭두둑에 폭폭 자국을 내며 앞서 나가는 일 정도를 시키고 씨앗은 경험이 많은 어른들이 꼭 두 알이거나 세알을 넣었습니다. 그만큼 씨 뿌리는 일이 중요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나오는 농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마구 뿌리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 사람을 농부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농부는 이러지 않습니다. 아니 이럴 수 없습니다. 여기 나오는 이 농부를 볼라치면 마치 비행기를 타고 아무렇게나 씨를 뿌려대는 것과 같은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직접 손에 씨를 들고 땅에 심는 농부는 아무도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또 씨가 열매를 맺어 겨우 30배, 60배, 120배의 결실뿐이라면 과거에나 지금이나 그 농부는 망하는 농사를 짓겠다는 것입니다. 좁쌀을 보면 수 만 배, 수 십 만 배의 결실을 거둡니다. 성경에 흔히 등장하는 겨자씨라거나, 참깨 들깨라면 더 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게 농사꾼의 마음이고 또 농사입니다. 그러니 여태껏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던 얕은 시각을 수정해야 하겠지요. 지금까지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해서 통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형태’에 대해서 말하거나, ‘누구든 좋은 옥토가 되어야 한다’는 신앙적인 교훈으로 듣거나, ‘부지런히 아무데나 주의 말씀을 전하라’는 식으로 들어오고 이해하여 왔습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자신은 ‘옥토’와 같은 존재 혹은 ‘부지런히 씨를 뿌리는 착한 농부’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언동에서 자주 자신이 하신 일에 대해서 또는 말씀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 게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하시던 것을 기억합니다(마13:10-11, 막4:11, 눅8:10). 그때마다 우리는 의아해하지 않았습니까? 왜 그러실까? 요즘 사람들 생각대로 한다면 되레 선전하고 퍼뜨려야 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왜 [비밀모드]의 말씀들을 하시게 되었는지는 지난 새벽 특별기도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하튼, 성서 곳곳에 숨겨진 이런 예수님의 언동이 오늘 본문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천국 복음의 심오한 뜻, 곧 천국 비밀을 조심성 없이 함부로 아무 데나 뿌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날 교회가 한다는 ‘전도’라는 게 얼마나 인간 본위의, 숨겨진 야망의 은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진주를 개에게 던지지 말라’는 말씀도 이해하지 못하는 ‘세속적인 성공주의자들의 전략’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렇게나 뿌려대는 그것을 자기가 짓는 영적인 농사라고 친다면 그는 금방 망하는 농사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때문에 진리가 교회 안에서와 성도들의 삶 속에서 고갈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누이 말씀합니다. “천국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그 비밀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길이나 돌 짝 밭이나, 가시덤불 같은 사람, 마음이 닫히고 받아들일 태도가 없는 사람, 들을 귀가 없는 사람, 일방적으로 주어진 교리나 선입견으로 꽉 막힌 사람, 일상사에 정신이 나가 영적인 것에 관심을 쏟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주어 봐도 헛일에 불과하거나 심지어는 역효과까지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사는 것을 ‘주의 일’이라고 한다면 그는 실로 자기 속에 갇혀 있는 ‘쓸모없는 땅’과 같은 사람이라는 선언에 해당합니다.  

농부들은 봄에 씨를 뿌릴 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농부들처럼 그렇게 씨 뿌리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옥토에만 뿌렸습니다. 옥토는 그 씨를 받아 발아 시키고 열매를 맺기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씨는 이런 곳을 필요로 하고 이런 땅에 뿌려지는 것을 기대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씨앗을 뿌리는 농부를 위한 일입니다. 복음은 이런 것입니다. 이렇게 비밀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옥토가 씨를 받아 잘 키워서 농부를 위해 많은 열매를 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걸 그 씨 종자가 가져갑니까? 아니면 옥토가 가져갑니까? 아닙니다. 씨나 옥토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습니다. 다 내놓습니다. 결국은 그 결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가 주장하는 이론들은 대게 그 자신이 가져갑니다. 그들이 뿌린 씨앗은 결국 그를 위한 일이 되고 맙니다. 이게 오늘날 교회가 양극화되는 폐단 중에 하나가 아닙니까? 이렇게 천국의 씨를 가려서 뿌려 열매를 거둘 때 비로소 ‘모든 사람을 구하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복음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의 첫 번 째 교훈은 ‘똑똑한 농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릴 땅에 씨를 뿌릴 줄 아는 농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예수님이 하신 언동을 통해 길어 올릴 두 번 째 교훈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더 자세히 말해 본다면, ‘씨’는 각각의 사람들 속에 있는 ‘하나님’ 또는 ‘신성’입니다.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그 속에 그분의 호흡을 생기를 넣었다’던 그것 말입니다. 중세 시대의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자들은 우리 속에 있는 이 ‘씨앗’에 집중했습니다. 사람들 누구에게나 이런 ‘하나님의 일부’, ‘로고스’, ‘그리스도’, ‘신의 불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지적이고 영적인 가능성에 따라 그 씨앗이 지닌 가능성도 발아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을 수 있고, 열린 마음으로 잘 받아들여 발아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성이 어떻게 사람의 토양에 따라 ‘있다’‘없다’할 수 있겠냐는 물음도 있었지만 그들은 생각하길, ‘발아하지 못한 씨는 있으나 마나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는 말은 가능성을 가지고 이 땅에 때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든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 가능성의 기회가 은혜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유를 말씀하실 때 그것을 궁금히 여긴 제자들의 질문에 응대하신 예수님의 대답 속에도 들어 있습니다.

이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은 모두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마치 가룟 유다에게 지속적으로 기회를 주셨던 주님이셨지만 그는 끝내 그 스스로 그 가능성을 버렸습니다. 옥토가 되기를 포기 했을 때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우리가 외우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에게 돌 짝 밭은 무엇입니까? 가시덤불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길가는 또 어떤 경우인가요? 그것은 편견과 무지, 자기 경험을 주장하는 것과 교만, 된 줄로 아는 착각과 아는 줄로 아는 허무, 이런 것들을 아우르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이토록 오래 진리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우리 속에 하나님의 거룩한 씨앗이 깃들어 있는데도 발아하지 못한 채 궁핍한 영적인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뭐가 궁핍한 것입니까? 아직도 뭔가 모자라서 불평과 비난과 모함이 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신성이 싹터  많은 열매를 맺어 나눠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가난은 자기를 모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농부의 비유는 이것입니다.
허접하게 돌아다니며 아무 곳에나 씨를 뿌려대는 어리석은 농부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자기 자신 속으로 들어가 자기를 알고 쓰레기들을 내다버리라는 것입니다. 굳은 자신의 마음을 갈아엎으라는 것입니다. 가시떨기들을 베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도가 죽기까지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그 선물을 싹틔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열매를 맺으면 비로소 많은 이들에게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렇게 해서 누룩처럼, 겨자씨가 자라듯 퍼져 나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진리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네 안에서 먼저 그 신성의 씨앗이 자라게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경작하는 농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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