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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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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
2009/11/08 추수감사주일 설교
우리가 꼭 해야 할 가을걷이
출3:6-9
모세는 3천2백 년 전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할 때 모세를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서는 모세를 인간적인 약점이 없는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점을 있는 그대로 상세하게 그리고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동족을 구하러 가라는 명령을 하실 때부터 모세는 뺍니다(출3:11, 4:1). 동족들을 이끌고 광야로 나갔을 때 여론이 나빠지자 노골적으로 하나님께 불평을 터뜨립니다(출5:22-23).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모세를 다독입니다. 기적을 보여주기도 하고, 내가 너하고 항상 함께 할 테니 그러지 말라고 하기도 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고 모세를 쓰시기 때문이지 모세는 그 자신이 그렇게 위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모세를 하나님과 연결된 직선적인 존재로만 이해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지도자,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십계명과 율법을 받아 전달한 예언자로만 보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위대하고 백성들은 상대적으로 불평이나 하는 찌질한 존재들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모세를 제대로 보려면, 그런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바알의 압제 아래서 신음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던 히브리 노예들, 그들의 조상들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하려 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 속에 나타내 보이려는 모세의 삼각관계로 보아야 합니다. 세 역할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직선적으로 하나님과 모세와의 관계를 이해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가 바로에게 나아갈 때 하나님이 그에게 세 번 나타나셔서(출3:6-9, 14-15, 6:3-8)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이 어떤 관계인지를 말하신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데, 그것은 첫 번째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 구절은 사두개파 사람들과 부활 논쟁을 할 때 예수님도 인용 한 적이 있습니다(막12:27).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숭배의 대상이 되는 과거의 존재가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역사 하시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숭배받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하시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보시고,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분이라는 겁니다.
이건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일하시는 결정적인 동기가 바로 고난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 때문이라는 겁니다. 오늘 우리의 언어로 말하자면, '내 아픔 때문에 그 큰 하나님이 하늘에서 이 땅에 오셔서 일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을 좀 더 확대해서 말해보자면, 하나님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라는 겁니다.
모세가 영웅적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죠. 어떤 영험하다는 목사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즉각적으로 움직이셔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셨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압제로부터 이끌어 내실 때 왜 그렇게 지리하게 하셨나 하는 겁니다.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아 가면서 칠전팔기로 싸워서 해방과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외부와 또는 내부와 싸워서 진정으로 자유와 해방을 얻기 이전에는 그들은 그들 스스로 분쟁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시지 않습니다. 그들 스스로 그들이 당한 억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때까지, 그들에게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때까지, 그래서 '때가 찰 때까지'(막1:15) 하나님은 기다리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사람들에게 기존의 인식과는 다르게 계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내 삶 속에서, 그 삶의 물질적 결과가 어떤 것인지 와는 무관하게 '나는 나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새롭게 인식하고 이해하고 있느냐'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지난 한 해 동안 뭐였냐? 하는 것을 꼭 거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거둬야 할 영적 낱알 가운데 하나입니다.
출6:2-3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기 이전에 자신을 새롭게 나타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전에는 전능한 하나님이었지만 '나는 주다'"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받기이전에는 그저 하나님이 '전능한 숭배자'였습니다. 엘 샤다이(EL shaddai) 였습니다. 그러나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 하나님은 그 자신을 '여호와'로 알려 주십니다. 그것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로써, 하나님의 진짜 이름을 말하는 게 아니고 그가 하시는 행동을 규정짓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묻자 하나님은 이름은 가르쳐 주지 않고 자신은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는 존재라고만 하는 겁니다. 그게 '여호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 생활을 하면서 항상 '전능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하나님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이 알아서 척척 또는 펑펑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스스로 있는 나'라고 하시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존의 하나님 이해와는 다르게 '스스로 있는 분'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게 된 것은,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부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구원의 행동을 하는 주체임을 고백하고 정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있는 나'라면 사람인 나는 어떤 존재일까 하고 물어야 했을 것이고, 바로 왕의 압제에서 그냥 징징대지만 말고 '스스로 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구나 하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 자유와 해방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도 아니고, 모세의 능력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그들이 그들 자신의 삶 속에서 체념하지 않고 부르짖는 것과, '전능하신 하나님'을 '스스로 서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새롭게 고백하고 주체적인 존재로 자신들의 삶에 개입시킴으로 일어난 결과인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새로운 인식과, 하나님의 구원 하시는 행동과 계시, 그리고 그 가운데 모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해를 사는 동안 삶을 통해 나는 나의 하나님을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냥 '전능하게 나를 도우시는'존재만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서도록 기다리시고, 문제를 만드시고, 사람을 보내시고, 어려움과 고난을 지어내시는 하나님인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이걸 추수하지 않으면 1년 동안의 신앙 농사, 기도 농사는 헛 지은 것입니다. 이것만은 꼭 거둬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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