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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사6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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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꿈은 이뤄집니다 (이사야 66장 1-9절)
< 꿈은 이루어집니다 >
1950년대 목사 아들로 태어난 한 미국 흑인청년이 인종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해 26세에 첫 박사학위를 따고 13년 동안 총 20개의 박사학위를 땄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가진 꿈 때문에 39세에 암살되었지만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꿈은 죽지 않고 계속 자라서 흑인의 권리가 크게 신장되었고 흑인 대통령까지 나왔고 그의 생일은 미국 국경일이 되었습니다. 그 청년이 바로 마틴 루터 킹입니다.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큰 꿈과 비전을 가지십시오. 개인의 꿈도 가지고 동시에 교회의 꿈도 가지십시오. “하나님! 저희 제단이 건강한 모델 교회가 되게 하소서! 마지막 때에 인물을 키워내는 더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저희 제단을 통해 30년 내에 3000개의 동역자 교회를 주시고 네트영어를 축복하셔서 물적 권세도 주시고 성경 전권 설교파일이 천년 영향력을 가진 문서가 되게 하소서!”
2008년, 이상한 한 무리가 우르르 등록했다가 많은 교인들을 포섭해서 얼마 후 우르르 나갔습니다. 그때 연로하신 권사님들 중심으로 남은 성도들을 강단에서 내려다보며 속으로는 울컥 했지만 울음을 보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은 아프지만 남은 분들과 함께 다시 교회를 멋지게 일으켜 한국 최고의 영향력 있는 교회를 만들게 하소서!”
그 뒤 꿈의 동면기간을 거치면서 하나님은 온라인 새벽기도, 네트영어, 미션퍼블릭 사역 등을 통해 내적으로 꿈과 비전을 크게 확대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서서히 동면이 깨는 조짐이 보이고 무엇보다도 각 성도의 마음에 거대한 꿈이 자라는 것을 느낍니다. 사실 그것이 진짜입니다. 한 사람이 큰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성도 한 명이 얼마나 교회 분위기를 크게 바꿉니까? 그런 ‘한 사람’들이 생기면서 지금은 어느 때보다 목회가 행복하고 동시에 곧 다가올 축복을 느낍니다. 한 사람의 힘이 그토록 큽니다.
지금 온라인 새벽기도 회원 6000명 중에 목사님 회원이 약 2000명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목사님은 저를 아주 좋아하고 저의 비전을 조용히 후원하고 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대부분 글로 감사를 표현하지만 그 목사님은 수시로 전화해서 감사를 표현합니다. 그 한 목사님이 때로는 다른 많은 목사님들보다 더욱 실제적인 힘이 됩니다. 신기하게도 믿었던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 앞이 캄캄하면 여지없이 그 목사님이 혜성처럼 나타나 비전을 지탱하게 도와주었습니다.
그처럼 남들이 부담을 느끼고 떠날 때 오히려 부담을 지려고 찾아와주는 좋은 친구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한 사람의 꿈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거룩한 커넥션을 통해 생각지 못했던 축복을 주시는 경우도 많지만 그런 축복만 너무 기대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크게 축복 받아 어느 누구보다 큰일을 하게 하소서!”
사도행전 2장 17절 말씀을 보면 말세에 성령을 부어주실 때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꿈과 비전은 성령의 언어이자 성령 충만의 가장 뚜렷한 표식이며 믿음과 축복을 선도하는 견인차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큰 축복을 받아 세계 각지로 저와 함께 선교하러 다니는 환상과 선교사님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환상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그 거룩한 꿈과 비전이 언젠가 반드시 실체가 될 것입니다.
바닷가에 두 척의 돛단배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배는 동쪽으로 가고 있었고 다른 한 배는 서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같은 바다에서 같은 바람을 타는데 왜 그처럼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갈까요? 그것은 세운 돛의 방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꿈과 비전의 돛’을 어떤 방향으로 펼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삶을 버리고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십시오.
빌립보서 2장 13절을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꿈과 비전은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이루려고 각자의 마음속에 주신 소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꿈과 비전과 믿음을 통해 일도 하시고 축복도 주시고 기도에도 응답하십니다. 그처럼 꿈과 비전은 축복을 예비하고 담는 최상의 그릇입니다.
이제 늘 찬란한 환상을 품고 기도하십시오. 자녀와 손자에 대해서도 찬란한 환상을 품고 배우자에 대해서도 변화된 멋진 환상을 품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입니다(롬 4:17). 그처럼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려면 먼저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감동 중에 찬란한 꿈과 비전을 임산하게 하셨으면 반드시 그 꿈과 비전을 해산하게도 하실 것입니다.
< 해산의 축복을 얻는 길 >
이사야 66장은 이사야 전체의 결론 부분으로 이사야서 전체의 특징인 심판과 회복에 대한 예언이 최종적으로 묘사된 장입니다. 특히 본문은 하나님을 해산하게 하는 하나님으로 묘사하는데 해산의 축복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가난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구절은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은 성전 건물을 보지 않고 마음을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를 돌보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3절 말씀도 역시 제사 드리는 형식보다는 진실한 마음을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2.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왜 시험과 유혹이 찾아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악한 것을 택하기 때문입니다(4절).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 회복의 은혜를 입습니까? 하나님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들으면 성도의 수치가 대적의 수치로 변화될 것입니다(5절).
3.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원수에게 그 행위대로 보응하시고 성도에게는 진통 전에 해산하며 고통 전에 아이를 낳듯이 순식간에 회복과 축복의 역사를 허락하실 것입니다(6-8절). 왜 하나님이 그런 축복을 허락하십니까?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말씀은 본문의 가장 핵심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이 임산하게 하셨으면 반드시 해산하게도 하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 큰 선교비전을 꿈꾸십시오 >
사람이 참된 믿음을 가지기 전과 참된 믿음을 가진 후에 나타나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거룩하고 찬란한 꿈과 비전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변화가 없었다면 이제 그런 변화를 꿈꾸십시오.
저도 참된 믿음을 가지기 전에는 남이 인정해주면 기쁘고 조금이라도 무시당하면 속이 상하고 때로는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청년 때는 혼자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거나 버스를 타고 무작정 종점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있으면서 가만히 생각하면 오기도 생기고 미움도 생기지만 동시에 반성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그래서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혼자 있게 내버려둘 필요도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안의 공허를 달래려고 외부의 샘을 찾아 어떤 일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저는 청소년 때 무협지나 게임에도 빠져 보았고, 기타와 단소에도 빠져 보았습니다. 한때는 닥치는 대로 시집을 구해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잠깐잠깐 교회도 다녔지만 형식적인 예배로는 공허를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84년에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체험하면서 그때부터 변화된 삶이 시작되었고 마음에 깊은 평안도 생겼습니다. 동시에 찬란한 꿈과 비전이 생기면서 마침내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부모님의 경제적인 도움을 하나도 받지 않고 이민 교회에서 전도사 사역과 더불어 기회가 될 때마다 다른 많은 일을 하면서 스스로 학비를 벌어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늘 힘들었어도 믿음과 열정이 있었기에 구김살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유학 중에는 늘 외로움과 향수가 제 마음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학교에서 졸업을 앞두고 이사야 54장에 있는“네 장막 터를 넓히라.”는 말씀을 보고 뜨겁게 감동하며 세계 선교를 위한 중간 거점의 비전을 귀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귀국했습니다.
귀국 후 초기에는 생활 유지조차 힘들어서 “이렇게 살면서 과연 선교비전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끔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어느 날 하나님이 본문 9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임산하게 했는데 해산하게 하지 않겠느냐?” 얼마나 그 말씀이 비전 유지에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 뒤 비전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진했기에 하나님이 네트영어도 주셨고 미션퍼블릭과 온라인 새벽기도 사역도 주셨습니다.
그처럼 찬란한 비전을 따라 좁은 문으로 가다 보면 외로울 때도 있지만 감사하게도 비전이 뚜렷해질 때마다 외로움을 느끼는 감각은 그만큼 무뎌졌습니다. 그래서 외로워도 사람의 도움을 받아 커지기를 기대하지 않고 기독교 선교연맹 소속 목사로서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을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못살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하나님은 필요한 때마다 그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의 신비한 축복입니다.
사실 십자가가 없으면 생명의 역사도 없고 축복의 역사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축복의 십자가가 오늘날 얼마나 많이 외면되고 있습니까?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사명을 따라 교회를 찾지 않고 큰 교회만 주로 찾습니다. 사실상 그것이 한국 교회와 한국 성도의 큰 위기입니다. 축복을 원하면 꼭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담 없는 큰 곳’을 찾으면 인생의 의미와 비전과 축복은 작아지고 ‘부담을 지는 작은 곳’을 찾으면 인생의 의미와 비전과 축복은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영혼을 구하며 제대로 선교할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마음과 생각을 받으시고 자신에게 딱 맞는 축복의 틀을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네트영어를 주신 것도 물질을 얻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물을 만들고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는데 물질을 잘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제 선교의 큰 불을 일으키는 거룩한 불쏘시개가 되십시오. 그리고 30년 동안 3천 개의 동역자 교회를 만들고, 네트영어에서 큰 물질적인 권세를 얻어 수많은 선교사들을 돕는 꿈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어떻게 보면 신기루 같지만 실제로는 지금 그보다 더욱 큰일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지금 성경 66권 전권 설교파일의 비전을 가지고 나가는데 이번 주에 이사야 설교파일을 완성해서 현재까지 약 40%를 완성했습니다. 얼마나 구체적인 비전성취입니까? 신기루 같은 비전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지금 우리 민족을 통해 세계선교를 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좋은 조건이 많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첫째,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 기업이 좋은 선교 통로가 될 것입니다. 둘째, 한류도 좋은 선교 통로가 될 것입니다. 셋째, 세계 최대의 속도를 자랑하는 인터넷도 좋은 선교통로가 될 것입니다. 넷째, 한글을 비롯한 한민족의 탁월한 언어능력과 평화를 사랑하는 근본 민족성도 좋은 선교통로가 될 것입니다. 다섯째, 지금 세계에 퍼진 현지 문화에 잘 적응하고 현지 언어도 가능한 5-6백만의 한민족이 좋은 선교통로가 될 것입니다.
요새 한국 교회가 기복적인 신앙과 모델 교회 및 모델 목회자의 부족과 정치적인 외풍으로 많이 비난받고 정체되었지만 이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지금의 일시적인 한국 교회의 아픔과 시련과 정체는 꼭 필요합니다. 이때 잘못된 것을 걸러내고 바른 신앙을 추구하면서 이웃에게 손을 펼 줄 아는 선교비전을 가진 인물들을 키워내면 됩니다.
주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반대로 주님이 문을 닫으면 열 자가 없습니다. 빛은 반드시 어둠을 이기고 생명은 반드시 죽음을 이깁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통해 외모보다 내면을 추구하는 신앙과 말씀 중심적인 건강한 신앙이 한국 교회의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도 엘리야 때처럼 좁은 문을 추구하는 7000인의 숨은 인물들이 반드시 숨어 있습니다.
그런 인물들을 많이 길러내려면 무엇보다 말씀 운동이 필요합니다. 말씀이 없이 감성만 울리는 찬양예배와 은사예배가 앞서면 3자녀를 굶기고 때려죽인 가짜 목사 사건은 언제나 재발됩니다. 잘 울고 웃는 것이 은혜 받은 표식이 아니라 생명의 변화와 비전의 구체화가 있고 인물이 되려는 구체적인 준비가 있는 것이 진짜 은혜 받은 표식입니다. 한때 한국 교회에서는 화려한 성령 운동이 성행했지만 이제는 순수한 말씀 운동이 더욱 필요합니다.
찬양도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아도 진정성이 담긴 마음으로 찬양하면 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고난 중에 찬양을 부르자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사슬이 풀리고 간수장의 가족이 구원받았습니다. 고난 중의 찬양이 주님의 마음에 지진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십자가의 헌신을 통해 주님의 마음에 지진을 일으키며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찬란한 꿈과 비전을 임산케 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해산케 하시는 은혜도 허락하실 것입니다.
<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
이제 어떤 경우에도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신약성경을 보면 주님이 병자들을 치유하실 때 가끔 “병이 얼마나 되었느냐?”고 시기에 관해 질문했습니다. 그 질문이 주는 암시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시련도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시련이 계속되면 꿈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지만 그때 다시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게 주신 찬란한 꿈과 비전이 성취되도록 건강도 회복시켜주시고 기력과 열정과 재정도 회복시켜주소서!”
삶이 힘들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 그러나 하나님이 끝났다고 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참된 예배자 중에 누구도 끝난 인생은 없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모든 것은 변화됩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도 변화됩니다. 병든 것, 빚진 것, 가정과 사업과 인간관계의 힘든 것도 다 변화되고 자녀 문제와 배우자 문제도 조만간 다 변화됩니다.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목적된 장소로 영혼을 인도하는 우회로일 뿐입니다.
어느 날,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뜻은 “타국에서 손님이 되었다.”는 뜻입니다(출 2:22). 모세는 자신의 비참한 현실이 영원한 현실이 아닌 잠시 손님처럼 지내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현재의 이 현실이 영원한 현실이 아닌 줄 믿습니다.” 정말 그 현실은 영원한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80세에 부름 받아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지금 제가 처한 현실이 영원한 현실이 아닌 줄 믿습니다. 저의 재정문제, 자녀문제, 성격문제는 지금도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이 땅에 잠깐 온 손님으로서 앞으로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최선을 다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살겠습니다. 저의 꿈과 비전을 기억해주소서.”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 어려운 형편과 처지가 자신이 마음을 지배하는 주인장이 되지 않게 하십시오. 그래서 ‘고통과 슬픔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지 말고 ‘불안과 두려움과 가난과 질병 나라의 시민권자’도 되지 마십시오. 성도는 그런 나라의 시민권자가 아니라 천국의 시민권자입니다.
지금 처한 자신의 어려운 현실은 본래 현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욱 큰 축복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축복을 꿈꾸십시오. 이 땅의 것은 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잠깐 가난과 고난에 처할 수도 있지만 성도는 고난과 가난과 낙심과 절망 나라의 시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힘든 상황이 계속되어도 그 상황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허용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 상황은 저의 주소나 본적지가 아닌 줄 믿습니다. 속히 제가 가야 할 거룩한 축복의 땅으로 전진하게 하소서!”
살면서 장벽에 무너지지 마십시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벽을 만나 그 상황을 견딜 수 없다고 불평했지만 그 불평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문제보다 크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매일 만나를 주셨고 바위에서도 물을 내셨습니다. 결국 문제는 그들이 당한 문제를 지나치게 과장해서 생각한 것이 진짜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성도의 가장 큰 과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못한다!”는 과장입니다. 그 과장은 돈키호테의 허풍보다도 더욱 큰 과장입니다. 이제 못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영적 소프트웨어를 가장 최근 것으로 업데이트해서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이 문제는 일시적인 문제다. 이제 내게도 곧 변화된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은 어떤 문제도 찬란하고 멋진 삶의 재료로 활용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십시오.
시편 30편 5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문제는 영원히 계속되지 않지만 은혜는 평생 계속됩니다. 그 약속을 믿고 나가면 하나님의 은혜가 끊임없이 우리 뒤를 추적하며 문제가 축복을 압도하지 못하게 하고 축복이 문제를 압도하게 할 것입니다. 그처럼 모든 문제는 곧 지나가든지 곧 변화됩니다.
이틀 전에 저희 교회에서 4월에 있을 선교연맹 제주 총회 준비위원 모임이 있었습니다. 일정계획과 재정보고도 있었습니다. 총회는 점점 다가오는데 재정은 아직도 예산의 절반도 확보되지 않아서 겉으로는 태연해도 속으로는 조금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이 문제도 하나님의 섭리로 곧 변화된 모습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심을 굳게 믿으십시오. 의심은 ‘장벽’을 보게 하지만 믿음은 ‘대로’를 보게 합니다. 의심은 밤만 보게 하지만 믿음은 낮도 보게 합니다. 의심은 한 걸음 떼기도 두렵게 만들지만 믿음은 영혼을 하늘 높이 치솟게 합니다. 의심은 이런 질문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 누가 믿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은 이런 대답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 제가 믿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굳게 믿고 내일의 축복을 향해 멋지게 달리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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