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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명예를 지키십시오

잠언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236 추천 수 0 2012.03.16 12: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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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잠22:1-6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성도의 명예를 지키십시오 (잠언 22장 1-6절)

 

< 명예욕과 명예심 >

 신학생 때 자주 듣는 얘기가 있습니다. 목회자는 3가지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3가지란 ‘돈, 이성, 명예’입니다. 그 후 저는 한 동안 돈, 이성, 명예는 신앙에 안 좋은 나쁜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사고가 바리새인의 이원론적인 사고임을 깨달았습니다.

 돈, 이성, 명예는 나쁜 것이 아니라 중립가치입니다. 돈을 잘못 쓰면 나쁜 것이지만 돈을 잘 쓰면 좋은 것이 됩니다. 밥 한 번 안 사는 삶이 나쁜 것이지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삶은 모두에게 행복을 줍니다. 이성도 질서 및 결혼의 테두리 안에서는 성숙과 행복의 최대 요건 중의 하나입니다. 명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에 집착하는 명예욕은 나쁜 것이지만 이름을 중시하는 명예심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사실 “명예욕을 버리라!”는 인간의 본성 자체를 부정하는 위선으로 흐르기 쉬운 교훈보다는 “명예를 추구하라! 명예를 중시하라!”는 인간 본성의 선용에 대한 교훈이 훨씬 복된 교훈입니다. 어떤 목회자가 수많은 기독교 안티 제조기 역할을 하며 전체 한국 교회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교회만 키우는데 열중하면 그것이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아닙니다. 이름을 날리려는 명예욕은 없어야 하지만 이름을 남기려는 명예심은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한 유명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남긴 긍정적인 영향도 많습니다. 특히 1980-90년대에는 새로운 교회모델을 제시하며 후배 목회자들이 제일 닮고 싶어 하는 목회자로 꼽히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점차 그 교회는 숫자도 늘고 힘도 커졌습니다. 그 커진 힘이 또 다른 힘을 불렀습니다. 바로 그때가 명예욕과 명예심을 가늠하는 시험의 때이고, “중세에 엄청난 힘을 가졌지만 역사에 이름을 거의 못 남긴 교황처럼 되느냐? 아니면 힘은 없었지만 역사에 찬란한 이름을 남긴 성 프랜시스처럼 되느냐?”는 시험의 때입니다. 그 시험에서 전자로 추가 기울면서 그 교회는 힘은 커졌지만 오히려 명예는 추락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교회는 한국과 미국 각지에 프랜차이즈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세우는 교회마다 숫자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그 성공은 거의 수평이동으로 이뤄진 성공이었습니다. 그 교회가 생기면 주변의 작은 교회들 30-40개가 문을 닫았습니다. 결국 성도들로부터 수많은 절교의 아픔을 당한 많은 목회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고, 목회자들 사이에 “그 교회가 뜨면 그 지역에 온통 난리가 난다.”는 소문이 돌면서 ‘온난리 교회’란 불명예스런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한국에 목회자가 대략 10만 명 정도 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빠른 소문이 목회자 사이의 입소문입니다. 한국의 어떤 유명한 목사도 한 단계만 거치면 다 선이 닿을 정도로 목회자 세계는 좁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힘없는 목회자들의 마음에 한과 상처를 심어 그 원성이 하늘을 닿게 만들면 힘은 커져도 명예는 떨어집니다.

 돌아가신 목사님이 그 나쁜 소문을 못 들었을까요? 들었어도 계속 힘으로 그렇게 밀어붙였다면 그것은 명예로운 모습이 아닙니다. 본인도 그 소문으로 얼마나 스트레스와 상처가 많았겠습니까? 헛된 명예욕과 바른 명예심은 어떻게 구분됩니까? 헛된 명예욕을 가지면 평안이 없고 상처투성이가 됩니다. 그러나 바른 명예심을 가지면 평안이 넘치고 상처받을 일도 없습니다. 명예를 위해 언제든지 높은 자리를 훌훌 털고 내려와 대 평안을 노래하며 살 준비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명예를 소중히 여길 때 주어지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며칠 전 몽골로 선교를 떠나는 한 친구가 있어서 오랜만에 대학 동기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 친구는 대학 때 늘 과 수석을 했고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도 받았습니다. 그가 최근에 나이 50이 넘어 미국의 남 침례 신학교를 졸업하고 선교사로 몽골 대학으로 부임하면서 한국에 잠깐 들렸기에 그 친구를 격려하려고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모임 참석 전에 학원장으로 큰돈을 번 다른 동기에게 전화했는데 비서 선에서 전화가 커트당했다고 합니다. 그 학원장 친구는 전에도 자주 그렇게 행동했는데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 학원장 친구가 요새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란 이름보다 사실상 ‘친구의 친구’란 이름이 훨씬 소중합니다. 옛 친구를 외면하고 국회의원이 되면 앞으로 어떻게 ‘국민의 친구’가 되겠습니까? 사람을 사람이 아닌 표로 보는 정치인은 ‘국민의 친구’가 되지 않습니다. 왜 사람들이 말년에 비참해집니까? 헛된 명예욕에 집착해서 진짜 명예를 잃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명예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름을 인정받으려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돈과 힘과 권력 등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이 잘못이지 은밀한 사랑과 선행과 구제 등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헛된 명예욕에 사로잡히면 막된 존재가 되지만 명예를 소중히 여기면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혹시 사람들의 칭송이 없어도 하나님이 인정해주실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도 하나님께 인정받은 진짜 명예로운 사람들이 천국에는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이 땅에서 유명했던 목사님이 짜장면 배달을 하고 이름 없이 헌신했던 성도들이 진수성찬을 받는다는 유머가 현실이 될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인정하는 진짜 명예를 추구하십시오.

 저는 14년 전에 전도사였던 첫째 누님을 잃었습니다. 그때 누님은 만 49세에 간암으로 천국에 일찍 가셨습니다. 그 후 저는 가끔 목회하다가 힘들고 피곤하면 천국에 먼저 가신 누님을 상상합니다. 그러면 천국에서 누님이 환하게 미소 짓는 영상이 떠오르면서 없던 힘이 불쑥 솟아오릅니다. 예수님을 순수하게 계산 없이 사랑하다가 천국에서 해 같은 영광을 누리는 모습을 상상하니까 생각만 해도 힘이 솟는 것입니다.

 누님은 딸의 장애 때문에 하나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사랑과 열정으로 교회를 섬기다가 신학을 하고 섬기던 교회에서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매형이 장로가 될 때즘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보통 한 교회에서 남편이 시무 장로이고 아내가 시무 전도사인 경우는 없습니다. 힘이 쏠리면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다른 교회에 갔다가 그 교회에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도 교회에 누가 안 되도록 속으로 그 상처를 안고 지내다가 결국 간암으로 일찍 천국에 가게 된 것입니다.

 천국에는 세상과 잘 어울리지 않는 순수한 사람들이 먼저 갈 때가 많습니다. 아마 그들은 천국에서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영광스런 존재들이 될 것입니다. 그처럼 천국에서의 어울림과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진짜 명예심입니다. 그처럼 진짜 명예심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만 해도 기쁩니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상쾌해집니다. 반면에 헛된 명예욕을 가지면 본인도 힘들고 주변 사람들도 힘들게 만듭니다.

 힘과 권력이 좋은 것만이 아닙니다. 잘못 쓰는 힘과 권력은 상처만 키우고 수명만 단축시킵니다. 왕들을 보십시오. 왕이 되었다고 모든 것을 맘대로 합니까? 아닙니다. 가끔 신하들이 “전하! 그러시면 안 됩니다. 명을 거둬주소서!”라고 하면 왕은 완전히 왕따가 된 기분이 들면서 속으로 “욱!”하는 마음이 올라오지만 보통은 체면 때문에 참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골병이 듭니다. 바로 그런 마음의 골병으로 조선시대에 왕을 보필했던 신하들의 평균 수명은 68세였지만 왕의 평균 수명은 45세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에서 젊은 김정은이 권력을 잡았지만 앞으로 나이 든 실세로부터 상처도 꽤 많이 받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당장 그 자리를 때려치우고 싶을 것입니다. 절대권력은 늘 절대상처를 동반합니다. 가끔 단임 대통령이 임기 말에 권위가 떨어지는 레임덕 현상을 거부하려고 하지만 단임 대통령의 레임덕은 무능의 표시가 아닌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그런 권력의 속성을 거부하면 후유증에 본인만 골병이 듭니다. 언제나 권력을 넘겨주고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려고 해야 모두가 상처를 입지 않고 자신의 명예도 지킬 수 있습니다.

< 명예로운 존재가 되려면 >

 이제 살면서 헛된 명예욕을 추구하지 말고 바른 명예심을 가지고 소중한 이름을 남기려고 하십시오. 그런 명예로운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평등의식을 가지십시오

 많은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행복할 줄 알고 부를 위해 인생 전부를 겁니다. 그러다가 부부관계가 깨지고, 인격이 파탄되고, 양심이 화인 맞고, 자식농사를 망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가난한 자나 부자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2절). 부자나 가난한 자나 눈물과 불행이 똑같이 있고 가정문제와 자녀문제와 죽음의 문제도 똑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고 은금보다 은총을 택하십시오(1절).

 사도 바울은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빌 4:12). 그는 어떤 자리에서도 만족했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과 진리가 되시며 하늘의 부요를 안겨준 예수님을 꼭 붙잡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 때문에 어떤 형편에 처해도 좋고 예수님 때문에 늘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최고의 부자입니다.

 이제 남을 부러워하며 살지 마십시오. 그렇게 부러워할 시간에 자기의 장점을 개발하며 최선을 다해 사십시오. 그래서 저 높은 곳을 향해 열심히 오르십시오. 그리고 위치가 높아졌거든 그때는 마음을 낮춰 평등의식과 평민의식을 잃지 마십시오. 그리고 누구와도 친구가 되려고 하고 최대한 편견을 버리십시오. 그처럼 늘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 길을 묵묵히 가다 보면 그 이름이 누구보다 찬란한 이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억압된 영혼에게 자유를 주신 해방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모든 영혼을 소중히 보시고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세상을 원하시고 가난하고 학력과 연줄이 없는 사람이 투명인간처럼 취급되는 것을 누구보다도 아파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려운 이웃의 친구가 되어주려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명예로운 사람입니다.

2, 음지의 고수가 되십시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이 구절을 보면 참된 용기가 무엇이고 참된 영적 고수의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참된 용기란 무조건 전진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만용입니다. 참된 용기는 전진해야 할 때는 전진하고 후퇴해야 할 때는 후퇴하는 삶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면 대개 하수가 되지만 자신을 감추기를 좋아하면 대개 고수가 됩니다.

 사람에게 최고의 명예가 있습니다. 그것은 은밀하게 기도하고 선행하고 도와주면서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앞에 이름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그 이름이 찬란하게 호명되며 최고의 영광스런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런 명예로운 성도가 되도록 음지에서 조용히 선교하고 구제하는 음지의 고수를 꿈꾸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은 음지에서 조용히 선행을 베푸는 삶입니다.

 옛날에 암행어사가 왕명을 받고 암행할 때 “암행어사 출두야!”란 말은 불의로 신음하던 사람에게는 빛과 같은 소리였고 탐관오리에게는 가장 두려운 소리였습니다. 그처럼 자신에게 있는 권세와 능력과 물질을 영적인 암행어사의 도구로 사용하십시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이방 세계에 나간 선교사들에게 물질적인 거룩한 커넥션이 필요하면 그 문제를 소리 없이 해결해주는 영적인 암행어사가 되십시오.

 어느 날, 한 대기업 회장이 정체를 감추고 식당에 갔는데 아주 성실하게 일하는 젊은 처녀가 혼자 가족을 부양하는 처녀 가장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성실함을 계속 지켜보다가 나중에 대리인을 시켜 소리 없이 그녀에게 좋은 일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처럼 자기 이름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누군가에게 살 희망을 준 것을 혼자만의 기쁨으로 간직하며 좋아하는 거룩한 영적 암행어사의 꿈을 가지십시오.

 어느 날, 소중한 꿈과 비전과 콘텐츠를 가졌지만 거룩한 커넥션이 없어서 길이 열리지 않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때도 소리 없이 그 비전이 만개하도록 바탕을 깔아주는 거룩한 현대판 영적인 암행어사가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처럼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로서 은밀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어려운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선교와 구제의 귀재들이 되십시오. 그러면 그가 천국으로 환국할 때 그 이름이 천국을 진동시킬 것입니다. 그런 거룩한 음지의 고수가 누구보다 명예로운 사람입니다.

3.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십시오

 본문 4-5절 말씀을 보십시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이 구절은 간단히 말하면 겸손하면 축복이 따르고 교만하면 고통이 따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소중히 지키려면 교만과 패역의 길로 가지 말아야 하고, 자녀들에게도 꼭 가르쳐야 할 가장 마땅한 덕목은 바로 겸손입니다(6절).

 잘사는 길은 의외로 쉽습니다. 그 길은 바로 ‘겸손의 길’입니다. IMF 때 수많은 재벌들이 쓰러져 회사의 주인이 바뀌거나 법정관리로 넘어갔습니다. 그처럼 사람의 영광은 수명이 짧습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주인이 무수히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재벌이 무한하게 재벌로 있을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재벌 회장이 순식간에 단두대에 설 때도 많습니다. 나누지 않으면 빼앗기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사람들은 아주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안전할 줄 생각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절대권력을 가진 사람만 무너뜨리는 고난의 태풍이 따로 있습니다. 그런 태풍이 한번 불면 그 동안 쌓은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래서 돈이 아무리 많고 아무리 권력이 많아도 늘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현재 가진 것을 가지고 명예로운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잘사는 길이고 미래를 가장 잘 대비하는 삶이고 또한 그것이 가장 잘 믿는 길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어거스틴과 제자들이 대화를 나눴습니다. “선생님! 잘 믿는 제일 비결이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이 대답했습니다. “겸손일세." 제자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잘 믿는 둘째 비결은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이 다시 대답했습니다. “둘째 비결도 겸손일세.” 제자들이 또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잘 믿는 셋째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어거스틴이 또 다시 대답했습니다. “셋째 비결도 겸손일세.”

 잘 믿으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교회도 잘 섬기고, 설교에 은혜도 받고, 가정도 행복하려면 역시 겸손해야 합니다. 능력이 조금 부족해도 겸손 하나만 있으면 어디에 가서도 반드시 승리합니다. 행복과 믿음의 꽃은 항상 겸손한 토양에서 핍니다. 야고보서 4장 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교만하면 장점이 많아도 호된 인생이 되지만 겸손하면 단점이 많아도 복된 인생이 됩니다.

 북미에서 제일 높은 알래스카의 맥킨리(McKinley) 산은 해발 6194미터로 아시아에는 그 이상의 높은 산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은 8848미터입니다. 그런데 이 맥킨리 산에서 유독 유명한 산악인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에베레스트도 정복했는데 멕킨리 산쯤이야 하고 만만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산은 두 가지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 준비를 많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 늦게 가는 한이 있어도 준비를 잘 갖춰야 합니다. 조급하게 빨리 오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지금 알래스카에는 한국 산악인들의 묘지가 상당히 많습니다. 빨리 오르려고 서두르면 빨리 가는 수가 있습니다. 산이 높을수록 준비도 많이 해야 합니다.

 또 하나 산에서 배우는 교훈은 겸손입니다. 산 앞에서는 늘 겸손해야 합니다. 산에서는 정상 정복 후 내려올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인생에서도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할 때 더 조심해야 됩니다. 오래 교회를 다닌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남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뜨거운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남을 정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화 성경공부를 하거나 기도를 많이 할 때도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를 많이 한다는 생각 자체입니다.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고상돈 씨도 맥킨리 정상을 밟았지만 내려오다 죽어서 맥킨리를 정복한 산악인으로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정상을 밟아도 내려오다 죽으면 정상을 정복한 것으로 치지 않습니다. 그처럼 많은 유능한 산악인들이 내려오다 죽듯이 인생에서도 하산을 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돈 많이 벌었다. 괜찮다. 문제없다.”고 여겨질 때 더욱 기도하십시오. 성경은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고전 10:12).

 겸손해야 산을 정복하듯이 성공과 행복의 산도 겸손해야 정복할 수 있습니다. 결혼 때 주례자가 묻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세상 끝 날까지 사랑하겠습니까?” 그러면 다 “예!” 합니다. 적극적인 성도는 “할렐루야!”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대답을 들어도 얼마나 오래갈까 걱정이 됩니다. 그래도 하나만 잘 하면 그런 대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 하나가 바로 겸손입니다.

< 끝까지 겸손하십시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높은 데서 행복을 찾지만 행복은 높은 곳보다 오히려 낮은 곳에 있습니다. 마음이 높으면 많은 것을 갖춰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결혼생활도 한 달도 채 가지 못합니다. 반면에 낮은 곳에서는 쉴 곳도 많고, 누울 곳도 많고, 자리를 펼 곳이 많기에 잘 넘어지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겸손하면 새로운 은혜도 많이 받지만 이미 받은 은혜가 잘 무너지지 않는 은혜도 받습니다. 이제 우리 교인 중에 재벌이 나오고 위대한 인물이 나와도 교회에서 청소하던 때의 초심을 결코 잃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살다 보면 수시로 교만이 틈타려고 합니다. 그때 틈을 허용하지 하십시오. 인생 최대의 전쟁은 교만과의 전쟁입니다. 그 전쟁에서 지지 마십시오. 역사상 위대한 황제들도 다 교만 때문에 망했고, 역사상 대 제국들도 다 교만 때문에 망했습니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교만입니다. 특히 교만이 무서운 이유는 교만은 마귀의 제일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원래 천사장이었는데 교만해서 하늘에서 내쳐졌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해지면 그때부터 마귀가 그 마음을 주장하면서 가장 복 없는 길로 가게 됩니다.

 그 사실을 거꾸로 적용하면 인생에서 가장 복된 성품은 겸손한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십니다. 겸손하면 축복이 따라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본문 4절 말씀처럼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 따라옵니다. 그 사실을 굳게 믿고 늘 겸손한 신앙을 통해 축복받고, 축복받은 후에도 겸손한 신앙을 잃지 마십시오.

 낮아지면 낮아지지 않고 높아지면 높아지지 않습니다. 낮아질수록 높아지고 높아질수록 낮아집니다. 그러므로 늘 겸손의 옷을 입고, 눈빛 하나도 겸손하게 하고, 말 한 마디도 겸손하게 하십시오. 교만하면 이름이 망가지다가 결국 패망하지만 겸손하면 이름이 높여지다가 결국 축복받습니다. 항상 열심히 땀을 흘려 축복받고 하나님이 인물이 되게 하시면 마음을 최대한 낮추고 교만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성도의 명예를 지키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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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6 요한복음 실망될 때 실망하지 마십시오 요21:4-5  이한규 목사  2012-03-16 2821
6565 이사야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 사62:1-5  이한규 목사  2012-03-16 2437
6564 예레미야 있어야 할 자리 렘3:1-15  최장환 목사  2012-03-14 6276
6563 이사야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자 사3:1-16  최장환 목사  2012-03-14 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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