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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열왕기하 김남준 목사............... 조회 수 3025 추천 수 0 2012.03.18 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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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왕하6:14-17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2006-08-13

왕하6:14-17

 

I. 본문의 배경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여호수아를 비롯한 출애굽의 1세대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목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번영한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삿 2:7). 그러나 그들이 죽자 이스라엘은 급속히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며(삿 2:10), 그로 인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살게 되었습니다.(삿 21:25). 오늘 본문은 그런 어두운 시대에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의 영적 지도자, 엘리 제사장의 집안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II. 믿음의 가문의 불량자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는 왕이 없었던 때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친히 통치하시기 위함이었으며, 이스라엘에게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사(士獅)’라 불리는 정치적인 영도자인 동시에 종교적인 지도자를 저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엘리 제사장은 바로 그 사사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특별한 시대에 특별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신령한 은혜 속에서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과의 특별한 교제 속에서 믿음으로 그 백성들을 지도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가문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악한 불량자들이었습니다.

 

A. 하나님을 알지 아니 함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삼상 2:12).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게 함으로써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만드는 원천’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를 원하였으나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알기를 원치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사명을 받아 하나님을 섬기는 부모와 율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용서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해 주시는 제사제도라는 은혜의 수단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엘리의 아들들이 기본적으로는 신앙이 있었으나 연약함으로 인해 잠시 불량자가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신앙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회심하지 않은 자녀들이었습니다. 언약 백성인 여러분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의 축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불신 가정에서 자란 많은 지체들이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며, 신자가 되어 가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 형제들이 전혀 이해해 주지 않는 가운데 외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심지어는 모진 핍박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믿습니다. 때로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가족들과 의절하기를 강요당하기까지 하여 가슴에 피멍이 듭니다. 그러나 언약의 집안인 여러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온 가족의 이해와 축복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을 잘 알아갈 수 있는 복된 환경일 뿐입니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저절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향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획득되고, 그분의 말씀대로 합치하여 살고자 하는 진지한 구도의 노력에 의하여 성장해 갑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자녀가 기독교문화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아세례를 받고, 입교식을 하고, 교회에서 목사의 주례로 결혼하는 것이 여러분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회심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고,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일은 믿음의 부모인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려고 합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가고 있습니까?

 

B. 제사를 멸시함
둘째로, 그들은 제사를 멸시하였습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 2:17). 제사장의 직분은 세습이 되었기에, 엘리의 아들들은 신앙 없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를 수종드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구약에서의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의 모든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개인과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용서 받게 되었고, 헌제자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표하였으며, 하나님과 혹은 이웃과의 불화한 관계를 하나님 앞에 모두 청산하고 지순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아웃을 다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의 아들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께 올려드릴 제물에 눈독을 들이고, 헌제자들에게서 제물을 빼앗았습니다. 제사장이었던 아버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은 없고 제물에만 눈이 먼 탐욕스런 불량자들이 되었습니다. 부모인 여러분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으십니까? 하나님을 향한 경배 행위 안에서 여러분의 영혼이 진리의 빛과 성령의 은혜로 나날이 새로워져 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자녀들은 어떠합니까? 여러분들이 진실한 참회로 마음을 돌이키고 거룩한 은혜로 심령이 새로워질 때 여러분의 자녀들은 어떠합니까? 청년들의 예배에서, 청소년들의 예배에서, 또 어린이들의 예배에서, 유아들의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그 속에서 여러분의 자녀들은 십자가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심하며, 은혜의 영향을 받아 새사람이 되어 가고 있습니까?

 

C. 악행으로 타락함
셋째로. 그들은 악행으로 타락하였습니다.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삼상 2:22). 결국 엘리의 아들들은 이 악행으로 타락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회심하지 않은 엘리의 아들들의 죄가 성장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였던 그들이, 제사를 멸시하였던 그들이 곧 악행으로 타락하게 되는 공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엘리가 매우 늙었을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언급함으로써 이 사실을 입증합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회심하지 못한 우리의 자녀들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잠 20:11). 여러분의 자녀가 비록 어리다고 할지라도 그 아이 안에 이미 신앙의 씨앗이 자라고 있을 수도 있고, 불신앙이 씨앗이 자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언약 백성들에게 있어서 음행은 우상숭배와 함께 짝을 이루는 죄의 끝입니다. 엘리의 자녀들이 단숨에 이런 악행으로 떨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시간을 경건한 부모와 함께 지냈고, 성전에서 신실한 헌제자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들이 성장하는 환경일 뿐이었습니다. 지구를 탐사하는 인공위성이 지구 가까이에서 그 궤도를 수없이 돌고는 있으나, 단 한 번도 지구와 만난 적이 없듯이 엘리의 자녀들은 좋은 부모와 좋은 환경을 가까이 두고 있었으나 한 번도 하나님을 알아간 적이 없는 인물들이었던 것입니다. 부모가 만들어 준 좋은 신앙의 환경 속에서 자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들 자신이 직접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구속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절대의존의 믿음을 갖는 것이며, 삼위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와의 실제적인 연합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신앙을 가진 부모도 영원히 자신의 자녀들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결국은 그들도 이 땅을 떠나고, 자녀들은 홀로 이 세상에 남습니다. 그 때에 자녀들을 신실한 신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집안에서 성장한 빛바랜 추억 몇 조각이 죄와 유혹을 이기며 성도의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만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그 때에 안전할까요?

 

III. 무력해진 부모의 신앙

 

엘리의 자녀들의 이런 신앙과 타락의 원초적인 씨앗은 그들의 어린 시절부터 신앙적인 영향력을 이미 상실한 아버지 엘리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발견됩니다.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신의 자녀를 양육해야 할 부모의 역할은 자신만의 판에 박힌 신앙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신앙교육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부모 자신 속에 존재하는 그 어떤 실재를 그 아이들 속으로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한 부모의 신앙이 아이들에게 전수되는 정수입니다. 이것은 단지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부모의 신앙의 진액이 자녀들과의 인격적인 교통을 통하여 마음속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해산의 수고’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A. 신령했던 사람
엘리는 이렇게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해 주는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때 신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삼상 3:8-9). 말년에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진 상태에서 자녀에 대한 신앙적인 영향력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지만, 한 때는 사무엘을 부르시던 하나님의 그 방식과 동일하게 부름을 받던 신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사무엘은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신령한 부르심의 방식을 그는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아득히 먼 옛날의 일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한 때, 열렬하고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믿음의 부모들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기력이 쇠하고 정신의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노년이 깊어갈수록, 오히려 영혼의 총명은 슬기에 빛나고 마음은 지순의 사랑으로 가득 차 순결에 이르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부모들이 젊고 자녀들이 아직 어릴 때에는 그들이 신앙 없거나 다소 연약한 믿음을 가졌다할지라도 육체의 완력이나, 부모의 권위로써 신앙의 형식을 버리지 못하도록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장하고 우리가 늙어 갈수록 그 일은 점점 우리의 능력 밖의 일이 되어 버립니다. 자녀들을 움직이자니 이 땅의 자원이 부족하고, 하나님을 움직이자니 하늘의 자원이 모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불량자로 자라기까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엘리도 한 때는 신령한 사람이었습니다.

 

B. 부모의 무력한 신앙과 자녀들
흔히 신앙의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더욱 강퍅한 경우가 있다고들 합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회개하지 않는 자녀들의 완고함을 어린 시절부터 익숙해진 종교적인 환경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인 우리들은 우리 자녀들의 불신앙을 그들의 완고함 때문이라고 말하기 전에 그것이 우리의 무기력하고 분별이 없는 신앙 때문은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녀를 향한 엘리의 다음과 같은 무기력한 신앙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1. 영적인 분별력이 없음
첫째로,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신앙이었습니다. 마음에 깊은 고통을 안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심정을 토하는 한나에게 포도주에 취하지 말라고 꾸지람을 하는 모습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삼상 1:14-15). 그는 한 때 하나님의 신령한 부르심을 경험하던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깊은 기도 세계 속에서의 경험을 잊어버리고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에게서 받는 영향은 우리가 충만한 삶을 살아갈 때만이 아닙니다. 은혜 가운데 살아가던 날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는 남게 되지만, 자녀들의 기억 속에는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한 채 방황하며 살았던 날들만 기억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를 맡기셨을 때, 그들이 우리를 통해 배우기를 원하시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지혜와 사랑이 그것입니다. 지혜는 인간의 오성(悟性, intellegentia), 곧 총명에 비취는 빛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분별하고, 영원한 것과 잠세적(暫世的)인 것을 분간하며, 궁극적으로 사랑할 하여야 할 대상과 단지 사용하여야 할 대상을 구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것들을 통해 영적인 분별력을 갖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게 됩니다. 다음은 사랑입니다. 부모인 우리를 통하여 자녀들이 마땅히 사랑하여야 할 것을 사랑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많은 감각적인 사물들에 현혹되어 그릇되게 그것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지혜의 도움을 얻어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사랑하고, 영원한 것들을 사모하게 됩니다. 지혜는 인간의 지성이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얻어지고, 이러한 지식과 지혜 속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은 더욱 불타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빌 1:9-10). 그러나 엘리는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순전한 사랑(caritas)과 함께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그의 영혼이 분별력을 상실하고 잠들어 있는 동안에 아이들의 불신앙은 비온 뒤의 죽순처럼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습니다.

 

2. 신령한 영향력을 상실함
둘째로, 자녀들을 향한 영향력을 상실하였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삼상 2:23-25). 엘리는 아들들의 악행을 심히 탄식하며 그들의 행실의 잘못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가정에서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상실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회개하기는커녕 그 악을 그치지 아니하였습니다. 빗나간 자녀들 뒤에는 신령한 영향력을 잃은 부모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베푸는 후한 용돈으로는 한 시간 동안 권위를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권위로서는 하나님을 거슬러 사는 자녀들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부모가 자녀들에게 신령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조건이 필수적입니다. 첫째로는, 부모들 자신의 온전한 신앙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부모의 무릎에서 배우지만, 성장하면서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배웁니다. 둘째로는, 아이들 자신의 회심입니다. 회심은 하나님을 향한 돌이킴입니다. 그것은 단지 삶의 태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죽은 영혼이 생명을 얻고 하나님을 향하여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성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따라 살도록 갱신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회심의 은혜를 보존함으로써 자녀들을 향한 신령한 영향력을 유지하게 되고, 아이들은 회심함으로써 그러한 영향력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3. 빗나간 자식 사랑
셋째로, 빗나간 자식 사랑입니다. 엘리가 자기의 아들들의 이러한 악한 행실들을 제지하지 못한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 보다 자식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삼상 2:29). 그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가슴 아파하면서도 전심으로 그것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소중히 여긴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자식들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였으나, 그 사랑은 칼이 되어 자기의 아들들을 심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죽었을 때 자신도 죽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한 엘리의 말로였습니다. 우리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섬기는 자녀로 양육해 달라고 우리에게 맡기신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육신의 부모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 되는 우리의 임무는 자식들의 존재 그 자체와 그들을 양육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본분은 육신의 부모와 맺어진 정리와 의리 아래서 그들의 영혼의 아버지이시고 궁극적인 섬김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주 안에서 부모인 우리를 공경하여야 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주 안에서 자식들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와 자녀의 행복을 위하는 길입니다.

 

IV. 네 자녀를 돌이키게 하라

 

자녀들을 향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그들로 하나님을 향하여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태어나면서부터 창조주 하나님을 배향하는 존재로 태어납니다. 영혼은 어둡고 지성은 눈멀었으며, 사랑은 추루한 것에 붙잡히고, 의지는 허탄한 것에 집착하는 절망적인 존재로 태어납니다. 회심은 이러한 배향하는 영혼의 경향성과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돌이키는 것입니다. 깊고 진실한 회개 속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부모는 다음 사항을 숙고하여야 합니다.

 

A. 모본을 보이라
첫째로, 모본을 보이십시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신앙의 모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말로 성경을 교훈하는 것이 ‘들리는 가르침’이라면, 부모가 스스로 모본을 보이는 것은 ‘보이는 가르침’입니다. 자녀들에게 말로 성경의 교리를 가르칠 뿐 아니라, 그들에게 기대하는바 변화된 삶을 부모인 여러분들이 먼저 살아서 보여주기를 힘쓰십시오. 기회 있는 대로 성경을 가르치십시오.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하십시오. 만약 여러분들을 통하여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은 스스로 회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통하여 자녀들이 회심하지 않은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인하여 근심하게 된다면, 부모인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그들이 직접 눈으로 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하나님이 자신 안에 계신지를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B. 오래 참으라
둘째로, 오래 참으십시오. 비록 자연적인 성품에 있어서는 여러분의 말에 고분고분 복종하는 자녀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에 있어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는 영적인 세계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 중 어떤 아이들은 그렇게 가르치고 모본을 보이며 또 사랑할 때에 속히 변화되기도 하지만, 어떤 아이들을 회심하기 전까지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을 부모의 마음에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영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그들이 변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 마치 부모인 자신의 부족함 때문인 것처럼 애써야 합니다. 부모가 이 세상에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들 중 하나는 자신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자녀들의 깊고 진실한 회심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비록 회심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자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의 회심을 위해 때로는 고통 가운데 애쓰면서도 결코 그날이 더디다는 이유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랑은 곧 하나님 자신을 향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지순의 사랑(caritas)은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오래 참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모든 것을 참으며......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변화되지 않는 자녀를 보며 낙심될 때마다, 그들의 회심이 더딘 것처럼 여겨질 때마다, 그들을 위하여 애쓰는 것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마다,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십시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3). 그리고 그 모든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하여 여러분을 겸비하게 하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어쩌면 회심하지 못한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과정을 통하여 여러분 자신이 먼저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잊지 마십시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습니다.

 

C. 복음을 돋게 하라
셋째로, 복음을 듣게 하십시오.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십시오. 특별히 복음이 선포되는 예배의 현장에 있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로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 그것을 듣게 하십시오. 그들을 격려하여 그 말씀에 주의를 집중하고 듣게 하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기울여 깨닫게 하십시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십시오.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주의력으로 복음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복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회심하지 못한 자녀들은 자신의 회심과 거듭남을 위하여, 이미 회심한 자녀들은 자신들이 은혜 안에 있기를 구하며 말씀 앞으로 나아가게 하십시오. 주일 저녁 마다 자녀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주일예배 속에서 선포된 복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물어 보십시오. 그것을 기억할 때 그들을 칭찬하십시오. 그리고 그렇지 못할 때, 사랑으로 그들을 타이르며 여러분 안에 있는 그들의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인 여러분의 염려를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온 맘을 다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들의 회심이 곧 여러분 자신의 영혼의 회심인 것처럼 마음을 쏟아 기도하십시오. 육신으로는 이미 낳았지만, 이제 영혼으로는 다시 그들을 해산하는 것처럼 진액을 쏟으십시오. 그렇게 할 때에 여러분의 자녀들이 회심하는 꿈 같이 기쁜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V. 적용과 결론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목적을 따라 당신 자신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기에 적합한 사람들로 세우도록 우리에게 맡겨 주신 기업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스스로의 신앙에 만족하고 이 세상을 살다가 죽는다고 할지라도,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진실한 성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들의 성공과 번영은 하나님 없는 번성함 일 뿐입니다(창 6:1). 성도의 길을 갔던 여러분들은 살아있어도 사실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회심하여 진실한 성도의 길을 걸어간다면,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 성취하지 못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아간다면 여러분들은 죽어도 산 자처럼 말할 것입니다. 이런 갈림길에서 여러분은 어느 길을 걸어가고 계십니까?

 

:: 나눔의 시간
1. 지난주 설교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를 들고 묵상하면서 경험했던 은혜들을 나누어 봅시다.
2. 제사장 엘리의 가문에서 자란 아들들이 어떤 아이들이었는지 세 가지 특징을 지적해 보고, 열심 있는 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전혀 신앙이 없는 자녀들을 가진 부모들의 마음에 대하여 함께 나눕시다.
3. 엘리 제사장이 시종일관 형식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아니라는 것은 어떻게 입증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에 신령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 이유는 무엇 때문 이었습니까?
4. 회심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하여, 또는 회심했으나 은혜 가운데 있지 못한 자녀들을 위하여 부모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5. 우리 아이들의 영혼의 상태를 구역원들과 솔직하게 나누고 기도제목을 교환합시다.(장년). 미래에 자녀들의 회심에 관하여 나누고 결혼을 위하여 기도합시다.(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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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1 요한복음 복음. 열매. 씨앗. 요15:1-8  김동호 목사  2012-03-29 2871
6630 시편 뿌리는 목회와 거두는 목회 시126: 1- 6  김동호 목사  2012-03-29 2279
6629 마태복음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마25:1-13  김동호 목사  2012-03-29 3123
6628 마태복음 변화산에 초막 짓는 교회. 마17:1-8  김동호 목사  2012-03-29 2635
6627 에스겔 진정한 행복 겔6:1-14  최장환 목사  2012-03-28 5585
6626 이사야 희망은 절망 뒷편에 사8:1-10  최장환 목사  2012-03-28 5635
6625 마가복음 하나님의 창조질서-심은 대로 거둠(5) 막4:26-29  이정수 목사  2012-03-26 2604
6624 마가복음 하나님의 창조질서-심은 대로 거둠(4) 막4:1-9  이정수 목사  2012-03-26 2064
6623 마가복음 하나님의 창조질서-심은 대로 거둠(3) 막4:1-9  이정수 목사  2012-03-26 1841
6622 마가복음 하나님의 창조질서-심은 대로 거둠(2) 막4:1-9  이정수 목사  2012-03-26 1975
6621 잠언 꿈은 이루어진다. 단, 괴로움을 감수하는 사람에게만! 잠13:14  이정수 목사  2012-03-26 2202
6620 마가복음 하나님의 창조 질서-심은 대로 거둠(1) 막4:1-9  이정수 목사  2012-03-26 2389
6619 잠언 비전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잠13:4  이정수 목사  2012-03-26 2108
6618 요엘 영(My Soul)을 위한 비전 욜3:10  이정수 목사  2012-03-26 1899
6617 디모데전 일(My Work)을 위한 비전 딤전5:23  이정수 목사  2012-03-26 1848
6616 디모데전 몸(My Body)을 위한 비전 딤전5:23  이정수 목사  2012-03-26 1830
6615 빌립보서 望(망) 빌3:13-14  이정수 목사  2012-03-26 1799
6614 빌립보서 忘(잊을 망) 빌3:13-14  이정수 목사  2012-03-26 2772
6613 에배소서 3가지 회복 엡4:13-14  강종수목사  2012-03-25 2616
6612 설교자료 65년간 성경 670번 읽어도… “알 수 없더라”는 고백 크리스천투데이  박희천 목사  2012-03-24 3506
6611 설교자료 원고 9장 육필로 5번… 설교 준비 마치면 주일 새벽 크리스천투데이  송태근 목사  2012-03-24 3895
6610 설교자료 설교는 목회자 평생의 짐… 그래서 기도한다 크리스천투데이  박요한 목사  2012-03-24 2298
6609 설교자료 감성터치, 누구보다 잘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냐 크리스천투데이  서길원 목사  2012-03-24 2288
6608 설교자료 설교는 세상에 하나님 나라 알리는 거룩한 사명 크리스천투데이  정의호 목사  2012-03-24 2428
6607 설교자료 성경이 나를 해석하게 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크리스천투데이  한기채 목사  2012-03-23 2560
6606 설교자료 설교는 교회의 기둥, 약하면 목회가 안 된다 크리스천투데이  피영민 목사  2012-03-23 1999
6605 설교자료 설교란, 예수를 말하고 예수로 살게 하는 것 크리스천투데이  이윤재 목사  2012-03-23 2493
6604 고린도전 조급증을 없애는 최고 비결 고전10:31  박신 목사  2012-03-21 3195
6603 로마서 하나님의 양자 된 신자 롬8:12-15  박신 목사  2012-03-21 2000
6602 마태복음 십 점 만점에 십 점인가? 마5:3  박신 목사  2012-03-21 1869
6601 마가복음 너무나 느긋하신 예수님 막1:32-39  박신 목사  2012-03-21 1794
6600 요한일서 주께 하듯 사랑하라. 요일4:10-11  박신 목사  2012-03-21 2335
6599 시편 주님만 드러내는 삶 시16:1-11  최장환 목사  2012-03-21 5970
6598 욥기 옥합을 깨뜨리자 욥31:1-8  최장환 목사  2012-03-21 6093
» 열왕기하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왕하6:14-17  김남준 목사  2012-03-18 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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