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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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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
하나님의 창조질서-심은 대로 거둠(2)
본문/ 막4:1-9, 마13:1-9, 눅8:4-8
1. 들어가는 이야기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육십 배-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막4:1-9)”
나는 오래 전부터 이 비유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농사법은 먼저 씨를 사방에 뿌리고 그 다음에 쟁기로 밭을 갈아 씨가 땅에 골고루 섞이게 하였다 등등”의 주석서 보았어도 늘 마음에 未審(미심)쩍은 점이 있어 개운치 않았습니다. 즉, 씨를 뿌리는 사람이 어림짐작-눈대중으로라도 90% 이상 싹이 나서 열매를 맺을만한 좋은 땅에 씨를 뿌리는 것이 當然之事(당연지사)이지, 더러는 길가-더러는 돌밭-더러는 가시덤불-더러는 옥토-각각 25%로 뒤섞인 땅에 뿌릴 理由(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우연히 이 미심쩍던 마음이 풀렸습니다. 늦여름 어느 날 우리 동네 뒷산에서 산책하고 있는데, 우리 집 아래 사는 농부가 전혀 밭이 아닌 무덤가로 난 산길-바위-雜石(잡석)-잡풀-가시덤불이 뒤섞인 야산에 무엇인가 흩뿌리고-쇠스랑으로 대충대충 흙으로 덮는 것입니다. “뭐하는 거요?” 물으니, 농부 왈 “열무 씨를 뿌립니다. 이제 늦가을 김장할 때 열무를 넣고 김장하면 김장이 훨씬 맛 있어요” 합니다. 김장할 때 즈음 보니 실로 먹을 만한 열무가 이곳저곳 듬성듬성 잘 자라나 있었습니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아하, 예수님이 이런 농촌 생활을 지켜보시고 이런 비유의 말씀을 주신 거로구나!” 하였습니다!
2.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좋은 땅(good soil)이 아닌, 길가(the path)-돌밭(rocky places)-가시덤불(thorns)은 열매(하나님 나라-하늘 나라-Kingdom of God)를 맺을 수 없다. 그러므로 좋은 땅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自然(자연)에 있는 길가-돌밭-가시덤불-옥토는 생겨나기를 처음부터 그렇게 생겨난 것이므로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길가-돌밭-가시덤불-옥토로 點指(점지) 받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은 時時刻刻(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때로는 길가였다가-때로는 돌밭이었다가-때로는 가시덤불이었다가-때로는 옥토였다가, 그리고 때로는 옥토였다가 순식간에 길가-가시덤불-돌밭으로 변합니다. 그러므로-그럼에도불구하고 귀 있는 사람은 듣고 좋은 땅-좋은 마음이 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3. 어떻게 좋은 땅-좋은 마음이 되는가?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비유(눅13:6-9)”에서 좋은 땅을 만드는 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땅을 만들려면 두루 깊이 파고-거름을 듬뿍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마음을 만드는 것도 그러합니다. 좋은 마음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하신 말씀을 마음 밭의 거름으로 삼아 마음 깊이 깨닫고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온 우주의 森羅萬象(삼라만상)-頭頭物物(두두물물)-天地人(천지인)-蠢動含靈(준동함령)-하늘 위-하늘 아래-땅 위-땅 속-바다에 있는 모든 물체와 생명체-그리고 “나와 너” 그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하도록 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서양 사람들은 지혜롭게도 存在(존재)를 "exist=ex(무엇 무엇 밖에) + ist(무엇 무엇이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즉, 모든 존재의 근원은 그 존재 자체에 있지 아니하고, 그 존재 밖에(ex)-있다(ist)-곧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하면 이 세상 모든 존재는 “被造物(피조물-만들어진 것-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깨달음이 왜 그리 중요한가?
첫째.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참 좋으신 우리 아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임으로 “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천지여아동근 만물여아일체-천지는 나와 더불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며,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하나님 안에서 한 몸이다) 임을 깨달아 이기적 개인주의-나 중심적 삶의 감옥에서 벗어나, 나+이웃+자연이 더불어 사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참 좋으신 우리 아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임으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가난-고통-곤궁-두려움-외로움-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고-立處皆眞 隨處作主(입처개진 수처작주: 내가 선 자리마다 하나님의 땅이니, 어디에 처했든지 주인공으로 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 세상 모든 존재는 결국 하늘에 계신 참 좋으신 우리 아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으로(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롬11:36, 우리 아버지는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4:6), 한 세상 사는 동안 좀 더 베풀고-좀 더 용서하고-좀 더 너그러운 넉넉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1:17, 2:11).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라(요삼1:5).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3-17)” 라고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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