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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4:2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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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
하나님의 창조질서-심은 대로 거둠(5)
본문/ 막4:26-29
1. 들어가는 이야기
지난 몇 주 동안 “하나님의 창조 질서-심은 대로 거둠”을 주제로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심은 대로 거둠의 창조 질서”를 초월하는 신비하고-은혜롭고-놀라운 또 다른 창조 질서를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본문 말씀을 읽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 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막4:26-29)”
2. 본문 연구
비유 해석서들을 보면 오늘 본문의 비유를 “비밀리에 자라는 씨-스스로 자라는 씨-저절로 자라는 씨-가만히 자라는 씨의 비유” 등으로 제목을 달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모두 一理(일리) 있는 제목입니다만, 나는 좀 진부하고 그 소리가 그 소리 아닌가? 하실는지 모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유의 제목은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 가운데 자라는 씨의 비유” 라고 불러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왜? 씨는 비밀리에-은밀하게-스스로-저절로 자란 것이 아니라, 사람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심은 대로 거둠의 질서 외에-심은 대로 거둠의 질서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또 다른 우주 창조의 질서(그것이 곧 하나님의 섭리-은혜-축복-사랑-은총이다!)에 따라 자라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저 난해한 “같은 품삯의 비유(20:1-16)”에서 바로 이러한 또 다른 하나님의 우주 창조의 질서를 읽습니다! 눈물을 흘리며-울며 씨를 뿌리고 가꾸는 힘씀과 애씀이 없을지라도 풍성한 열매-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은총-사랑-섭리 말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찬송가 526장의 뜻을 깊이 생각하면서 찬양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1)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 오라, 이곳에 좋은 샘 흐르도다
힘쓰고 애씀이 없을지라도,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겠네
(2) 이 샘에 솟는 물 강 같이 흘러, 온 천하 만국에 다 통하네
빈부나 귀천에 분별이 없이, 다 와서 쉬고 또 마시겠네
(3) 생명수 샘물을 마시는 자마다, 목 다시 마르지 아니하고
속에서 솟아나 생수가 되어, 영원히 솟아 늘 풍성 하네
(4) 이 샘의 이름은 생명의 샘물, 저 수정 빛 같이 늘 맑도다
어린 양 보좌가 근원이 되어 생명수 샘이 늘 그치잖네
3.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의 유익이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는 “크든 작든 나의 좋은 한 생각(씨)-그 생각 자체”에서 출발합니다. 왜? 나의 좋은 한 생각(씨)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씨가 나서 자라되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좋은 한 생각(씨)이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1963년 미국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컴퓨터로 모의 기상관측을 한 결과 초기의 미세한 차이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엄청나게 증폭되어 판이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발견한 데서 나온 것이다. 즉, 오늘 북경의 한 마리 나비의 날개 짓이 다음 달 뉴욕에서 폭풍우가 되어 몰아친다는 것이다)를 만듭니다. 또한 인드라망의 빛나는 구슬이 된다는 말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는 사람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우리 사람은 일상 생활에서 언제나 쓸모 있는 것(有用)과 쓸모 없는 것(無用)-有益(유익)한 것과 無益(무익)한 것-좋아하는 것(好)과 싫어하는 것(不好)을 分別(분별)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유용-유익-좋은 것은 감사하고, 무용-무익-싫어 하는 것은 불평-불만-원망-탄식-절망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자녀 된 우리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를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시118:21-23)” 라고 하신 것입니다. 루터는 이를 “내가 비텐베르크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동안에도 복음은 제 길을 가고 있다” 라고 멋진 조크를 남겼습니다(H. 틸리케, 이계준 역, 기다리는 아버지, 컨콜디아사, 114쪽). 史記에서는 이를 “力田不如逢年(역전불여봉년-열심히 농사 짓는 것이 하늘이 풍년을 주는 것만 못하다)” 이라 하였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를 깨닫는 사람에게는 亢龍有悔(항룡유회-지난 주 말씀의 샘물 제637호 고전예화)가 없습니다. 본문을 보면 “저가 밤낮 자고 깨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막4:27)” 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인가?
亢龍有悔(항룡유회)-용의 눈물은 자신이 세운 가정적-교회적-국가적-사회적-학문적-예술적...등등의 위대한 업적이 “나의 힘씀과 애씀으로 되었다-나의 功(공)이다-내가 세웠다-나의 피땀으로 이루었다-내가 했지!” 하는 공로의식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나의 그 모든 위대한 업적에는 “나의 힘씀과 애씀-나의 피땀” 외에 “나는 전혀 생각지도-알지도-짐작조차 못 했던 힘(Power-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이 작동하였다!” 것을 깨닫는다면, 감히 “내가 했지!” 하는 자만심-교만심-공로 의식-대접 받아 마땅하다는 의식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항룡유회-용의 눈물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를 깨닫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潛龍(잠룡)-見龍(현룡)-直龍(직룡)-飛龍(비룡)이 될지언정 결코 亢龍(항룡)이 되지 아니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가 주는 하나님의 은혜-은총-사랑-축복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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