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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의 꿈

성경동화 김민수 목사............... 조회 수 2708 추천 수 0 2012.04.04 20:03:03
.........

씨앗의 꿈

(마태복음13:1-23)

 

지난 겨울 창고에서 긴 겨울을 보내며 참으로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농부가 밭에 우리를 뿌리면 부지런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꿈, 나비가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다닐 즈음이면 푸릇푸릇 올라온 새싹들이 어우러져 초록물결을 만들어가는 꿈, 뜨거운 태양아래 예쁜 꽃을 화사하게 피우면 온갖 하늘을 나는 곤충들이 찾아와 꿀을 먹는 꿈, 알알이 맺은 열매가 뜨거운 가을 햇살에 무르익어가는 꿈, 노래를 부르며 타작하는 농부들의 풍년가를 듣는 꿈.

 

이런 꿈들이 있어 긴 겨울 목마름도 참아낼 수 있었고, 얼어터질 듯 추운 찬바람도 견딜 수가 있었지요. 목이 마르면 목마른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우리들은 몸을 서로 비벼가며 위로했습니다. 이렇게 같은 꿈을 꾸던 우리를 사람들은 '씨앗'이라고 불렀고, 그 많은 씨앗 중에서도 '종자'라고 했지요. 참 농부는 굶어죽을 지언정 종자를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우리들은 튼튼한 씨앗들이었습니다.

 

어느 봄날, 농부는 약간의 소금을 푼 물에 우리를 집어넣고는 소금물 위로 동동 뜨는 쭉정이들을 골라내었습니다. 긴 겨울을 보내고도 알이 꽉찬 씨앗들만이 진정한 종자씨앗이 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지요. 비록 소금을 푼 물이긴 하지만 한 번 물맛을 본 우리들은 몸이 근질근질 난리가 났습니다. 성질이 급한 친구들은 벌써 싹을 틔을 준비가 다 되어 곧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농부는 산들산들 봄바람이 부는 날 우리를 가지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고슬고슬 잘 갈아진 좋은 밭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사이사이 밭과 밭을 오가기 위한 작은 길도 있었고, 흙보다는 돌이 더 많은 곳도 있었지요. 그 뿐 아니라 밭주변에는 가시덤불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농부가 손으로 씨앗을 술술 뿌리는 가운데 몇몇 씨앗들은 좋은 밭이 아닌 곳에 떨어지기도 했답니다. 농부의 손에서 흩뿌려지면서 우리는 모두 신이났고, 좋은 땅에 떨어지지 않은 친구들도 그 곳이 좋은 곳인지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기에 모두 최선을 다해서 뿌리를 내리자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농부가 밭을 떠나자 곧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야, 안 돼!"

 

거의 절규에 가까운 소리에 돌아보니 밭과 밭 사이 길가에 떨어진 씨앗들을 새들이 와서 쪼아먹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긴 겨울을 보내고 이제 막 겨우내 꿈을 꾸던 그 꿈을 시작하는 순간이 되었는데 떨어지자 곧 새들의 밥이 되다니 너무 허망했습니다. 딱딱한 땅에 떨어진 씨앗들은 기를 쓰고 뿌리를 내려보려고 했지만 이미 딱딱해진 땅은 그들을 받아주질 않았습니다. 결국 길가에 떨어진 씨앗들은 그들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모두 새들에게 먹혀버리게 되었지요.

 

그리고 며칠이 지나 돌짝밭 쪽에서 절규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목말라, 목이 마르다고."

 

흙이 적고 돌이 많은 곳에 떨어진 씨앗들도 최선을 다해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흙이 적다보니 뿌리를 깊게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이 싹을 올렸는데 그만 뜨거운 햇살에 거반 말라죽고, 남은 것들은 비바람에 모두 쓰러져버렸습니다.

 

또 얼마나 지났을까요?

 

"따가워, 따갑다고. 그만 좀 찌르면 안되겠니?"

 

가시덤불 사이에 떨어진 씨앗들은 햇볕을 제대로 보지 못한데다가 가시를 피해 자라느라 욱자란데다가 구불구불 기형적으로 자랄 수밖에 없었지요. 결국 그들도 열매를 맺지 못했답니다.

 

시간이 지나 추수의 계절이 돌아왔을 때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들은 심지어는 백 배까지 열매를 맺었고, 적어도 삼십 배 이상의 열매를 맺었지요. 물론 좋은 땅에 떨어졌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론 뜨거운 햇살과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 인정사정 없이 퍼붙는 소낙비도 넉넉하게 이겨낼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요. 씨앗이라서가 아니라 거듭밝히거니와 씨앗은 아무 문제가 없었답니다. 추수가 끝나고 우리들은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긴 겨울을 날 준비를 하며 또다시 우리의 엄마가 꾸었을 씨앗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씨앗이 떨어졌던 길가와 돌짝밭과 가시덤불이 서로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웠는데 꼭 한 가지에서만큼은 일심동체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씨앗이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불량씨앗이었기에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었다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지만 그 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옥신각신 말이 많았습니다.

 

"야, 돌만 가득한 돌짝밭아. 너는 어째 그렇게 귀가 얇냐? 그렇게 씨앗을 냉큼 받더니만 겨우 그 정도였냐? 한낮 뙤약볕도 버티지 못하고, 비바람 조금 불었다고 애써 싹틔운 씨앗을 몽땅 포기하다니. 말도 안 돼. 나는 너 같이 될까봐 아예 씨앗이 싹을 내릴 틈을 주지 않았어. 씨앗을 받아들인 척 하는 너보다 내가 훨씬 양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나야 본래 딱딱한 길인데 나한테 뿌리를 내리겠다고 떨어진 씨앗이 문제지."

 

"야, 씨앗 한번 품어보지 못하고, 씨앗의 뿌리를 한번 내려보지도 못하게 한 주제에 무슨 말이 많냐? 니가 씨앗이 뭔지를 알아? 씨앗이 떨어지는 족족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으니 씨앗이 품고 있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꼈을리가 없지. 그리고 내가 씨앗을 포기한게 아니고 씨앗이 불량씨앗이었다고. 정말 튼튼한 씨앗이었다면 그 정도에 말라죽거나 쓰러지지 않지. 씨앗이 문제였어. 암, 그렇고 말고."

 

"야, 너희 둘 다 똑같아. 오십보백보인데 뭐가 잘났다고 그러냐? 그래도 나는 비록 열매를 맺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아마 나처럼 가시를 찌르지, 덤불이 햇살을 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지레 겁을 먹고 그냥 썩어버렸을지도 모르지. 세상 살다보면 염려가 많고 유혹도 많은 법이야. 열매를 맺지 못하고 키만 껑충 컸다고 나를 욕하지 말라고. 씨앗이 좀더 실한 것이었다면 그까짓 가시덤불이 문제였겠어? 하필이면 비실비실 한 씨앗들이 떨어지고 말았지 뭐야."

 

좋은 땅에 떨어졌던 씨앗이 한 마디했습니다.

 

"얘들아, 나도 너희들이 열매맺지 못했던 씨앗들과 똑같은 씨앗들이었거든. 그런데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었어. 씨앗이 문제가 아니라 너희들이 문제였던 거야."

 

그러자 이구동성으로 열매맺지 못한 밭들이 외쳤습니다.

 

"저런 썩어빠진 씨앗이 있나! 내년에도 저런 씨앗이 떨어질까 겁난다. 애비!"

 

꿈에서 깨어난 씨앗은 등줄기가 오싹했지요.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옥신각신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는 씨앗에만 문제가 있다고 한 목소리를 내던 땅들의 날카로운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려오는 듯 쟁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과 그 아들의 아들......

이렇게 2천 년이라는 긴 세월이 훌쩍 넘어 그 씨앗은 어느 교회당 텃밭에 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2천 년 전에 있던 네 가지 밭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 네 가지 밭 중에서 좋은 밭은 아주 조금, 씨앗이 명맥을 이어갈 정도밖에는 남지 않았더랍니다.*

 

http://cafe.daum.net/wildplantschurch/Hqh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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