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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전도자들

사도행전 김남준 목사............... 조회 수 2829 추천 수 0 2012.04.10 23: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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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8:1-6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불타는 전도자들

2006-10-29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행 8:1-6).

 

I. 본문의 배경 (1-3절)

 

하나님의 교회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주님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참으로 능력 있고 순전한 공동체가 되어서 이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갈 때 교회 뿐 아니라 교회 안의 성도들도 하나님께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을 위해 교회는 유력하게 봉사할 수도 있고, 거의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오히려 거치는 교회가 될 수도 있는데, 이는 도대체 무엇이 교회를 능력 있게 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성령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능력 있게 이 사역을 감당하게 만드는 동인이 되긴 하나 언제나 교회의 몸을 이루는 각 지체들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즉 누군가가 그 말씀을 외칠 때, 누군가가 모여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려 기도할 때, 누군가가 성령이 충만해져서 그 놀라운 능력으로 영혼들을 섬길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이 세 가지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이루는 공동체로 삼으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말씀과 기도와 성령이 함께 하는 교회에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훌륭하게 섬기는 역사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등지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이 하나님께로 돌이켜 회개하는 일이 먼저 있지 않고서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을 위해 섬긴다고 할 때에 가장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개념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구령의 열정에 불타는 전도자입니다.

 

A. 스데반의 순교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은 스데반의 순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당시의 집사는 오늘날의 집사와 같지 않습니다. 뛰어난 영성과 탁월한 말씀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동시에 교회의 일을 아주 슬기롭게 처리할 수 있는 그런 놀라운 지혜와 인격을 함께 갖춘 사람들이었습니다. 보석처럼 소중한 이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인 스데반이 제일 먼저 순교의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지게 됩니다. 스데반 이전에 핍박이 있기는 했지만 이 스데반처럼 비참한 순교는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외친 예수가 곧 그리스도시라는 그 놀라운 구속사적인 설교를 통해서 우리는 그의 영성을 볼 수 있습니다. 설교가 끝나기도 전에 그는 돌에 맞아 죽었고, 그로 인해 그 설교는 완성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그 순교의 피를 머금고 복음은 온 땅으로 전해지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한사람의 죽음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B. 흩어지는 교회

 

예루살렘을 넘어서지 못한 복음이 스데반이 흘린 순교의 핏물을 타고 온 땅에 흩어지는 역사가 나타났으니 그것은 바로 흩어지는 제자들의 교회였습니다. 물론 이 일의 시작은 그의 죽음을 목격한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며 흩어진 것이지 무슨 특별한 사명이나 의미를 가지고 흩어진 것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흩어진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부탁하신 바를 결과적으로 이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나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곧 예루살렘을 넘어 이방의 땅에까지 복음을 전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흩어지지 않고 예루살렘에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바벨탑 사건을 생각나게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창조 시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온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온 이후 사람들은 이 명령을 어기고 오히려 자신들의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로 인해 그들은 언어의 혼잡을 이루고 온 지면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부어주신 성령의 놀라운 역사는 이 사람들을 온 세상에 파송하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을 하시기 전까지 유대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온 세계의 중심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한 복판이기 때문에 구원 얻을 사람들을 율법이 나온 예루살렘으로 보내실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승천하시고 성령의 시대가 임하고 나서는 이렇게 한곳에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선교가 아니라 교회 그 자체가 온 세계로 흩어짐으로써 그들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는 흩어지는 교회의 모델을 보여주셨습니다.

 

II. 불타는 전도자들

 

일시에 흩어진 이 제자들은 처음에는 두려워서 흩어졌으나 흩어진 그곳에서 복음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고, 어느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닌데 성령에 사로잡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복음전도의 역사가 일시에 온 땅으로 전해지는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핍박을 피해 잠시 예루살렘을 떠났지만 불타는 전도자들이 이 복음의 새 역사를 이루어갔던 장면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A. 핍박 아래 있는 공동체 (2-3절)

 

교회는 여전히 핍박아래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끔찍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흉악한 죄인들에게나 사용하는 형벌로 돌에 맞아 죽어갔으니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움과 경악에 가득 찬 심령이 되었을까요? 그래서 그들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더욱더 간절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핍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후에 변화되어서 바울이 될 사람이었지만 변화되기 전에는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이 도가 잘못되었다고 확신한 자였으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거스르는 악한 자들이기에 그들을 옥에 가두는 일에도 열심인 자였습니다. 이런 핍박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도 사도들은 복음을 전했고 제자들은 흩어진 그곳에서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B. 불타는 전도자들(4-5절)

 

핍박 속에서도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는 불타는 전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구령의 열정을 품고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이 역사를 크게 두 가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두루 다시는 사람들
첫째, 그들이 두루 다녔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그들은 예루살렘에만 모여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복음을 들고 두루 다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복음을 전할 만한 곳, 복음을 들을 만한 사람들에게만 전했지만, 이제는 복음을 듣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몸소 다가가서 전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본문 가운데 언급된 빌립은 사마리아성에까지 내려갔다고 되어있는데, 원래 사마리아 성은 유대인들이 지나다니기를 꺼려하던 곳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지방은 역사적으로 북 왕국 이스라엘의 땅이었습니다. 일찍이 앗수르에게 함락을 당한 후에 그들의 사민정책으로 인해서 외국의 많은 이주민들과 혼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들을 개 같이 취급하였으며, 율법을 어긴 부정한 자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놀라운 사랑은 빌립으로 하여금 유대인들이 가기를 꺼려하던 그 사마리아 땅까지 들어가 그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게 만들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어떻게 땅 끝까지 전해지게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복음이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는 서방세계에 은둔의 나라라고 알려졌습니다. 그 어떤 교역이나 왕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알려진 바가 전혀 없는 나라였던 것입니다. 이 은둔의 나라에 어떻게 복음이 들어오게 되었습니까? 복음 전하기 불편했던 이 나라에 수많은 선교사들이 와서 순교의 피를 뿌렸고, 그 피가 또 다른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 이 은둔의 나라에 발을 딛게 하였기에 지금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 아닙니까? 지금 중국에는 선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 땅을 섬기는 사람들이 5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놀랍고 위대한 일도 한때는 복음전하기 어려운 그 땅에 누군가가 가서 두루 다녔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 회복하는 도구로 부름을 받은 이 소명 앞에서 우리들이 제일 먼저 하여야 할 일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영혼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일이 없이 어떻게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올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래서 우리도 두루 다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갈수 없고 다닐 수 없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수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해야지 됩니다. 선교사 한사람을 보내기에는 너무 적은 인구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곳에 일군들을 보내야 합니다. 몇 명의 영혼밖에 구원하지 못하는 일들이 선교사의 일생을 통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곳까지 선교해야합니다.

 

몇 해 전 중국에 갔을 때 평생 잊을 수 없는 깊은 감동을 받은 선교 실화 하나를 들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하여 더 이상 운영할 수 없어 문을 닫게 된 중국 벽지의 한 학교를 어느 교회가 인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은 사람이 살기에는 최악의 환경을 가지고 있는 터라 각종 편의 시설을 만들어 주며 주민들과 친숙한 관계를 이루어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관계자들이 그곳을 방문하게 될 일이 생겼는데 그곳 주민들은 그 누구도 가르쳐 준 적이 없는 찬송가를 부르며 이들을 환영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 마을은 이미 100년 전에 선교사 두 사람이 들어와 순교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했던 곳이었고, 그렇게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지금까지 저들에게 이어져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죄와 정욕에 빠져 범죄하고 세상 사랑에 빠져 미끄러진 자들은 이런 구령의 열정이 꺼진 사람들입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영혼들을 품고 눈물로 섬기는 사람들은 그런 일로 인생을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년 국내외 아웃리치를 통해 복음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찾아가 섬깁니다. 그런데 왜 그 사역에 동참하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사역들을 감당하면서 올해 저의 마음속에 강력한 소원 하나가 생겼습니다. 15-20가구도 살지 않는 작은 섬들, 저들을 섬길 교역자가 없는 그런 섬들을 은퇴 후 섬기고 싶은 것입니다. 은퇴한 장로님, 은퇴한 권사님들과 함께 교회가 파송해주는 섬으로 쪽배를 타고 다니며 복음을 전하면서 일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물에서 뜨고 내리는 작은 비행기가 있어도 참 좋겠습니다. 주일이면 그 비행기를 타고 몇 개의 섬을 돌면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함께 예배드리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섬김은 가슴을 설레게 만듭니다.

 

2. 복음 전하는 사람들

 

둘째, 이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긴 했으나 복음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단지 착한 일로만 그들을 섬겼다면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교회가 성령을 받은 공동체요, 말씀이 있는 공동체요, 그리고 살아있는 기도에 의해서 역사하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제자들은 온 마음을 다하여 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었고,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고 배향하며 살아가던 인간들이 돌이켜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만드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였습니다.

 

섬길 힘과 자원이 우리에게 남아 있을 때 두루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이 복음을 전해 주십시오. 저들이 복음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주님의 사랑을 전해주기만 하면 그곳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는 복음이 전해진 곳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예수님의 가슴 저미는 사랑을 전하십시오. 우리도 그렇게 전해주는 자가 있었기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III. 복음 전도의 세 열매 (6-8절)

 

이런 복음이 전파되었을 때에 순종과 자유와 기쁨이라는 세 가지 열매가 나타났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A. 순종하게 함 (6절)
첫째는 순종의 열매입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나타난 첫 번째 열매는 사람들로 하여금 순종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제자들의 말에 순종하게 되었는데, 이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으니 그들이 청종한 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복음 전도의 목적은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순종함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무엇입니까? 많은 종교들 가운데 유독 이 기독교를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이 세상이 왜 존재하며, 자신들은 무슨 이유로 창조되었고, 어떻게 살아야 참으로 인간답게, 참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자들이 너무나 불쌍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을 거스르며 살던 자들이 돌이켜 그분께 순종하며 사는 것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기뻐하시기에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접붙여져 주신 말씀과 은혜를 따라 순종하며 사는 사람, 그 사랑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이 되게 하기 위해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반역,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이 모든 고통과 죄악의 뿌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복음은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B. 자유하게 함 (7절)
둘째는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자유의 열매였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기 전까지 이들은 귀신들리고 질병으로 고생하는 인간들로서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모두 죄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마음과 영혼에 온전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그 모든 자유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사단에게 사로잡히고 악령에게 붙잡혀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영혼의 속박과 몸의 속박을 느끼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은 그들을 즉각적으로 자유케 하셨으며,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귀신에게 얽매였던 사람들은 그 귀신이 떠나가고, 악령에게 사로잡혔던 사람들은 자유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억압받지 않은 일체의 자유로운 영혼과 마음을 가지고 주 하나님을 높이고 찬송하며 온전한 자유 속에서 인간됨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물질이 없어서 당하는 속박보다 무서운 것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속박입니다. 무엇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그 속박들을 하나님께서 성령의 놀라운 역사로 끊어내지 않습니까? 불신자들 뿐 아니라 신자들 가운데서도 얽매여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가난에 얽매인 사람, 육신의 질병에 얽매인 사람, 무엇보다도 마음에 미움과 원망과 한으로 얽매인 사람, 그리고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해서 얽매인 사람,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유롭게 살아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렇게 얽매인 것들을 끊어버리고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놀라운 힘이 이 복음 속에 있습니다. 누구도 치유해줄 수 없었던 그 상처를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치료하시며, 자유케 해주십니다.
한번 눈을 들어서 주위를 두루 살펴보십시오. 얽매인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십시오. 인생 자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서 그들의 얽매인 것을 끊어줍니다. 그리고 자유를 가져다줍니다.

 

C. 기뻐하게 함 (8절)
셋째는 기쁨의 열매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기쁨을 가리켜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놀라운 기쁨은 세상의 물질이나 번영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기쁨입니다. 복음을 듣고 죄 사함을 입으며, 사슬에 얽매인 것들을 풀어주실 때, 우리의 영혼에는 한없는 위로와 놀라운 기쁨이 생겨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의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죄 때문에 기뻐할 어떤 가능성도 희망도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슬픔과 고통은 그분이 담당하게 하시고, 우리에게는 그 복음을 들을 때 기쁨의 열매가 맺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하늘의 복락을 누리며 살게 하셨으니 이 어찌 하나님의 놀랍고 큰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놀라운 은혜는 무엇 때문에 주신 것입니까?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6). 우리는 바로 그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복음을 통해 기쁨의 열매가 우리 이웃들에게 맺히기 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먼저 맛본 우리들이 이 기쁨의 열매를 맺고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자신이 복음 때문에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인가 일이 안되고 어려움이 올 때마다 여러분들이 받지 못한 것을 생각하지 말고 이미 받은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로 여러분들을 구원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잃어버린 것을 인해서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구원해 주셨고, 또 복음이 있는 교회에 모으시사 사랑하는 지체들과 돌보는 목자들을 주셨는데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고난이 오면 믿음으로 딛고 일어설 수 있고, 시련이 오면 주께서 내게 주신 사랑을 생각하며 찬송할 수 있는데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이런 기쁨의 놀라운 은혜는 복음의 역사를 통해 맺게 되는 것입니다.

 

VI. 전도의 동기: 까리타스(caritas)

 

그러면 이들이 복음을 전하게 된 동기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까리따스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A. 전도의 두 동기
복음을 전파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그 동기는 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과 그 사랑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게 된 것이 그것입니다.

 

1.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갈망
첫 번째 동기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갈망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분의 창조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이 어떻게 그분의 영광을 밝히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거스르며 살던 사람들을 복음을 통해 돌이키게 함으로써 그분의 창조목적을 성취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 아파합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의 동기이며, 이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을 때에 생겨납니다.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외적인 갈망은 이미 자신 속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에 비례합니다. 내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가 시작되고 그 사랑에 감격하는 삶을 살면 내 안에 이루어지는 것과 똑같은 내 밖에서도 동일하게 이뤄지길 소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다양한 전도 방법과 지침들이 소개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빛이 바래지 않는 하나님의 전도 방법은 개인 전도입니다. 그 개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사람, 복음에 의해서 순종하고 그 복음 때문에 기뻐하고 그 복음 때문에 자유를 누리게 된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는 불쌍한 자들에게 눈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 그 말씀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꽂혀서 서로 사랑하며 살게 된 교회, 온 공동체가 하나 되어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교회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이 일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매주일 우리는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리고 흩어질 때 우리는 날마다 파송되는 마음으로 세상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곤고한 사람들, 고통 하는 사람들, 진리를 알지 못하여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2. 인간 영혼에 대한 사랑
둘째는 영혼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반드시 인간의 영혼에 대한 사랑을 내포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해답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얽매이고 꼬인 저들의 모든 문제들을 풀어주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새롭게 섬기며 살아 갈수 있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으로 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신자가 한 교회에서 이 삼 십년을 봉사하였다는 사실이 지금 그 영혼이 살아있음을 입증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잃어버린 영혼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있다면 그 영혼은 건강한 것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인생을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사업의 위기를 만나서, 시험에 들어서, 곤고해서, 내 영혼이 그냥 불쌍해서 눈물 흘린 적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것 말고 다른 사람의 영혼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얼마나 됩니까? 이 사랑을 회복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사들을 해외로 파송하면서 저는 가끔씩 이런 말을 해줍니다. “그대들을 왜 그곳으로 파송하는지 압니까? 가엾은 영혼들을 위해 성도들은 이곳에서 울고 그대들은 현지에서 울게 하기 위해서 파송하는 것입니다.”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B. 전도함으로 유지되는 부흥의 갈망
전도하는 일이 이처럼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이 교회에 부흥을 주셔도 그 부흥의 불길은 전도함으로써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에 사도들을 보십시오.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만나면 온 공동체가 하나 되어 일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위로와 충만함을 저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저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기도가 응답된 것으로 만족하며 그 자리에 머물렀습니까? 아닙니다. 눈물을 씻고 그들은 다시 핍박이 가득한 거리로 나아가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를 통해 지펴진 부흥의 불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예화: 초등학교 조개탄 이야기).

 

주일날 은혜를 받고 가도 토요일까지 아무런 섬김도 없이 살아간다면 그 은혜의 불은 꺼지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워진 마음으로 또 다시 주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십시오. 영혼들을 섬기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불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V.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눈물이 흐르게 하라

 

저는 가끔 이런 장면을 목격합니다. 전도를 받는 사람은 울지 않는데 전하는 사람은 하염없이 우는 장면 말입니다. 얼마나 완악한 자인지 내가 전하는 복음을 믿지도 않고, 전해주는 전도지도 밟아버리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도 한때는 저렇게 완악한 죄인이었는데, 왜 나를 이렇게 사랑하십니까? 저들의 마음에는 이렇게도 믿어지지 않는데 내 마음에는 믿어지게 하셨으니 예수가 오신 것이 나에게는 정말 기적입니다.’ 그리고 내가 믿어지는 이 복음이 너무나 소중하고 놀라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영혼을 향해 흐르는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리차드 벡스터(Richard Baxter)목사님은 회심하지 못한 영혼을 향해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사람은 누군가가 대신 울어주어야 할 만큼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을 피와 땀과 눈물 속에서 전해지는 것이지 기업형 홍보에 의해서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더 많이 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통곡하며 우셨던 이유도 결국은 영혼들 때문이 아니셨습니까? 우리에게 그 눈물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영혼을 위해서 흐느끼는 눈물이 있으면 우리가 다툴 수 있습니까? 영혼들을 위해서 함께 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로 기도할 수 있다면 용서해주지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VI. 결론

 

하나님께서 교회를 능력 있게 하시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교회는 언제나 그 사랑에 불타는 전도자들이 필요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 이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그들로 하나님께 복종하게 만드는 눈물 어린 헌신이 필요합니다. 누가 이 일을 하겠습니까?

 

나눔의 시간
1. 지난 주간의 말씀 “마음으로 드리는 착한 섬김(행9:31, 36~39)”을 듣고 실천 했던 삶이나 한 주간 받은 은혜를 말해 봅시다.
2.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경륜은 무엇입니까? 큰 핍박이나 어려움을 통해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았던 경험들을 말해봅시다.
3. 흩어진 사람들이 온 땅을 두루 다니며 무엇을 전했습니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불타는 전도자 의 삶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4. 복음전도의 세 가지 열매는 무엇입니까? 그중 자신이 처음 복음을 듣고 느꼈던 경험을 말해봅시 다.
5.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두 가지 동기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구역(순)에서 놓고 기도하는 영혼이 나 전도하기 위해 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봅시다.
200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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