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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다를 위하여
마르다라는 이름은 그녀의 동생 마리아와 같이 쓰여야만 기억이 나는 이름으로, 동생을 꾸중하려다 예수님께 한
말씀을 들은 여자로만 기억되는 것같은데 제 생각은 조금 다르기에 그 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두 자매의 이야기가 처음 나오는 곳은 누가복음 10장 38절인데,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 분을
대접하고 싶어 자기 집으로 초대한 사람은 마리아가 아니라 마르다입니다. 그 때만해도 마르다는 예수님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분쯤으로 알고, 몸이 약한 남동생 나사로의 건강을 위하여 도움을 얻을 수있을까 기대를 하고 초대했지
그 분이 구세주이실 줄은 몰랐던 것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때문에 갑자기 몰려든 많은 손님들을 혼자서 대접하기에
힘이든 마르다는 자기 말을 잘 안 듣는 여동생에게 자기를 좀 도와주게 하시라고 예수님께 부탁을 드린 것같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한가지면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의 능력 때문에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증거가 요한복음 11장 24절에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에
나타나듯이 부활을 믿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또한 27절 말씀을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합니다. 이제는 주님이 구세주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사도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고백보다 먼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마르다의 믿음이 자랐고,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도우시려고 그녀의 동생 나사로를 무덤에서
부르심으로, 살아서도 부활이 있음을, 다시 말해서 중생이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이 세 번 나오는데, 첫 번째는 바리새인 시몬 집에서 ‘죄 많은 여인’이
주님의 발에(눅 7:37), 두 번째는 유월절 엿새 전에 마리아가 주님의 발에(요 12:3), 세 번째는 ‘한 여인’이
유월절 이틀 전에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주님의 머리에(마 26:7) 부었습니다. 처음 두 여인은 예수님 발에
부어 죄사함과 구원의 감사 표시를 했다면, 세 번째 여인은 머리에 부음으로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과 그 분의
영광을 표현했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직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서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마 26:13)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제 생각에는 마르다인 것같습니다. 그 이유는 마르다의 집과 같은 동네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며, 동생 나사로를 부활로 돌려 받은 마르다가 주님이 자기 동네에 오신다는 데 그 곳에 안 갔을 리가 없고,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을만한 믿음이 있는 여자는 그 당시 마르다뿐이었을 것같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마르다에
대한 제 변론을 마치려 합니다. 제 나름대로의 결론은 자기 동네에 오신 주님을 영접하고, 대접하려고 힘썼던
마르다를 혼내기만 하시고 그냥 내버려두실 리가 없는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혹시라도
성경을 읽는데 도움이 됐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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