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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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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겔3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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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는 길 (에스겔 33징 1-9절)
이번 주에 약 850페이지짜리 이사야(하) 설교파일을 완성해 공개했습니다. 35번째 설교파일입니다. 이제 2023년에는 성경 전권 파일이 완성됩니다. 엄청난 콘텐츠이고 대역사입니다. 계속 수정작업을 거치면 천년 역사에 남을 대 문서가 될 줄 믿습니다. 땀은 결코 배반이 없이 언젠가 반드시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교회가 작아서 외부로 덜 돌아다니며 땀을 흘리자 오히려 내적인 뿌리가 크게 내려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에게는 고독과 광야의 순간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네트영어도 비전을 따라 착착 준비되고 있고, 온라인 새벽기도도 회원이 6000명이 넘고 목사님 회원도 2000명이 넘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많은 내용적인 은혜를 주셨지만 이제는 인력과 물질의 외형적인 은혜도 추구해야 합니다. 지금 형편에서도 7500만 원 예산이 드는 총회를 비롯해서 나눔과 선교를 힘써 실천하고 있는데 앞으로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재정을 주시면 얼마나 잘 쓰겠습니까?
2008년에 우리 교회 인테리어를 무상으로 해주신 집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은 인테리어 업계에서 아주 잘 나가던 집사님이었는데 2006년에 큰 건물공사의 돈을 못 받아 부도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고독과 광야의 때를 지나며 2년 동안 거의 폐인처럼 지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교회 공사를 맡으면서 2달 반 동안 한 푼도 받지 않고 헌신해서 공사를 끝냈습니다. 하나님이 그 헌신을 보시고 다시 재기하게 하셨습니다.
며칠 전에 그분이 45억 병원 인테리어 공사를 땄습니다. 원래 60억 이상의 공사였는데 낙찰 금액이 낮아 수익이 잘 나지 않는 상황이어서 제가 도전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집사님!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정직하게 하면서도 수익이 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세요. 무엇보다 잘 쓰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잘 벌 수 있는 지혜도 주실 것입니다.” 집사님이 그 도전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이틀 전에는 한 장로님과 식사했습니다. 그분은 가구점을 하며 하나님께 충성했습니다. 그러자 크게 축복 받아서 그 가구점이 수지 가구 단지에서 제일 커졌고 2009년에는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 후 그분이 섬기는 교회가 원로 목사님의 은퇴 문제로 두 파로 갈리며 크게 시끄러워졌습니다. 장로님도 어쩔 수 없이 싸움의 한 복판에 서면서 반대파 교인들에 대한 미움이 생겼고, 언어도 거칠어졌고, 가끔 피켓도 들고 시위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만나면 매번 한 맺힌 소리로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럴 수 있습니까?”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문제로 마음을 쓰니까 사업도 점차 무너졌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분의 하소연을 다 들어주었지만 만날 때마다 계속 그런 안 좋은 얘기만 들으니까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장로님의 영혼이 곤고해졌습니다. 그래서 지난 번 만났을 때는 그 갈등의 현장에 몸담지 말고 이전처럼 조용히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이틀 전에도 또 확실히 도전했습니다. “장로님! 사회가 아름답고 건강해지려면 돈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돈을 열심히 잘 벌어서 나누어야 합니다. 장로님이 재능을 살려서 돈을 벌어야 할 시간에 아무리 옳은 입장에 섰다고 해도 그렇게 같은 교인을 미워하고 갈등하는 현장에 있으면 어떻게 사업을 일으켜 사명을 다하겠습니까? 이제 싸움에 개입하지 말고 다시 멋지게 사업을 일으켜서 더욱 크게 쓰임 받는 준비를 하세요.”
정말 애정이 넘치는 마음을 가지고 부드럽고도 간곡하게 도전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진심으로 그 도전을 받으시고 미움과 갈등의 현장에서 벗어나 자기 사명과 사업에 보다 전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그런 도전이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그 소중한 시간에 사명감을 가지고 잘 벌어서 잘 써야 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내용은 어느 정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잘 나누려면 외형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너무 많습니다. 도와야 할 곳도 많고 도와야 할 선교사님도 많습니다. 그 일을 잘 감당하려면 교회 외형도 커져야 하고 성도님들도 자체 역량도 커져야 합니다. 그런 역량들이 모일 때 우리 교회는 한국 교회와 세계 선교에 보다 더 헌신하며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려면 >
우리 교회는 꿈도 크고 좋은 콘텐츠도 가졌지만 아쉽게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도의 열정입니다. 전도 없이 부흥을 꿈꾸는 것은 마치 감나무 아래에서 저절로 익은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열매 맺는 전도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전도의 사명을 인식하십시오
요새 둘만 즐겁겠다고 자녀를 낳지 않고 사는 부부가 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그 즐거움이 불행과 외로움으로 변해 돌아옵니다. 자녀가 없는 삶은 앙꼬 없는 찐빵이고 태양이 없는 지구와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은 자녀가 잘 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혼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던 사도 바울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복음으로 낳은 믿음의 자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말씀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 사랑하는 자녀!”라고 하며 “내가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믿음의 자녀들이 그의 중요한 행복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런 믿음의 자녀가 있어야 영혼은 진정한 행복을 느낍니다. 지금 스스로 질문해보십시오. “지금까지 나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믿음의 자녀는 몇 명인가?” 그런 믿음의 자녀가 거의 없다면 자신의 축복가도와 천국상급에 심각한 위기상황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전도는 상급과 심판을 좌우하는 최대 요소입니다. 특히 자신과 연결된 영혼을 전도하지 않아서 그 영혼이 멸망하면 그 멸망에 대한 연대책임이 자신에게도 있습니다. 그런 연대책임을 강조한 성경의 가장 유명한 본문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만약 파수꾼이 자기 책무를 다하지 못해서 백성들이 멸망하면 파수꾼이 그 멸망의 책임을 져야 하지만 파수꾼이 자기 책무를 다했어도 백성들이 파수꾼의 경고를 무시하고 멸망하면 파수꾼은 그 멸망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자신과 연결된 사람의 멸망에 대한 연대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힘써 전도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전도를 못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전도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면 신기하게 전도가 됩니다. 전도는 전도의 은사를 가진 성도만의 특별한 사명이 아니라 모든 성도의 공통된 사명입니다. ‘시도해서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시도조차 안하는 것’은 죄입니다.
어떤 전도왕 집사는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스스로 전도를 못할 줄 알고 다른 봉사만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시골에서 이사 온 한 여집사가 매주 전도해서 여러 명을 등록시키는 것을 보고 자신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삼일동안 철야기도를 하며 전도할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구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매일 15가정 정도를 방문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았지만 결국 매년 100명 이상을 전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도는 하면 됩니다. 문제는 주저하면서 안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간단히 말하면 전도하지 않으면 화가 있고 전도하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하면 누군가 살면서 내게 복이 오고 내가 전도하지 않으면 누군가 죽으면서 내게 화가 옵니다. 그렇다면 전도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구원이 없는 사람입니다. 구원이 없다면 재벌도 스타도 판검사도 다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한 교수가 100명의 스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들의 스트레스는 보통 사람들보다 평균 4배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사생활이 거의 없고, 문만 나서면 스트레스를 받고, 삶이 목마르고 외로워서 평균 수명이 보통 사람보다 15년이 짧다고 합니다. 구원이 없는 상태에서 스타가 되고 성공하면 그것이 오히려 불행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불행한 영혼을 구하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잃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빛을 이웃에게 비추는 사랑의 반사경이 되십시오. 그때 능력도 나타나고 전도도 이뤄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정한 사람은 ‘희대의 살인마’가 아니라 ‘전도하지 않는 성도’입니다. 이제 최선을 다해 전도하십시오. 전도해서 한 영혼을 구하면 전도한 사람과 전도 받은 사람 모두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남고, 또한 천국의 큰 상급도 주어질 것입니다.
2. 전도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사실 불신자처럼 성도이게 주어질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습니까? 응답이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도는 기도를 제일 못하겠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 기도 응답을 믿지 못하고 기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묻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면 기도를 잘합니까?” 그러나 기도는 잘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하는 기도가 응답 받는 기도는 아닙니다. 그저 진실하게 하면 됩니다. 어떤 분은 또 묻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면 기도를 많이 합니까?” 그 질문도 그가 기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한다는 반증입니다. 왜 밥을 먹습니까? 배고프니까 절실하게 필요해서 먹는 것입니다. 그처럼 영적인 배가 고파 기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야 합니다.
지금 잃어버린 영혼을 보고 내 영혼의 부족한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기도의 필요성이 절실합니까? 세상에서 제일 교만한 사람은 이렇게 뻐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도움 없이 혼자 잘해보겠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그처럼 하나님 없이 혼자 해보겠다는 것과 같기에 무엇보다 큰 교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땅 집고 헤엄치기로 얻을 수 있는 축복입니까?
주기도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처럼 하나님이 정말 우리 아버지라면 기도할 때부터 이미 응답은 주어진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 좋은 것을 하나님이 기도를 통해 주시겠다는데 얼마나 다른 빽이 든든하면 기도를 안 합니까? 기도는 일이 일어난 후에 하면 이미 늦습니다. 그러므로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텔레비전 채널을 잠깐 쓰는데 얼마나 돈이 듭니까? 그러나 기도 채널은 공짜지만 그 채널을 통해 놀라운 응답과 축복이 흘러듭니다. 그 채널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뚫은 값진 채널입니다. 그처럼 값진 채널이지만 사용료는 공짜인 그 채널을 왜 놀립니까? 주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쏜살 같이 시공간을 초월한 응답이 오는데 왜 그 채널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싼 게 비지떡이고 공짜는 개떡인 줄 알고 기도를 등한시하지만 공짜인 기도 채널은 가장 가치 있는 채널입니다. 그 채널을 사용하십시오.
어떤 사람은 전도하고 싶은데 발이 떨어지지 않고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도 스스로 전도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전도자도 기도를 통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안 하면서 전도할 수 없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이제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에 나서십시오.
3.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전도할 때는 기도해서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심정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왜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창조적인 능력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심정을 그대로 가졌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습니까? 그들이 예수님의 심정을 똑같이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이 없음을 한탄하지 말고 주님의 심정이 없음을 한탄하십시오.
어떤 사람은 자신은 아무 것도 몰라서 전도를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기에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만 가지면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도 대개 무식했지만 예수님의 심정을 가졌기에 성령의 감동을 받고 죽음이 예견된 현장으로 목숨 걸고 들어가 엄청난 역사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누구나 주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훌륭한 전도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예수님은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성령님이 없으면 전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 학문, 신분, 재산만으로 누구를 설득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지금은 위대해보이지만 2천 년 전에는 소외된 지역인 갈릴리 나사렛에서 태어난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엉성한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며 어떻게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때 태어났으면 우리도 예수님 죽이라고 앞장섰을 것입니다. 외적으로 봐서 그 모습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입니까? 결국 당시에 초라한 사람들이 초라한 예수님을 전하는 일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잘 전하려면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의 삶을 세상 속에서 재현하며 죽기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입니다.
무지한 제자들도 성령의 감동에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반면에 지금처럼 목숨의 위협이 없는 좋은 환경 속에서도 전도하지 않고 그저 팔짱만 끼고 구경만 한다면 얼마나 주님이 답답하시겠습니까? 주님의 제자들은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고, 화형을 당해 죽고, 돌에 맞아 죽고,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 죽고, 목이 잘려 죽었는데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제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이 땅에서의 유일한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목숨을 던질 정도로 최선을 다한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값진 인생이 되겠습니까? 그 소중한 인생을 허랑방탕하게 내버리지 마십시오. 탕자가 누구입니까?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담 없이 자기 축복만 챙기려는 사람이 탕자입니다. 이제 그런 탕자가 되지 말고 열심히 전도함으로 천국의 상급을 예비하십시오.
< 전도의 부담을 가지십시오 >
어떤 집사님은 한 영혼을 전도한 것이 너무 감사해서 감사헌금을 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립니다. 왜 그 사람이 사는데 자신이 감사합니까? 예수님의 심정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심정이 없다면 날라리 신자와 같고 그러면 전도도 잘 안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시대가 전도가 힘든 시대라지만 사실상 전도가 안 되는 근본이유는 시대가 그래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심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전도 못하는 것에 대해 핑계하지 마십시오. 핑계는 결국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신이 진정 구원받았다면 그 소중한 구원을 누군가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런 예수님의 심정 없으면 그는 진정한 성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전도하려고 하면 주님이 정말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무개야! 네가 내 심정을 가졌구나!” 바로 그때 그가 무엇을 구해도 주님이 그의 소원에 동의해 주실 것입니다.
복음은 십자가의 아픔으로 생겨난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런 십자가의 아픔에 대해 감격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때 전도가 됩니다. 그처럼 받은 은혜에 감격하는 마음으로 전도하면 나중에 그 상급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회사에서 사장이 자기 수고를 알아주어도 기쁜데 하나님이 우리의 수고를 알아주시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나중에 천국에서 영혼 구원한 것을 보상해주실 때 우리의 영적인 연봉은 하늘이 진동할 것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사람들이 비웃었을 것입니다. “젊은 놈이 예수 복음 전한다고 하더니 꼴좋다.” 그러나 그의 꼴은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죽을 때 성경에서 단 한번 나온 표현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서 일어서서 그의 영혼을 맞이했습니다(행 7:55). 그처럼 목숨 걸고 전도하면 그만큼 영혼의 때가 찬란할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 하나님이 벌떡 일어나서 영접하며 “아무개야! 수고했다!”고 하신다면 그 축복을 다른 어떤 축복과 비교하겠습니까?
이제 전도 명령을 부담으로만 받지 마십시오. 오히려 전도의 부담을 가지십시오. 진짜 부담되는 일은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멸망과 질병과 저주와 상처를 보고 부담을 느끼시고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요새 많은 성도들은 부담 주지 말라고 합니다. 얼마나 복이 없는 언행입니까?
요새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는커녕 그저 배은망덕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교인은 종교인이지 성도가 아닙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지 못하고 전도에는 도대체 관심도 없고 예배 의식 속에만 빠져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완전히 젖고 피조물과 독생자의 목숨을 맞바꾼 하나님의 심정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죽어가는 영혼이 불쌍하게 여겨지고 전도도 자연스럽게 나올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제 2회 태신자 전도운동을 시작합니다. 이번 태신자 전도운동을 성공시키면 <300명 등록 교인>의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교회의 때가 열릴 것입니다. 그런 축복의 때를 위해 이번 태신자 전도운동은 씨를 뿌리는 작업입니다. 무슨 축복이든지 파종도 하지 않고 축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땀으로 파종하면 반드시 언젠가 열매 맺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요새 매일 새벽마다 판교에 사는 저의 친구 부부가 저희 교회에 와서 같이 뜨겁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5살 때부터 친구인 47년 죽마고우입니다. 우리는 중학교 2학년 때 한 친구의 전도를 받아 서울 종교교회에서 뜨겁게 기도하며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회심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믿음이 흐지부지 되었다가 저는 대학교 4학년 때 하나님께 다시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 친구는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는 공부를 잘해서 전국 예비고사 2등을 했고, 서울대 기계공학과 대학과 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에 스탠포드 대학원에서 단기간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가 미국 서부의 스탠포드에 있을 때 저는 미국 동부의 뉴욕에 있었는데 가끔 전화와 편지로 그 친구를 전도했습니다. 그렇게 씨를 뿌리자 마침내 때가 되어 그 친구도 하나님을 다시 뜨겁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참 돌아서 다시 우리 교회에 와서 같이 뜨겁게 기도하며 매일 새벽다가 저에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
전도의 씨를 뿌리면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의 생각을 초월한 방법으로 신기하게 맺어진 열매를 취하는 날이 옵니다. 성경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성장할 수 있고 앞으로 더욱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영혼 구원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큰 축복과 상급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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