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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딛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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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영혼을 지키는데 필요한 3가지 (딛 1:1-4)
< 강철 영혼은 없습니다 >
세상에는 두 종류의 증거가 있습니다. 한 종류는 생명과 축복의 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증거이고 또 한 종류는 사망과 저주의 도를 전하는 마귀의 증거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뒤에서 사주해 사망의 도를 전합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자 마귀는 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하와! 정말 사랑의 하나님이 선악과 먹지 말라고 했어요?”
질문에서 벌써 악한 의도가 느껴집니다. 그러면 당장에 대화를 끊고 뱀의 유혹을 물리쳐야 하는데 하와는 그 말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했습니다. 언뜻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 같았고 마귀는 자신을 더 생각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말에 미혹되어 결국 선악과를 먹고 천국을 잃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유혹의 말이 얼마나 많습니까? “선생님! 매주 교회에 나가야 꼭 복을 받습니까?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처럼 마귀는 부담되는 것은 다 형식이라고 하면서 집요하게 영혼을 실족시키려고 합니다.
요새 말 중 ‘먹튀’란 말이 있습니다. ‘먹고 튀는 사람’이란 말로 ‘이익만 챙기고 도망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더 나쁜 먹튀가 있습니다. 백지 같은 깨끗한 마음에 잘못된 말로 ‘먹물을 튀기는 사람’입니다. 그처럼 깨끗한 마음에 먹물이 튀기면 그 마음을 정화하는데 내일의 꿈과 비전을 위해 써야 할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그러므로 잘 분별해서 마귀의 증거라고 여겨지면 한 마디도 귀담아 듣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강철 영혼은 없습니다. 방심하면 마귀에게 당합니다. 마귀는 교회에서도 별일 아닌 일로 기분 나쁘게 해서 영혼을 실족시킵니다. 심지어는 꿈속에까지 나타나 목회자까지 실족시키려고 합니다. 아마 마귀의 제일 공격 타깃이 목회자일 것입니다. 어제는 제가 마귀의 공격 타깃이 되어 꿈속에서 유혹을 받아 지리산까지 갔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이 막아주셔서 유혹에 빠지기 직전에 꿈에서 깨었습니다. 그때 꿈에서 깨자마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런 일이 현실이 되지 않게 저를 지켜주소서!”
< 영혼을 지키는데 필요한 것 >
지금도 호시탐탐 마귀는 영혼을 노립니다. 어떤 때는 엉뚱한 오해로 인간관계가 틀어지게 합니다. 어떤 성도는 꿈속에서 목사님이 자기를 욕했다고 교회에 안 나옵니다. 그처럼 마귀는 생각과 꿈속에까지 파고들어 집요하게 영혼을 무너뜨리고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영혼을 지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1. 믿음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1절). 사도 바울의 제일 소원은 성도들이 굳건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목회하다 보니까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왜냐하면 의외로 잘 믿는다는 성도들도 믿음이 수시로 흔들리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믿음으로 사명을 따라 살기보다 믿음 없이 사람을 따라 살다가 영혼과 육신이 망가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요새는 무속적인 신앙이 심각합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교인 중에 3분의 1이 점집에 가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 리더를 보면 말과 행동과 기도가 상당히 무속적입니다. 무속인처럼 귀신 쫓는다고 살구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때리지 않았을 뿐이지 전반적인 신앙의 틀은 무속신앙과 거의 흡사합니다.
요새 제일 경계해야 할 무속적인 모습은 “당신 사명 받았다!”는 말을 남발하는 것입니다. 가정문제로 어려운 사람에게 “당신 사명 받아서 그렇다.”고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사업에 실패한 사람에게 “당신 사명 받아서 그렇다.”고 성찰의 기회를 박탈하고, 병자에게 “당신 사명 받았는데 딴 일을 해서 그랬다.”고 하며 목회자가 되라고 합니다. 그처럼 가정이 깨지고, 사업에 실패하고, 병자들만 사명을 받으면 교회가 병든 리더들의 집합소입니까?
사업에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고 또 실패하면 또 도전해서 사업에 성공하려는 것도 성도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사업에 실패했다고 무조건 신학교에 간다면 그것은 일종의 도피가 됩니다. 그런 도피자로부터 양육 받으면 배우는 것은 ‘도피, 기복주의, 성공주의, 물량주의’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커져도 결국은 교회가 기복주의 집단처럼 세상 사람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교회 전체가 공멸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얼마나 우습게보겠습니까? 이제는 실패한 사람만 신학교를 찾지 말고 성공한 사람도 신학교를 찾는 진짜 사명을 따라 좁은 문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이제는 대학에 떨어지고 입사시험에서 떨어지고 고시에 떨어진 사람만 신학교에 가지 말고 명문대학에 붙고 입사시험에 붙고 고시에 붙은 후에 과감히 그 자리를 포기하고 신학교에 가는 사람도 많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현재 잘 나가는 사람이 목회자의 사명을 가지는 경우는 아주 적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을 잘 이끄는 성품은 목회자의 기본 자질입니다. 그래야 더 큰 가정인 교회를 잘 이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정을 잘 다스리는 건강한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라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불신을 받는 가장 큰 원인은 가정과 사회에서의 소임도 다하지 못하는 병든 영혼이 사명을 받았다고 신학교에 가는 것 때문입니다. 그처럼 무조건 사명을 받았다는 말을 남발하는 무속신앙은 교회를 구조적으로 병들게 하는 제일 원인입니다.
일전에 한 장로님은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어느 날, 그분 아들이 병원에 있을 때 출처를 모르는 어떤 분이 안수기도를 해주겠다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즉 그 장로님이 1대 신앙이고 아들은 2대 신앙으로서 2대가 믿으면 그 중에 하나는 주의 종이 되어야 하는데 그 사명을 버려서 아들이 병들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자기나 아들 중에 한 명이 신학교에 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과 불안이 생겼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가정에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그 말만 생각나게 생겼습니다.
그때 제가 장로님에게 그런 말에 절대 동요하지 말고 마음에 평안과 확신이 있으면 그 평안과 확신을 따라 진로를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무속적인 말을 귀담아듣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의지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하나님만 붙잡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통해 장로님이 고민과 불안에서 즉시 해방되었고 얼마 후 아들은 건강을 회복하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무속적인 말 한 마디면 장로도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만큼 영혼을 노예로 만들려는 무속적인 말은 위력이 큽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처럼 예수님 안에서 사망과 저주가 다 물러갔는데 조금 어렵다고 그 약속을 의심하고 무속적인 말에 흔들리면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천국 가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평안과 안식이 넘치는 삶을 가져다주는 능력의 원천입니다.
이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무속적인 말을 멀리하십시오. 2대가 믿음생활 하면 그 중에 하나는 주의 종이 되어야 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병든다는 말이 성경에 어디에 있습니까? 무속인들이 영혼을 낚는 몇 가지 패턴의 말에 있는데 그런 말에 낚여서 믿음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이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어떤 말과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2. 진리의 지식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이 성도들이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가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절). 즉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말씀을 가지고 분별력을 키워서 자신을 지킬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분별력을 가진 삶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요새 분별력이 없어서 이단으로 넘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단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기존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신뢰를 깨려고 갖가지 기발한 언사와 수단을 씁니다. 어떤 직통계시를 받고 설교한다는 자칭 ‘말씀의 종’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설교를 연구하고 아름다운 글로 작성해서 원고에 매여 설교하는 것은 인본주의입니다. 미사여구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저는 강단에 서면 바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 말씀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언뜻 들으면 대단히 영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언변에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강단에 설 때만 임합니까? 아닙니다. 책상에 앉아 말씀을 준비할 때도 임합니다. 또한 말씀 준비 없이 강단에 서서 즉흥적으로 설교하는 것이 더 영성이 있는 모습입니까? 오히려 말씀을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강단에 서서 설교하는 것이 더 영성이 있는 모습입니다.
사실 말씀에 대한 깊은 준비 없이 강단에 서는 것은 게으르고 무책임한 것이고, 그렇게 즉흥적으로 말하면 실수하는 말도 많이 나와서 사람을 실족시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죄로 흘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때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세심하게 기도하며 준비하는 것은 ‘영성의 유무 판단’을 떠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설교자가 성경을 보며 묵상하고, 묵상한 것을 글로 적고, 해석에 잘못이 없나 주석도 보고, 다른 성경연구가들의 연구도 참고하고, 경건서적도 보고, 다른 설교도 들어보고, 동역자들과 의견도 나눠보고, 살면서 깨달은 것들을 적어두었다가 활용하면서 균형 잡힌 말씀을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은 영성이 없는 모습이 아닙니다. 성경과 영성, 소통과 영성, 상식과 영성, 그리고 행함과 영성은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가는 개념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열심히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결코 영성이 없는 태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거짓 영성론자들은 열심히 설교를 준비하는 것도 인본주의로 몰아서 순수한 사람들의 영혼과 신앙에 상처를 남깁니다. 그런 거짓 영성론자들에 의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기존 교회와 기존 목회자를 불신하며 실족됩니까?
한번 이단에 빠지면 영혼과 마음과 물질을 침탈당한 후에 그곳의 실체를 깨닫고 그곳에서 벗어납니다. 그런데 이단에서 벗어난 후에도 왜 일반 교회에 잘 적응하지 못합니까? 이단들이 자기들이 특별한 존재임을 선전하는 과정에서 기존 교회와 기존 목회자를 불신하도록 끊임없이 세뇌하는데 그때 의식 밑바탕에서 상처를 입어 기존 교회와 기존 목회자를 처음부터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지금도 마귀의 유혹은 상상을 초월해서 여러 방면에서 펼쳐집니다. 그래서 더욱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어느 날, 한 교회에 여자 전도사가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전도는 안 하고 은밀하게 성도들을 모아 예언해준다고 했습니다. 곧 그 전도사의 동선이 담임목사에게 보고되었지만 담임목사는 은사 사역을 막는 것 같은 그릇이 작은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그냥 두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가 너무 빨리 진짜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한 집사에게 예언해준다면서 말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은 돈 버는 사명을 받았어요.”
사람들은 “당신 사명 받았어요.”라고 말하면 대부분 좋아합니다. 그래서 영혼을 꾀어내려는 유혹자가 제일 많이 애용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바로 “당신 사명 받았어요.”란 말입니다. 물론 겉으로는 “저 같은 사람은 무슨 사명인가요?”라고 해도 속으로는 은근히 좋아합니다. 게다가 “돈 버는 사명 받았어요.”라고 하면 흥분할 정도로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가 돈 버는 사명을 받았다고 예언해주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돈 버는 사명을 받았다는 말로 영혼을 흥분시키고 그 전도사는 돈 버는 곳까지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강남의 다단계 판매 세미나로 성도들을 데리고 가서 자기의 하위 판매자로 등록시키려고 했습니다. 그 행적이 곧 발각되어 결국 그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처럼 다단계가 어렵게 사는 교우들에게 떼돈을 벌어주게 한다는 논리로 얼마나 많은 어려운 사람들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했습니까?
다단계로 피눈물을 흘린 사람들은 대부분 어렵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더 어려워진 것입니다. 다단계에서는 땀도 없이 떼돈을 벌게 해준다면서 2천만 원어치 물건을 사면 3-4대에 걸쳐 매달 수천만 원이 나온다고 유혹하는데 그것이 말이 됩니까? 물론 그런 곳을 찾아간 자신도 미혹된 책임이 있지만 무엇보다 전도사가 돈 버는 사명을 받았다고 예언해주면서 끌고 갔으니 얼마나 못된 행동입니까?
성경은 한 영혼을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 속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요새 한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 영혼을 실족시키면 얼마나 큰 죄입니까? 물론 자기 영혼은 스스로 지켜야 하기에 다단계와 같은 유혹들에 현혹되지 않게 분별력을 키워야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완벽하게 지킬 수 없기에 새로운 만남을 가질 때는 늘 좋은 교회, 좋은 목자, 좋은 교우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3. 영생의 소망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성도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2절). 그 영생의 소망을 주려고 전도해야 하고 자신은 하나님이 맡기신 전도의 사명을 이행하겠다고 고백합니다(3절). 그런 고백을 통해서 믿음의 아들인 디도에게도 전도의 사명을 일깨웁니다(4절). 그만큼 전도가 중요합니다.
주님은 승천하실 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마지막 전도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 말은 전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란 말입니다. 성도에게 타락이 무엇입니까? 술 먹고, 담배 피고, 클럽에서 춤추고, 도박하는 것만이 타락이 아닙니다. 진짜 타락은 영혼 구원의 사명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고귀하고 질깁니까?
어느 날, 한 집에 불이 났습니다. 그 집에는 중풍으로 일어나지 못해 오줌똥을 받아내는 한 할머니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어머니!” 하고 소리치며 불난 집으로 급히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서 어디 계신가 했더니 벌써 밖에 나와 있었습니다. 오줌똥을 받아내는 중풍병자 할머니도 불길을 피해 살려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힘입니다.
하나님은 그 생명이 구원에 길로 들어서길 원하십니다. 전도는 잃은 영혼을 찾으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만 분의 일이라도 갚으려고 하면 최대한 전도에 힘쓰고 전도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핑계도 대지 마십시오.
어떤 분은 전도하라면 시간이 없다면서 인터넷은 밤늦게까지 아쉬울 정도로 합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전도하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겠습니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 어떻게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따지며 전도 못하는 것에 대해 핑계를 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어느 한 가지 언행도 연습이 아닙니다. 항상 진지하게 생명을 바치려는 지점으로 가야 그 지점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진정한 은혜와 축복도 체험합니다.
이제 듣기 좋은 말만 “아멘!” 하지 말고 때로는 부담스런 일도 “아멘!”으로 받으십시오. 그런 각오와 결단이 없이 “왜 은혜가 없을까? 왜 전도가 안 될까?”라고 하지 마십시오. 살고자 하고 죽고 죽고자 하면 삽니다. 그처럼 늘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도 거침없이 그의 삶에 펼쳐질 것입니다.
< 축복의 씨를 뿌리십시오 >
물론 전도는 쉽지 않습니다. 마귀는 보이는 것으로 유혹하지만 성도는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도해야 하기에 본질적으로 참된 전도는 힘듭니다. 그래도 전도하면 그 보람과 축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결국 전도는 영혼을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축복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전도는 전도하는 사람에게도 축복이고 전도 받는 사람에게도 축복입니다. 그렇게 축복을 전해주는 심정으로 힘써 전도하고 헌신하면 상상을 초월한 놀라운 축복이 예비될 것입니다.
요새 총회는 다가오고 현재 총 예산 7500만원 중에서 현재까지 63% 정도밖에 헌금되거나 약정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3천만 원 이상이 부족합니다. 현재까지 금액도 거의 대부분 저희 교회와 선교회를 통해 우리 교인들과 온라인 새벽기도의 몇몇 회원들이 헌신해서 조달된 재정입니다.
그 동안 작년에 준비위원들 사이에서 재정 문제로 한국 총회 개최를 포기하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6년 전에 결정한 일이고 33년 만에 처음 개최되는 한국 총회이기에 그 의미가 얼마나 남다릅니까? 그래서 포기 얘기가 나왔을 때 저도 모르게 제 집의 보증금을 빼서라도 부족한 금액을 책임질 테니 약속한 대로 총회를 섬기자고 했습니다. 비록 준비하는 과정이 어려워도 잘 개최하고 나면 얼마나 기쁨과 보람이 크겠습니까?
그래도 곧 총회날짜는 다가오는데 예상보다 후원이 적게 들어온 상태입니다. 그래서 며칠 내로 극적인 반전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래도 애초에 약속한 대로 제가 결단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그 얘기를 비췄는데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습니다. 무언의 승낙입니다. 그래도 그 결단이 쉽지 않고 솔직히 고민도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틀 전에 심방을 갔다가 심방 받는 집사님으로부터 감동적인 헌신 얘기를 듣고 마음에 큰 평강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우리 교회 집사님이 시작하는 새로운 사업체로 심방을 갔을 때 같이 동업하는 집사님이 이런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요새 그분이 섬기는 교회가 교회를 건축한 후 큰 성장을 이뤘는데 그 교회 건축에는 한 장로님의 은밀한 헌신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장로님은 교회재정을 맡고 있는 자신에게 수시로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집사님! 어려우면 말하세요.”
그 말을 듣고 교회 건축을 할 때 어려워서 장로님에게 말했습니다. “장로님! 어렵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자신이 소유한 건물을 판 돈 28억 원을 즉시 현찰로 헌금해주어서 공사를 잘 끝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일을 추진하는 사람에게 “어려우면 언제든지 말하세요.”라고 할 수 있는 재정적인 능력을 꿈꾸십시오.
그 장로님은 평소에도 소리 없이 헌신하는데 그렇게 헌신한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분이 섬기는 교회가 예배장소를 얻어야 했습니다. 그때 감동이 생겨 분당의 55평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아 아내 모르게 헌금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은행에서 집 차압 경고문이 날아왔습니다.
그 경고문을 보고 아내가 몰래 헌금한 사실을 알고 크게 속상해했습니다. 사실 그 점에서는 그분이 실수했습니다. 집은 가족의 기초 주거공간이기 때문에 그런 결정은 혼자 하지 말고 아내의 승낙을 받아야 했습니다. 본인도 그렇게 사업이 어려워질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때 그분도 아내에게 미안하고 본인도 괴로워서 기도원에 들어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설상가상으로 이런 음성을 주셨습니다. “아무개야! 너무 고민하지 말고 차라리 집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나머지 돈은 헌금해라.”
그 음성대로 그분은 기도원에서 돌아와 집을 팔아 모든 부채를 갚고 아내를 설득해서 남은 돈을 몽땅 교회에 헌금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얼마나 무모한 헌신입니까?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헌금한 바로 다음 날부터 그분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주문이 폭주해서 사업이 급속히 커졌고 얼마 후에 서울 노량진에 건물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교회 건축 때가 되어서 그 건물을 팔아 전 금액을 헌금한 것입니다.
요새는 그 장로님이 그 재정집사님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집사님! 어려우면 말하세요. 그러나 이제는 집사님 선에서 끝내세요.” 그래서 그 집사님도 현재까지 국내외에 11개째 교회를 짓는데 도움을 주었는데 앞으로 더 많은 교회를 짓는데 도움이 되고 또한 교회 재정이 필요하면 자기 선에서 해결하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사업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순수한 헌신을 결코 잊지 않고 반드시 큰 축복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전도는 영혼을 구하며 축복도 나눠주는 일입니다. 시골에서 잔치 후에 동네에 떡을 돌리고 오라면 신나지만 남에게 돈 좀 빌려오라면 얼마나 부담이 됩니까? 전도는 돈을 빌리는 부담스런 일이 아니고 생명과 축복을 나눠주는 가장 기쁜 일입니다. 기쁘게 전도의 씨를 뿌리십시오. 그 씨는 결국 자신이 앞으로 얻을 축복의 씨를 뿌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항상 전도에 힘써서 영혼 구원과 교회 사랑을 실천하며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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