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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갈3:1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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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갈라디아서(16) 은혜를 앞세워 사십시오 (갈 3:15-22)
< 율법주의를 주의하십시오 >
사람도 약속했으면 함부로 그 약속을 파기하지 않는 것을 기본 도리로 압니다(15절).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이전에 정한 언약을 나중에 깨뜨리겠습니까? 하나님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언약을 언제 했습니까?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횃불언약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창세기를 볼 때 ‘창조의 장’인 창세기 1장이나 ‘아브라함이 소명 받는 장’인 창세기 12장을 중요하게 보지만 신학적으로는 ‘횃불언약의 장’이란 별명이 붙은 창세기 15장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횃불언약이 있고 약 430년이 지난 후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습니다. 그 율법은 구체적이고 뚜렷한 형태의 법으로서 선민의 신앙생활과 도덕생활의 기초적인 법이 제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이 아무리 훌륭해도 430년 전의 언약, 즉 선약을 파기할 수는 없습니다(17절).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430년 전의 언약을 폐기하지 못한다는 말은 결국 율법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를 깨뜨리지 못한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즉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더 우선되고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최종 판단 도구로 보려는 본능이 있지만 사실상 율법은 행위의 최종판단의 기준이 아닙니다. 율법의 주목적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부각시키고 하나님의 은혜의 중요성을 더 깨닫게 하기 위한 통로로서의 역할을 위한 것입니다. 또한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 즉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19절). 그 말은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믿음에 의한 은혜의 법이 율법을 대치할 것이란 말입니다.
< 은혜를 앞세워 사십시오 >
율법에는 세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첫째, ‘문자대로의 율법’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우상숭배 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 자체가 문자 그대로의 율법입니다.
둘째, ‘해석상의 율법’입니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는 실제 뜻은 무엇일까?”를 해석해야 합니다. 전쟁터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것은 살인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도 어떤 의미로는 용납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살인입니까? 그래서 해석이 필요합니다. 즉 살인하지 말라는 더 깊은 뜻은 생명은 하나님께 속했음을 믿고 생명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법 자체도 중요하지만 사실상 법 해석이 더욱 중요합니다.
셋째, ‘하위법적인 율법’입니다. 즉 율법보다 더 높은 상위법이 있기에 때로는 율법의 위반도 정당화됩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지켜야 하지만 안식일에 구덩이에 양이 빠지면 구해야 합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을 지키겠다고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하면 그것이 오히려 죄가 됩니다. 죽어가는 환자가 있는데 안식일이라고 치료하지 않으면 그것은 간접살인입니다. 안식일에 죽어가는 응급환자를 치료하다가 안식일을 범하면 그것으로 정죄되지 않습니다. 그처럼 율법보다 상위의 법이 적용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결국 율법은 행위의 최종판단의 기준이 아닙니다. 하물며 그 율법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하나님의 언약을 깰 수는 없습니다. 결국 ‘율법과 은혜’라는 주제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합니까? 관계는 유무형의 계약으로 이뤄집니다. 즉 약속을 중심으로 인격적인 관계가 맺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원을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 율법주의적인 태도가 아니더라도 성도는 자신이 약속한 사항에 대해서는 최대한 지켜내려고 해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생활의 기본입니다.
율법보다 은혜가 먼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바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율법이란 부정적인 통제수단이 생겼습니다. 그처럼 율법의 목적은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부각시켜 주는 반면교사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자가 되면 안 됩니다. 계산하는 인간적인 에로스 사랑보다 계산을 초월한 신적인 아가페 사랑이 앞서야 하듯이 항상 율법보다 은혜를 앞세워 사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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