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민13:1-24 |
---|---|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sarang.onmam.com/ |
가나안 정탐
민13:1-24
2002.3.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사 그 분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변치 않는 언약을 주셨으며,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 분의 사랑과 우리를 향하신 계획은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놀라운 축복의 땅을 약속 받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대로가 열려 있으며, 풍성한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행함과 선택, 책임과는 상관없이 우리를 성공과 영광으로 인도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시지만, 우리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많은 약속들을 받았으나,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뜻을 순종하는 데는 거듭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백성들이 약속 받은 그 축복들을 누리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축복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둔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들어가 그 땅을 취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정탐꾼을 보냈고, 그들의 불신앙적인 보고를 듣고 낙담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확실하고 풍성한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고생하며 걸어왔던 광야로 되돌아가 그 곳에서 방황하다가 죽어야 했고, 그들의 자녀 세대가 축복의 땅에 들어가게되었습니다. 약속이 그들의 것이었으나,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셨으나, 그들은 그 축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정탐군을 보낸 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가나안의 입구인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모세는 가나안 땅을 탐지하기 위해 정탐꾼들을 보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라고 명령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1-2절) 그러나 정탐꾼을 보낸 것은 애초에 백성들이 요구한 일이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너희 중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신1:21-23) 하나님께서는 들어가서 그 땅을 취하라고 하셨지 주의 깊게 정탐하라는 명령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왜 정탐꾼을 보내자고 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불신앙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막상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으며,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세계 최강이던 애굽의 군대를 멸하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들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고자 했을 때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정탐꾼을 보내자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에 찬성하신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의 요구를 허락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탐꾼을 보내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때에 한해서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치밀하고 차질 없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들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신 것을 더욱 확인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하나님께는 이런 것을 염두에 두시고 그들의 요구를 허락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과정에서 그들의 불신앙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자기들의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거기에 들어갈 믿음과 담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정탐꾼들의 면모
정탐꾼들은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선발되었습니다. 그들은 각 지파의 지휘관들이었습니다. 그 만큼 유능하고 신임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열두 명중에서 역사에 그 이름이 아름답게 남아 있는 사람은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의 지위가 그 사람의 믿음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두드러진 두 이름은 갈렙과 여호수아입니다. 먼저 갈렙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유다 지파의 대표로 선발되어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었습니다. 수14:14에는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렘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그리고 창36:15에 보면 그나스는 에돔 족속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서 자손 중 족장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장자 엘리바스의 자손으로는 데만 족장, 오말 족장, 스보 족장, 그나스 족장과” 본래 에돔 족속이었던 그나스는 이스라엘 민족에 편입되어 유다 지파에서도 지도적인 위치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나스 사람이었던 갈렙은 열두 정탐꾼 가운데 가장 믿음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구약에서도 하나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되는 것은 육신의 혈통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갈렙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탐꾼들의 이름 가운데 또 다른 유명한 이름은 여호수아입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대표였던 이 사람의 이름은 본래 호세아였는데, 모세가 그 이름을 여호수아로 고쳐 불렀습니다.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16하) 호세아는 ‘구원, 도움’이라는 뜻이며, 여호수아는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나중에 모세의 뒤를 이어 백성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을 정복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정탐 내용
모세는 정탐꾼들을 보내면서 그들이 가야 할 길과 정탐할 내용 등을 상세히 지시했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네겝 길로 향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곧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와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사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라 담대하라 또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17-20절)
모세가 어떻게 미지의 땅 가나안에 대하여 그렇게 상세히 알고 있었는지 놀랍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려주셨을 것이며, 지도자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에 대한 관심과 연구도 많이 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비전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계속적으로 그 비전에 대한 응답을 받아야 하며, 쉬지 않고 그것을 사모하며 추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정탐꾼들이 조사해야 할 내용은 군사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땅 거민들의 강약과 거하는 성이 진영인지 산성인지를 살펴야 했습니다. 즉 군대의 형편과 방위 시설을 살펴야 했습니다. 그리고 땅이 비옥한지의 여부와 산림과 땅의 소산을 조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의 열매를 가지고 와야 했습니다.
담대하라
모세는 정탐꾼들에게 세부지침을 하달하고 마지막으로 ‘담대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이 말은 그들이 탐지하는 모든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말고,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바라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가나안 땅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땅을 자기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고,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그 땅을 탐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정탐꾼들을 보내면서 ‘담대하라’고 당부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어떤 눈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느냐에 좌우됩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아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합니다. 하찮은 일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질 때 우리는 감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현상만 본다면 실망하거나 두려울 때가 많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미약하고 어려움이 있으며 심지어는 막막하게 보인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사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최초의 선교사 중의 한 사람이었던 언더우드는 1884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제물포항에 도착했습니다. 최초의 서양 선교사로서 언더우드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선은 뿌리 깊은 유교전통과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으며, 서양 선교사를 향하여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언더우드는 그러한 상황에서 느꼈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중략)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중략)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더우드는 믿음으로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그 막막하던 상황에서 믿음으로 보라보며 기도했던 언더우드의 기도는 오늘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언더우드의 믿음대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먼 이국땅에서 온 한 선교사가 믿음의 눈으로 보았던 것이 이 땅에 이렇게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그 땅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고 당부했던 것입니다.
정탐 결과
정탐꾼들이 처음 발견한 것은 강력한 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헤브론에서 아낙 자손을 발견했습니다. “또 네게브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22절) 사실 헤브론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장 애착과 기대를 가졌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묻힌 곳이며,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야곱과 레아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은 이곳에서 가장 강력하고 두려운 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정탐꾼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로 이 아낙 자손들을 꼽았습니다. 그러나 훗날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복당했습니다.
정탐꾼들은 또 그 땅의 풍부한 소산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에스골 골짜기에서 포도 한 송이를 베어 두 사람이 어깨에 메고 운반해 왔습니다.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23절) 포도송이가 얼마나 컸으면 한 송이를 이렇게 운반했을까요? 이 풍성한 열매는 그 땅이 과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더 확고히 가지게 하려고 그것을 가지고 오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인 우리를 위하여 선하신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멸시하고 불신하며 거역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했으며, 그 축복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지 못한 채 광야를 방황하다가 죽어 갔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아무리 위대하고 풍성해도,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인도하시며 축복하셔도, 우리가 불신앙으로 그것들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약속은 우리에게 의미가 없어지고 맙니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은 믿음과 순종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순종하십시오. 현실이 비록 막막하고 어려워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흔들리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들을 쟁취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