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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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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윤은철 목사 |
참고 : | 갈릴리교회 |
해를 품은 달이 되라
요15: 1-8
해를 품은 달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것을 원작으로 해서 드라마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최근 한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해를 품은 달이라는 것은 왕을 해에, 그리고 왕비를 달에 비유를 한 것입니다. 왕세자가 어렸을 때에 만났던 한 처녀를 사모하여 그녀를 왕세비로 세우는데는 성공했지만 궁중의 음모로 인해 그녀를 잃어 버립니다. 그러나 그녀는 왕세비에서 액받이 무녀로, 액받이 무녀에서 역적 죄인으로, 역적 죄인에서 탕녀로, 이어서 탕녀에서 마침내 왕을 만나 왕후가 되는 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의 어느 소설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그 소설이 인기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설교의 제목으로 쓴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두 주 동안 고민하다가 이 이야기를 통해 설교를 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해를 품은 달”이라는 드라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주제는 사랑입니다. 역사적인 사실과는 전혀 다른 극중 로맨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이 해를 품은 달과 같은 이야기가 구약성경 아가서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과 포도원 지기였던 술라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우리들이 해를 품은 달처럼 하늘의 영적 Loyal 패밀리가 되어 승리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해를 품은 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5절 말씀을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 5)해를 품은 달이라는 말은 왕이 사랑한 왕비라는 말입니다. 한 연약한 여인이지만 왕이 한 여인을 사랑하여 자신의 배필로 삼으니 그녀를 가리켜 ‘해를 품은 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해를 품은 달입니다. 해를 품은 달의 이야기는 그냥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궁중의 낭만 소설입니다. 아무리 사랑을 그토록 할 수 있다 한 들 왕이 한 여인을 사모하여 주위에 있는 왕비와 궁녀들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겠습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우리들을 위해 그러한 일을 하셨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큰 일을 하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의 이야기는 평범한 평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보면 왕족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는 명칭이 단순히 이 세상의 어느 사람의 자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개념은 영적으로 Loyalty, 왕족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 9)
분명히 사도 베드로는 믿는 자들을 ‘왕 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한 나라라는 말은 그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왕이 잘 쓰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짐이 곧 이 나라이니라.”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왕이 곧 그 나라라의 지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믿는 자들을 ‘너희들은 거룩한 나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경에 기록한 이야기는 하나님 이야기입니다.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예수님을 왕 중의 왕이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왕들이 있지만 그 왕들 중에 가장 위대한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친구라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 15:15)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친구라 하셨는데 그것이 단순히 사람 수준의 친구 개념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땅의 이야기를 말하여도 믿지를 못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이야기를 하셨을 때 그것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친구의 개념은 단순한 이 세상의 좋은 벗의 개념을 뛰어 넘어 하늘의 왕족으로 우리를 초청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늘의 왕족은 반드시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으로는 하늘의 왕족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성령님을 모시고 살지 않으셨으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실 수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역시 하늘의 왕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님을 모셔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지 아니하면 가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이 가지로서 포도나무를 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은 우리들이 바로 영적으로 해를 품은 달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금실이 좋은 부부가 함께 같은 한날에 죽기를 원해도 그렇게 되지를 않습니다. 사랑하기에 아무리 같이 있기를 바래도 같이 있을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님과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 늘 함께 동행하는 삶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달이 해를 품고 있으니 달은 이미 달이 아닙니다. 달은 곧 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입니다만 연약한 가지가 아닙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한 그 가지는 단순한 가지가 아니라 포도나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우리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면 우리는 연약한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같은 삶이 되어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누구입니까? 자신을 여전히 빛을 내지 못하는 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달과 같이 연약하지만 해를 품고 살아가는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달은 오직 해를 통해서만이 빛을 낼 수 있습니다.
4절 말씀을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가지가 포도 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이라고 했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은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다면 가지의 생존자체가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열매를 맺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지 자체가 더 이상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이미 하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형식적으로 우리를 축복하시는 말씀으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우리 몸을 성전 삼으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그것을 믿지 못하고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천국행 티켓을 가지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앙 생활의 반만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들은 이미 천국에서 살고 있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이미 우리들은 천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포도나무가 가지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포도나무에 가지가 지금 붙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서로가 떨어져 있으면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이미 죽어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고 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이미 가지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땔감으로 밖에는 쓸 수 없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열매를 맺든지 아니면 떨어져서 땔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가지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이 원하는 것은 가지로서 열매를 맺는 것이지 땔감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도 우리들이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들은 믿음으로 분명히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이미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의 체험은 여러 가지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2~14)‘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라는 말씀은 믿는 자가 성령을 따라 살지 않고 육신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믿는 자의 모습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형태대로 신약의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있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을 믿는 것에 대한 용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이미 말씀으로 주셨다고 하셨습니다.(수 1:3)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앞으로 주실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들에게 주셨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에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이미 그 땅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체험적인 면에 있어서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그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이미 그 땅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것이 45년 뒤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 실질적으로 체험하게 한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믿으라고 한 것은 믿는 자들의 마음 속에 성령께서 계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믿으라고 하셨고 이미 주셨다고 약속하신 것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말씀하신 진리는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성령을 받았고 충만하여졌다는 것입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골2:8~10)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들은 완전하다는 말씀입니다. 믿는 자들은 이미 완전하여졌는데 그것을 네가 믿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성도들에게도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한 부류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생하는 이스라엘과 다른 부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육신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살다가 모두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 안에 계신 성령을 쫓아 살아가면 놀랍게도 그들은 지금부터 이미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믿는 자들은 오직 주님을 통해서만이 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달은 오직 해의 능력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7절 말씀을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달은 해의 빛을 받아 깜깜한 밤에 빛을 낼 수 있습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달이 빛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해가 달에게 빛을 비춰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육신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영적인 수준에 있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교회들이 육신의 생명으로 교회를 움직여 나갑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의 육신이 잘되게 하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번영복음은 잘못하면 사람들을 잘못된 곳으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한다고 믿지만 그것은 진정한 복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데 그것은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이요 영적인 복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복인 것입니다. 내면의 복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눅 17장에 보면 10명의 나병환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사람의 의술로 고칠 수 없는 그런 못쓸 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예수님께서 어느 한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에 10명의 나병환자들이 멀리 서서 예수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 긍휼히 여겨 주세요.” 이 때 예수님께서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라고 하셨습니다. 10명의 나병환자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갔다가 몸이 나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만이 자신의 몸에서 병이 나은 줄 알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17:17~18)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끝이었다면 아홉 명의 나병환자와 사마리아 한 명의 나병환자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병에서 나은 한 명의 사마리아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17:19)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육신의 질병의 치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치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세계에서 기적을 베푸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는 것은 그 육신의 기적을 통해서 영적인 기적의 세계로 인도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적으로 평안하고 먹고 살만하면 자신의 육신의 즐거움과 안일함 속에서 살아갑니다. 더 큰 영적인 하나님의 기적 속으로 들어가기를 싫어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현대교회가 가지고 있는 한계입니다. 영적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고 변화된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능력은 혼의 생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의 생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데 그리스도인들은 몇 십 년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영적인 여정에 있어서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능력 주시는 분으로 그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분명히 그 권능과 능력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힘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분이 되는 사람이 바로 영의 사람입니다.
‘해를 품은 달’에서 일관되게 나오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하는 자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왕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는 연우라는 여인에게 미안해 하는 것은 왕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왕이 과거에 지켜주지 못한 한 여인을 끝까지 지켜주는 그 과정을 보면서 오늘의 현대인들은 살기 어렵고 외로운 세상에서 잠시나마 위로를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왕과 같은 그런 사람이 오늘 이 현실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지금도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해 주시는 분이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이십니까? 전능하신 주님이십니다. 꿈도 아니라 현실입니다. 우리의 왕이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선한 일을 창조해 주시기 위해서 놀라운 일을 우리 안에서 행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믿어야 합니다. 육적인 차원에서 영적인 차원까지 우리의 믿음을 끌어올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승리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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