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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믿음이 주는 축복

고린도전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570 추천 수 0 2012.05.09 19: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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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5:29-34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부활의 믿음이 주는 축복 (고전 15:29-34)

 

< 믿음을 통해 생기는 변화 >

 2003년에 돌아가신 저의 아버님은 어머님을 지극히 아끼셨습니다. 그래도 칠순이 넘으면서 어머님께 가끔 짜증을 내셨습니다. 처음에는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이해되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때 어머님이 기억력이 상당히 감퇴된 상태였습니다. 그 사실을 아버님이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시니까 짜증도 났을 것입니다. 기억력이 없으신 분과 같이 사는 고통은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저는 말썽을 많이 부리다가 20세가 되던 1980년 3월에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이제까지 어머님께 충분할 만큼 속을 썩였다. 지금부터 어떤 일이 있어도 어머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리라!” 그때부터 절대 순종, 절대 존중, 절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이제까지 그 약속을 그런 대로 잘 지키며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력이 없으신 어머님에 대한 최상의 존경심은 변함없습니다. 똑같은 질문을 5분마다 하루에 100번을 물으셔도 전혀 짜증이 나지 않습니다. 남편이 그러니까 아내도 최상의 존경심을 표현하며 이제까지 한 번도 짜증 섞인 어투를 내본 적이 없었고 아이들도 할머니를 최상으로 사랑하고 존중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들의 인격과 성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머님이 기억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알고 이해하면 대처가 쉬워집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그 기억력 감퇴 사실을 모르셨기에 가끔 짜증이 났을 것입니다. 아들이 온다고 맛있는 김치찌개를 해주겠다고 결정하고 아버님과 함께 쇼핑을 했는데 정작 미역국을 해줍니다. 그런 상황들이 계속되는데 어머님이 기억력이 떨어진 사실을 몰랐으니까 사랑하고 아끼면서도 간혹 짜증도 낸 것입니다.

 2003년 아버님이 천국에 가셨을 때 자녀들은 생각했습니다. “어머님이 외롭겠지만 짜증을 받을 일도 없어서 몸은 더 편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때부터 오직 아버님만 바라보며 사셨던 어머님의 기억력은 더욱 급속히 감퇴했고 기력도 많이 약화되었습니다. 몇 년 전 총회 참석차 어머님이 영구 귀국 전에 사셨던 LA에 들렸습니다. 그때 어머님과 함께 아버님 묘소에 갔다 왔습니다. 그때 어머님의 음성과 표정이 너무 밝은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님 묘소에 갔다 온 것이 저렇게 힘을 주는구나!”

 믿음을 통해 생기는 가장 큰 변화가 무엇입니까? 무덤이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이 아닌 오히려 힘을 주는 대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이 약속된 상태에서의 죽음은 인생에게 최상의 내적인 기쁨을 선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의 믿음은 죽음과 절망과 실패를 이기게 하는 최대의 능력의 원천입니다.

< 부활의 믿음이 주는 축복 >

 본문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삶에 실제로 어떤 능력을 주는지 몇 가지 교훈을 줍니다. 부활의 믿음이 있을 때 어떤 복된 삶이 나타날까요?

1. 위험을 무릅쓰게 합니다

 본문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이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당시에 일부 이단들은 믿어도 세례 받지 못하면 나중에 부활하지 못하기에 죽은 사람이 부활할 수 있도록 남이 대신 세례 받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본문 29절 말씀을 보면 마치 사도 바울이 그런 의식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에서 “죽은 자들을 위해 세례를 받는다.”는 말씀은 “불신자들을 위해 죽음에 이를 정도로 고난당한다.”는 의미가 큽니다. 그 외에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지만 사도 바울이 말하려는 요지는 30절 말씀과 관련해 분명합니다. 즉 부활은 분명히 있고 그 믿음 때문에 어떤 위험도 무릅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는 본문 32절 말씀처럼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울 수 있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는 말씀은 “복음을 방해하려고 맹수처럼 달려든 사람들에게도 전혀 굴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의 믿음을 가졌기에 어떤 핍박과 위험도 이겨내고 비전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런 믿음을 가지고 거룩한 모험에 나서십시오. 실패했어도 또 시도하고 이제까지 안 되었어도 앞으로도 계속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계속 시도하고 도전하면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됩니다.

 물론 자신이 어떤 공동체의 리더로 있다면 즉흥적으로 마구 시도하면 안 됩니다. 그 시도가 실패하면 많은 사람을 낙심시키고 리더십도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중하되 너무 신중해서 시도조차 안 하면 안 됩니다. 시도한 일에 큰 성과가 없어도 계속 시도하면 언젠가 반드시 큰 열매가 맺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약 3년 전만 해도 주일오후 성경공부 모임이 없었습니다. 그 모임을 못했던 이유는 예배 후에 몇 시간 만에 다시 성경공부 모임을 또 가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배와 성경공부 모임은 달랐습니다. 성경공부 시간이 성경만 읽고 공부하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비전도 나누고, 기도제목도 나누고, 삶도 나누고, 교회의 현재 스탠스도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비저너리가 생기는 은혜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이제까지 그런 행사를 몇 번 했어도 반응과 성과가 크지 않아서 속으로는 “성도들이 많이 참여할까?” 하는 염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성도님들이 고난주간 새벽예배에 많이 참석해 뜨겁게 기도함으로 작은 성공 모델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뭔가를 시도해야 최선의 것을 얻습니다. 리더십 원리에 따르면 1년 동안 중요한 결정이 없으면 리더십에 위기가 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때로 실패와 위험이 예상되어도 찬란한 내일의 비전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뭔가를 시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시도가 성공하면 확실한 리더십을 얻게 되고 작은 성공 모델을 통해 내일의 비전이 더욱 구체화되는 은혜도 체험할 것입니다.

 이제 제 2회 태신자 전도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운동에서 한 번의 작은 전도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을 이끌어냅니다. 그러므로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해보십시오. 남들이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고 누군가 전도왕이 되었다면 나도 전도왕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자신과 연결시켜주신 한 사람을 전도해서 성공하면 그 작은 성공이 큰일을 이루는 격발장치가 됩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믿음을 앞세워 위험을 무릅쓰고 거룩한 모험에 나서십시오.

 어느 날, 한 양초가 살짝만 건드려도 상처를 받는 자신을 탓하며 낙심에 빠졌습니다. 그 양초에게는 최고의 존경 대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양이 망가지지 않는 단단한 벽돌이었습니다. 양초가 부러워서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벽돌을 연구했습니다. 그러자 진흙이 열을 받아 단단해져서 벽돌이 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벽돌처럼 되겠다고 불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온 몸이 형체도 없이 녹아 없어졌습니다.  

 남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과 성품을 잘 다듬고 선용하면 누구나 작품인생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패해도 또 도전하고 실수해도 또 시도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성공의 때가 올 것입니다. 이제 살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누구나 실패합니다. 오직 위험 부담이 두려워 성장을 포기한 사람만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실패할 줄도 알아야 성공합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위험을 무릅쓰고 무엇인가를 시도하면 언젠가 반드시 성공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2. 날마다 죽게 합니다

 본문 31절 말씀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당시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영성과 은사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왜 사람이 자랑에 빠집니까? 천국 보상과 하나님의 칭찬보다는 이 땅에서 얻는 사람의 칭찬에 연연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상적인 자랑에 빠지는 것은 부활과 천국 보상을 믿지 못하는 증거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세상적인 것을 자랑하는 일부 고린도 교인들과는 달리 사도 바울은 무엇을 자랑했습니까? 날마다 죽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죽고 싶어서 환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그런 말을 했을까요? 날마다 자기가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그가 얼마나 똑똑합니까? 그는 가문도 좋고 학력도 좋았습니다. 방심하면 어느새 그런 인간적인 자랑거리가 표출되기에 그는 날마다 자기를 죽이면서 오직 십자가만 자랑했습니다. 그처럼 날마다 자신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죽이십시오.

 세상에서 제일 고약한 질병은 자격지심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는 자격이 없다!”고 하는 것은 좋은 태도지만 자격지심으로 참여는 하지 않고 불평과 원망만 뒤에서 퍼뜨리면 리더도 힘들어지고 공동체 전체도 힘들어집니다. 이제 자신의 처지가 초라해도 자격지심을 가지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격이 없지만 그래도 기뻐하고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 참여하면 사실 그는 누구보다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가끔 보면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모임의 회장이 될 차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회장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목사님이 몇 번이나 “자격이 없다니요? 용기를 가지고 해보세요.”라고 권면했지만 계속 자신은 능력과 자격이 없다면서 극구 사양했습니다. 결국 논의 끝에 다른 사람이 회장을 맡았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자격이 없다고 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알고 겸손하게 회장 자리를 사양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목사님이 자기에게 돌아갈 회장 자리를 남에게 주었다면서 험담을 퍼뜨리고 다닌 것입니다. 그것은 겸손을 가장한 자격지심의 표출입니다.

 겸손하되 겸손을 가장하지는 마십시오. 겸손을 가장하는 것은 가장 겸손하지 않은 교만한 자격지심이었습니다. 교만한 자격지심은 공동체를 깨뜨리는 제일 요인이 됩니다. 왜 그런 교만한 자격지심이 생깁니까? 자기를 죽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죽이지 못하면 결국 모든 것을 다 잃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죽자!”고 고백하며 자신의 죽이지 못한 부분을 죽이는데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면 대 평안이 주어지고 사단이 범접할 수 없는 강한 영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날마다 죽으면 가정과 교회가 삽니다. 지금 혹시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과 행복이 없다면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자신이 날마다 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기십시오. 그리고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날마다 죽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3. 거룩한 삶을 살게 합니다

 본문 32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부활을 믿지 못하면 사람들은 타락에 빠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 33-34절에서 고린도 교회에 슬쩍 들어와 유혹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말고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일시적인 쾌락에 빠지지 말고 거룩하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거룩한 삶’은 성도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삶입니다. 그런 거룩한 삶을 살려면 좋은 것을 채우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나쁜 것을 버리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능력 있는 삶을 살지 못합니까? 가장 큰 이유는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면 신비한 힘이 내면에서 차오릅니다. 그러므로 잘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잘 버릴 수 있습니까? 부활의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거룩한 삶을 너무 크게 보거나 어렵게 보지 마십시오. 세상과 달리 사는 것 자체가 거룩한 삶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을 배려하는 삶도 일종의 거룩한 삶입니다. 결국 자신이 ‘정통 청교도’라면서 율법적인 삶을 내세워 남을 정죄하는 삶은 겉모습은 거룩한 것 같지만 가장 거룩하지 못한 삶입니다. 비판과 정죄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신나는 일이지만 비판과 정죄를 좋아하면 그때부터 그 영혼은 성장을 멈춥니다. 성도란 남의 유익을 구하는 존재입니다. 그런 성도의 기본 정체성을 따라 남을 배려하며 사는 삶이 진짜 거룩한 삶입니다.

 어떤 집사님은 구역 예배 후 다과 시간에 과일이 나오면 항상 맛없게 보이는 것만 먹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장로이셨던 아버님의 교육 때문이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딸에게 어디에 가든 항상 남을 위해 좋은 것은 남겨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남을 배려하는 삶이 틀에 박혀 어디에 가든지 화평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런 삶이 진짜 거룩한 삶입니다.

 이번 선교연맹 총회를 위해 멀리서 오시는 150명의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에게 귀한 교제와 안식과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많은 예산을 어떻게 감당하나 막막했지만 섬기려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기쁘게 여기시고 어제까지 3분의 2의 예산이 채졌습니다. 그것도 기적적인 일입니다. 앞으로 남은 일주일에도 또 다른 기쁨의 소식이 들리게 될 줄 믿습니다. 그처럼 누군가를 섬기려고 애태우는 마음도 일종의 거룩한 삶입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평생 가족을 위해 좋은 것을 양보하며 살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일 수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았다면 얼마나 복된 삶입니까? 그런 삶이 너무 보기 좋아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과연 달라!”란 말이 불신자로부터 나오게 하면 그런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가장 거룩한 삶입니다.

< 의미를 좇아 사십시오 >

 오늘날 성도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부활의 믿음과 능력을 가지고 삶에서 부활의 역사를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크게 보고 넓게 보고 멀리 보면 축복의 지평도 크게 넓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근시안적인 안목과 이기적인 태도로 눈앞의 이익만 좇다가 축복이 오히려 막힐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처음에 저희 교회가 이곳 샛별마을로 이사 왔을 때 이곳은 선교지와 같았습니다. 원래 이 자리는 전 층이 슈퍼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대형 마트들이 생기면서 슈퍼가 적자에 허덕이다가 결국 이 장소를 우리 이전에 있던 교회에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처음 들어올 때 동네 주민들이 1년 반 동안 교회가 못 들어오게 데모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아픔과 상처가 있었기에 전도가 거의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교회가 3년 만에 손들고 떠나면서 우리 교회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네 주민들은 교회가 바뀐 줄도 모르고 계속 적대했습니다. 건물 상가 주인들도 교회가 들어오면 상권이 죽는다고 누가 선동했는지 교회에 대한 반감이 컸습니다. 그때 한 가게 주인에게 왜 교회가 들어오는 것을 그렇게 반대하느냐고 묻자 제일 요인은 교회가 부흥되면 주차난이 생길까봐 반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주차난이 생긴다는 말은 사람이 몰린다는 말이고 그러면 상권이 살아납니다. 그처럼 상권이 사는 좋은 측면은 못 보고 주차난이 생기는 나쁜 측면만 보니까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런데 그 뒤로 정말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교회를 못 들어오게 막고 교회 탑 설치를 막은 주동자들이 대부분 망해서 나가거나 극심한 불황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처럼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마음에 부활의 역사가 있지 않으면 더 이상 복된 미래는 없습니다. 이기주의는 마음과 정신을 죽이고 내일의 축복까지 죽입니다. 드릴 줄 모르고 얻으려고만 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겠습니까? 성도는 ‘이익’을 좇아 살지 말고 ‘의미’를 좇아 살아야 합니다.
 
 처음에 이곳에 이사 왔을 때 한 어르신을 전도했습니다. 꽤 마음을 열어서 우리 교회로 나올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서울의 큰 교회로 출석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연세도 많으신데 어떻게 그렇게 멀리까지 다니려고 하세요? 가까운 우리 교회도 아주 좋아요.” 그때 그분이 말했습니다. “여기도 좋지만 분당샛별교회에 교회 자체 묘지가 없잖아요? OO교회에 다니면 교회 자체 묘지가 있어서 좋아요.”

 그때 그 얘기를 듣고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교회 묘지가 없어도 순수한 마음으로 등록하면 하나님이 가장 복된 길을 열어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교회 묘지가 있다는 이유로 등록한다면 하나님도 “그래! 그렇게도 빨리 가고 싶니?”라고 하시고 그 소원대로 이뤄주실 것입니다.

 결국 그분은 자기 소원대로 4년 만에 77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묘지가 없어도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 교회에 등록하신 70이 넘은 권사님들은 대부분 몸이 약했고 병도 있었지만 9년이 지나도록 지금까지 한분도 천국에 가시지 않았습니다. 교회 묘지가 없으면 어떻습니까? 순수하게 하나님만 바라고 나가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최적의 길을 열어주시고, 꼭 교회 묘지가 필요하면 교회 묘지가 생길 때까지 장수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순수하게 헌신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지만 계산하면서 더 혜택 받을 것만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오히려 줄어들 것입니다. 그처럼 받을 것에 연연하면 더 받지 못하고 신앙도 약해지고 점차 축복의 지경도 좁아지지만 드릴 것에 관심을 기울이면 신앙도 살고 정신도 살고 점차 축복의 지경도 넓혀질 것입니다.

 어느 날, 동네에서 한 유력한 전도 대상자를 만났습니다. 열심히 전도해서 거의 우리 교회로 올 것 같았는데 최종 순간에 마음을 바꿔서 근처의 한 교회로 등록했습니다. 나중에 이유를 알아보니까 그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잘 준다는 얘기를 듣고 장학금을 바라보고 간 것입니다. 그런 속보이는 태도를 가지면 하나님이 과연 기뻐하시겠습니까? 교회는 ‘사명’을 따라 등록해야지 ‘이익’을 따라 등록하면 안 됩니다. 즉 내가 할 일이 있는 곳에 등록해야지 무엇인가를 받으려고 등록하면 안 됩니다.

 이제 ‘혜택’을 찾아 살지 말고 ‘의미’를 찾아 사십시오. 장학금 문제를 예로 들면 장학금을 받으려고 등록하지 말고 장학금을 주려고 등록하십시오. 그러면 장학금을 줄 능력을 하나님이 넘치게 주실 줄 믿습니다. 받으려는 구걸하는 마음만 넘치면 그런 마음에 어떻게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임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려고 하면 성공을 위해 능력과 지혜와 거룩한 인맥도 필요하기에 하나님이 그런 필요한 것들을 넘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제 부활의 믿음이 삶의 부활로 나타나게 하십시오. 그런 부활적인 삶의 핵심 모습은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삶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일에 많이 드리겠다는 큰 꿈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그 꿈을 반드시 이뤄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드림의 꿈을 가지고 기도하면 그 기도는 가장 능력 있는 기도가 되고 그런 드림의 꿈을 가지고 예배하면 그 예배는 가장 생동감이 넘치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항상 부활적인 삶을 통해 내일의 큰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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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5 요한복음 보는 믿음, 듣는 믿음 요20:19-29  정용섭 목사  2012-05-05 2664
6774 고린도전 부활신앙의 근본 고전15:1-11  정용섭 목사  2012-05-05 2641
6773 마가복음 메시야 살해음모 막15:1-15  정용섭 목사  2012-05-05 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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