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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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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축복의 제일 통로 (요 21:5-6)
한 증권회사 간부가 자살하며 유서를 남겼다. “얘들아! 사랑한다! 아빠는 지금까지 성실하게 온 힘을 다해 살아왔다. 누구보다 빨리 승진했고, 누구보다 빨리 돈을 벌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사라진 지금 아빠는 너무 허전하다.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해 먼저 간다. 너희는 아빠처럼 살지 말라.”
빨리 성공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예수 없이 빨리 얻은 것은 그만큼 빨리 사라진다. ‘대박’을 노리고 ‘도박’을 하면 대개 ‘쪽박’을 찬다. 한 청년이 과일빙수 가게를 열었다. 엄청난 손님이 찾았다. 전국에 30개 지점을 내며 대박을 쳤다. 그러다 선배와 강원랜드 갔다가 도박에 빠졌다. 결국 도박 빚 때문에 사기를 쳤다가 쪽박을 찼다.
인생이 잘 나갈 때가 겸손해야 할 때이다. 젊고 잘 나갈 때는 큰소리친다. “나는 늙어서 절대 자식 의지하지 않겠다.” 늙어서 주어지는 고독의 큰 고통을 모르기에 그렇게 말한다. 늙으면 그때는 자식이 한번 찾아와 주고 한번 전화해주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곧 그런 때가 온다. 자신을 자신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욥기를 통해 무엇을 배우는가? 첫째, “돈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 돈은 순식간에 날아간다. 둘째, “배우자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 이혼 부부들도 한때 행복하게 살았다. 셋째, “자식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 자식이 나보다 먼저 갈 수 있다. 넷째, “친구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 참된 친구 얻기는 항상 어렵다.
마지막으로 “건강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 대개 건강을 자신하던 사람이 먼저 간다. 아무리 바쁘고 귀찮아도 가끔 건강진단을 받으라. 자동차도 1년에 몇 번은 점검하는데 더 중요한 몸을 그냥 방치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나 한 사람은 사명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국력을 위해서도 중요하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소중한 생명을 귀찮다는 것 때문에 소홀히 하는 것은 큰 죄이다.
욥기를 통해 배우는 결론은 믿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예수님이 없으면 시체이다. 본문 5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셨다. “얘들아”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이디온’이라고 하는데, ‘철없는 애들’을 뜻한다. 가장 철없는 행동은 ‘예수님 없이 고기를 잡으려는 행동’이다.
예수님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 안에 위로가 있고, 응답이 있고, 문제해결이 있다. 예수님을 만나면 신비한 평화가 임하고,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있다.
영화 벤허에서 벤허는 노예로 끌려갈 때 신비한 한 분이 물을 주어 산다. 그 후 벤허는 전쟁으로 침몰하는 배에서 로마 호민관의 목숨을 구하고 그의 양아들이 된다. 어느 날, 그는 사형 당하러 끌려가는 한 분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분은 자기에게 물을 주신 분이었다. 그는 그분에게 미친 듯이 달려가 물을 드렸지만 로마 병정이 채찍으로 치며 물을 주지 못하게 했다.
그의 마음에 엄청난 분노가 일었지만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그분을 보는 순간 로마 병정들을 불쌍히 여기게 되었고, 마음에 구원의 기쁨과 평화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때, 어머니와 누이의 문둥병도 치유되었다. 예수님을 영접하자 그의 영혼과 가정이 온전히 회복된 것이다. 지금도 그런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
벤허 영화에서 십자가 장면을 찍을 때 감독은 수천 명의 엑스트라에게 말했다. “이제 십자가 장면을 잘 찍어야 하니까 다른 모든 일은 그치고 10분만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배우들은 감독 말대로 했다. 그때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수천 명이 진짜 눈물을 흘렸다. 주님을 마음에 영접하면 영혼이 깨어나지만 주님이 마음에 없으면 영혼이 죽고 영적 고기들도 얻을 수 없다.
< 생각의 전환을 꾀하라 >
주님 질문에 제자들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예수님은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다. 그 말에 담긴 여러 함축적인 뜻 중에는 “왼편만 고집하지 말고 생각의 전환을 꾀하라!”는 뜻도 있을 수 있다.
인생에는 생각을 전환해야 할 것이 많다. 그 중에 가장 위대한 생각의 전환은 “나는 의인이 아니구나! 나는 정말 회개할 것이 많구나! 나는 모르는 게 참 많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장래 목표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생각의 전환이 있을 때가 바로 진짜 사람이 되는 때이다.
그 외에 바꿔야 할 생각이 많다. 몇 가지 예로,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배우려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남을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많이 나누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만사에 형통한 사람’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도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 중심적인 생각과 습관을 버리고, 최선을 다해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라.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남에게 비수가 된다.
한 목사가 기독교 TV에서 레위기 13장을 강해하며 ‘문둥병자’란 말을 사용했다. 그 방송을 들은 한센씨병 환자들이 ‘한센씨병’이라는 말 대신에 ‘문둥병’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그 목사 교회를 때려 부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어떤 분은 시각 장애인 목사들이 참석한 세미나에서 성경강해 중에 ‘소경’이란 말을 사용했다. 세미나 후, 한 시각 장애인 목사 부인이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목사님! 소경이란 말을 쓰면 그분들이 너무 마음 아파해요. 시각 장애인이라고 해야 해요.” 무심코 한 말이 상대에게 그렇게 아픔을 줄 수 있다.
행복하게 사는 한 부부가 있었다. 아내 생일 날, 남편이 물었다. “여보! 당신 생일에 무슨 선물을 해줄까?” 아내가 말했다. “선물은 필요 없고, 두 시간 동안 내 얘기를 들어주는 선물을 주세요.” 그래도 선물을 얘기해보라고 했지만 아내는 자기 얘기를 기쁘게 마음을 열고 들어만 달라고 했다.
결국 그렇게 하기로 하자 아내가 처음 만날 때부터 남편에게 속상했던 일과 고마웠던 일을 죽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남편이 눈물을 흘렸다. 얘기를 다 듣고 남편이 아내 손을 잡고 말했다. “여보! 그때 농담으로 한 말로 그렇게 며칠이나 잠을 못 잤는지 몰랐소! 앞으로 조심할게.”
무심코 던진 말이 그렇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하지만 항상 완벽하게 말할 수 없기에 더 중요한 것은 말 한 마디에 상처받지 않는 것이다. 상처를 주어도 상처를 받지 않는 늠름한 모습이 필요하다.
누가 시기하는 말을 하면 넉넉히 생각하고 오히려 기뻐할 일이다. 못났다면 시기도 없었을 것이다. 남으로부터 부정적인 말을 들어도 처음에는 화가 나지만 찬찬히 겸손하게 생각하면 그 말이 맞는 부분도 있다. 부정적인 말도 잘 소화하면 회개와 성숙의 기회가 된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행복과 평화와 만족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 순종은 축복의 제일 통로이다 >
주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했을 때 제자들은 순종했다. 그러자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다. 순종은 하나님의 능력을 흘러나오게 하는 수도꼭지와 같다. 순종하면 능력이 흘러나오고, 순종하지 않으면 능력은 그친다.
사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에서 ‘오른편’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는데, 그 장면에서도 ‘깊은 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다. 주님께서 왼편으로 가라고 하면 왼편으로 가고, 주님께서 얕은 곳으로 가라고 하면 얕은 곳으로 가는 순종이 중요하다.
순종하는 만큼 축복받고, 순종하는 자녀가 더 사랑받는다. 편애는 나쁘지만 순종하는 자녀가 더 사랑받고, 반항하는 자녀가 덜 사랑받는 것은 ‘편애’가 아니라 오히려 ‘정의’이다. 예수님도 12제자 중 특별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더 사랑했다. 순종은 축복의 제일 통로이다.
순종은 ‘듣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이 축복받는다. 또한 순종은 ‘행하는 것’이다. ‘듣고 끝나는 사람’보다 ‘듣고 행하는 사람’이 더 축복받는다. 낫 놓고 ㄱ 자도 모르고, 지게 놓고 A 자도 모르고, 공을 놓고 O 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도 순종하면 축복의 문이 열리지만 다 안다고 순종하지 않으면 축복의 문이 닫힌다.
인간은 똑똑한 것 같지만 어리석은 존재이다. 어떤 분은 건강을 위해 보약을 먹었는데, 더 쇠약해져서 종합 진찰을 하자 보약이 체질에 맞지 않아 간이 녹아버린 것이었다. 결국 보약 먹고 2개월 만에 죽었다.
인간은 강한 것 같지만 약하다. 아무리 건강해도 병균 하나로 죽을 수 있고, 아무리 강건해도 눈짓 하나, 말 한 마디로 마음이 무너질 수 있다. 강해보이는 사람도 때로는 한없이 약해진다. 나폴레옹도 귀가하면 고독과 외로움으로 아내 앞에서 종종 무릎 꿇고 울었다. 그처럼 연약한 인간이기에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지만 만물 중에 가장 순종하지 않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주님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을 때, 그 음성을 제자들뿐만 아니라 디베랴 바닷가의 큰 물고기들도 들었다. 그리고 주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배 오른편으로 몰려들었고, 제자들이 그물을 내리자 그 물고기들은 “주님! 우리는 죽도록 충성할래요!”라고 외치듯이 너도나도 그물 속으로 먼저 들어가 주님 말씀이 부도 맞지 않게 순종했다.
사람은 순종하기 쉬운 말씀도 많이 부도낸다. ‘자유의지’라는 가장 복된 선물을 가지고 가장 순종도 못한다. 그런 본능을 역류해 주님께 힘써 순종하면 주님의 남다른 축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조치와 섭리에 순종하면 약함은 강함이 되고, 약점은 장점이 되고, 실패는 결국 성공으로 가는 다리가 된다.
< 순종은 가장 위대한 자질이다 >
자녀가 진정 복된 자녀가 되길 원하면 무엇보다 순종하는 자녀로 기르라.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가 교회에서도 순종하고 하나님께도 순종한다. 순종하면 복도 받지만 ‘순종의 자질’도 얻는다. ‘순종의 자질’은 험한 세상에서 시험을 물리치고, 문제를 극복하고 승리의 나무로 오르게 하는 가장 위대한 자질이다. 자녀들이 순종할 때 부모가 가장 기뻐하듯이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녀를 가장 기뻐하시고 축복하신다.
옛말에 ‘애가승무노인탄(哀歌僧舞老人歎)’이란 말이 있다. 조선시대 숙종이 밤에 민정시찰을 할 때 한 오두막에서 노인의 울음소리와 장구 치는 소리가 들렸다. 왕이 문틈으로 보자 한 노인이 밥상 앞에서 울고 있었고, 아들은 장구 치며 노래하고 있었고, 며느리는 중처럼 머리를 깎은 채 춤추고 있었다.
그 광경이 기이해서 사연을 물어보니 그 날이 노인의 생일이라 가난한 며느리가 머리를 잘라 팔아 아버지의 생일상을 차렸다. 그리고 별로 해드릴 것이 없던 아들 내외가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고 아들이 장구 치며 노래하고 며느리는 그 장단에 맞춰 춤추자 그 효성에 감격해 노인이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왕이 아들에게 말했다. “나는 내일 과거 보러 가는데 당신도 나와서 과거를 쳐보라!” 아들이 과거 시험장에 가자 그때 출제된 문제가 ‘애가승무노인탄(哀歌僧舞老人歎, 슬픈 노래를 부르는데 중은 춤추고 노인은 탄식한다)’이란 문제였다. 다른 선비들은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노인의 아들은 감동적인 글을 써 장원급제를 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축복의 씨앗이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 공부도 잘하듯이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성도가 축복도 받는다. 때로 고난이 와도 변함없이 순종하면 그 고난은 숱한 유익과 열매를 남기고 사라진다.
< 기독교는 풍성한 삶도 약속한다 >
본문 6절에서 제자들이 고기를 많이 잡은 장면은 ‘풍성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킨다. 제자들 앞에 놓인 큰 사명 앞에서 고기 많이 잡은 것은 별로 큰 의미가 없다. 그래도 주님은 먼저 많은 고기를 잡게 해주셨다. 하나님은 힘들게 사명만 주시지 않고 먼저 풍성한 삶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큰 꿈을 가지고 그물을 크게 짜라. 기독교는 영생도 약속하지만 풍성한 삶도 약속한다.
한 목사가 대학 때 불교에 심취했다가 효봉스님의 입적을 계기로 기독교로 개종했다. 효봉스님은 원래 판사였는데 어느 날 재판에서 살인범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사형을 집행했는데 그 후에 진범이 잡혔다. 그 뒤 참회의 나날을 보내다 금강산에서 머리 깎고 스님이 된 후, 열심히 불도에 정진해 불교계의 큰 스님이 되었다.
그 효봉스님이 입적하며 마지막으로 한 말이 ‘무(無)’였다. 그 말을 듣고 다른 불자 친구들은 모두 감동했다. “확실히 큰 스님이야. 스님은 정말 달라. 인생은 ‘무’지 뭐....” 그런데 그는 그 ‘무’란 말에 오히려 회의가 생겼다. “사람이 일평생 도를 닦았으면 마지막에 무엇인가를 찾아 ‘유(有)!’라고 해야지 ‘무(無)!’라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결국 그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기독교는 ‘무’의 종교가 아니라 ‘유’의 종교이다. 잘 믿으면 ‘보다 풍성한 삶’이 약속되어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더 장래가 있다고 본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아니다. 일본에게 배울 점도 많지만 일본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것은 기독교와 같은 건전한 종교가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시간이 지날수록 풍성한 ‘유’를 만들어낸다.
더 나아가 기독교는 풍성함을 이웃과 나누는 종교이다. 성도는 나눔을 위해 부름 받았다. 신앙생활의 최대 관심사를 “어떻게 하면 잘 나눌까?”하는 선교마인드에 두라. 욕망으로 뭉친 인간이 선교마인드를 지속적으로 가지기는 쉽지 않다. 문제의 산도 큰 산이지만 선한 일에 대한 사명의 산도 큰 산이다.
사명의 산이 힘들게 느껴질 때마다 위로되는 말씀이 스가랴 4장 6-7절 말씀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찌어다 하리라.”
하나님의 풍성함을 나누려는 비전만 잃지 않으면 ‘큰 산’은 반드시 평지가 된다. 성도 한 사람은 나눔을 위해 부름 받았다. 한 그루의 나무는 탁한 공기를 마시고 산소를 내주는 하나의 산소발전소이다. 그처럼 이기심의 탁한 공기를 마시고 나눔의 산소를 내주는 산소발전소가 되기를 힘쓰면 언젠가 비전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한 분이다. 그 은혜가 나를 살리고 변화시킨다. 지금 모든 것이 부족해도 괜찮다. 지금부터 진정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기로 작정하면 변화의 역사는 시작된다. 살면서 하나님 중심적으로 순종하며 살고, 남을 생각하며 살고, 자신을 격려하며 살 때, 풍성한 행복도 깃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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