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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렘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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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꼭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예레미야 6장 16절)
선한 길을 알려는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태도를 생각하면 곧 떠오르는 사람들이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베뢰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고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인 사람들이란 말은 오늘날의 용어로 하면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교양은 흔히 생각하는 에티켓만은 아닙니다. 기독교인에게도 교양은 꼭 필요합니다. 물론 세상적인 교양과 기독교적인 교양은 약간 다릅니다. 세상적인 교양은 사람과의 수평관계를 잘하려는 것이지만 기독교적인 교양은 하나님과의 수직관계와 사람과의 수평관계를 다 잘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기독교적인 교양을 구비하려면 알아야 할 중요한 3가지가 있습니다.
1) 내 변화가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환경이 변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야 됩니다. 환경이 달라지고, 대우가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져도 자신이 달라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행복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살면서 환경을 많이 바꾸어 봤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행복은 환경을 바꾸는 것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자신을 다스리는데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탓입니다!”라고 말하면 되는데 그것을 못한 때문입니다. 겸손은 축복을 많이 받게 함과 동시에 축복을 축복답게 만듭니다. 그 겸손함의 핵심이 바로 “내가 변해야 된다! 내가 마음을 바꾸자!”는 인식입니다.
2) 사랑은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받으려는 것은 본능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본능을 따르는 삶에는 창조력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반대로 사랑을 주려는 것은 성도의 참된 삶으로서 그 삶에는 창조력과 능력과 변화를 위한 무궁한 힘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받으려고 집착하는 일을 버리십시오. 누구의 사랑을 받고자 질투하고 안달하는 식으로 이제까지 하듯이 해 봐야 이제까지 받지 못한 사랑을 새삼스레 어떻게 받겠습니까? 받으려는 사랑은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에 이제는 깨끗하게 사랑하고 희생하려고 해보십시오. 또한 순수하고 깨끗하게 주는 사랑으로 사랑의 개념을 바꿔보십시오. 그러면 무엇인가 새로운 세계가 전개될 것입니다.
3) 원수 사랑의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한과 상처를 심어준 그 사람을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그냥 용서하려면 힘들겠지요? 그러므로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을 바꾸면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요? 알고 보면 그 사람 때문에 인생의 교훈을 많이 얻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또한 그 사람 때문에 하나님도 알게 되었고 기도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그가 축복을 준 것은 아니지만 축복의 계기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면 하나님이 그 자세를 가장 기뻐하시기에 가장 크게 축복받는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원수사랑은 하나님과의 직통관계를 여는 시온의 대로와 같습니다. 저는 ‘직통기도’란 용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사실상 원수사랑은 하나님과의 직통관계를 열고 기도를 직통기도로 만드는 최고의 길입니다. 그처럼 ‘원수 사랑의 축복’을 생각하면 원수를 사랑하는 길에 들어서는 것이 쉬워질 것입니다.
2. 선한 길을 실천해야 한다는 음성
선한 길을 찾았거든 그 길로 행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 마음에 평강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선한 길은 아는 것 같은데 그 길로 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예 선한 길을 알지 못하면 마음이라도 편합니다. 그러나 본인은 편할지 몰라도 그 무지 때문에 많은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 때문에 무지한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이 알려고 하되 거기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알고서 실천이 없으면 평강도 없습니다.
말씀을 아는 만큼 실천하려고 하십시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싫고 귀찮고 때로는 부담스럽지만 말씀대로 살 때 삶에는 창조와 변화의 능력이 생기고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는 행동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을 때 공동체가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행동하는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대개 보면 말씀대로 즉각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진짜 기도는 하나님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자신도 움직이게 합니다. 결국 진짜 기도는 ‘행동이 따르는 기도’입니다. 내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행동도 따르기 어렵습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대개 하나님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후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십시오.
죽기를 각오하면 하나님이 더 살려주실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다 살려고만 하고 편하려고만 하니까 진짜 사는 길이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을 때, 그 명령이 마음에 들고, 내게 편리하고, 그 명령에 순종해서 내게 유익이 있을 때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면 그것은 진짜 순종이 아니고, 그런 자세 속에는 축복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하고 남이 안 하려고 하는 힘든 일에도 순종하면 진짜 사는 길이 열립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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