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요이1:4-6 |
---|---|
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진리도 행하는 자에 대한 기쁨
(요한2서 1:4-6)
사도 요한은 본문 4절에서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고 했습니다. 요한의 이 말은 모든 목회자들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의 참 보람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요한의 고백처럼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진리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일일 것입니다.
1. 진리에 행하는 자를 보는 기쁨
하나님의 종들에게 교인들의 존재는 참으로 귀중한 합니다. 주님이 맡기신 양 무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종과 성도들을 양과 목자로 비유하신 것은 목회자와 성도들간에 그만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빌4:1절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나의 사모하고 사랑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성도들이 그의 기쁨의 전부였습니다. 그는 양 무리들을 자신의 면류관으로 생각했습니다. 양 무리들의 선한 목자로 주님의 인정을 받으면 이런 면류관을 받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양이 없으면 목자의 존재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양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을 자기 생의 전부로 여기고 기쁨으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양 무리들의 목자들에게 교훈하기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양 무리들을 잘 치는 목자에게 면류관을 주시는데 이 양 무리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전4:15절에서 바울은 양 무리들을 자기가 낳은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잘 가르치고 영혼의 파수군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목자를 세우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들은 양 무리들에 대한 영혼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양 무리들이 계명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진리에 행하지 못하며 어그러진 길로 행하고 믿음대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목자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가슴아픈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 무리들이 잘 순종하고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그로 인한 기쁨이나 보람이란 다른데 비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들의 마음에 기쁨을 주고 보람있는 목회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성도들 자신이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대할 태도에 대하여 히13장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의 영혼을 위하여 경성 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들로 보람있고 기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순종하고 복종하는 일입니다.
2. 진리와 사랑
사도 요한은 진리와 계명과 사랑의 관계를 5절과 6절에서 간략하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재판했던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주님께 던졌지만 주님은 대답지 아니하셨습니다. 중생 되지 못한 자에게 진리를 설명해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바로 이 사랑을 증거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교회에 구하는 바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말이 율법에는 기록되지 아니한 생소한 말 같지만 이 사랑은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율법도 하나님의 사랑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말입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의 두 강령에 대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풀이하셨습니다.
율법으로 밝히신 하나님의 계명도 사랑에서 출발한 것이요 복음으로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도 이 사랑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제쳐놓고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아무 것도 나올 수 없으며 받을 수도 없습니다. 사랑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결론 :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가장 위대한 계명과 진리는 사랑이며 이 사랑의 생활이 계명을 지키며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일입니다. 사랑은 은사로 주신다고 고전13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이 은사를 주시지만 우리는 더 많은 사랑의 생활을 하기 위해 사랑을 달라고 구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2서 1:4-6)
사도 요한은 본문 4절에서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고 했습니다. 요한의 이 말은 모든 목회자들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의 참 보람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요한의 고백처럼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진리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일일 것입니다.
1. 진리에 행하는 자를 보는 기쁨
하나님의 종들에게 교인들의 존재는 참으로 귀중한 합니다. 주님이 맡기신 양 무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종과 성도들을 양과 목자로 비유하신 것은 목회자와 성도들간에 그만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빌4:1절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나의 사모하고 사랑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성도들이 그의 기쁨의 전부였습니다. 그는 양 무리들을 자신의 면류관으로 생각했습니다. 양 무리들의 선한 목자로 주님의 인정을 받으면 이런 면류관을 받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양이 없으면 목자의 존재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양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을 자기 생의 전부로 여기고 기쁨으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양 무리들의 목자들에게 교훈하기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양 무리들을 잘 치는 목자에게 면류관을 주시는데 이 양 무리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전4:15절에서 바울은 양 무리들을 자기가 낳은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잘 가르치고 영혼의 파수군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목자를 세우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들은 양 무리들에 대한 영혼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양 무리들이 계명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진리에 행하지 못하며 어그러진 길로 행하고 믿음대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목자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가슴아픈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 무리들이 잘 순종하고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그로 인한 기쁨이나 보람이란 다른데 비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들의 마음에 기쁨을 주고 보람있는 목회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성도들 자신이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대할 태도에 대하여 히13장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의 영혼을 위하여 경성 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종들로 보람있고 기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순종하고 복종하는 일입니다.
2. 진리와 사랑
사도 요한은 진리와 계명과 사랑의 관계를 5절과 6절에서 간략하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재판했던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주님께 던졌지만 주님은 대답지 아니하셨습니다. 중생 되지 못한 자에게 진리를 설명해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바로 이 사랑을 증거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교회에 구하는 바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말이 율법에는 기록되지 아니한 생소한 말 같지만 이 사랑은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율법도 하나님의 사랑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말입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의 두 강령에 대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풀이하셨습니다.
율법으로 밝히신 하나님의 계명도 사랑에서 출발한 것이요 복음으로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도 이 사랑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제쳐놓고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아무 것도 나올 수 없으며 받을 수도 없습니다. 사랑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결론 :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가장 위대한 계명과 진리는 사랑이며 이 사랑의 생활이 계명을 지키며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일입니다. 사랑은 은사로 주신다고 고전13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이 은사를 주시지만 우리는 더 많은 사랑의 생활을 하기 위해 사랑을 달라고 구해야 할 것입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