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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삼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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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진리의 증거
(요한3서 1:1-8)
사도 요한은 본문 서두에서 자신을 장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장로란 말은 그 범위가 광범위합니다. 그 해석도 다양합니다. 구약에서는 백성들의 어른들을 가리켰는데 특히 이스라엘의 자기 지파에서의 높은 위치를 나타냈습니다. 신약 성경에 와서 여러 곳에서 사도들에 대하여 장로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장로교 헌법에서는 장로란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치리만을 담당하는 높은 직분자를 장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치리와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는 목사를 또한 장로라고 부릅니다. 요한은 사도이기 때문에 아마 후자의 경우에 해당될 것입니다.
1. 가이오에 대한 축도
요한 사도는 가이오를 향하여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란 표현으로 요한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이오에게 요한이 이런 표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하는 증거를 형제들에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3절과 4절 말씀에서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증거를 교회 형제들이 와서 요한에게 알려 준 것입니다. 가이오는 나그네 된 형제들에게 신실한 대접을 해 준 일에 대하여 요한에게 이미 보고되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7절에서 복음의 일꾼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영접하는 일은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일꾼들을 주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일에는 상이 따릅니다. 예수님은 마10:40절 이하에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 가이오에게 준 요한의 축도
요한은 이런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 가이오에게 주의 이름으로 축원했습니다. 그 내용이 2절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사랑하는 자요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구원의 삼박자라고 해서 기복적 신앙으로 승화시키기도 하지만 이 구절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이 축원 기도는 분명히 영육간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축원 기도의 서두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라고 전제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축복은 먼저 그 영혼이 잘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영혼이 잘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풍성히 받는 일을 말합니다. 가이오는 그의 영혼이 잘된 사람입니다. 이것은 요한이 가이오의 신앙을 인정하고 들어간 것입니다. 가이오는 이런 모범적이며 자랑할 만한 성도였으므로 요한은 그에게 이런 축원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요한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기이오가 경영하는 사업이 번창되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계획하는 모든 일이 그 마음의 소원대로 이뤄질 것을 원했습니다. 이같은 바람은 양 무리들의 목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범사에 잘된다는 말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운영될 것을 기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이오를 위한 요한 사도의 기도지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뜻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해 고난의 잔을 마시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늘의 상급을 위해 환난의 생애를 걸어가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서 우리에게 큰 유익을 주실 때도 있는 것입니다. 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마지막에 나타나는 결실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요한의 간구는 가이오의 육신의 건강을 위해 기원했습니다. '강건하기를 간구 하노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강건해야 합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요한은 사랑스러운 가이오를 생각하면서 그의 범사에 뿐 아니라 건강에도 강건하기를 위해 간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병도 모두 나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유익한 병도 있습니다. 바울은 가시라고 불리우는 괴로운 병이 있어서 말할 수 없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응답을 받았을 뿐 병의 고침은 없었습니다. 그 병이 바울에게 유익했기 때문에 그대로 두신 것입니다.
결론 : 이 가이오에 대한 간구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며 적용 될 수 있는 기원도 아닙니다. 신앙의 공식인양 생각하여 영혼이 잘 되면 반드시 범사에 잘 되고 건강해야 되는 것처럼 공식화시키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이오처럼 사도 요한으로부터 참으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라고 부름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 가이오에게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 축복,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한 요한의 축원
기도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3서 1:1-8)
사도 요한은 본문 서두에서 자신을 장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장로란 말은 그 범위가 광범위합니다. 그 해석도 다양합니다. 구약에서는 백성들의 어른들을 가리켰는데 특히 이스라엘의 자기 지파에서의 높은 위치를 나타냈습니다. 신약 성경에 와서 여러 곳에서 사도들에 대하여 장로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장로교 헌법에서는 장로란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치리만을 담당하는 높은 직분자를 장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치리와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는 목사를 또한 장로라고 부릅니다. 요한은 사도이기 때문에 아마 후자의 경우에 해당될 것입니다.
1. 가이오에 대한 축도
요한 사도는 가이오를 향하여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란 표현으로 요한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이오에게 요한이 이런 표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하는 증거를 형제들에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3절과 4절 말씀에서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증거를 교회 형제들이 와서 요한에게 알려 준 것입니다. 가이오는 나그네 된 형제들에게 신실한 대접을 해 준 일에 대하여 요한에게 이미 보고되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7절에서 복음의 일꾼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영접하는 일은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일꾼들을 주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일에는 상이 따릅니다. 예수님은 마10:40절 이하에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 가이오에게 준 요한의 축도
요한은 이런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 가이오에게 주의 이름으로 축원했습니다. 그 내용이 2절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사랑하는 자요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구원의 삼박자라고 해서 기복적 신앙으로 승화시키기도 하지만 이 구절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이 축원 기도는 분명히 영육간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축원 기도의 서두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라고 전제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축복은 먼저 그 영혼이 잘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영혼이 잘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풍성히 받는 일을 말합니다. 가이오는 그의 영혼이 잘된 사람입니다. 이것은 요한이 가이오의 신앙을 인정하고 들어간 것입니다. 가이오는 이런 모범적이며 자랑할 만한 성도였으므로 요한은 그에게 이런 축원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요한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기이오가 경영하는 사업이 번창되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계획하는 모든 일이 그 마음의 소원대로 이뤄질 것을 원했습니다. 이같은 바람은 양 무리들의 목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범사에 잘된다는 말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운영될 것을 기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이오를 위한 요한 사도의 기도지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뜻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해 고난의 잔을 마시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늘의 상급을 위해 환난의 생애를 걸어가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서 우리에게 큰 유익을 주실 때도 있는 것입니다. 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마지막에 나타나는 결실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요한의 간구는 가이오의 육신의 건강을 위해 기원했습니다. '강건하기를 간구 하노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강건해야 합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요한은 사랑스러운 가이오를 생각하면서 그의 범사에 뿐 아니라 건강에도 강건하기를 위해 간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병도 모두 나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유익한 병도 있습니다. 바울은 가시라고 불리우는 괴로운 병이 있어서 말할 수 없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응답을 받았을 뿐 병의 고침은 없었습니다. 그 병이 바울에게 유익했기 때문에 그대로 두신 것입니다.
결론 : 이 가이오에 대한 간구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며 적용 될 수 있는 기원도 아닙니다. 신앙의 공식인양 생각하여 영혼이 잘 되면 반드시 범사에 잘 되고 건강해야 되는 것처럼 공식화시키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이오처럼 사도 요한으로부터 참으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라고 부름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 가이오에게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 축복,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한 요한의 축원
기도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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