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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빌3: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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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설교제목 - 끝나지 않는 경주
설교날짜 - 2007년 01월 03일
I. 본문해설 본문은 바울이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를 향해 쓴 편지이다. 루디아라는 자주 장사를 하는 여인을 통해 개척한 교회이기 때문에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특히 더 각별한 교회였다. 빌립보 교회는 사랑이 많고 잘 순종하는 아름다운 교회였다. 이 빌립보 지역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요충지였다. 빌립보는 로마와 상거가 멀었기에 로마는 도시의 존재도 모르는 도시였다. 소로마를 옮겨 세우고자 해서 로마의 아름다움을 만방에 선전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이루어진 도시였다. 사도 바울은 이토록 아름다운 빌립보 교회에게 “믿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 지상의 빌립보 교회가 아름다우니, 하늘나라는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하는 생각이 절로 나게 만드는 아름다운 교회인데도 그렇게 바울은 당부하였다. 이런 서신의 와중에 바울은 자신의 간증을 하고 있다.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 2:4-6) 그는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뒤이어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라고 말하고 있다. 도리어 우리는 바울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의 목표가 고작 ‘아는 것’이란 말입니까?”하며 그 말을 시시하게 여길 텐데 그런 사람들에게 그 말의 깊은 의미를 지금부터 논증해 보이겠다. (예화) 여러 번 남자들에게서 버림 받았던 한 여자가 정말 훌륭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의 고백이 “저는 이 남자를 만나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어요.”였다. 여기서 “안다.”는 의미를 숙고해보라. 이 말의 히브리 용법은 “누리고 있다”는 말과 같다. 또한 그리스도와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한다는 것은 즉 합일(合一)을 의미한다. 그 아는 능력이 살아서 역사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안다’는 말은 보다 심층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그가 나를 아시나니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고 욥이 고백할 때, 그 말뜻은 하나님께서 애정을 가지고 욥의 가는 길을 주시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인생의 목표이다.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하고 배우는 모든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바, 진정한 앎의 행복으로 나아가는 수단들이다. 그러한 지복의 상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예수님을 아는 고로 이전에 가졌던 모든 지식을 해로 여기게 되었다고 바울은 말한다. 앞서 고백한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것,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등등의 이전의 자랑 거리가 예수님을 못 보게 만드는 것이었기에 배설물과 같이 여기게 되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며 내 자신이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분명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분발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언젠가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었던 사람이다. 이전에는 갈팡질팡 했으나 이제는 주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문제는 시간과 자원이다. 아무리 주님을 알았다해도 자원과 시간이 없다면 주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치명적 결함이다. II. 세월을 아끼는 삶 A. 미완에 아파함 (예화) 대원군 시절에 우리와 통상하려고 온 함선과 싸움이 벌어졌다. 대원군은 그 놈들을 잡아오라고 호통을 쳤지만, 그들은 기술적으로 우수하여 도저히 당할 수 없었다. B. 미래에 관심 C. 부르심에 집중함
“내가 잡았다 함도 아니요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라고 바울은 말한다. 온전함에 도달하지 못한 견디기 힘든 아픔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된 신자들은 참 가치를 모르다가 이제 그리스도를 알았음에도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함을 비통해한다. 혹여 구역장이 구성원들이 자꾸 줄어들어 딴 구역과 합쳤는데도 부족함을 못느낀다면, 그는 미완에 아파함을 모르는 사람이다. 인간이 타락하면 자기만족에 빠지지만, 은혜 안에 있으면 미완성의 고통과 아픔을 느끼게 마련이다. 내가 있는 것으로 자족하려할 때가 바로 미끄러지는 지점임을 주의하고, 항상 분발하라. 나의 부족에 좌절하고 더욱 잘해야 한다.
오직 내가 한 일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간다는 말은 생각이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화재 시, 회재가 누구 탓이냐는 싸움만 하고 있다면, 초가삼간을 다 태우고 만다. 미래의 관심한다는 말의 적극적인 의미는 자기가 잘한 것, 훌륭한 섬김을 잊어야한다는 것이다. 왕년의 신앙 자랑하는 사람 치고 금년의 신앙생활에 신통한 사람이 별로 없다. 기쁜 일이 매일매일 있는 사람은 과거지사(過去之事)를 자랑하지 않는다. 소극적인 의미로는 이전 침체(沈滯)를 잊으라는 것이다. 물론 과거의 잘못과 오류를 후회스럽지만, 그 일들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좋지 못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말씀을 기억하라. 연말이 되면 사람들이 사역을 내려놓는 경우가 자주 있다. 여러분 중에 지난해 섬김이 부족하다고 후회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난해에 못 섬겼기 때문에 올해는 더 잘 섬기기 위해 계속하라. 지난해에 잘 섬겼다면, 이렇게 잘 섬기고 있는데 지금에 와서 내려놓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더 잘 섬기기 위해 재도전하라.
바울이 하나님의 부르심, 즉 위에서 부르신 부름을 좇아가노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자신에게 고유한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부르심이 있다. 인생의 가치는 그 길이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시간들에 의해 결정된다. “나의 부르심은 무엇일까? 나의 에너지와 시간과 돈을 모두 바칠 심장을 뛰게 만드는 그 사명!” 그래서 살아 있는 신자는 자기 심장을 뛰게 하는 하늘 부르심에 합치하여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리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주신 부르심에 온 생애를 활활 불살라 드렸다. 그래서 현재의 고난, 현재의 염려를 뒤로하고 “인자는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그분은 늘 미래에 대한 vision을 좇아 그 열매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니 우리도 그리스도를 본 받아 과거에 잘못에 매여 낙심하거나, 현재에 풍요에 매여 안주할 것이 아니라, 날마다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야한다. 200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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