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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시편 김남준 목사............... 조회 수 2380 추천 수 0 2012.05.20 07: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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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23:3下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2007.1.28 설교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2007-01-28

“자기 이름을 위하여”(시 23:3 下)

 

1.하나님의 계획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대하여 무지무각(無知無覺)하고 어리석을 정도로 둔하다고 할지라도, 좋은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공급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우리의 영적 생활에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곤고하고 갈급한 영혼이 무엇으로써 그 목마름으로부터 해갈되고 충만해집니까? 다른 어떤 것으로도 우리의 영혼의 곤고함을 벗어나게 할 수 없고 심령의 메마름을 흡족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새 힘을 얻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혼의 치료자가 되시고 우리의 심령을 고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손만이 우리의 영혼을 모든 상처로부터 회복시킬 수 있으며, 잘못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적인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세상에 있는 명예나 물질이나 다른 사람들의 평판, 또는 인생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자신의 좋은 경험들이나 상식들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밖에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도 메마른 우리의 영혼을 바라볼 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기를 기뻐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잘못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치시고, 우리의 망가진 신앙의 자세를 바르게 회복시키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행하심에는 언제나 그 행하심 자체보다 더 큰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영적 회복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보여 줍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며, 인격적으로 설복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그리스도의 인격 앞에 승복하게 하신 그 놀라운 은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따라 살기를 소원하는 진실한 바람들을 우리 안에 두셔서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추구하게 하시는 그 모든 일들은 하나의 목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의 이름과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산다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영광의 하나님

 

하나님이 누구이십니까? 이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가르쳐 주셨던 기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당신의 아버지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Our Father in heaven)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묘사는 우리 주님의 마음속에 있었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우선적인 이해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과 구별된 분이십니다. 피조물 속에 당신의 성품을 나타내시기도 하지만, 피조물과는 전혀 구분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물 위에 계신 분이며, 그것들로부터 초월하여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 세계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완전함과 의로움과 영원하심이 그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우리는 비천한 인간일 따름입니다. 그분의 영광은 창조주의 영광이며, 우리는 단지 그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피조물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이다 아멘“(딤전 1:16-17).

 

시인들은 이런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자연계 속에도 나타났음을 노래했습니다. 따라서 피조 세계에 깃든, 하나님의 쇠하지 않는 완전한 영광은 그들이 즐겨 부르는 찬양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 19:1-4). 이 땅에 있는 성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천상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의 영광과 능력은 영원한 찬송 제목입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계 5:13). 그래서 갈라진 홍해의 마른 땅을 건넌 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격하던 애굽의 마병들을 홍해에 수장시킨 채 가나안을 향하여 출발하며 이렇게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출 15:11).

 

3.두려워해야 할 하나님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 인간 자신들 사이의 이 같은 질적인 차이를 깊이 느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경외하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야레’가 곧 ‘두려워하다’라는 어의를 가졌던 것이나, 신양성경에서 ‘경건’이라는 희랍어가 ‘유세베이아’이었는데, 이 말이 ‘좋은’과 ‘두려움’이라는 말의 합성어였던 점들도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해 줍니다.

 

신앙이 피상적이던 시대에는 성경 진리에 대한 이해도 그러하였습니다. 교회가 성경의 거룩한 진리들을 영광스럽게 체험하여 그 본래의 의미를 알던 시대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충만하고 풍성한 사랑은 이렇게 하나님을 올바르게 두려워하는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친구처럼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함께 장난치며 놀 수 있는 친구나,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대하는 것을 깊은 신앙심의 표지(標識)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사람은 땅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보다 더 적합한 말은 없습니다. 참된 부흥과 영적 각성이 일어나던 시대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두려우신 성품에 대해 새롭게 깨닫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잠들었던 시대일수록 하나님의 성품을 세속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신 거룩한 부르심을 세상의 일로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4.하나님과 이름

 

하나님은 만물 위에 계십니다.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세상은 그분의 존재에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는 영광 그 자체입니다. 이 말은 이 세상에서 피조물과 그 세계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영향 받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땅의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그들로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으며, 그의 거룩하심을 보탤 수도 없고 감손시킬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충족하고 자족한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의하여 영광이 보태어지거나 피조 세계에 의하여 존귀가 첨가됨으로써 완전해지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인간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고 세상 풍조가 어떤 식으로 갈리든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홀로 지존하시고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시며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그 같은 성품을 욕되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든, 혹은 반역하여 대항하든, 인간의 그러한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분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광도 이처럼 피조 세계를 초월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상으로, 난감한 철학으로, 사악한 범죄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거나 훼방하고자 하는 것은 마치 강아지가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아래서 그 해가 빛 잃기를 바라며 짖어대는 것과 같습니다.

 

친히 인간들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며, 그들과 관계를 맺으시고, 그들 속에 당신의 살아계심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 주시지만, 그들의 신불신(信不信)의 여부에 영향 받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영광을 훼손당하지 아니하시는 지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나 당신의 이름은 땅에 두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그분 자신과 이름은 동일시됩니다. 따라서 이 세상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태도는 곧 하나님 자신에 대한 태도로 간주됩니다.

 

성경의 이 같은 이름 신앙은 서양보다는 우리 동양의 문화권에서 더 잘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이미 ‘이름’이라는 명사 자체가 이름이 가리키는 주체에 따라서 달리 표현됩니다. 본인이나 손아래 사람들의 이름일 경우에는 ‘이름’이라고 부르나, 손위 사람이나 예절을 갖춰야 할 사이에서는 ‘성함’, ‘존함’ 혹은 ‘함자’ 등의 말로 사용됩니다. 특별히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석 자로 된 부친의 이름을 나란히 부르는 법이 없기에 ‘무슨 자(字), 무슨 자(字), 무슨 자(字)’라고 대답합니다. 이처럼 아버지 이름에 대하여 지나칠 정도로 마음 쓰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아무렇게나 부른다고 해서 멀리 계신 아버지가 듣는 것도 아니고, 야단치는 것도 아닌데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자식의 마음속에 있는 아버지의 존재 자체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입니다. 아버지 자신이 보든 못 보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부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이 모욕적으로 거론되거나 아무렇게 언급될 때,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존재가 아버지의 이름과 결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 신앙도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존재는 인간의 죄악으로 인하여 더럽혀지거나 불명예를 받거나 영광을 빼앗기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에 당신 자신의 이름을 두셨기 때문에 그 자녀들의 삶을 통하여 혹은 당신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신앙과 불신앙 여부에 의하여 그 이름의 영광은 영향을 받습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께 합당한 존중심과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주님의 법도대로 살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영광스럽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그분은 당신의 이름을 세상 가운데 두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대하는 이 땅의 백성들의 태도를 보며 당신에 대한 신앙과 경외심의 유무를 판단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이름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여김을 받고 있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5.이름 신앙

 

이 점에 있어서 우리에게 친숙한 한 예를 성경에서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구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이 시의 저자인 다윗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가 아버지 이새의 당부를 받고 형들이 무사한지를 알아보고 먹을 것도 갖다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넘보는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는 전선에 갔을 때, 키가 무척 큰 적군의 장수 하나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말로 하나님과 그의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욕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노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들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 17:26). 다윗은 사울이 입혀 주는 갑옷과 놋 투구도 거절한 채 날렵한 차림으로 막대기와 물매 돌 다섯 개를 들고 그 거인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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