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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나은 줄로 믿습니다
김복남 연대세브란스병원 원목실 전도사, 은광교회
"아이가 죽으면 남편이 저하고 헤어질 거래요. 아이가 저렇게 되었다는 게 모두 나 때문이래요. 내가 예수를 믿어서...."
아이 엄마는 더 이상을 말을 이을 수 없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오열을 터뜨렸다. 울음소리가 커지자 옆 침대의 환자가 신경이 거슬리는지 헛기침을 몇 번이나 했다. 나는 울고 있는 아이 엄마를 복도로 데리고 나왔지만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아이가 정말 저 모양이 된 게 내가 예수를 믿어서 저렇게 되었나요. 전도사님 예수 믿은 게 죄가 됩니까? 정말 제가 예수를 믿어서 아이가 저렇게 되었단 말입니까? 남편은 기도를 하던지 굿을 하던지 무엇을 하던지 아이를 살리지 않으면 자기랑 살 생각은 말라고 해요...."
아이 엄마는 서러움이 복받쳐 오는지 말을 하다말고 가슴을 쳤다. 사랑하는 자식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아픔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데, 같이 아픔을 나누어야 할 남편이 헤어질 이야기를 하니까 아이 엄마는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내가 아이 엄마를 안 것은 6개월 전인 것 같다. 내 간증 테이프를 들었다면서 전화를 해 온 것이 그 엄마를 알게 된 동기였다. 그런 아이엄마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아홉 살 짜리 딸아이가 뇌종양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수술 후 경과가 많이 좋아져서 아이가 곧 퇴원을 할 것이고 학교도 다닐 수 있을 거라며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간증을 했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그 엄마를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그 전화가 있은 한 달 후쯤이었을까 아이 엄마는 겁먹은 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아이가 다시 재발했는지 힘이 없고 경기도 했다고 하길래 빨리 수술한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 후 다시 전화가 왔을 때 아이가 입원해서 방사선 치료를 받는다고 했고, 나는 열심히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 엄마는 그 곳 병원 의사가 아이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이야기하는데 왠지 그 의사를 신뢰할 수가 없어서 아이를 우리 병원으로 옮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그곳에서 수술을 받았고 치료도 받고 있는데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고, 다른 병원에서 수술한 환자를 우리 병원에 소개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더니, 그는 고집을 부리면서 정말 자기 아이 병이 뇌종양인지, 그것도 악성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다른 병원에서 확인을 해보아야겠다면서 입원을 안 해도 좋으니 진찰만이라도 한 번 받아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결국 그 고집을 꺾을 수가 없어서 소개를 해주었다. 그것이 두 달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아이랑 아이 엄마, 그리고 그의 남편을 만난 것이다.
아이는 아홉 살 나이로는 몸도 정신도 좀 어려 보였다. 핏기 없는 하얀 얼굴 때문이었는지 아이의 눈이 유난히 크고 맑게 느껴졌다. 애써 병든 모습을 지우고 싶었던지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뇌수술 흔적을 감추기 위하여서인지 모자도 쓰고 있었지만 중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가 있었다.
아이는 대기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이 자리 저 자리를 옮겨다니고 있었는데, 아이 엄마는 그런 아이를 대견스러워 하면서 아이가 저렇게 잘 움직이고 있는데 저러다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저쪽 의사가 괜히 겁을 준다면서 만나자마자 불만부터 끄집어냈다.
아이 엄마는 그 동안 아픈 아이 때문에 시달렸는지 아니면 매일 저녁 철야기도를 한다고 하더니 잠을 못 잤는지 얼굴이 푸석하게 부어 있었고, 피부도 까칠해 보였다. 대기실 의자 건너편에 앉은 아이 아빠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내가 전도사라고 인사를 해도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 날은 그들과 잠깐 인사를 나누고 대기실 복도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한 후에 헤어진 것이 전부였다.
다음날 아이 엄마는 다시 전화를 해왔다. 이제 우리 쪽 의사가 수술 받은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고 말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곳은 불안한 마음이 든다면서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면서 다시 부탁을 해달라고 했다. 엄마의 답답한 심정은 이해가 갔지만 아이 엄마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채 시일이 흘렀고 그 사이 몇 차례 전화가 또 왔다. 아이가 밥을 잘 먹는다든지, 잘 논다든지, 아이가 다 나은 것 같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자기 교회 여전도사님이 기도를 했더니 아이가 다 나았다는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하는 데 그 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면서 묻기도 했고, 내가 자기 아이를 위해서 기도했을 때는 어떤 응답이 왔느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대답할 말이 없어서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런데도 아이 엄마는 나에게서도 아이가 다 나았다는 확신에 찬 말을 듣고 싶었든지 몇 번이고 되물었다.
아이 엄마는 남편 이야기도 많이 했다. 남편은 교회를 다니지도 않고 자기가 예수를 믿는 것을 대단히 핍박한다고 했다. 지난 번 남편이 추석 휴가에 산에 기도하러 간다고 하길래 드디어 남편이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을 했구나 그 동안 기도한 보람이 있구나하고 좋아했는데 남편은 하나님께 기도하러 간 것이 아니라 계룡산에 들어가서 천지신명께 기를 받으러 간 것이었고 남편은 그 곳에서 신이 점지해 주신 약이라면서 버섯과 바위이끼와 돌을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것을 다려 먹이면 낫는다고 말하는 남편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남편이 아이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말해주었더니 아이 엄마는 놀래면서 평소 기도해 주시는 여전도사님께 여쭈었더니 전도사님께서는 남편이 가지고 온 약이 세 가지이니까 삼위일체 하나님과 맞는다면서 빨리 다려 먹여보라고 해서 그것을 다려 먹였는데 그러면 아이는 어떻게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어이가 없었다. 아이 아버지가 자식을 고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심리적인 착각을 하는 것은 그런대로 이해가 가지만 여전도사가 엉뚱한 해석을 붙여 그것을 먹이게 했다니 그 여전도사의 태도가 기가 막히다못해 분노를 느꼈다. 그런 약 믿지 말고 아이를 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체크를 받으라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 후 더 이상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느닷없이 아이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아이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었다. 찾아갔더니 아이는 이미 암이 온 몸에 퍼져서 의식마저 잃고 있었다. 경기를 해서 응급실로 왔더니 다 나은 줄 알았던 아이가 그 동안 극도로 나빠져 있었다는 거였다.
"기도해 주시던 분들이나마 우리 아이가 다 나았다고 했는데요.... 저도 늘 철야하면서 기도했고, 40일 작정기도도 끝냈는데요. 그리고 마음속에 믿음에 확신도 있어요. 그런데 왜 아이가 이렇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 저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건가요. 아이가 설마 죽을 리가 없겠지요? 아이가 저러다가 깨어나겠지요? 저 아이가 죽으면...." 아이 엄마는 또다시 울음을 터뜨리면서 복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병원전도사로 일하면서 이런 일은 흔하게 경험한다. 그러나 매번 경험할 때마다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교인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분별력을 잃거나, 또 교인들을 지도하는 목회자들 가운데서 교인들을 바로 지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심령이 약한 교인들을 우매한 길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도 그렇다.
아이가 암에 걸렸을 때 그 여전도사는 아이 엄마에게 현실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도록 정직하게 말해서, 그 현실을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는지 지혜를 구하도록 도와주어야 했는데, 무조건 작정기도를 해라, 금식기도를 해라, 철야기도를 해라, 그것도 인간이 임의의 시간을 제시하면서 그 시간을 채우면 하나님께서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그런 신앙을 가르쳤고, 내가 기도했더니 다 나았다고 응답하셨다는 그런 무책임한 말로 아이 엄마를 속여서 치료시기를 놓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 믿음이 연약한 초신자가 나중에 감당해야 할 실망을 그 여전도사는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나는 몹시 염려스러웠다. 어쩌면 이런 핑계를 댈 지도 모르겠다. 다 나았는데 그것을 의심했기 때문에 재발했다고....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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