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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사람은 이사하면서 산다. 이사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이섬김 집사는 12번째 이사 준비를 하였다. 중견기업 회장으로 직장이 옮겨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녀의 학교가 바뀐 것도 아니다. 이미 70대가 되어 자녀들은 다 결혼하여 각자의 삶의 살고 있다. 이사를 간다는 이집사를 찾아가 지목사가 말했다. “집사님, 왜 이사를 하려고 합니까? 이제까지 우리 교회에 등록하여 얼마나 교회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까? 뭐 서운한 것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서운한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교회에 다니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 제가 이 교회를 떠나야 될 것 같습니다.”
지목사는 교회를 떠나려고 하는 이집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교회를 개척하여 예배당을 건축할 때 이 집사는 등록을 하였다. 개척한 지 20년 만에 교회 부지를 마련하여 교회를 건축하려고 하자 교인 반절 정도가 교회를 떠나 버렸다. 서장로가 주동이 되어 교인들을 흩었다. 이미 건축할 때마다 세 번째나 교회를 떠난 경력을 가지 장로다. 장로였던 아버지가 어릴 때 교회 건축을 한다고 논을 팔아 건축헌금을 하였다. 그런데 그것으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어려움만 당했다.
그래서 서장로는 교회 건축을 한다면 먼저 두려움이 생겼다. 서장로는 장로의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교회 건축 부담으로 떠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형교회로 옮기지 않고 집을 이사한다는 핑계로 개척하여 얼마 되지 않는 교회로 옮겼다. 그 모습을 보고 남아 있던 사람들도 서 장로를 크게 비난하지 않고 좋은 장로로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서장로는 교회를 옮겨 네 번째로 지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에 등록하였다.
처음에는 열심히 봉사했다. 그러나 교회를 건축한다고 하자 부담이 되었다. 떠나고 싶지만 지목사는 너무나 신실하기 때문에 흠을 잡아 떠날 명분을 잡을 수 없었다. 아무런 명분이 없이 떠나면 남아 있는 교인들이 건축헌금 부담으로 떠났다고 하며 비난할 것 같았다. 때마침 회계집사가 “장로님, 사모님이 유류대를 받아 가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교회에서 사모님 기름 값도 주어야 합니까?” “그래요. 그것은 한참 잘못되었지요.” 명분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서장로는 왜 사모가 유류대를 받아가는 지를 잘 알고 있었다. 개척할 때부터 20년 동안 지목사와 사모가 새벽기도회 차 운행을 하고 전도사 역할을 하며 심방을 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유류대를 지출하였다.
그러나 서장로는 유류대를 교회에서 지출하는 이유는 숨기고 사모가 부당하게 유류대를 받아간다는 소문을 내었다. 교인들은 술렁거렸다. 교회 헌금을 부정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교회 건축에 대한 부담을 가진 교인들은 그 기회에 서장로와 함께 교회를 떠나 버렸다. 지목사는 떠나는 사람을 찾아가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었다. 결국 잡으면 건축에 대한 부담을 주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건축을 앞에 놓고 어려움이 있을 때 이 집사가 등록하였다. 이집사는 겸손하고 신실하였다. 교회를 건축하는데 건축비 반을 부담하였다. 교회는 건축되었고 급속히 부흥되어 교인이 1천여 명이 되었다. 지목사는 이 집사가 교회의 장로가 되어 교인들을 잘 이끌어 주길 바랐다. 그러나 장로 대상이 되는 것을 거절하였다. “저는 만년 서리 집사입니다. 장로가 되면 제가 교회를 떠날 수 없습니다. 장로란 그 교회에서 죽을 때까지 봉사하겠다는 의미로 받는 것이 아닙니까? 제 소명은 어려운 교회에 가서 그 교회를 부흥시키고 교회를 12개 건축하는 것입니다. 장로가 되면 이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차피 십일조 헌금하고 감사 생활하는데 저 같은 사람 한 명이 헌금하면 보통 교인 300명 분쯤 할 수 있습니다. 저 한 사람 등록하면 개척교회도 재정적으로 300명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그러면 우리 교회를 섬기면서 교회에서 어려운 교회에 집사님의 헌금을 보내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목사님, 물론 그렇게도 할 수 있겠지만 교회란 돈만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몸으로 봉사하며 성도들과 교제를 해야 합니다.”
지목사는 이집사를 떠나 보내는 것이 아쉬웠다. 같이 신앙 생활하자고 권면했지만 이 집사는 이사 가서 섬길 교회를 알려 주었다. “제가 이곳에 살면서 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은 덕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 12번째입니다. 제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아마 마지막 이사가 될 것같습니다. 예전 목사님처럼 건축을 앞에 놓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가서 마지막 힘을 다하여 섬기려고 합니다.” 지목사는 이집사의 거룩한 사명을 꺾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왜 그렇게 사는지 이유는 알고 싶었다. “집사님, 언제부터 그렇게 살려고 생각했습니까?” “목사님, 제가 이제까지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저의 아버님도 목사님이셨습니다. 시골 교회에서 개척을 하여 예배당을 지었는데 당시 서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서장로님은 논을 열 마지기를 팔아 교회를 짓는데 헌신하였습니다. 당시 서장로님의 논은 120마지기 였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지어 놓고 자기가 교회를 지었다고 주인행세를 했습니다. 결국 어머니를 모함하여 아버지는 그 교회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후 서장로님은 아들 하나를 남겨 놓고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아버님도 목회를 하지 못하고 어린 저를 놓아두고 천국에 갔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나처럼 교회 건축에 어려움 당하는 목사님을 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8.8.10
지목사는 교회를 떠나려고 하는 이집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교회를 개척하여 예배당을 건축할 때 이 집사는 등록을 하였다. 개척한 지 20년 만에 교회 부지를 마련하여 교회를 건축하려고 하자 교인 반절 정도가 교회를 떠나 버렸다. 서장로가 주동이 되어 교인들을 흩었다. 이미 건축할 때마다 세 번째나 교회를 떠난 경력을 가지 장로다. 장로였던 아버지가 어릴 때 교회 건축을 한다고 논을 팔아 건축헌금을 하였다. 그런데 그것으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어려움만 당했다.
그래서 서장로는 교회 건축을 한다면 먼저 두려움이 생겼다. 서장로는 장로의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교회 건축 부담으로 떠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형교회로 옮기지 않고 집을 이사한다는 핑계로 개척하여 얼마 되지 않는 교회로 옮겼다. 그 모습을 보고 남아 있던 사람들도 서 장로를 크게 비난하지 않고 좋은 장로로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서장로는 교회를 옮겨 네 번째로 지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에 등록하였다.
처음에는 열심히 봉사했다. 그러나 교회를 건축한다고 하자 부담이 되었다. 떠나고 싶지만 지목사는 너무나 신실하기 때문에 흠을 잡아 떠날 명분을 잡을 수 없었다. 아무런 명분이 없이 떠나면 남아 있는 교인들이 건축헌금 부담으로 떠났다고 하며 비난할 것 같았다. 때마침 회계집사가 “장로님, 사모님이 유류대를 받아 가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교회에서 사모님 기름 값도 주어야 합니까?” “그래요. 그것은 한참 잘못되었지요.” 명분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서장로는 왜 사모가 유류대를 받아가는 지를 잘 알고 있었다. 개척할 때부터 20년 동안 지목사와 사모가 새벽기도회 차 운행을 하고 전도사 역할을 하며 심방을 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유류대를 지출하였다.
그러나 서장로는 유류대를 교회에서 지출하는 이유는 숨기고 사모가 부당하게 유류대를 받아간다는 소문을 내었다. 교인들은 술렁거렸다. 교회 헌금을 부정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교회 건축에 대한 부담을 가진 교인들은 그 기회에 서장로와 함께 교회를 떠나 버렸다. 지목사는 떠나는 사람을 찾아가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었다. 결국 잡으면 건축에 대한 부담을 주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건축을 앞에 놓고 어려움이 있을 때 이 집사가 등록하였다. 이집사는 겸손하고 신실하였다. 교회를 건축하는데 건축비 반을 부담하였다. 교회는 건축되었고 급속히 부흥되어 교인이 1천여 명이 되었다. 지목사는 이 집사가 교회의 장로가 되어 교인들을 잘 이끌어 주길 바랐다. 그러나 장로 대상이 되는 것을 거절하였다. “저는 만년 서리 집사입니다. 장로가 되면 제가 교회를 떠날 수 없습니다. 장로란 그 교회에서 죽을 때까지 봉사하겠다는 의미로 받는 것이 아닙니까? 제 소명은 어려운 교회에 가서 그 교회를 부흥시키고 교회를 12개 건축하는 것입니다. 장로가 되면 이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차피 십일조 헌금하고 감사 생활하는데 저 같은 사람 한 명이 헌금하면 보통 교인 300명 분쯤 할 수 있습니다. 저 한 사람 등록하면 개척교회도 재정적으로 300명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그러면 우리 교회를 섬기면서 교회에서 어려운 교회에 집사님의 헌금을 보내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목사님, 물론 그렇게도 할 수 있겠지만 교회란 돈만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몸으로 봉사하며 성도들과 교제를 해야 합니다.”
지목사는 이집사를 떠나 보내는 것이 아쉬웠다. 같이 신앙 생활하자고 권면했지만 이 집사는 이사 가서 섬길 교회를 알려 주었다. “제가 이곳에 살면서 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은 덕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 12번째입니다. 제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아마 마지막 이사가 될 것같습니다. 예전 목사님처럼 건축을 앞에 놓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가서 마지막 힘을 다하여 섬기려고 합니다.” 지목사는 이집사의 거룩한 사명을 꺾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왜 그렇게 사는지 이유는 알고 싶었다. “집사님, 언제부터 그렇게 살려고 생각했습니까?” “목사님, 제가 이제까지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저의 아버님도 목사님이셨습니다. 시골 교회에서 개척을 하여 예배당을 지었는데 당시 서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서장로님은 논을 열 마지기를 팔아 교회를 짓는데 헌신하였습니다. 당시 서장로님의 논은 120마지기 였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지어 놓고 자기가 교회를 지었다고 주인행세를 했습니다. 결국 어머니를 모함하여 아버지는 그 교회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후 서장로님은 아들 하나를 남겨 놓고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아버님도 목회를 하지 못하고 어린 저를 놓아두고 천국에 갔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나처럼 교회 건축에 어려움 당하는 목사님을 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8.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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