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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땅] 신앙

레위기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028 추천 수 0 2012.06.16 23: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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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레25:23-28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0.6.27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성서의 [땅] 신앙
레25:23-28

워싱턴은 미국의 수도입니다. 그런데 온통 반딧불이 천지였습니다. 밤 만 되면, 비라도 오다가 그친 다음엔 수 천 수 만 마리의 반딧불이 집단 군무를 하는 거였습니다. 마치 요정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숲은 마치 원시림 같고, 나무와 나무 사이, 도로와 도로사이, 집과 집 사이는 잔디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맨땅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세계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제일 잘 하지 않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1회용품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렇게 땅이 보존되는지, 그런 그들의 이상이 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구약 시간에 두 가지의 숙제를 받았습니다. 하나는 구약 성서를 본문으로 설교 한 편을 써서 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구약 성서의 맥을 따라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미국 땅에서 바라본 성서의 '땅'신앙]을 설교문으로 작성했습니다. 오늘 설교문은 그것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하여서 특별한 나라를 세웁니다. 그것을 고대사회에서는 '평등사회'라고 불렀습니다.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경험했던 그들에게는 '평등사회'가 가장 절실했습니다. 그들의 '평등사회'이념은 땅을 기본개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 1순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땅을 주셨다'고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만큼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이 주신 땅과 연관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확대가족입니다. 확대가족이란, 가장과 그의 아내들, 아들들, 결혼하지 않은 딸들, 며느리들과 어린아이들을 포함하는 혈족단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숫자가 많다보니까 기본적으로 생산, 분배, 소비등이 그들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확대가족 단위로 나누어진 토지를 이들은 '유산', '기업'이라고 불렀으며, 이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분배받은 땅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이고 선물이었습니다. 돈 주고 산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땅을 잘 지켜 나가는 것이 바로 그들의 신앙이었습니다. 땅은 곧 그들의 신앙이었기 때문에 사고팔아 서는 안 되며(레위25:23), 그 땅을 잃어버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버리는 것으로 여겨 천벌을 받아 죽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생활했기에 누구보다도 땅 없는 설움을 잘 압니다. 땅을 잃게 되면 남에게 예속되고, 결국에는 그들의 몸까지도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것은 이적과 기사를 펴면서 까지 이집트에서 해방 시켜 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거스르는 행위였고, 하나님 외에 다른 주인을 섬기게 되는 것으로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왕상 21장의 나봇의 포도원 사건을 보세요.
아합은 이스라엘의 가장 포악한 왕이었습니다. 유일하게 그의 시대에만 국가의 중앙제의가 바알 신에게 행해졌습니다. 야훼의 예언자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습니다. 엘리야도 혼자 쫒기는 신세였습니다. 바로 이 아합왕 때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갈멜산에서 대결을 벌이는 무용담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포악한 왕인 아합이 하루는 별궁 근처를 노닐다가 나봇이라는 시골영감이 가지고 있는 포도원을 탐내게 됩니다. 궁정의 확장을 위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나봇에게 제안을 하죠. "값을 후하게 쳐주거나 다른데 있는 좋은 땅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말입니다. 폭군의 제안치고는 굉장히 합리적이고 정중합니다. 그러나 나봇은 감히 왕, 그것도 무시무시한 폭군의 제안을 한마디로 거절해 버립니다. "제가 조상의 유산을 임금님께 드리는 일은, 주님께서 금하시는 불경한 일입니다"(21:3).

아합은 이로 인해 근심하며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습니다. 아합이 폭군이지만 그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땅을 함부로 팔 수 없는 야훼신앙의 내용을 잘 알고 있어서 강제로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혼동맹을 맺어 아합의 아내가 된 이세벨은 왕의 이런 나약함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왕에게 "당신은 지금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임금님 아니십니까?"(표준새번역) 공동번역에는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답게 처신하십시오."라고 그를 비난하며 나봇을 모함해 때려죽이고 그의 땅을 빼앗아 오게 됩니다.

이세벨(문자적 뜻은 '바알은 어디계시냐?' 이다)은 일찍이 고대 상업이 발달하여 영어 알파벳의 문자를 낳은 나라 페니키아의 왕 에드바알의 딸입니다. 페니키아는 바알을 국교로 섬기는 나라였습니다. 바알의 제도는 무엇이든지 돈을 가진 사람이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으며, 산 사람이 그 권리를 마음껏 상속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의 야훼신앙은 왕이 땅을 팔라고 해도 팔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유산이고 야훼께서 금하시는 것이므로 땅을 팔게 되면 천벌을 받게 된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을 지켜나가는 것이 바로 야훼신앙을 지키는 것이었고 땅을 버리면 야훼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땅을 빼앗거나 남의 땅의 경계를 옮기는 일도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신들은 주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어 차지한 땅에서 이미 조상이 그어놓은 당신들 이웃의 경계선을 옮기지 마십시오."(신19:14)

또한 에발산에서 선포한 저주의 목록(신27:15-26)으로 고대 제의에서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것, 자매, 장모와 동침하는 것, 짐승과 교접하는 것 등 백성들이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인륜을 되새기던 교독문 같은 형태의 글이 있는데, 여기에도 "이웃의 땅 경계석을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포도원과 무화과나무 아래서 자기가 농사지은 것을 자기 손으로 먹고 마시는 것을 가장 큰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이 이상을 위해서 자기에게 부여받은 나할(유산, 기업)을 지키는 것을 이상향으로 생각했습니다. 땅이 자기 부족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기위해 이스라엘은 땅의 이동 하한선을 지파까지로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유산은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못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도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자기 지파의 유산을 떠나지 못한다."(공동번역 민36:7)

고대 근동의 다른 지방에서는 과부에게 재산을 상속하였으나 이스라엘은 과부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근친혼을 금지하는 법에 따라 다른 지파에서 시집온 부인에게 재산이 상속될 경우 재산이 지파의 경계를 넘게 되어 토지의 평등을 근간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평등제도가 결국 무너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대신 과부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맏형이 사망할 경우 시형제와 결혼하게 하는 시형제 결혼법(신25:5-10)을 강력하게 시행하도록 하였습니다.

과부는 시형제와 결혼할 적극적인 권리를 갖으며 만약 시동생이 이를 잘 이행하려고 하지 않을 경우 지방의 장로들에게 권면을 받는데, 그래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장소인 성문 앞에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줍니다. 그러면 그 집안은 '신 벗긴 자의 집안'이라고 불리며 그 사회에서 아주 수치스럽게 여기게 됩니다. 이러한 시형제 결혼의 의무는 시형제가 없을 경우는 가까운 친척에게 확대되었고(룻기의 경우), 심지어는 시아버지에게 까지 확대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창38장 다말의 경우).

다말의 남편이 죽게 되자 남편의 시동생인 오난이 정액을 밖으로 흘렸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벌을 받아 죽게 됩니다. 정액을 밖으로 흘렸던 안으로 흘렸던 하나님께서 남의 집 안방의 일 까지 간섭하시고 게다가 그런 이유로 사람을 쳐 죽이신다면, 피임이 당연한 요즈음 사회에서는 큰일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성생활을 다룬 이야기는 아니죠. 그것은 재산상속의 순서가 고인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아들-딸-친형제-삼촌-친척(민27:8-11)의 순서 이므로, 형의 자손을 낳아주지 않으면 친형제인 자신에게 재산이 올 것을 오난이 계산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형님의 재산을 가로채는 행위요, 하나님께 천벌을 받을 행위입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이유로 두 남편을 잃은 다말은, 시아버지가 고의로 셋째 아들과 결혼 시키는 것을 기피하자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유다)를 유혹하고 결국은 유다의 아이를 갖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셋째아들을 보호하려고 결혼을 기피하던 유다는 좋은 구실을 삼아 다말을 화형에 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다말이 지팡이와 인장을 제시함으로 그 아이가 바로 자신의 아이임을 알게 되죠.

에발산의 저주목록에 나왔던 두 상황이 부딪힙니다. 다말은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아이를 갖게 되는 기본적인 인륜을 범하는 범죄를 하였고 유다는 시형제 결혼법을 어겼습니다. 그러나 판결은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 나의 아들 셀라를 그 아이와 결혼 시켜야 했는데"(창38:26절)라고 내립니다. 가족 관계를 깨는 어떤 금기 조항보다도 토지의 평등제도가 더 우선 한다는 판단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법에 앞서 토지의 평등제도를 우선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딸이 재산을 상속받는 경우 근친혼금지에 의해 타 지파의 남자와 결혼합니다. 그러면 똑같이 재산이 타 지파로 넘어 갑니다. 이에 대해 민수기 36장은 같은 지파 내에서 결혼하라고 합니다. 결국 토지의 평등제도는 고대 사회에서 금기로 여겼던 근친혼까지도 뛰어넘습니다. 평등사회에 대한 강한 열망이 바로 야훼 신앙을 지키는 조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땅은 사고 팔 수 없다." 왜? 땅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자기 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도 어디엔가 자기가 먹을 먹거리를 생산할 땅이 있어야 하고, 누워 자고 생활할 공간이 있어야합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은 몇몇 사람이 독점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기를 사고팔면 안 되듯이 땅은 사고팔면 안 되며 누구에게 독점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가 이방신을 섬겼는가 아니면 야훼를 섬겼는가하는 단일 기준입니다. 그런데 어느 왕인들 하나님 앞에 나가서 "오! 야훼 신이시여"하고 소리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야훼를 섬긴다는 것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섬김'은 어떤 제도를 따르는가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은 야훼신앙으로는 왕정에 필요한 물적 자원을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신들을 섬기고 이방신들을 따라서 토지를 제멋대로 사들이고 가난한 사람을 노예로 삼아 왕정에 필요한 물질적 기반을 확보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농경사회였으므로 야훼 신앙이 토지의 평등제도로 나타났지만 오늘과 같은 다양한 사회에서는 어떠한 평등제도로 야훼의 신앙이 나타날까하는 것은 우리 신앙의 과제일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평등사회'는 아닙니다. 잘 사는 사람은 메클린에 살고, 못사는 사람들은 씨티의 주변에 삽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땅과 공기, 물과 자연은 어느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누구나가 다 공평하게 소유해야할 것들이었습니다. 최소한 땅은 아니래도, 하늘과 숲과 대지, 그리고 공기와 물은 공평하게 소유하는 '평등사회'였던 것입니다. 대로변에서 풀을 뜯는 사슴의 무리들, 죽은 사슴의 시체를 파먹고 있는 까마귀와 독수리들까지 평등한 나라였습니다.

그럼 오늘 이 땅에 사는 우리는 무엇으로 '평등세상'을 이뤄 가야 할 까요? 너나없이 '이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므로, 혼자 갖거나 더 많은 이익을 위해 팔고 살 수 없다'고 할 만한 게 뭐냐는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신앙엔 그런 게 없습니다. '평등사회'를 위한 공공성 또는 공공을 통해 이루려는 공평한 가치나 이상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지, 다른 교회야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이 우리들 속에 깊숙이 깔려 있습니다. 땅도 갖고 싶을 만큼 가져야 하고, 하늘도, 바다도, 가질 수만 있다면 내 것으로 등기하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신앙의 방식은 구약성서의 전통도 아니며, 더구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려는 '하나님 나라'의 신약적 실현을 위한 방식과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바로 이것, 평등한 세상을 이루지 않으려는 세상 속에서, '평등한 하나님의 나라'를 실험하는 교회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유나 가치, 지식과 같은 유.무형의 기득권이나 주장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서로 섬기며 함께 살기'를 거듭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평등 사회'을 가로막는 것이야말로 사탄이요 마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이런 믿음과 삶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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