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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창조 이야기

창세기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893 추천 수 0 2012.06.16 23: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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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1:1,2:4-7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0.7.11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두 개의 창조 이야기
창1:1,2:4-7

성서의 창조이야기는 우주가 생성되던 때의 모습을 누가 목격하고 쓴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가 바로 ‘하나님’일 것입니다. 창조에 관한 이야기는 태초의 기록이 아니고, 역사의 한 중간에 나온 고백들입니다. 대자연의 위협아래 자신들의 생존 적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고요. 이 글 속에서 현대인들의 관심사인 창조냐 진화냐 하는 의문이나 우주의 생성에 대한 비밀, 혹은 과학적인 진화의 과정을 발견해 내려고 애쓰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이러한 의문들은 진화론이 등장한 이후의 현대인들이 같게 된 의문입니다. 진화론 이전시대, 하물며 성서시대에는 온 우주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 이외에 다른 세계는 없었기 때문에 구태여 자명한 사실을 밝힐 필요가 없었습니다.

창세기의 창조이야기는 자세히 보면 두 가지의 이야기로 되어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4절 상반 절까지 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전에 세상은 물이 가득 차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죠.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 하나님의 영은 물위에 움직이고 계셨다.”(1:2)

하나님은 온통 물로 가득 찬 세상 가운데 나타나 그의 창조행위를 시작하십니다. 첫째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인간에게 마른땅을 내어주기 위해서 물을 제거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고대 바벨론의 우주관은 온 세상이 물로 가득 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위에 물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활 모양의 궁창을 만드십니다(둘째날 창조). 하나님은 또 땅 위에 있는 물을 바다로 모아 인간이 살 수 있는 마른 땅을 내어주십니다(셋째날 창조).

반면 2장 4절 하반부부터 진행되는 두 번째 창조이야기에서는 창조전의 세상이 물 한 방울 없어 바짝 메마른 상태를 그리고 있습니다.

“주 하나님이 땅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한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2:5)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행위도 땅에서 물이 솟구치게 해서 온 땅을 적시는 것입니다. 에덴의 중앙에서 샘이 솟아 나와 사방으로 강을 이루어 흐르며 에덴을 기름지게 하십니다.

두 가지 창조 이야기가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 이야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강가에 잡혀와 포로 생활할 때 형성된 것입니다(587-538 B.C.). 이들이 거주하던 곳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이 만나는 하류의 범람 지역으로 홍수가 나면 그들이 가꾸어온 삶의 터전이 온통 폐허가 되고 물바다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속에서 이들은 하나님은 인간에게 마른땅을 내어 안락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으로 고백을 한거죠.

두 번째 창조이야기는 메마른 가나안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수집된 시기는 다윗왕조 때(1,000-921 B.C.)로 보입니다. 가나안 땅은 사막 지대로 물이 몹시 귀한 땅입니다. 드물게 있는 샘과 오아시스는 그들의 삶의 귀한 젖줄이었습니다. 여기서의 하나님은 반대로 동산 한가운데서 샘이 솟게 하고 사방으로 강이 흐르게 하시는 분이셨죠.

또한 창조의 순서도 다릅니다. 1장의 이야기는 진화론의 순서와도 비슷하게 맞아갑니다. 하나님은 어조류, 동물을 만드시고 최종적으로 사람을 만드십니다. 반면 2장의 이야기는 가장 먼저 사람부터 만드시고 그 다음 식물, 동물을 만드셨어요. 이것은 첫째이야기가 오히려 사백년 이상 후대의 이야기이며 그 당시 최고의 문명 중심인 바벨론에서 쓰여진 이야기로서 그만큼 동물과 식물에 대한 구조나 조직에 대해 발달된 과학이 반영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창조이야기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이며 그것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투쟁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힘은 고대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거대한 자연환경(홍수나 가뭄 등)에 비하면 너무나 왜소하고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칫하면 위협적인 자연의 공격 앞에 무기력하게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친히 일하신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앞장서서 물을 막기도 하며 때로는 사방에 물줄기를 내시기도 한다는 거죠. 이런 고백은 자연의 무자비한 파괴행위 앞에서 실의에 빠져 있는 개인들에게 새로운 의지를 불러일으키며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 모든 위협에 맞서서 투쟁해 나가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서구신학은 신과 인간의 양자간 관계 속에서만 “구원”을 보아 왔습니다. 창조이야기에도 하나님의 명령과 그를 어기는 인간의 죄의 기원 등에 대해 말해왔습니다. 지극히 내면적이고 심리적, 개인적인 구원이 말해지며 이것은 골방이나 산속 기도원,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종교행위로 족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을 고려치 않았습니다. 위 이야기에서처럼 홍수가 범람하는 바벨론 지역에서 하나님께서 2장의 구원행위인 물줄기가 솟구치게 하신다면 그것은 오히려 재앙입니다. 이제는 신-인간-자연의 삼자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자연이라는 것은 단지 자연환경 뿐 만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상황, 역사를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와 상황에서 동떨어진 “구원”을 말하는 것은 추상적이고 공허합니다.

창조이야기는 비록 창세기뿐만 아니라 이사야, 시편, 잠언과 신약의 서신 등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창조신앙은 인간의 삶이 위협받을 때마다 계속 고백되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과거에 일회적으로 끝장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과 같은 환경오염이나 자연훼손은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방해하는 것이며 오늘 우리에게는 또 다른 창조의 고백이 요청됩니다.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집을 하나 지어도, 묘 자리 하나를 잡더라도 산세의 흐름, 물의 흐름과 조화되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동양적인 전통은 인위적인 것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도록 자연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원칙을 모든 인간사의 기본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서구적인 문명은 자연을 제멋대로 절단하고 훼손하며 변조해 나갔어요. 이런 서구적 생각의 밑바탕은 다음 구절에 언급되는 하나님의 다섯 가지 명령에서 유래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창 1:28)

서구의 확장주의의 근거로 위 5명제가 동원되는데 과연 그럴까요? 이 본문은 포로기에 쓰여진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처지에 과연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이 적절한가요? 브루그만(W. Brueggemann)은 여기에 의문을 제시하며 이 명령어들은 전승자가 겪은 가난과 패배와 절망의 포로 상황에 대한 반대적 논박으로 이해해야 하며 그들의 억눌린 처지에서 드리는 인간권리의 선언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생육한다/더 이상 자손이 부족하지 않음
        번성하고/더 이상 황폐하지 않음
        땅에 충만하다/더 이상 땅에서 유리되지 아니함
        정복하다/더 이상 종속되지 아니함
        다스리다/더 이상 지배받지 아니함

서구의 역사는 이 말씀을 자연 뿐만 아니고 인간사에 적용해서 종교적으로 선동하며 기독교인들을 중세의 십자군 전쟁, 신대륙 정복, 근세의 서구의 식민지 확장의 전쟁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이 명제들은 오히려 정복하고 다스리는 입장을 정당화시키는 논리가 아니라 어떤 인간도 더 이상 남에게 지배받거나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배받고 착취당하는 쪽에서의 위대한 인간권리의 선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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