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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수7:2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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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0.8.8. 설교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
'아간'이 서 있는 역사적 자리
수7:22-26
-평등공동체의 붕괴와 왕정의 시작-
초기 이스라엘은 전적으로 평등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 아이 성 전투를 벌였는데 그들은 크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큰 여리고 성은 무너뜨렸는데 아이성 전투에서 무너진 것은 참담한 일이었습니다. 그래 그 이유를 보니 아간이라는 사람이 자기 막사 밑에 전리품으로 획득한 털 외투와 금 덩어리를 숨겨 놓은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아간은 아골 골짝에서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합니다.
이 사건과 동일한 사건이 신약성서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등장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사건을 이해하려고 할 때 그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유추하여 해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히브리 성서에 등장하는 아간의 사건을 알고 나면 그 의문점이 풀어집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이라 할지라도 사적으로 취하지 못하고 야훼께 바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법을 어긴 것입니다. 고대의 왕들은 사람들을 전쟁으로 끌어들이는 유인책으로 전리품을 마음대로 차지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엄격한 공동체 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리품은 사적으로 취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야훼께 바쳐야했습니다. 그것을 어긴 죄는 비록 아간 한사람이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체에게 연대책임을 물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 패배하고 수십 명의 목숨을 잃게 된 거죠.
오늘 우리들은 개인주의 사회에 물들어 있기에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의 죄를 들추어내는 것이 마치 자신의 의를 입증하는 것과 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간의 경우와 같이 죄에 대해 연대책임을 물으십니다. 함께 더불어 가는 사회,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어야 참다운 야훼신앙이 꽃피게 됩니다. 그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이 땅에 이루시고 싶은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대 이스라엘에 꽃피웠던 평등공동체는 고대근동의 제국주의적, 봉건적 착취구조에 저항하는 민중의 혁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약 200년간 왕 없는 사회를 건설했고, 역사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평등한 동맹적 공동체를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평등공동체는 점차적으로 자체의 모순을 드러내게 됩니다.
평등공동체가 붕괴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중 외적 요인은 해양민족 블레셋의 침입입니다. 지금의 “팔레스타인”은 바로 이들의 이름을 본 따서 만든 지명인데 이들은 이 지역에 최초로 철기문화를 들여와서 발달된 무기로 이스라엘 평등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상비군이 없었고 때에 따라 각 지파에서 동원된 민병대가 연합하여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비해 블레셋은 왕정과 상비군체제로 무장되어 있어 이스라엘에게는 벅찬 상대였습니다.
또한 지파 내적으로도 각 지파간의 경제적 불평등이 발생하며 각 지파간의 이해관계에도 틈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사기 21장에 나오는 베냐민 지파와 타 지파들 사이의 전쟁이야기는 지파간의 이러한 갈등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200년간이나 생명을 유지해온 초유의 평등공동체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새로 시작한 왕정은 주변국의 왕정과는 판이하게 다른 제도였습니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이룩했던 평등공동체의 역사적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는 왕정제도였다고 보는 겁니다. 이것은 “제한된 왕권”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은 사울왕 입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의 사람인데 사사기 말기에 지파간 전쟁으로 인해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 중 가장 약한 지파였고, 사울은 그중 에서도 가장 약한 문중 출신이었습니다(삼상 9,21). 왕을 이렇게 약한 문중에서 뽑은 것은 왕권을 견제할 목적으로 왕권 주변에 강력한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선택의 의문을 갖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할 수 있겠느냐?”며 그를 업신여기고, 그에게 예물도 바치지 않았습니다(삼상 10,27).
그러나 사울은 ‘제한된 왕권’의 틀을 넘어서려고 하였고, 여기에 사무엘과 갈등을 겪게 된 것입니다. 이 갈등을 통해서 우리는 제한된 왕권의 윤곽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왕은 예언자에 의해서 임명되었고 또한 폐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고대근동에서는 왕권이 세습에 의해 승계되었는데 비해 이스라엘은 이러한 권한을 평등사회 전통의 최후의 보루인 야훼 종교지도자에게 부여했습니다. 이것은 왕권이 절대 권력이 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에 의해 왕으로 임명 받았으나 후에 사무엘은 사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이러한 제한된 왕권의 개념은 후에 북왕국의 예언자들을 통해 계승되어 아히야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 북왕국 이스라엘을 창건하고, 엘리사는 예후를 왕으로 세워 이스라엘 최고의 폭군인 아합 정권을 전복시키기에 이릅니다.
둘째, 왕의 권한은 군사적 임무로 제한되었습니다.
사울은 왕이라기보다는 불레셋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적 총사령관의 임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후에 다윗이 왕(melek)이란 칭호로 불리는 데 반해 사울은 총사령관(nagid)의 칭호로 불립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신변상의 안전을 위해 전쟁에 나가지 않습니다. 삼하 18장 1-5절과 21장 17절은 ‘백성들의 거듭되는 간절한 요구에 의해 다윗이 전쟁에 출전하지 않게 되었다’는 진술을 강조하며 반복합니다. 이것은 다윗에 대한 백성들의 비난을 의식한 해명성 기사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 정사를 벌인 뒤 이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를 살해한 사건은 다윗을 궁지로 몰아넣은 최대의 스캔들이었는데, 이것도 그의 충실한 부하 우리아가 전선에 나가 싸우는 중에 다윗이 궁중에 남아있으면서 벌인 사건이었습니다. 아마 민중들이 물어 보았을 것입니다. 왜 왕은 전쟁에 나가지 않는가? 애초의 왕정은 블레셋을 물리치기 위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던가? 다윗 왕정은 아마 이런 민중의 의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셋째, 전쟁을 선포하는 것도 왕의 권한이 아니라 종교지도자의 권한이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장에서 사울은 사무엘을 일주일 동안 기다렸으나 그가 오지 않자 군대는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은 단순히 제사권을 침범한 것뿐만이 아니라 전쟁을 선포하는 종교지도자의 권한을 범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사무엘은 사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종교지도자의 권한은 다윗 이후로는 철저하게 왕에게 귀속되고, 단지 전쟁 전에 왕실 예언자에게 그 전쟁의 승패를 자문하는 정도로 축소됩니다(참고, 왕상22장).
고대국가의 왕들은 왕권강화를 위해 전쟁을 그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생산력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기는 매우 어려웠으므로 흔히 왕들이 왕권에 필요한 물적 기반을 가장 손쉽게 확보하는 방법으로 선호한 방식은 정복전쟁이었습니다. 왕권의 강화를 위한 대가로 민중의 피가 요구되었고, 징병과 부역, 전비 조달을 위한 물자징수 등이 가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전쟁을 선포하는 기능을 야훼 종교 지도자에게 제한하였습니다. 또 부득이한 경우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전리품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이른바 ‘거룩한 전쟁’을 수행함으로써 물자 획득의 수단으로 왕들이 빈번하게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 하고자 했습니다.
넷째, 왕의 통치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법에 근거해야 합니다.
고대 근동의 왕들은 그들 자신이 입법자이기 때문에 왕의 통치 근거는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모든 법은 철저하게 야훼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입법자는 언제나 야훼 자신입니다. 왕 역시 이 법 아래 있는 존재로써 왕은 법을 두루마리에 베껴 항상 왕의 옆에 두고 그것대로 다스리고 실천해야했습니다.
“왕위에 오른 사람은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되어 있는 이 율법 책을 두루마리에 옮겨 적어,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으면서, 자기를 택하신 주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과 규례를 성심껏 어김없이 지켜야 합니다.”(신 17, 18-19)
'신명기'라는 단어의 뜻은 왕이 반드시 옆에 두고 보아야 할 “복사된 법”이란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 부득이하게 왕정으로 전환하긴 하였으나 그것은 그들이 배척했던 왕정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기들 나름대로의 평등사회의 경험을 살려나가며 왕정과 절충을 시도한 독특한 왕권의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이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지켜나가지 못했고 이방왕국과 다름없는 왕정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후에 이들은 바로 이것이 그들의 나라가 망하게 된 이유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포로기에 와서야 자신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긴 그 죄로 인해 나라가 망하고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다며 자기들의 반역의 역사를 반성하고 평가하였습니다.
아간은 에덴동산이후 하나님이 실현해가던 새로운 나라의 역사가 왜, 어디서부터 붕괴되어 가는 지를 보여주는 푯대와 같은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아나니아와 삽비라'부부의 사건도 예수초기에 실현되던 소위 '초대교회의 평등공동체'가 어떻게 무너지는 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운다고 할 때', 그것은 단지 건물과 그 건물을 채우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간처럼,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그 평등주의 정신과 행동양식을 잃고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이미 그 공동체는 붕괴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부러워하자 예수님이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막13:2)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말씀도 결국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의 속성에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공동체'인가를 묻기 전에, 각자의 삶이 혹시 아간이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처럼, 스스로 망해가는 마음이나 삶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아간처럼 역사의 증인과 푯대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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