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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삽니다.

이사야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203 추천 수 0 2012.06.17 23: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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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7:1-9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0.8.22 주일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삽니다.  
사 7:1-9

사람들을 뒤로 벌렁벌렁 나자빠지게 하는 이른바 '성령사역'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십 수 년 전에 변 아무개라는 목사가 춘천 지역의 교회들에서 유행처럼 행했던 그런 류의 일들인 것 같은데, 여하간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 가지고는 뭔가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더 잘, 하나님을 '믿어'보려고 이것저것 부수적인 것들을 신앙행위에 보태고 있습니다. 저 아랫녘에서는 손바닥을 비비면 금이나 은가루가 나오는 일을 교회에서 행한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집단에서는 아말감으로 덮은 망가진 치아가 금 치아로 바뀌어 지는 역사도 있다고 하네요. 요즘에는 아프리카 어느 목사가 하는 예언이 또 유행이라지요. 그런가 하면 고개 너머에 있는 '할렐루야 기도원'은 그 행적이 예전만 못합니다. 긴 시간의 흐름으로 볼 때 이런 것들은 유행과도 같은 행위들입니다.

꼭 이런 게 있어야 하나님이 믿기 워 지는 것입니까? 그저 존재의 이성과 통찰만으로도 굳건하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까?

유다왕 아하스 시대에 북왕국 베가왕과 시리아의 왕 르신이 유다를 정복하려고 내려왔습니다. 시리아의 군대가 이스라엘에 주둔하고 있다는 말이 전해지자 왕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이 마치 거센 바람 앞에서 요동하는 수풀처럼 흔들렸습니다.

유다는 아주 작은 나라인데 주변의 강대국이 연합군을 만들어 치러 내려온 것입니다. 왜 그들이 유다를 치러 왔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과 시리아 북방에 앗시리아 즉, 세계 제국의 역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거대한 나라가 형성돼서 남진을 꾀하기 때문입니다. 이 거대한 앗시리아를 막기 위해서 군소국의 연합전선이 필요한데 유다만이 반대하기 때문에 유다를 먼저 쳐서 겁을 주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왕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려고 지금 유다를 쳐들어 온 것입니다.

아하스와 백성들은 말할 수 없는 불안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들은 아무런 능력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그들은 실성한 것처럼 우왕좌왕 했습니다. 이때 이사야는 4절에 그를 만나서 “정신 바짝 차리고 침착하게 행동하라. 진정하고 고요하여라.”라고 충고합니다. 7절을 보면 주 하나님께서 말씀이, “이 계략은 성공하지 못한다. 절대로 그렇게 되지 못한다.”라고 합니다. 지금 이들에게 급한 것은 앗시리아입니다. 예루살렘은 천연의 요새입니다. 뒤의 역사지만 거대 제국 바빌론도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2년간을 포위하고 있었을 만큼 견고한 성입니다. 조금만 믿는 마음을 가지고 버티면 이들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이들은 “타다만 두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와 같습니다. 오래 가지 못합니다.”

게다가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이고 사마리아의 머리는 고작해야 르말리야의 아들입니다.”(9절) 그들은 르신을 위한 군대고 르신의 군대일 뿐입니다. “그들은 르신이라는 왕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싸우고, 베가라는 왕을 위해 싸우는 군대지만 그러나 너희들은 다르지 않느냐? 너희들은 야훼 하나님을 위한 군대 아니더냐?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여기시면 하나님 스스로 지켜 가실 것 아니냐? 너희들은 군대의 숫자나 무기의 량을 계산하여 겁먹지 말아라. 우리는 군대나 무기로 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싸우는 것이다.”

“너희가 믿음 안에 굳게 서지 못한다면 너희는 절대로 굳게 서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세상의 조건들에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스스로 믿음 안에 굳게 서 있느냐?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 안에 있느냐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입니다. 이것 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믿음을 위한 다른 방편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이사야의 말을 뿌리쳤습니다. 믿음은 물론이고 역사의식도 없고, 용기조차도 없는 비겁하고 교활한 왕은 가장 나쁜 선택을 하였습니다. 북방에 앗시리아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진짜 호랑이를 끌어들였습니다. 앗시리아 왕에게 가서 “저는 임금님의 신하이며 종입니다.”라고 나라를 송두리째 바쳤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앗시리아 신전과 똑 같은 모양으로 개조했습니다. 봉신국은 종주국의 신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겉으로는 야훼성전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앗시리아의 신을 섬기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가장 굴욕적인 처사를 했습니다.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나라를 바쳤습니다. 패전한 다음에 해 늦지 않을 일입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가장 굴욕적인 선택을 스스로 해버린 것입니다. 물론 그 충성의 댓가로 단지 왕 자신의 영달은 보존했을 것입니다.

아하스의 바보 같은 선택으로 시리아는 주전 731년에 앗시리아의 손에 의해서 영원히 역사 안에서 사라져 버렸고, 이스라엘 역시 주전 721년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유다는 속국이되어 버렸으며, 그 이후 앗시라아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한번 외국에 속국이 되면 벗어나기 힘듭니다. 결국 유다는 한번 독립도 못하고 유다마저 왕조를 접게 됩니다.

시편 130편은 “내가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을 불렀습니다.”라고 합니다. 구렁은 “깊은데서(개역) 심연, 깊은 물 속에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물에 빠져본 적이 계십니까? 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수영을 해도 물살이 거세서 전혀 올라가지 않고 물살에 밀려 내려오고 혹시 바닥에 발을 대려고 서보았지만 발이 닿지 않고 물밑으로 꼬락 꼬락하고 내려갑니다. 그때 물밑 30센티의 공포! 손이나 발에 무엇하나 걸리는 것 없고, 아무것도 의지 할 것 없이 쑥 밑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 얼마나 공포스러운 느낌입니까? 그때 저는 체면 불사하고 살려달라고 소리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를 안절부절 못하게 하는 구렁에 빠졌을 때, 주님을 부르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소리 높여 그 분께 도움을 청하는 일입니다. "내가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을 불렀습니다."는 고백을 시편기자는 “죄의 구렁”으로 “죄의 심연”으로 전환합니다.

주님, 주께서 죄를 지켜보고 계시면
주님 앞에 누가 감히 버티어 설 수 있겠습니까? (3절)

우리가 심연에 빠지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곤경에 처할 때입니다. 그런 이유로 심연에 빠졌을 때 우리 주변의 이웃들은 우리를 손가락질 하고 ‘그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살려달라고 소리를 치더라도 그것은 더욱 우리를 비난 속에, 더욱 깊은 구렁에 빠지게 할 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비록 자기 죄로 인해 구렁에 빠졌더라도 그가 주님께 울부짖는 소리는 그 심연의 깊이만큼, 그 죄악의 깊이만큼 한없는 주님의 자비를 불러일으킵니다. 심연에서의 울부짖음은 인간 절망의 깊이만큼 하나님의 자비의 깊음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4절에서 “용서는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가 주님만을 경외합니다.”라고 합니다. 인간은 용서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의 죄악의 깊이가 큰 만큼 더 큰 사랑을 느끼십니다. 그래서 기자는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그가 무엇을 해주어서가 아니고 그분이 사랑이심을 알기 때문에 그분을 기다립니다. 인간은 잘 삐지고, 어떤 일정한 기준에 들어오지 않으면 사정없이 내리 찍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변함없이 용서해주시고 사랑하시는 분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여러분 베드로와 가롯 유다가 어떻게 다릅니까? 둘 다 십자가 앞에서 주님을 배반 했습니다. 유다는 은돈 30냥에 예수를 넘겼고, 베드로는 결정적으로 사형언도를 받으시는 법정에서 그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유다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예수님은 자신이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가셨고, 자신이 고난 받을 것을 세 번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다보다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미 그에게 십자가가 각오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 때문에 돌아가신 것 아닙니다. 유다 아니라도 십자가는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길은 예정되었지만, 단지 그 과정에서 누가 예수를 끝까지 신뢰하는가? 누가 자신을 등지는가를 지켜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둘 다 다른 역할로 예수를 등집니다. 최후순간에 배신을 합니다. 그것은 똑 같은 배신입니다.  

그러나 이 둘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베드로는 회개했지만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유다가 더 책임적인 삶을 사는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해 고개 들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 답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뻔뻔한 것 같은 베드로의 장점은, 자기 계산이 분명한 유다보다 백배 더 위대한 베드로의 장점은 “예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염치없지만 예수님의 그 넓은 마음, 그분의 사랑을 믿고, 그 앞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그 앞에 나아올 때, 그분을 굳게 믿을 때에만이 굳게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뭘 보여준 다음에 믿으라고 하십니까? 자빠뜨리고, 금가루를 보여주고, 치아를 금으로 바꾸면서 '나를 믿으라'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단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굳게 서지 못한다면 너희는 절대로 굳게 서지 못한다.”
두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굳게 믿으라'는 것이고, '그래야 설 수 있다' 입니다. '굳게 믿는 믿음'이 없으면 온갖 것을 보고 갖는다 하더라도 굳게 서지 못합니다. 그런 것들로 신앙이 굳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을 굳게 믿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겐 이런 믿음이 필요한 것이지, 믿음을 돋울 무슨 방법이나 방편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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