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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사이에서

누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965 추천 수 0 2012.06.17 23: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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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7:20-21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0.8.22 주일 설교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너]와 [나]사이에서
눅17:20-21


요즘 수요 성서강좌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해석과 이해입니다. 히브리성서에서, 경외서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이해를 살펴보고, 지금은 신약성서에 나타난 '하나남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중입니다. 아직 강의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점차 그 이해의 면모가 드러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는 중에, 한 지류처럼 오늘의 말씀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신약성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다고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파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여기 너희 ‘가운데’ 있다고 번역된 것은 개역 성경에는 너희 ‘안에’ 있다로 되어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둘 다 맞는 번역입니다. 희랍어(Greek)의 entos라는 전치사는 in, among 둘 다 번역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문맥을 보면 물어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적대자이며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아”라며 나무라는 대상인데 그들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하면 모순입니다. 그래서 현대 번역들은 Among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언제 임하냐?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냐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 상호간에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소속된 가정, 교회나 사회 우리가 소속한 공동체가 서로 권위적, 억압적 관계를 맺고 있고, 서로 감시하고 착취하고 비난하는 관계 속에 있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러나 서로 살려주고 믿고 사랑하고 왠지 함께 있으면 덩달아 신이 나는 곳이라면, 그곳이 천국이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주변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 나가느냐하는 것은 우리가 선 자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 변수입니다.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야하느냐에 대해 가장 바람직한 모습으로 바울은 ‘몸의 관계’를 들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관계라고 합니다.

고전 12:12-31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 몸의 지체는 많지만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12:13절)

"그리스도의 몸(소마)"은 모든 크리스천의 영혼을 포함하는 거대한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말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그 안에 거듭나듯이, 모든 크리스천은 한 성령을 가졌고, 우리가 지금 호흡하고 있는 것도 매일 매 순간 한 성령(숨)을 마시는 것입니다.

영은 서로를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곤란하게 하거나, 배타하거나, 배척하거나, 편가르거나, 증오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영은 하나의 존재이고 통합적이며 서로 이해하고, 서로 배우려고 하고, 서로에 대해 긍정적이고, 서로를 용납하며, 서로를 감싸주고, 서로에 대해 감탄하며, 서로를 살려주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들 각자에게 역사하시는 존재의 방식입니다.

이 영은 상호복종하고 상호 의존 합니다. 그리고 개인의 다양성과 개체성은 지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체라는 것은 한 몸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며 한 몸의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몸은 건강한 지체에 대해서는 오히려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하니까요. 그러나 몸에 통증을 가져다주거나 유달리 볼품없고 약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고 가꿉니다. 그것은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4개의 분파로 나뉘어 서로 심하게 다투고 자신 역시 크게 상처받은 고린도교회에 대해 편지를 쓰면서 그들을 배제하는 논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해 가는 논리로 "그리스도의 몸"의 신학을 정립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강력한 선교 중심적인 선교론이기도 합니다(27절 이하).

엡4:16
"그리스도가 머리이시므로, 온 몸은 여러 부분이 결합되고 서로 연결되어서, 각 부분이 그 맡은 분량대로 활동함을 따라 각 마디로 영양을 공급받고 그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게 합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그 외형과 조직에 교회의 내용이 있지 않습니다. 교회는 어떤 모임, 어떤 단체이든지 그들의 신앙고백이 그리스도에게 닿아 있어야하며, 즉 교회는 첫째,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집단이어야 하며 둘째, 상호관계에 있어서 몸의 완결구조와 같이 서로 사랑으로 자체를 완성하여 나가는 구조여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몸이 각 부분이 자기 구실을 다함으로써 각 마디로 서로 연결되고 얽혀서 영양분을 받아 자라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긴밀한 연결구조를 가진 유기적 연합체입니다. 각 단위의 유기성이 하나의 조직적인 교회입니다. 보이는 건물이나 모임이 교회가 아니고. 각 단위, 각 개인 교우 간의 유기적 연대성, 그들이 이루어 내는 관계가 교회라는 것, 사랑의 동인이 생기는 곳, 사랑의 마음으로 묶여있는 곳, 교회는 성령이 하나이심과 같이 그 나타나는 조직과 몸도 하나이며 그들이 갖는 희망과 목표도 하나입니다.

또한 이들은 하나의 세례를 통해 입문한 사람들입니다(5절). 오랜 교회의 조직이 확립한 성례전은 위대합니다. 각기 다양한 고백과 주장들을 하나의 공통된 의식, 예전으로 묶어주니 말입니다. 마치 결혼이라는 예식을 통하여 비로소 결혼생활에 들어가듯이 하나의 성례전(세례와 성찬)을 통하여 한 분이신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이고, 흩어져 있지만 하나인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분이신 하나님(하나라는 숫자에 중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통일성에 중심이 있다)은 하나의 믿음과 하나의 희망을 통해 계십니다. 이 하나님은 만물 위에 계시고, 그 안에 계시고, 그것을 꿰뚫어 계십니다. 거기서 각자의 직책과 역할이 나오는데 어떤 사람은 사도로, 예언하는 사람으로, 전도자로, 교사로, 성가대원으로, 국악반주자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이들의 완전한(헌신적인) 봉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게(세우게-새번역, 희랍어 oikodomen, 영어 building) 됩니다. 우리들 각자의 부르심 받은 자리, 그 자리에서 자기의 몫을 다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역할입니다.

"그 비밀이라는 것은, 이방사람들이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함께 약속을 받은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엡3:6)

유대인의 의식 속에 멸시하는 그 이방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이 복음을 들으면 예수 안에서 한 몸(공통의 몸, 쉬스 소마)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공통의 몸은 마치 성적관계에서 오는 하나 됨, 일체감과 같은 것이며(엡5: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은 큽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엡5:31-32) 이 비밀과 같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 결합도 이루어집니다. 쉬스 소모스는 강력한 신체적 연대의식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고 "공통의 몸"이나 "같은 몸"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공동의 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다는 점에서 일치하며 교회를 나타냅니다(골 1:18). 물론 여기서의 교회는 그리스도 중심성과 사랑의 연대성을 충족하는 어느 단체나 집단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우주적 그리스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지는 단위입니다(엡1:23).

홀로 떨어진 개인은 완벽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이 가진 교만이고 자신의 죄성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면 되지 교회니 공동체니 하는 것들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반드시 공동체를 통하여 표현되는 것입니다.

기쁜 일도 함께 기뻐할 사람이 없으면 기쁘지가 않은 법입니다. 슬픈일도 함께 나눌 사람,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대로 위안을 얻고,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각자가 죄인인 개인들이 모여서 이루는 집단 인격인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이루어나가는 실체요, 그의 지체입니다. 개개인은 부족하고 서로 죄성을 가지는 존재이지만 이들이 모여서 이루는 집단인 교회는 개개인의 부족함을 서로 보완하여 완전한 모양을 이루게 됩니다.

이 교회, 그리스도의 몸은 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모든 고난이 완결된 것 이 아닙니다. 아직 남은 고난, 우리들 몫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골 1:24 에서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즐겁게 여기고 있으며..."라고 합니다. 이들은 고난 받는 것을 오히려 즐겁게 여깁니다. 그런데 이 고난은 막연히 고난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가 분명합니다. "그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가고 있습니다"(골 1:24)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이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나 자신만 인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도 인격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개인의 명예나 인격만큼이나 더욱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몸은 우주적인 몸으로 자라나게 됩니다(골2:19, 엡1:23, 3:8-10, 4:16). 이 우주적인 몸의 자라남은 교회를 위한 수많은 개인의 희생과 헌신 위에서 나라나는 것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나라가 확장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봉사와 헌신은 자신의 이익추구를 가장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안에서 전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것입니다. 그 헌신과 봉사는 개인에게만 주어진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자라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입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는 [나]와 [너]사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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