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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노래

시편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414 추천 수 0 2012.06.17 23: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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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9:1-14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0.10.3주일 설교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가을 노래
시편 19:1-14

오늘 본문의 시편 말씀을 굳이 계절로 따진다면 '가을 노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박인희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한 번 불러 보겠습니다. 주보에도 가사가 올라가 있을 겁니다. 아니면, 앞의 화면을 봐 주세요.

6절에 보면 시인은 태양을 언급하면서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고 노래합니다. 태양빛이 온기로 느껴지는 계절은 봄과 가을입니다. 그러나 봄의 햇살은 산만한 데 반해 가을의 빛은 무겁습니다. 차분합니다. 그러니 본문에 나오는 분위기는 가을입니다.

그럼 이 옛 시인은 어떤 가을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까요?

이 노래는 3절로 나눌 수 있는데, 노래 1절은 성서본문 1-6절이고, 노래 2절은 성서본문 7-10절이고, 노래 3절은 성서본문11-14절입니다. 먼저 시인은 1-6절에서 말없이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는 자연을 소개합니다.

시인은 먼저 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은 하나님의 손의 솜씨를 나타내며,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는 그의 선포는 마치 두 개의 성가대가 돌아가면서 찬양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시인은 자연 전체가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늘과 창공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단이 되고, 낮과 밤은 그분을 드러내 주는 계시의 매체가 됩니다. 즉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하나님의 창조 신비를 알려주는 계시의 운반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을 보고 부르는 시인의 노래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자연을 둘러보는 나에게도 이런 시와 노래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까? 이건 아무나 깨닫고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연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면 개역성경을 가지신 분들은 '언어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로 되어있지만 개역개정판 성경을 가지신 분들은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로 되어 있을 겁니다. 나중이 바로 잡힌 번역입니다.

'없다'는 이 세 번에 걸친 부정은 자연의 언어라는 것이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식할 수만 있는 특성이 있음을 가리킵니다. 자연의 언어는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소리이며 말이요 말씀입니다. 인간의 제한적인 음성학적 관점에서는 자연의 소리나 메시지가 포착이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소리와 말은 이미 온 땅 끝까지 퍼져있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자연의 찬양은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끊일 줄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리해서 온 세계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분의 솜씨를 드높이는 강력한 메시지로 충만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인간의 귀에는 포착되지 아니하는 메시지이기에 둔감한 자에게는 하늘은 단지 하늘일 뿐이고 창공은 단지 창공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자연이 말하고 있는 그 풍성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까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시인은 믿음으로 자연이 토해내는 엄청난 찬양을 듣습니다.

믿음의 귀를 열고 들어보니 하나님의 창조의 업적인 태양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태양은 엄청난 위력을 지닌 살아있는 존재, 곧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배푸셨다'고 노래합니다. 태양신이 자신을 위하여 스스로 집을 지은 게 아니라 그 집을 하나님이 지어주었다는 겁니다. 즉 태양은 독립적인 힘을 가진 최고의 권력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신격화되던 그 시대에 그 신성이 박탈당하고 인격화되어 태양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 그분의 증인으로 격하됩니다.

시인은 이렇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찬양하면서도 그 자연 자체를 신격화하는 게 아니라, 그 자연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노래합니다. 태양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일출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시인은 5절에서 그 태양의 동트는 모습을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에 비유합니다. 그리고 시인에게 태양의 일출은 단순히 객관적인 시간의 변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혼돈의 영역인 어둠과 심판과 죽음을 이겨내고 질서의 세계인 밝음과 구원과 생명으로 향한 승리의 진입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태양은 낮 동안에 하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통과하면서 그 밑에 있는 모든 것들을 따사롭게 품어준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태양의 온기가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듯이 인간의 삶에 생명을 주고 삶을 증진시키는 또 하나의 선물이 있다고 7-10절에서 노래합니다. 이 2절의 주제는 바로 토라,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입니다.

시인은 1-6절에서 자연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7-10절에서는 토라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인은 토라를 여섯 가지 단어로 열거하면서 그것이 갖고 있는 특성과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하나하나 소개해 나갑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롭게 합니다. 시인은 이렇게 율법이 인간에게 무엇인지를 밝힙니다.

흠 없고 완전한 여호와의 율법은 잃어버린 삶의 생기를 소생시키고, 분명한 삶의 원칙을 제공하는 하나님의 증거는 인생을 현명하게 만들어주고, 정직한 하나님의 교훈은 뭍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계명은 삶을 꿰뚫어보게 하여 참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정결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는 인생을 맑고 깨끗하게 하고, 신뢰할만한 하나님의 판결은 모두 의로운 것으로 입증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시인이 삶 속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토라의 가치를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송이 꿀 보다 더 단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정금은 최고의 순도를 자랑하는 금이고 송이 꿀 은 꿀 중에서 가장 단 꿀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정금은 모든 인간들이 추구하는 보물을 대표하는 '최고의 가치'를 상징했고 송이 꿀은 모든 인간들이 먹고 싶어하는 달콤한 음식을 대표하면서 '최고의 즐거움'을 상징했습니다. 즉 시인은 토라를 지상에 있는 모든 가치와 그 어떤 즐거움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말씀이 최고의 가치요 최고의 즐거움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하나님의 말씀이 정금 같고 송이 꿀 같습니까?
인생의 최고의 가치와 즐거움을 이 말씀 속에서 맛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정말 말씀이 내 삶에 생기를 주고 지혜를 주고 기쁨을 주고 내 인생을 진지하게 성찰하게 하며 내 인생을 맑고 깨끗하게 하고 의롭게 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이 말씀으로 인해 내 인생이 풍성한 나날입니까?

이 가을에 꼭 이 두 가지 책을 펼쳐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는 자연이라는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또 하나는 성경이라는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십시오. 왜 믿음을 갖고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놀라운 선물을 소홀히 여기고, 메마르고 피폐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믿음 없는 사람들보다 더 무감각하게 이 가을을 지낸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여기까지 노래한 시인은 이제 11-14절의 마지막 3절로 넘어가는데 시인은 여기서 또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1, 2절의 찬양의 어조가 갑자기 애가의 어조로 바뀌고 있다는 겁니다. 경쾌하고 밝아서 기쁨이 넘쳐나던 장조의 음악이 갑자기 어둡고 애절하고 슬픔이 깃든 단조의 음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시인은 자연과 토라를 향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찬양하다가 갑자기 자기 자신의 부족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겁니다.

이 3절의 주제어는 바로 '허물과 죄'입니다. 시인은 여기서 절절하게 자기의 죄를 토설합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인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보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달고 오묘한 송이 꿀 같고 정금같이 말씀을 대하며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연과 말씀을 깨닫게 되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하찮고 무가치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저 태양 앞에 자신의 삶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완전하고 의로운 말씀 앞에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더러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가을에서 발견한 자신의 진솔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가을에 우리에게 이런 자극과 도전이 있어져야 합니다. 김도향이라는 가수가 부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를 저는 가끔 흥얼거려봅니다. 거기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난 낙엽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러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거죠.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 버린 것이 아닐까, 흘러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낙엽처럼 살 수 있다면 잘 산 것이지요. 잎으로서의 역할 을 충실히 하고나서 자기 몸에 있는 양분을 다 나무 몸체에 내어주고 자기를 비워 말라 죽어가는 것이 낙엽인데 그런 낙엽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시인은 자연과 말씀 앞에서 너무도 부실한 자기 인생을 본 것입니다.

그랬을 때 그가 취한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습니다. 12절과 13절에서 시인은 자신의 삶을 망가뜨려온 두 가지 요소를 고백합니다. 그것은 바로 '숨은 허물'과 '고범죄'입니다. 즉 모르고 지은 죄와 의도적으로 지은 죄 모두를 하나님 앞에 토설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와 보호를 구합니다.

시인은 이제 14절에서 이렇게 다짐하며 노래를 맺습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자신의 반석이며 구속자로 고백하면서 자기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한다는 헌신기도로 노래를 맺습니다.

이 고백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율법 앞에서 절망했던 시인은 구원이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그에게 든든한 구속자입니다. 율법을 준수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게 아닙니다.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율법은 구원법이 아니라 성민법입니다. 율법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받고 난 이후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삶의 방향을 상세히 일러주는 사랑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율법보다 선행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자만이 율법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가을의 기도 속에서 이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반석과 구속자로 고백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기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여기 '열납'이라는 단어는 제사용어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이 고백을 통해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리는 겁니다. 저 자연이 그러하듯이 자신도 이 가을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 한 제물이 되고 싶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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