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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홉 가지 감사

누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973 추천 수 0 2012.07.03 23: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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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7:11-19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0.11.14주일설교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잃어버린 아홉 가지 감사
눅17:11-19

지금 우리는 참으로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핸드폰과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고, 한 집에 한 두 대 꼴로 자가용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종종 그런 생각을 합니다.

“컴퓨터와 핸드폰과 자가용이 없었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지?”
그런데 그 시절이 불과 10년 전입니다. 컴퓨터가 각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 년 전 부터고, 핸드폰을 각자가 소유하게 된 것은 불과 5-6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세 가지가 없다면 대단히 불편할 것 같습니다. 아마 요즈음 신세대 젊은이들은 그 정도가 더 심할 것입니다.

지금의 단독 주택이거나 아파트 생활은 또 얼마나 편리합니까? 옛날에는 나무를 때서 방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밤 11시쯤 군불을 지펴야 새벽까지 뜨뜻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생솔가지를 때서 군불을 지피기도 했습니다. 그놈의 연기 때문에 눈물 콧물 흘려 가며 불을 땠습니다. 입으로 불다가 잘 안타면 풍로를 가져다가 열심히 부쳐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방을 데우고 잠을 자도 아침에 일어나 보면 방에 놔둔 물그릇이 꽁꽁 어는 것은 예사였지요. 그래서 발이 시리니까 양말을 신은 채 잠을 자야 했습니다.

이렇게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던 시절에서 연탄시대로 넘어갑니다. 그게 불과 20-30년 전이죠.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으려면 하루에 두 세 번씩은 갈아줘야 했습니다. 어디 외출 할 일 있으면 옆집 사람한테 꼭 부탁을 해 놓아야 합니다. 몇 시쯤 우리 집 연탄 좀 바꿔 달라고 말이죠. 제가 처음 성암교회의 사택에 살 때만 해도 연탄 부엌이 4개 였습니다. 한 구멍에 3개씩 들어가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 하루 종일 연탄 불 걱정을 해야 했습니다.

한국의 거의 모든 가정들이 아궁이를 연탄아궁이로 바꾸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나무를 때던 아궁이가 연탄으로만 바뀌어도 얼마나 편하든지요. 물론 그 연탄가스 덕분에 죽은 사람도 퍽 많았지요. 그러던 시절을 거쳐서 80년대부터 기름보일러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지금 우리는 가스보일러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스위치만 틀면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고, 자동으로 집안 온도를 맞춰 줍니다. 전기밥솥 스위치만 켜 두면 자동으로 밥이 되고, 보온이 됩니다. 꼭지만 돌리면 24시간 뜨거운 물을 먹을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냇가에 나가 손을 호호 불며 빨래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세탁기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줍니다. 청소는 청소기가 해주고,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해주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끼니 걱정 안하고 살게 된 것이 불과 얼마 안 됩니다. 지금부터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아주 가난했습니다. 춘궁기가 되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응달진 곳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시절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윤택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 양이 500만 톤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이 한 해 동안 필요로 하는 음식량이 390만 톤이라고 합니다. 390만 톤의 음식만 있으면, 북한 주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데, 우리는 그들의 필요량보다 더 많은 500만 톤을 음식쓰레기로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가급적 음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 지구상에 음식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음식을 버리는 것은 죄가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온 옛날에 비하면, 모든 생활이 편리해지고, 모든 것이 풍족해졌습니다. 이제는 먹고사는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극소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어떻게 삶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는지가 관심사 입니다. 직장인들도 이제 선진국처럼 주 5일 만 일하지 않습니까? 옛날에는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뼈골 빠지게 일해도 먹고살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하루 8시간씩만 일하고, 일주일에 이틀씩 쉬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삶의 질이 향상되고, 생활여건이 호전되었다 해서 현대인들이 옛날 사람들 보다 더 행복한가요? 옛날 보다 훨씬 더 감격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마땅한데, 과연 그런가요?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불행해 하고 더 불평불만이 많습니다. 더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내 욕망의 주머니를 키워 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항상 배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에게 항상 배우는 자세로 사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요,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요, 가진 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불만을 가지고 사는 것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더 가지지 못한 데서 오는 상대적 불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주어진 조건들이 행복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행복을 누리기 위해 더 많은 조건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경말씀은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쳐 주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문둥병자는 신의 저주를 받은 사람으로 간주되어 사람들이 사는 곳에 나타날 수가 없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저쪽에서 사람이 나타나면, ‘다메’라고 외쳐야 했습니다. 그 말은 불결하다는 뜻입니다. 나는 불결한 사람이므로 가까이 오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사는 곳은 어디든 나타나서는 안 되는 사람들, 어느 누구와도 가까이 지낼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외진 곳에서 항상 고독하게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당시의 문둥병자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육체가 썩어감과 동시에 정신까지도 썩어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처참한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인간회복을 시켜준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죽은 것만도 못하던 생명을 다시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침 받은 문둥병자 열 명중에서 예수님께 찾아와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좀 심했죠? 그 사람도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민이라는 유대인들은 받은 바 엄청난 은혜에 감사할 줄 몰랐지만,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고 혐오하는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님께 찾아와 감사를 표했던 것입니다.

열 사람이 고침 받았는데, 그중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찾아와 감사드렸다는 이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과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뜻일까요? 물론 그런 의미도 들어 있겠지요.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은 선택된 백성은 감사할 줄 모르는데, 오히려 이방인이 감사드렸다는 뜻일까요? 그런 의미도 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조건들이 많은데, 그 모든 받은바 은혜를 거의 잊고 산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열 가지 중에서 아홉 가지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겨우 한 가지만 기억하고 감사드린다는 뜻입니다. 그 잃어버린 아홉 가지의 감사와 감격을 찾으라고 주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분명히 열 명이 고침 받지 않았더냐? 그런데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아홉 가지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감사와 감격과 기쁨이 수반되지 않는 신앙은 헛된 것입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소록도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님에게 칠순이 넘어 보이는 한 노인이 찾아와서 자기도 이 소록도에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육지에서 오신 분 같은데 왜 이 소록도에 살고 싶다고 하십니까?” “그 사연을 말하자면 깁니다.”

그 노인이 말하는 사연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서울 근교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중학교에 다니는 맏아들이 눈에서 진물이 자꾸 나와서 안과에 찾아갔습니다. 안과의사는 여러 모로 조사하더니 서울 역전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옛날에는 세브란스 병원이 서울 역전에 있었다) 한센병 진료소에 찾아가 보라고 했습니다. 노인은 한센병이 무슨 병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는 아들의 몸을 벗겨 놓고, 진찰하더니 눈을 감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바늘로 아들의 몸을 찌르는데 아들이 아프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어린 동생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환자를 절대적으로 동생들과 격리시켜야 한다고 하며, 소록도에 수용시키라고 권했습니다.

그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아들을 데리고 소록도를 찾아 나섰습니다. 요즘 같으면 하루면 갈 수 있는 길을 1950년대인지라 사흘 걸려 타고 걷고 하며 겨우 고흥땅에 도착했습니다. 걷다 보니 너무 피곤하여 길가 나무 그늘 밑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피곤했던지 금 새 잠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머리에 번개같이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평생 문둥병자로 사느니 이 세상을 하직시키자.” 그래서 큰 돌을 들어 잠들고 있는 아들의 머리에 내려치려다가, “내 아들인데” 하는 마음에서 다시 돌을 내려놓았습니다. 잠에서 깬 아들을 데리고 소록도로 가는 나루터에 이르렀습니다. 소록도에서 배가 나와서 사람들을 내려놓고 들어가는 배에 아들을 실어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소록도에서 나오는 승객의 얼굴과 손이 일그러진 모양을 보니 잘 생기고 깨끗한 아들을 도저히 함께 실어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함께 바다에 빠져 죽자.” 둘은 옷을 벗어 놓고 바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목까지 물에 잠긴 아들이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병든 사람은 난데 아버지가 왜 죽어요? 나만 죽으면 되지. 아버지가 죽으면 엄마와 동생들은 누가 먹여 살려요? 어서 나가세요!” 두 사람은 바닷물 속에서 얼싸 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다에서 나와서 그 다음 배에 아들을 태워 소록도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농사지으며 10남매를 키우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비닐하우스도 하고, 논농사도 짓고, 별 짓을 다 했으나 10남매를 키우는 데는 숨이 턱에 닿았습니다. 두 내외는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며 막내까지 다 결혼시키고 나니 진이 다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소록도에 있는 큰 아들에게 편지도 몇 번했지만, 그 후로는 다른 아이들 키우느라 여념이 없어 편지도 끊어졌습니다. 큰 아들은 온전히 ‘잊혀진 아들’이 되었습니다. 아니 차라리 잊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이들 다 시집 장가보내고 그 동안 고생해온 아내와 이제 좀 편히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내가 암에 걸려 죽었습니다.

아내가 죽고 나서부터 서울에 사는 둘 째 아들이 매일같이 졸랐습니다. “아버지, 땅을 파세요. 아버지가 직접 농사를 짓기에는 이미 아버지가 늙으셨고, 사람을 사서하자니 인건비가 비싸고 영농비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농사를 왜 짓습니까? 그 땅을 팔아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고팔고 하면 농사짓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 그리고 아버지는 우리 집으로 들어오세요!”

그래서 그 아들 소원대로 농토를 팔았습니다. 서울의 아들집에 들어와 사니 일하지 않아서 좋고 대접도 융성해서 좋았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땅 판 돈으로 아파트 장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두어 달 지나니까 며느리의 얼굴이 점점 불편해 보였습니다. 한번은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만 아들입니까? 둘째네 셋 째 네도 다니시고, 딸네집도 휘익 한 번 다녀오세요.” 그래서 셋째네로 갔습니다. 셋 째 네에서도 두어 달 지나니까 며느리의 얼굴이 편치 않게 되어 넷째네로 갔습니다. 넷째는 가난하여 방 두 개짜리 전세를 살고 있는데, 아이들을 부모 방으로 몰고, 아이들의 방을 아버지께 내드렸습니다. 그날 밤늦게 돌아온 넷째 아들이 큰 형네 집에 전화를 걸어 형제간에 대판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형은 아버지가 땅 판 돈을 몽땅 차지했으면서 모시기는 싫어서 이 집 저 집으로 아버지를 내 돌리기요?”

그 아버지는 너무 민망해서 아들이 전화통 붙들고 사우는 사이에 몰래 집을 나와버렸습니다. 이미 노인이 된 그 아버지는 그날 밤을 여관에서 자고, 그 다음날 이제는 팔려서 남의 땅이 되어버린 그 논밭을 보면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먼저 죽은 아내를 원망해 보고, 아들놈들 생각하면 괘씸하기도 하고, 그래서 석양 녁 붉은 햇살을 바라보며 한없이 울었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 때 갑자기 생각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40년 전 소록도로 간 아들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그 애는 지금 살아 있을까? 내가 한번 가보리라.

소록도로 가서 물어물어 아들을 찾았습니다. 그 아들은 밭에서 일을 하다가 아버지를 만났는데, 몹쓸 병을 앓았던 아들은, 이미 병은 다 고쳤지만, 그 후유증으로 얼굴도 손도 다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이제 50대 초반인데도 자기 아버지만큼이나 늙어 있었습니다. 40 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은 한참 동안 얼싸 안고 울었습니다. 며느리가 아버지에게 절을 하는데, 며느리의 얼굴도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육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손자가 와서 절을 하는데 체격도 좋고 얼굴도 미남으로 아주 잘 생겨서 노인의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큰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내가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고 40년을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결국 내 기도를 들어 주셨어요. 내 얼굴이 이러니 내가 서울로 가서 아버지를 뵐 수도 없잖아요. 우리가 만나려면 결국 아버지가 이 섬으로 오셔야 하는데, 오늘 드디어 오셨군요.” “아들아, 나는 너를 갖다 버린 아비인데 이런 무정한 아비를 미워하지도 않고 그토록 만나고 싶었더냐?” “아버지, 그런 말씀 마세요. 나는 여기 들어와서 예수를 믿게 되었어요. 예수님을 믿고 나니 신세 한탄도 없어지고 원망도 미움도 다 없어졌어요. 나는 매일 감사한 생활을 합니다. 아버지도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삽시다. 그리고 아버지도 예수님 믿으세요.”

그래서 그 노인도 소록도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은 목사님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온갖 정성 다해서 키운 10그루의 나무보다 내가 40년 전에 갖다 버린 한 그루의 나무가 더 싱싱하고 더 우람하게 자랐군요. 목사님, 우리 아들이 믿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 몰라도 나도 한 번 믿어 보겠습니다. 나도 우리 아들처럼 감사하며 살아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해마다 맞이하는 이 추수감사절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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