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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2>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063 추천 수 0 2012.07.03 23: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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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16-20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0.12.12주일설교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2011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2>  
막 1:16-20,마 9:35-38


사실 새해는 이미 지난주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1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말씀을 하늘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다른 엉뚱한 관심을 삶의 가운데 두지 말고 우리 존재 본연의 삶을 살자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동역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쉽지 않은 문제 중에 가장 큰 문제, 예수님 시대 이레로 예수를 따라 살려는 사람들이 모두 걸려 넘어졌던 문제, 그러나 존재 본연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꼭 넘어서야 하는 문제 하나를 짚어 보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보면 나사렛 출신 한 젊은 청년이 갈릴리 호수 가를 지나가다 거기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 형제를 만납니다. 이 젊은 청년이 두 어부에게 말합니다. “나를 따라오십시오. 당신들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입니다.”그랬더니 그 두 어부는 주저하지 않고 그물을 버리고 그 젊은 청년을 따랐습니다. 얼마 가다가 또 다른 두 형제가 아버지와 같이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청년은 다시 두 형제에게 꼭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형제들도 아버지와 배를 버리고 이 젊은 청년을 따랐습니다.

예수를 따르자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던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갈릴리의  어부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어떻게 하던 일들을 그렇게 쉽게 버리고, 부모와 처자까지도 버리고 이 청년을 따를 수가 있을까요? 우리 자신을 그들의 입장에 놓고 생각해 보면, 그렇게 훌쩍 자기의 직장과 부모와 처자를 떠나 그 청년의 뒤를 따를 수가 있을까요? 정말 놀라운 일이죠.

이 어부들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이 젊은이를 따른 까닭이란 저들 심중에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진 모든 것을 주저 없이 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는 것이죠. 오늘 우리들도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습니다.

갈릴리의 어부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들에게는 정말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유대민족의 독립이었습니다. 저들은 7 백 여 년 간 외세에 짓눌려서 살았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아시리아 제국에 짓밟혔었습니다. 남방 유대는 바벨론에 망했습니다. 그 후 파사 왕국 수하에 들어갔다가 알렉산더 대왕의 철권 밑에 들어가서 헬라 문화에 혼을 다 빼앗겼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로마제국의 말발굽 밑에 짓밟혀 신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저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치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시 생각 있는 청년들에게 있어서 민족독립이란 무엇보다도 소중한 삶의 목표였습니다. 그 갈릴리 호수 가의 어부들도 이 민족적인 독립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민족을 위한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땅의 젊은이들이 간절히 바란 것은 다윗 왕국의 회복이었습니다. 훌륭한 지도자 아래 강력한 군대를 길러서 주변의 종족들을 처 부수고 국토를 넓혀서 당당하게 살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다윗이 한 일입니다. 그리고 정복한 민족들을 동원해 거대한 도성들을 짓고 화려한 문화를 이룩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솔로몬이 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결과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 결과란 유대인들과 그 주변 백성들과는 개와 고양이와도 같은 원수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런 권력구조에 올라앉은 기득권자들은 다 이리 때들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인류 역사를 훑어보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 역사에서도 이것을 명확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왕조 회복을 위해서 무엇이고 버렸다는 것은 버린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얻기 위한 행동에 불과 헸던 거죠. 예수의 제자들이 행한 행동들을 보세요. 저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면서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이라고 하자 펄쩍 뛰면서 그것은 안 될 일이라고 법석을 떨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저들을 누가 예수님의 좌우에 앉을 가 경쟁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히시자 저희들은 벌벌 떨면서 도망을 가더니 예수님이 부활하시자 저들은 다시 열 두 지파를 다스릴 줄 알고 폼을 잡았습니다. 저들이 여러 가지를 버린 것은 사실이나 이것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도 그런 현상을 많이 봅니다. 목사님들이 십일조를 강조할 때 하는 말이 무엇인가요? “십일조를 내면 하느님이 여러분들에 곡간이 차고 넘치게 주실 것입니다” 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전도할 때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 복이란 무엇인가요? ‘가정도 부요해 지고 자식도 잘되고 모두 건강해 질 것이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목사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받친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처합니다. 그리고는 교인더러 하나님의 종을 순종하고 받들라고 명합니다. 모두 이해타산 적이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얻으려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은근히 명예와 지위, 권세와 이로 말미암는 각가지 혜택을 바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더러 버리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우리는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한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찾는 청년에게 “네가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이 청년은 부한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그에게 대한 하느님의 보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가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사실 그의 가치관은 부와 사회적인 존경 혹은 지위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예수는 그의 뒤를 따르라고 합니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규탄을 받는 예수의 뒤를 말이죠. 이 청년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찌 가진 것을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의 세계에 있어서는 그것은 단연 성공의 표식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힘을 길러서 다윗 왕국의 영화를 회복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도 그 동안 우리가 간절히 바라던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간절히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왜 버려야 합니까?

예수님은 모두가 가는 그 넓은 길은 죽음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시대를 살펴봅시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렇게 부유하게 사는 까닭이란 당시 기득권자들과 타협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는 대 사제에게 내치의 권력을 주어 율법으로 백성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리면서 군인으로 치안을 유지면서 사정없이 세금을 수탈해 갔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 대사제의 무리들과 타협을 해서 율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혜택을 본 것입니다.

이렇게 지배층들이 서로 짜고서 백성을 수탈하니 밑에 있는 백성들이란 빈곤이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밑에 있는 무리들의 불안이란 날이 갈수록 더 심해갔습니다. 생각 있는 젊은이들이 모두 열심당이 되어 혁명을 꿈꾸게 된 것은 당연합니다. 저들은 어서 메시아가 와서 그들을 인도해서 로마를 뒤엎고 다윗 왕조를 회복하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는 이런 힘과 힘의 대결이란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것을 명확히 보았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할 것이라고 한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버리라고 하는 것은 이런 그릇된 삶의 자세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꿈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나라의 동역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소유함으로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많이 소유하려고 경쟁을 하면 약육강식의 비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빈부 격차가 날로 확산 될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생태계도 반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도 생태계의 반발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기에 모두가 추구하는 많이 소유함으로 행복해진다는 이 넓은 길이란 사망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 길에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그런 그릇된 가치와, 삶의 자세를 버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왜 모두 버리지 못하고 가던 길을 그대로 가고 있을까요? 그것은 가고 있는 길이 멸망의 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일러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편하고 안전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데 공연히 떠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세계를 보고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은 비유를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커다란 강에 배를 띄우고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노를 저어갔다. 날씨도 좋고 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광경을 멀리서 보고 뛰어와서 배를 돌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더 내려가면 하류에 커 다란 폭포가 있어서 위태하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 사람은 그 소리를 듣지 않고 그대로 노를 저어서 내려가고 있다” 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사태를 바로 보고 경종을 울린 분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이대로 나가다가는 예루살렘이 함락이 되고 성전도 무너져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경종대로 주 후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이 되고 성전에 철저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독립을 하겠다고 나왔던 청년들이 완전히 몰살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가던 길을 정말 돌아서게 하려면 앞으로 닥칠 비극에 대한 경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돌아섬으로 말미암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뿐 소식까지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돌아서라. 그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너를 기다린다.”라는 소식 말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 돌아서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구체적으로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너희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경험할 것이다. 그리면 너희들은 기쁨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금년 한 해, 뭐 대단한 걸 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바라는 여러 가지 간절한 일들 중에 하나’를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됩니다. 내가 어떤 것을 내 생애에 가장 바라고 있는지, 그걸 버리자는 것입니다. 많이는 하지 말고 단 ‘하나’만 해 보자는 것입니다. 송년 예배를 하기 이전에 여러분들에게 작은 종이 한 장씩을 나눠 드리겠습니다. 전에는 여러 가지를 썼는데 금년에는 달랑 하나만 써서 하나님 앞에 내 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여러분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만 2011년에 버릴 그 ‘하나’만 쓰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삶의 자세를 바꾸면서 예수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그리면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잔치를 맛볼 것이요, 그렇게 될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하나님의 창조의 동역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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