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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민19: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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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2.6.10 주일 참사랑교회 http://charmsarang.onmam.com |
거 룩하라
민19:1-22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거룩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 ”(레11:44상).
하나님의 백성은 왜 거룩해야 할까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도 우리는 거룩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은 거룩해야만 합니다. 거룩이란 하나님 백성답게 죄로부터 깨끗하게 되는 것이며, 죄로부터 구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은 정결하게 하는 예법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도 역시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거룩할 것을 요구하시는 명령입니다. 율법의 모든 계명들은 하나님 백성에게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라는 명령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거룩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본문의 배경
본문은 앞의 16장-18장과 연관됩니다. 18장 마지막은 오염에 대한 경고로 끝났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18:32하) 16장에는 고라 일당의 반역이 있었으며,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해 죽었습니다. 고라 일당의 반역 후에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는데, 그 때문에 14,7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으로 죽은 자가 만 사천 칠백 명이었더라”(16:49) 이러한 재앙을 경험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두려워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가까이 나아가는 자는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17:12-13)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원망과 반역 때문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죽은 많은 시체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광야의 이스라엘은 광야생활 38년 동안 60만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체를 처리하며 장례 치르는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모든 일들이 황량한 광야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문제는 시체를 만짐으로 부정하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로 온 것이며, 그래서 시체는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체를 만지는 자도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반드시 그 부정한 것으로부터 정결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된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법을 제정하셨던 것입니다.
정결하게 하는 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부정하게 되거든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들어 그 사람에게 뿌려서 정결하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정결하게 하는 물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흠이 없고 아직 멍에를 메지 않은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 태워서 만들었습니다. 제사장은 진영 밖에서 암송아지를 잡아 그 피를 손가락에 찍어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렸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보는 앞에서 그 암송아지를 불사르게 했는데, 이 때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취하여 함께 사르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붉은 암송아지를 완전히 불사른 후 그 재를 거두어 간직해 두었다가 부정을 깨끗하게 하는 물을 만드는데 사용했습니다(1-10절).
특이한 것은 이렇게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들기 위해 암송아지를 태워 재를 만드는 것을 속죄제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9절)
본래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 범죄한 사람은 제물을 끌고 와서, 그 짐승에게 안수한 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드리는 제사를 속죄제라고 부르며, 이렇게 속죄제를 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시체로 인하여 부정하게 된 사람들 역시 속죄를 받아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과 죄의 상관관계 때문입니다.
부정한 자가 정결케 되는 규례
레위기에는 여러 가지의 부정한 경우가 기록되어 있는데, 본문에서는 특별히 사람의 시체를 만지는 자는 7일 동안 부정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11절) 그리고 사람이 죽을 때 그 장막에 있던 자와 거기에 들어가는 자도 부정합니다. 뿐만 아니라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도 부정하며, 무덤을 만지는 자도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또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진 자도 부정했습니다.
본문에서 특별히 시체를 부정하게 여기는 것은 죽음이 죄악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시체를 만지면 부정하게 되므로 시체를 만지지 말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 백성이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의식적으로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을 장사하는 것까지 금지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피치 못하게 시체를 만졌다 하더라도 정결케 되는 예법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법을 지키게 하심으로 죄악과 그 저주를 기억하게 하시며, 그것들을 피하여 성결에 힘쓰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부정하게 된 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정결하게 되어야만 했습니다. 먼저 암송아지의 재를 취하여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정한 사람이 우슬초를 취하여 그 물을 찍어서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되, 제3일과 제7일에 뿌려야 했으며, 당사자는 옷을 빨고 몸을 씻고서야 그 날 저녁부터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경결하리라”(17-19절)
정결케 하지 않은 자
만일 부정한 자가 이러한 규례대로 행하여 자신을 정결케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은 여전히 부정하여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벌을 받아 죽었습니다. 부정을 정결하게 하지 않은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힌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라”(13절).
하나님께서는 성막에 임재해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막이 그들 가운데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해 계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정을 정결케 하지 않은 자가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이스라엘의 진영에 들어가는 것은 거룩한 공동체를 더럽히는 것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손상시키는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부정을 정결하게 하지 않는 것은 큰 죄가 되었으며, 가장 큰 벌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표하는 것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로 쉽게 부정해질 수밖에 없는 형편에 놓여 있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대적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출애굽 1세대들이 광야생활 40년 동안 다 죽어 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죽음과 시체로 인하여 항상 부정해질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우연히 뼈에 접촉되어도 부정해졌으며, 길을 가다가 무심코 무덤을 밟고 지나가기만 해도 부정해졌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이처럼 부정해지기 쉽도록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 부정한 것에서 회복되어 정결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정결하게 되는 법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살면서 날마다 죄로 더럽혀지기 쉽습니다. 그 누구도 죄에서 완전히 떠나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범한 죄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는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들기 위하여 암송아지가 죽임을 당했고 불에 살라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재를 물에 타서 뿌림으로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붉은 암송아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것이 온전하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않은 송아지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과 순수성을 설명합니다.
암송아지를 진 밖에서 잡았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성 밖(골고다)에서 죽으실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불에 살라졌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완전한 희생을 의미합니다. 암송아지의 피를 일곱 번 뿌린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가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들기 위해 죽임을 당한 암송아지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사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러므로 부정하게 된 사람에게 암송아지의 재로 만든 물을 뿌려 정결하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 모든 일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뇨”(히9:13-14)
우리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형벌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조차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죄로 인해 이렇게 영원히 멸망을 당할 소망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저주와 멸망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얼마든지 은혜를 힘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가능해졌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이며 축복인지 모릅니다.
늘 범죄하는 우리
그런데 이렇게 구원을 받은 우리도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죄를 짓습니다. 예수 믿고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받은 후에도 우리는 또 죄를 짓습니다. 그러면 그 죄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예수 믿고 구원 받은 후에는 죄를 짓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해 영원한 지옥에 던져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이상이 생깁니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멀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을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이러한 죄를 해결하는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했다 하더라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을 수 있게 됩니다. 얼마나 복되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고 회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중 한 사람이라도 부정한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부정을 씻는 암송아지의 잿물을 예비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인 우리가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죄에 오염됩니다. 이 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를 죄로부터 정결케 하는 주님의 보혈이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십자가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고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7:19) 얼마나 귀한 은혜입니까?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사죄의 은총을 힘입어 늘 정결하고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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