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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사슬을 끊어내십시오

누가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366 추천 수 0 2012.07.14 23: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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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8:26-39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악마의 사슬을 끊어내십시오 (누가복음 8장 26-39절)

 

< 폭력에 겁먹지 마십시오 >

 며칠 전,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고등학교 1학년생이 3년 넘게 폭력의 공포 속에서 살다가 투신했습니다. 피해학생은 중학교 때 15센티나 큰 가해학생에게 대들었다가 두들겨 맞으면서부터 가해학생의 종노릇을 했습니다. 실수하면 맞았고, 책가방을 들라면 들었고, 하굣길에는 가해학생을 바래다주느라 10분 거리를 30분씩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딴 친구들도 피해학생을 종처럼 대하며 같이 무시하고 같이 심부름도 시켰습니다.

 가끔 입술이 터지거나 몸이 멍든 상태로 귀가해서 이유를 물으면 부모님께는 늘 축구하다 다쳤다고 했습니다. 투신 날 오전에는 PC방에선 게임을 성의 없게 한다고 친구들 앞에서 비참하게 욕을 먹고 PC방 비용도 대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가해학생이 또 불러내자 아파트로 올라가서 2시간 30분을 고민하다 결국 투신했습니다.

 왜 피해학생은 그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을까요?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에 지배됩니다. 부모님께도 인정을 못 받을 것 같은 두려운 감정,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고 싶은 죄송한 감정, 친구들로부터 고자질장이라고 더 무시당할 것이라는 피해의식 등에 속박되면 착하고 양심적인 아이들은 대개 그 고통을 부모님께도 잘 말하지 않습니다.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계속된 폭력 희생자의 두려움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계속된 폭력으로 생긴 두려움의 힘은 큽니다. 그래도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그런 유사 상황을 만나면 혼자만 고민하지 말고 누군가에게 말하십시오. 폭력에 속박되면 더 큰 폭력에 시달립니다. 그러므로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일어나 속박상태와 맞서십시오.

 필요하면 고발도 하십시오. 고자질과 고발은 다릅니다. 고자질쟁이는 되지 말되 고발정신은 가지십시오. 마음을 독하게 먹고 고발해서 자신을 건드리면 호되게 당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 다음부터 덜 건드립니다. 매번 당하다가 결국 투신하면 비참한 패배자가 되고 그것은 부모와 형제와 친구들에게 심한 상처를 남깁니다. 죽을 용기가 있다면 맞설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러면 얼마든지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중학교 때 돈을 뺏으려 골목길로 끌고 간 고등학생과 죽을 각오로 싸웠습니다. 결국 자신이 졌고 훨씬 더 많이 맞았지만 그 고등학생도 코피가 터졌습니다. 그날 그는 많이 다치고 돈도 뺏겼지만 자신감이 놀랍게 커지는 수확도 얻었습니다. 그 후 그는 돈을 뺏긴 적도 없었고 일대일로 싸워서 맞지도 않았습니다. 죽을 각오로 싸우면 혹시 이기지 못해도 상대도 공포를 느끼고 덜 건드립니다. 그때부터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왕따가 되더라도 용기 있게 맞서고 또라이 짓을 한다고 비웃어도 맞서십시오. 욕쟁이와 싸움쟁이도 마찬 듯이 대들면 섬뜩한 공포를 느낍니다. 이제 비참한 패배의식에 젖어 속박 중에 살지 말고 스스로를 지키십시오. 죽을 용기가 있거든 대적과 환경과 상황과 귀신을 붙잡고 사생결단을 내십시오. 죽음을 각오하고 맞서면 다 두려워합니다. 그런 사람은 사단도 두려워하고 환경도 두려워하고 심지어는 죽음도 두려워합니다.

 지금 어떤 문제로 시달리고 누군가가 괴롭혀서 죽고 싶으면 그 죽을 용기를 가지고 죽도록 문제와 맞서 싸우십시오. 경찰에 신고하든지 아니면 하나님께 신고하십시오.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은 자신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하나님이 거역할 수 없는 명령으로 불러갈 때까지는 끝까지 지키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스스로를 죽이지는 마십시오. 그 문제가 큰 문제 같아도 인생 전체와 비교하면 작은 문제입니다.

 자녀가 또래 친구에게 맞고 다니면 부모심정은 찢어집니다. 어떤 피해학생의 아빠는 자녀가 그렇게 당하자 늘 가해학생을 칼로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싸움보다는 냉철하게 그 상황을 극복해 나가십시오. 필요하면 법의 심판을 받게 하십시오. 폭력적인 사람은 더 무서운 고통을 당해봐야 사람이 됩니다.

 이제 어떤 비참한 현실에서도 죽음으로 도피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절대 해결책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절은 있습니다. 주관적인 삶의 고통은 커도 객관적으로 보면 그보다 더욱 큰 고통 중에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자살은 가장 부끄러운 일이고 가장 큰 패배이고 그것도 일종의 살인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이기적인 행동이기에 가장 무서운 심판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죽어도 스스로는 죽지 마십시오. 차라리 장렬하게 문제와 맞서 산화하십시오.

<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

 무엇인가에 속박된 것은 큰 의미에서 귀신 들린 것과 같습니다. 진짜 귀신 들린 것은 아니지만 나타나는 현상과 결과는 유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미신에 속박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성공과 출세에 속박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술과 도박과 게임에 속박되어 있고, 어떤 사람은 죄책감과 열등감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그런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1. 하나님 말씀

 어느 날, 예수님이 갈릴리 맞은 편 거라사인의 땅에 갔을 때 귀신 들린 자 하나를 만났습니다. 그는 오래 옷을 입지 않고 집에 거하지도 않고 무덤 사이에 거했습니다(27절). 그가 미친 짓을 하자 동네 사람들은 그를 쇠사슬에 묶었지만 그는 초인적인 능력으로 쇠사슬을 끊고 광야로 나가 미친 듯이 다녔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귀신에게 명해서 그에게서 나오라고 하자 귀신이 큰 소리로 자기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부르짖었습니다(28절).

 그때 예수님이 그 귀신에게 “네 이름이 뭐냐?”라고 묻자 그 귀신의 숫자는 많아서 스스로를 ‘군대 귀신’이라고 했습니다(30절). 그러자 예수님은 그 귀신들을 돼지 떼로 들어가게 하시고 그 돼지 떼를 호수로 내몰아 몰살시키심으로 그 귀신 떼를 박멸했습니다. 마가복음 5장 13절 말씀에 의하면 그때 몰살된 돼지 떼가 2000마리였습니다. 한 영혼을 구하려고 2000마리의 돼지 떼를 희생시킨 것입니다. 그만큼 한 영혼이 소중합니다.

 그 후 그 광인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예수님의 발아래에 얌전히 있었습니다(35절). 너무 쉽게 엄청난 군대 귀신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처럼 그 귀신들은 쉽게 쫓겨나는 개털과 같은 존재였는데 그 개털에 너무 오래 속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귀신의 속박에서 그 영혼을 구할 때 어떤 무력도 아닌 오직 말씀만 사용했습니다. 그만큼 말씀이 중요합니다.

 행복과 축복은 말씀에 응답하는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말씀을 벗어나 유혹에 넘어가면 큰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너무 계산하지 말고 단호하게 약속과 말씀이 있는 곳으로 가십시오. 그래야 축복도 따라옵니다. 말씀은 축복을 부르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다른 음성은 듣지도 않고 따라가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결국 축복과 행복은 목자의 소리를 잘 듣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사람은 항상 남의 떡을 크게 보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리를 이탈해서 불행해질 때가 많습니다. 어떤 직장인은 늘 개인 사업을 동경하며 생각합니다. “내가 식당을 차리면 잘할 거야.” 그러나 매일 수백 명분의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어떤 서울 사람은 늘 시골을 동경합니다. “시골에서 소와 과일나무를 키우며 살면 좋겠다.” 그래서 몇 억을 가지고 농촌에 가서 농장을 운영하다 3년 만에 포기했습니다.

 좋게 보이는 것만 따라가지 마십시오. 성공하는 사람은 대개 한 소리를 듣고 따라갑니다. 그처럼 늘 말씀을 따라 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조금만 잘못 가도 말씀하시고 교회에 한 주일만 빠져도 왜 그 길로 가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말씀은 속박이 아니고 속박을 깨고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주는 축복과 능력의 원천이 됩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대로 살고 그 전에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2. 십자가 사랑

 왜 예수님은 귀신 들린 자를 해방시켜 주셨습니까? 그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사랑이 그 광인을 귀신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을 생각해보십시오. 가장 거룩한 손으로 가장 더러운 발을 씻겨주실 때 그곳에는 사랑과 평화가 넘쳤습니다. 그처럼 사랑은 속박에서 영혼을 해방시키는 최고의 힘입니다. 사랑이 넘치면 자유와 평화도 넘치게 됩니다.

 가끔 공원묘지에 가면 이런 감동적인 비문을 봅니다. “여보! 당신은 천사였소!” 이런 비문도 있습니다. “천사 같은 부모님! 영원히 기억할게요.” 그런 비문들을 보면 그 사랑이 전달되면서 깊은 평화를 느낍니다. 저도 두 딸을 위해 기도할 때는 항상 이런 감사기도가 먼저 나옵니다. “하나님! 천사 같은 두 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두 딸의 미래에 대한 걱정근심이 사라집니다. 사랑은 영혼을 해방시킵니다.

 왜 예수님은 로마의 정치범 처형 도구인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당시 권력자들에게 예수님은 두려운 정치범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세상 권력자들은 사람들의 의식이 깨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종처럼 지내는 삶을 운명처럼 여기던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갑자기 “나도 사람이다! 사람답게 대해 달라!”고 외치면 얼마나 두렵습니까? 지금 북한과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존재임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세상 권력자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두려운 정치범입니까? 반면에 주님은 세상 권력의 위협 속에서도 십자가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사랑이 넘치는 영혼이 되면 어떤 속박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결국 십자가는 패배의 상징이 아닌 승리의 상징입니다. 죽지 않으려는 것이 문제지 죽기로 작정하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요새 가장 안타까운 모습은 무엇입니까? 교회마저 십자가를 잃고 성공주의에 속박된 것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숫자와 건물의 신화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돈이 많아지고 힘이 커질수록 교회는 예수님의 정신으로부터 멀어지고 타락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끊임없이 힘을 나누면서 힘을 덜어내야 합니다. 우리 분당 샛별교회는 열심히 나누고 선교함으로 영혼을 속박하고 파괴하는 세상적인 힘을 극복하는 대열의 선두에 서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과 어렵게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저의 선교회로는 매주 한두 통의 선교사님의 선교편지가 편지 및 메일로 도착합니다. 그 편지들을 읽어보면 안타까운 호소들이 많습니다. 특히 선교사로 헌신한지 5년 이내인 초임 선교사님들이 아주 어렵습니다. 선교사님 세계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차도 없이 고생하고, 어떤 선교사님은 안식년이 되었는지 정작 가족들이 귀국할 비행기 값이 없어서 고생합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님들을 돕되 특별히 어려운 초임 선교사님들에게 더욱 도움의 손길을 펼쳐주십시오.

 십자가의 사랑이 가진 핵심 가치는 나눔입니다. 잘 나눌 줄 알아야 영혼은 진정한 해방감을 느낍니다. 성공과 지위와 물질은 분뇨와 같습니다. 분뇨가 계속 축적만 되면 악취를 풍기지만 널리 나눠지고 뿌려지면 땅을 기름지게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십자가의 사랑은 결국 승리한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처럼 십자가의 사랑 안에 진정한 해방의 길이 있고 나눔의 실천 속에 진정한 행복의 길이 있습니다.

3, 참된 믿음

 왜 사람이 무엇인가에 속박됩니까?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왜 미신을 멀리해야 합니까? 미신은 두려움을 조장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대적은 미신적이고 형식적인 종교입니다. 그런 종교는 축복을 위해 행위를 강조하기에 때로는 경건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종교는 기계적이고 형식적이며 심지어는 사악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유와 해방을 전하면 거라사인의 땅 주민들처럼 그런 종교인은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그처럼 미신적이고 형식적인 종교는 인간을 부패시키고 사회를 분열시키고 영혼의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그런 종교는 마치 소비자들에게 계속 물건을 사도록 유혹하고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는 악덕 상인과도 같습니다. 결국 기독교가 미신적이고 형식적인 종교로 종교화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믿음을 수단화하지 마십시오. 수단화된 믿음은 또 다른 속박을 초래합니다. 잘 믿으면 분명히 축복받지만 축복 수단으로만 믿지는 마십시오. 진짜 은혜와 기적은 수단화와 계산화가 없이 자신을 순수하게 드릴 때 주어집니다. 이제 세상적인 욕심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려는 거룩한 욕심으로 바꾸십시오. 돈과 권력과 지위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추구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이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십시오.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유대인들은 “이분이 왕이 되면 경제적 필요는 채워지고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나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왕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모아 만 명이 넘는 대 교회를 이루지 않고 그들을 떠나 혼자 산으로 갔습니다. 믿음을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삼으면 예수님도 떠나고 모든 수고가 헛되게 됩니다. 반면에 참된 믿음은 반드시 악마의 사슬을 끊어 진짜 행복과 축복이 넘치는 새 사람을 만듭니다.

 미국에 헤럴드 휴즈란 알코올 중독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20대 초에 결혼해 20년을 알코올 중독자로 지냈습니다. 자신도 술을 끊으려고 사투했지만 늘 졌습니다. 결국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욕조에 누워 총부리를 입에 넣고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바로 그때 어머니가 불렀던 찬송가가 귀에 들렸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그는 총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가족들에게 상처를 준 수많은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욕조 안에서 몇 시간을 통곡하며 기도하고 지쳐서 일어났는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마음의 평강이 찾아온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어루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41세였던 그는 술을 완전히 끊고 그 후 늘 하나님만 바라보며 주일을 죽도록 지켰습니다. 그리고 8년 후인 49세에 아이오와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4년 후 워싱턴 DC의 상원의원 겸 국회의장이 되었습니다. 희망이 없었던 알코올 중독자가 국회의장이 된 그 얘기는 수많은 속박된 영혼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한 번의 체험은 그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꾸준한 예배는 그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고 꾸준히 예배하면 변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도 용서할 수 있고 어떤 상황도 극복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는 하나님의 더욱 크신 축복 계획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축복의 약속도 믿으십시오. 그런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예배하고 나눔을 실천하면 반드시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 한 번의 승리가 중요합니다 >

 그때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두려워하며 오히려 예수님께 그곳을 떠나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배에 올라 돌아가실 때 그 치유된 광인도 따르기를 구했지만 예수님이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 자신이 체험한 큰일을 전하라고 해서 그가 돌아가서 온 성내에 예수님을 전파했습니다(37-39절). 그 말은 그가 회복 후 다시는 귀신에 속박된 삶을 살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한번 속박되면 계속 속박됩니다. 그러나 한번 속박을 극복하면 계속 그 속박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속박을 극복하는 한 번의 체험이 매우 중요합니다. 즉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영원히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 속박을 극복하면 그 다음은 극복이 쉬워집니다. 그러므로 속박된 삶이 힘들다고 죽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한번만 맞서서 속박을 이기면 됩니다. 그 한 번의 통쾌한 승리를 구하십시오.

 저는 초등학교 때 순진하고 눈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의 종노릇은 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놀리고 괴롭히면 참을 만큼 참다가 한계가 넘으면 그때는 주먹을 날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함부로 놀리지 못했습니다. 순진하고 눈치는 없어도 주먹은 있었기에 반에서 두목처럼 행동하는 친구도 내 성질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편이었기에 양심의 가책이 되면 그 양심 때문에 가끔 속박된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초등학교 4학년 때 전봇대를 빙글빙글 돌면서 서로 잡는 놀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한 방향으로 돌다가 룰을 어기고 갑자기 거꾸로 돌았습니다. 그때 둘이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그 친구의 안경이 깨졌습니다. 당시에는 안경 값이 비싸서 안경을 쓴 것은 공부를 잘하는 표시나 돈이 있는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친구의 안경이 깨지자 겁이 덜컹 났습니다. 요새 애들은 똑 부러지게 “저 아이가 갑자기 거꾸로 돌아서 안경이 깨졌으니까 제 책임은 없어요!”라고 했겠지만 저는 고가의 안경이 깨졌다는 사실 자체에 겁이 덜컹 났습니다. 그리고 8남매를 키우며 어렵게 사는 부모님께 그 사실이 알려져서 부담을 드릴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안경 사건이 부모님께 알려지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 약점을 잡고 그때부터 그 친구가 저를 괴롭혔습니다. “내 안경 물어내! 물어내지 않으면 네 부모님께 이를 거야.” 그때는 “네가 잘못했는데 내가 왜 물어내? 그래! 일러봐!”라고 맞서야 하는데 순진하게 말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 나 물어줄 돈이 없는데...” 그때 그가 요구했습니다. “안경 새롭게 사는데 돈이 몇 천원 들었어! 그러니까 일주일에 50원씩 줘!” 당시 50원이면 적지 않은 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처량한 속박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용돈을 탁탁 털어서 그 친구에게 꼬박꼬박 바쳤습니다. 그냥 일대일로 싸우면 지지 않는데 안경 깨진 문제로 돈을 요구하니까 순진하게도 싸워볼 생각조차 못하고 그냥 당했습니다. 그때 좋아하는 만화도 끊고 군것질도 끊고 돈이 생기는 족족 안경 값으로 바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님이 우연히 그 사실을 알고 흥분하면서 내 잘못이 아니니까 다시는 안경 값을 물어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모르고 다음 날 그가 또 돈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욕이 입에 붙지 않아서 욕은 못하니까 모든 기압을 눈에 모아서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습니다. “야! 네가 거꾸로 돌았잖아! 앞으로 한 번 더 돈 달라고 하면 죽을 줄 알아!” 그 뒤로부터 그 친구는 더 이상 제 곁으로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을 부모님께 일찍 알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결국 알리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그처럼 모든 속박된 상태를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용기 있게 누군가에게 알리십시오. 사람에게 알리기 힘들면 그 상황을 하나님께 알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반드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속박을 운명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서는 얼마든지 그 속박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미리 패배의식을 가지고 그 속박에서 못 빠져나온다고 상상하지 마십시오. 알고 보면 그 속박하던 것은 개털과 같은 힘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속박도 이겨낼 수 있는 위대한 유전자가 있습니다. 믿음이 커지면 그 유전자는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무엇에 속박되었다면 그것을 너무 강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신 안의 능력이 자신을 속박하는 세력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이제 끊임없이 선포하십시오. “나는 강하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내게는 귀신과 문제를 이기는 유전자가 생겼다. 나는 이 속박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빨리 벗어나 많이 축복 받고 많이 나누리라!” 이제 속박된 삶으로 인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꿈과 계획이 막히지 않게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꼭 붙잡고 악마의 사슬을 끊어내고 각종 속박에서 벗어나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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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65 출애굽기 사명성취에 필요한 태도 출6:1-13  이한규 목사  2012-07-14 2094
7064 시편 역전 인생을 위한 5대 요소 시118:19-29  이한규 목사  2012-07-14 2721
7063 출애굽기 조금 더 인내하십시오 출5:15-23  이한규 목사  2012-07-14 2085
7062 출애굽기 고난의 경험도 필요합니다 출5:1-14  이한규 목사  2012-07-14 2011
7061 출애굽기 사명자에게 따라오는 것 출4:18-31  이한규 목사  2012-07-14 2395
7060 출애굽기 예수 믿고 인물이 되십시오 출4:5-17  이한규 목사  2012-07-14 1839
» 누가복음 악마의 사슬을 끊어내십시오 눅8:26-39  이한규 목사  2012-07-14 2366
7058 출애굽기 기적은 자기 손안에 있습니다 출4:1-4  이한규 목사  2012-07-14 2056
7057 출애굽기 부족할 때 찾아주시는 하나님 출3:16-22  이한규 목사  2012-07-14 2144
7056 출애굽기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십시오 출3:13-15  이한규 목사  2012-07-14 1965
7055 욥기 다시 일어서십시오 욥14:7-17  이한규 목사  2012-07-14 2513
7054 출애굽기 자신을 존중하십시오 출3:6-12  이한규 목사  2012-07-14 1896
7053 출애굽기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사람 출3:1-5  이한규 목사  2012-07-14 2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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